소설리스트

오륜기로 가버렷-65화 (65/401)

〈 65화 〉 비너스와 에로스 (4)

브라운 제임스를 따라간 곳은 미국인 선수촌 앞마당이었다.

똑같은 선수촌 안에서 어떻게 이렇게 분위기가 다를까?

한국인 선수촌이 조용한 동네 같다면 여기는 꼭 휴양지를 온 것 같은 북적거림과 인파들로 정신이 없다.

"우와~!"

"이야..."

"이게 외국인 파티구나..."

이 많은 술은 다 어디서 난 거지? 샀나? 저 커다란 스피커도 미국에서 챙겨온 거야?

영화에서 보던 것 같은 동네 파티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Hey. bro?"

그 와중에 유진이가 툭 쳐서 고개를 돌리니, 육상 은메달리스트 로버트 깁슨이 우리를 반겨준다.

"HA HA! man! you came here!!"

로버트 덕분에 이목이 집중된다.

사람들이 함성을 질러주며 여기저기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What'up bro!"

악수도 해주고 건네주는 맥주 캔도 받고.

인종과 종교의 갈등을 벗어난 올림픽 답게, 사람들이 우리 친구들도 반겨주어 다들 자연스럽게 파티에 녹아들 수 있었다.

"씨발 미쳤다!! 야 우리 진짜 이러고 있어도 돼?"

"뭐 어때 새끼야. 이것도 지금 한 때지. 눈치보지 말고 즐기자고."

"그래. 마하 후광 볼 수 있을 때 보자."

"하하하! 새끼들!"

그런 가운데 브라운이 왜 안 따라오냐는 식으로 숙소 쪽으로 데리고 간다.

밖에서 노는 거랑 안에서 노는 게 뭔가 다른가?

그래서 집으로 들어가니. 태윤이가 눈이 돌아간다.

"마하야... 진짜로 우리가 여기 있어도 되는 거야...?"

"그렇게 유명한 사람들이냐?"

"유명하냐고? 그걸 말이라고 하냐 미친놈아..."

죄 키 크고 우락부락한 미국 농구 선수들이 있는 곳에 들어오니, 태윤이와 내가 평범한 아이들이 된 거 같고, 남수나 정석이는 소인들이 된 것 같다.

190이 넘는 유진이가 평범해 보일 정도로 그곳은 뭔가 또 다른 세상이었다.

그 와중에 브라운 제임스가 사람들을 보며 여기 누가 왔는지 보라는 식으로 큰 소리를 내는데.

덕분에 또 한차례 큰 함성을 들어야 했다.

"왓섭 브로가 딱히 흑인들만 하는 인사가 아니구나. 다들 그러네."

"그러게. 우리는 헬로 나이스 투 미츄로만 배웠는데."

유진이도 같은 흑인이다보니 사람들과 자연스레 어울리고, 태윤이는 NBA 선수들과 이야기를 나누느라 정신이 나간 것 같다.

참 다행인 건 농수 선수들이 태윤이의 흥분한 이야기를 즐겁게 받아줬다는 것이다.

"신기하네. 딱히 영어 잘 한다고 그러는 건 아닌 거 같은데."

"팬을 만나는 스타의 마음아닐까?"

"그런 건가?"

"너도 저렇게 해봐. 사람들 와서 이야기 해주면 좋아하고 같이 얘기하고."

"내가 스타냐?"

"그럼 아니냐? 여기 사람들 너 다 알아보고 있는데."

"흠. 야 근데 정석이 어디갔냐?"

"어? 이 새끼 어디갔지?"

여자들도 많고 선수들은 크고. 숙소는 좁은데 분위기는 야회 못지않게 왁자지껄한지라 남수랑 둘이 구석에 조용히 짱박혀 있었는데, 정석이가 안 보인다.

이 자식 어디 한쪽에서 외국인들한테 쫄아서 울고 있는 거 아닌가 찾아가보니.

"이예!! 골!!"

"Mother fuck!!!"

"하하하!!"

"One more game!"

윗층에서 정석이를 찾았다.

누군지는 모르겠는데 어떤 선수가 플스를 가져와 위닝을 하는데, 거기 자리잡고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참. 이 새끼는 어디다 던져놔도 살아남을 놈이야..."

"그러게 말이야. 적응력 진짜 좋아."

그곳에서도 알아보는 사람들과 악수도 나누고 인사도 나누고 그러고 있었다.

"남수야. 꼭 뭐 하지 않아도 재밌지 않냐?"

"그러니까. 외국애들 춤추는 거 보고만 있어도 재밌네."

자유롭게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사람들.

춤을 추면서 엉덩이를 서로 비비는 모습을 보면서는 둘 다 우와... 부럽다 하는 생각밖에 안 드는데.

"어?"

"왜?"

"..."

춤추는 사람들 저 뒤로, 빅토리아 알렉산드라가 흘깃 보였던 거 같다.

"남수야. 그 사람이다!"

"누구? 그 테니스?"

"어!!"

여기 있었구나.

