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화 〉 비너스와 에로스 (6)
저스트 두 잇. 포커스.
무슨 뜻이지? 그냥 해라. 집중?
내 사랑을 받아준다는 건가? 아니면 그냥 하던 섹스나 집중하라는 건가?
머리는 의문을 가지나 오랜만에 여자를 만난 똘똘이는 멈출 줄을 모르고.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는 반응에 따라 그녀의 얼굴도 다시 은밀한 표정으로 변해간다.
정말 뭐였지? 그냥 어두워서 잘 못 본 건가??
* * *
"Good. it was good."
"진짜?"
"Sure."
혜정이나 다빈이는 먼저 감상을 말하거나 하는 그런 게 절대 없었는데. 외국인이라 그런가 반응이 솔직하구나.
여자친구가 있냐고 물어보길래, 지금은 없고 오기 전에 헤어졌다고 했다.
아마 나는 여자친구한테도 굉장히 스위트 할 거라는 그녀의 말에 용기를 가졌다.
"저기 빅토리아?"
"Yes?"
"혹시, 내 걸프렌드"
"No. no. stop MA-HA."
사귀자는 말도 꺼내지 못하게 딱 잘라 거절하는 그녀.
역시, 아까 그것도 내 사랑을 받아준다는 게 아니라 섹스에 집중하라는 뜻이 맞구나.
"아니. 나는 진짜로 누나가 좋아서. 아이 릴리 라이크 유. 아이 러브 유."
"No~! MA-HA No... please..."
조금 당혹스러운 얼굴로 마주보는 빅토리아를 보면서 내가 뭔가 실수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녀도 한참 생각하더니 다시 은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MA- HA. 나도 너가 좋아. but."
사랑은 아니다. 그건 다르단다.
뭐가 다르다는 걸까?
서로 좋은 감정을 가지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그리고 섹스를 했는데. 왜 사랑이 아니라는 거지?
"나 싫어?"
"No~ No!! I mean. 으음 나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
한참을 고민하던 그녀가 말해준다.
"MA-HA. You don't know me. 나를 모르는데 어떻게 사랑한다는 말을 해?"
"그거는 앞으로 알아가면 되는 거지."
"How?"
"하우??"
"Yes. how?"
우리는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데, 어떻게 서로를 알아가지?
아무리 세계를 돌며 시합을 뛰어도 같은 시간을 보내기가 어렵다는 빅토리아.
보자, 장거리커플을 뭐라고 하지?
"롱 디스턴스 커플. 에브리 이메일"
"Listen!"
들어보란다. 자기도 좋았단다. 나에게 호감이 있단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런 일을 같이 하진 않는단다.
"디스 띵 이즈 섹스? 맞나?"
"Yes! but."
The true love is a different thing.
진정한 사랑은 다른 것이다.
비너스는 그리 말하며 나를 숙소에서 내보냈다.
"으음..."
고맙다고 했다. 즐거웠다고 했다.
내내 좋은 분위기를 이어 우리는 섹스를 했다.
그리스 아테네에서 비너스 여신같은 사람과 나눈 추억이었다.
꿈에도 그리던 올림픽 선수촌에서 올림픽 공식 오륜기가 박힌 콘돔을 끼우고서 했는데.
그녀가 나의 사랑을 거부한다.
존나 혼란스럽네,
쾌감이나 여운을 느낄 겨를도 없이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서로 좋은 감정이 없고서야 안 그런다며. 그게 좋아한다는 뜻 아냐?
충분히 만족하는 얼굴로 느끼고 소리도 내고 그랬으면서 이제와서 딴 소리??
물론, 육체적 쾌락이 사랑의 전부는 아니지만, 그래도 좋아했잖아.
진정한 사랑이 뭔데?
자기를 어떻게 아냐니. 그러니까 사랑한다는 거 아냐. 사귀고 나아가자고.
아니, 그럴 거면 모르는 사람이랑 먼저 섹스를 하지 말든가??
"이 새끼 그래서? 했냐? 했어?"
"태윤아. 너 왜 이렇게 취했어."
"몰라 새끼야. 아 마하야. 씨발... 오늘 밤 존나 재밌다..."
다시 미국인 파티장소로 친구들을 찾아왔다.
태윤이가 인사불성으로 취해서는, "했냐? 했어?" 하길래, 다른 말은 안 하고, "날 사랑하지 않는데." 답해주니 지놈이 "그럼 그렇지" 라면서 계속 헛소리를 내뱉고 있다.
"외국애들은 다르다니까!!"
"유진이는 어딨냐?"
"몰라. 그쪽도 섹스하겠지..."
자정이 넘어가고 있었다.
태윤이 말대로 유진 볼트도 섹스중인지 종적을 감췄다.
다른 두 녀석은 뭐하고 있나 취해있는 녀석을 끌고 올라가보니, 여전히 눈이 쾡해서는 게임에 붙들려 있었다.
솔직히 정석이랑 남수네 게임방이 파티에서 제일 인기가 좋았던 거 같다.
짝을 못 찾은 갈 곳 없는 청춘들이 아까보다 더 많이 몰려들어 한국에서 건너온 두 녀석을 꺾고자 술과 과자를 지천에 깔면서 놀고 있는데.
"마하야... 우리 그만하면 안 될까...? 미친새끼들 이제는 손이 아프다..."
"아니 졌으면 꺼질 것이지 계속 덤비고 있어? 우리가 지들같은 운동선순 줄 아나?"
"그럼 대충 지든가..."
"안돼! 고등학생한테 게임을 지라니!!"
"그래. 차라리 죽고 말지..."
소파 옆에 내려놓은 태윤이가 쿨쿨 잠이 들었다.