은근 보기 어렵더니 이렇게 만나네.

"뭐해. 빨리 가 봐."

"그럼 너는?"

"아 미친놈아. 지금 누굴 걱정하는데. 오늘의 주인공은 너야 새끼야."

남수가 자기는 걱정하지 말라고, 여차하면 태윤이랑 있거나 정석이한테 가서 같이 게임해도 되니까 빨리 따라가 보란다.

"그래도 여긴 외국인들만 있는데..."

"아 씨발! 마하야. 꿈이 바로 저기 있는데 이 새끼 뭔 소리를 하는 거야."

"꿈..."

"그래. 꿈! 너 올림픽 왜 왔어? 메달만 따러 온 거야?"

"아니. 섹스하려고..."

"하하하 미친새끼! 그러니까 가라고. 야 저기 누가 벌써 그 사람 따라가네. 너 이러다 늦으면 또 후회한다."

그래. 그것이 꿈이었다.

고맙다 친구야.

성공에 눈이 멀어 잠시 꿈을 잊을 뻔 했구나.

.

.

.

.

그런 뜻으로 하는 말은 아닌가?

아무튼, 친구들을 지나 빅토리아에게 다가갔다.

그나저나 막상 다가가려니 존나 떨리네.

뭐라고 하지? 왓섭 브로는 남자들한테만 하는 거 아닌가? 여자는 왓섭 시스? 쓰읍 뭔가 이상한데?

"HEY! HEY!!"

"와 왓??"

그 와중에 어떤 여자선수가 지나가는 나를 붙잡고 혼자 흥분해 머리를 쥐어짜며 뭐라 뭐라 침을 막 튀기면서 떠들었다.

좋아하는 거 같은데, 가뜩이나 짧은 리스닝에 주변의 소음과 음악소리에 이해가 안 된다.

"아. 땡큐. 땡큐!"

아니구나. 분위기가 그냥 경기 잘 봤다 금메달 축하한다 그런 분위기가 아니야.

설마?

"어. 저기..."

"You touched me!! so touched my heart!!"

맞구나. 하자는 거구나.

감동했다는 건 알겠는데, 자기 가슴에 내 손을 가져가 마구 비빈다.

와... 좋긴한데... 근데 저기 지금 나는 다른 분을 가슴에 품고 있어서.

"Wait here!"

그리곤 옷인지 뭔지를 가지러 갔는가 잠깐만 기다리라는데. 또 주변에 여기저기 달라붙어 인사하는 사람들 때문에 옴짝달싹 못 하고 묶이고 말았다.

"하하하. 땡큐 베리 머치. 근데, 아이 돈 스픽 잉글리쉬. 아이 돈 언더스탠."

"NO. You just spoke English. HAHAH~!!"

하하하~ 외국애들도 선수들은 개그감이 없구나.

아... 빅토리아... 아까 저쪽으로 갔는데, 진짜 그 사람만한 인물이 없는데...

그런 가운데 이번엔 어떤 여 선수가 목을 확 꺽더니 다짜고짜 키스를 막 하는데.

"읍 읍읍!!"

가뜩이나 정신 없는데, 주변에서 함성을 지르고 만세를 부른다.

혀랑 술이 막 타고 들어온다.

고맙다. 그래도 이건 좋다.

"Hey MA-HA. Do you want to stay with me?"

진한 키스를 끝내고, 그윽한 눈동자로 나와 함께 있을래?라고 묻는 여자 선수.

남미 쪽? 아니면 뭐 어디 이 사람도 미국인인가?

빅토리아고 뭐고 응 그래 라고 하려는 찰나.

퍽! 하는 강한 힘이 눈앞의 여자를 치워버리고, 아까 막 자기 가슴에 내 손 비비던 여자 선수가 흥분해서 소리쳤다.

"Fuck! BITCH!!"

"WHAT!!!"

"Fuck off!!"

둘이 그러더니 막 욕을 하며 싸운다.

그것도 진짜 제대로 심각하게 서로 머리카락 쥐어잡고 주먹질 하면서 그러고 싸운다.

여기서 이기는 사람이 날 먹는거냐?

제기랄. 내가 무슨 지들이 잡아놓은 먹잇감인줄 아나...

지나가던 브라운 제임스가 소란스런 광경을 보며 싸움을 말리고 구해줬다.

"AHAHAHA!! You OK?"

"어. 오케이..."

메달 따면 여자들이 달려든다더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니구나.

근데 그냥 달려드는 게 아니라, 정말 무섭게 달려든다.

저런 사람들이랑 섹스하면 다빈이 저리가라 할 정도로 뽑아먹으려 들겠지?

소란스런 공간을 피해 내려오니, 태윤이는 외국인 선수들과 술컵을 깔아두고 비어퐁인가 뭔가하는 술게임을 하고 있었고, 정석이랑 남수는 2:2로 진지하게 플스로 경기중이다.

유진이도 매혹적인 흑인 선수와 엉덩이를 비비며 춤을 추고 있고, 나만 붕 떠 있었다.

후우. 이래서 사랑과 우정 둘 중 하나를 택하라는 건가.

아... 아쉽다. 빅토리아는 지금쯤 누구와 함께...

"Hello."

"..."

여기 있네?

*    *    *

"오케이! 마이 턴!!"

김태윤이 고3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며 탁구공을 입에 물고 던지려는 찰나.

갑자기 구마하가 다가와 그를 붙잡고 묻는다.

"아. 왜? 내 차례야!!"

"태윤아! 태윤아!! 여자한테 너 뭐 할래? 라고 어떻게 물어보냐?"

"뭔 소리야...?"

"그러니까! 나랑 뭐 뭐 할래 라고 하는 영어 표현이 뭐냐고?"

Do you want 정도는 알지? 라며 얘기를 해주니.

"오케이 고맙다!!"

서둘로 자기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는 구마하.

김태윤도 웃으며 다시 게임에 몰입한다.

"개새끼. 드림 스 컴 트루다."

다시 빅토리아에게 돌아온 구마하는 그 사이 어마무시한 덩치를 자랑하는 어떤 이가 그녀의 옆에 다가와 있는 모습을 본다.

"아..."

영어는 아닌 것 같고, 언어가 둥글면서 각진 것이 러시아 사람인가? 빅토리아도 벨라루스 사람이니까 러시아 어를 하겠지?

아름다운 이에게 호감을 사려는 노력은 동서양을 가리지 않는다.

언어에서 큰 장벽을 느끼는 구마하는 순간 좌절감을 느끼는데.

빅토리아가 뭐라뭐라 그와 이야기를 나누다 구마하를 보며 턱 끝으로 가리켰다.

"Sorry. he's back."

"미안. 돌아왔네" 라는 빅토리아의 한 마디.

구마하는 그 말에 천군만마 자신감을 얻고. 우락부락한 덩치의 남자는 순간적으로 짜증난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그러나 잠시 뒤. 눈앞의 상대가 그냥 동양의 스포츠 선수가 아닌, 육상의 슈퍼스타 구마하라는 것을 보자 그도 일단 미소를 지어보이며 악수를 내미는데.

웃는 얼굴과 다르게 아구를 맞잡는 힘이 장난 아니다.

구마하도 엄청난 파워에 본능적인 위기의식을 느낀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남자 대 남자로서 통하는 신호가 있다.

아까, 여자 선수들이 그를 차지하고자, 먹이를 앞둔 암사자들 같이 사투를 펼친 것 처럼 나에게서 그녀를 데려가려면 응당 그만한 자격을 보이라는 듯 싶다.

"으음..."

당황하는 구마하에게 그가 한껏 더 의기양양한 태도를 보인다.

영어도 아닌 자기나라 언어로 뭐라뭐라 말하며 주변에 손짓하니 동구권 사람들로 보이는 선수들이 테이블을 들어보인다.

아~ 이 자식 팔씨름 한판 하자는 뜻이구나. 힘으로 나를 빅토리아 앞에서 모욕을 주겠다?

구마하도 슬쩍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별 느낌 없이 흐뭇하게 두 사람을 보며 웃고 있었다.

그렇군. 나는 여자니. 어디 너희들끼리 재롱 한번 떨어봐 이런 건가?

좋다. 받아들인다. 남자라면 도전을 피할 수 없는 법.

구마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오케이! 렛츠 두 잇!!!"

혈기 왕성한 스포츠 선수들이 모여있는 곳.

특히 이곳은 올림픽 선수촌 가운데서도 남다른 유명세와 스타성을 가진 이들이 모인 곳이었다.

구마하에게 시비를 건 이는 러시아의 레슬링 선수 세르게이 카르노브.

지난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남자 82kg급 이하 그레코 로만형 동메달을 획득한 스타 플레이어였다.

세르게이와 남자 육상 깜짝 금메달리스트인 구마하가 팔씨름 대결을 펼친다는 말은 파티 공간에 아드레날린을 퍼트린다.

사람들의 이목과 관심이 집중되며 대결 장소가 마련된다.

관중들은 세계적인 스타 플레이어들.

각자의 손에는 맥주가 들려있고 응원과 함성 소리. 즐거움과 호기심의 비명이 끊이질 않는다.시끄러운 음악이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가운데, 한 사람이 두 선수의 주먹을 두드리며 좌우로 눈빛을 보냈다.

세르게이는 맥주를 들고 큰 소리로 웃고, 구마하도 어깨를 주물주물 만지며 웃음을 지었다.

"Guys! are you ready!!"

"конечно!"

"아 그럼. 물론이지."

두 사람이 서로의 눈을 쳐다본다.

재밌게 즐겨보자.

하지만 이기는 건 나다.

"Okay! fight!!"

남자의 자존심이 걸린 힘과 힘의 대결이 펼쳐진다.

구마하와 세르게이가 바짝 상체를 끌어당기며 전력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며, 빅토리아가 맥주캔에 가볍게 고혹적인 입술을 가져다 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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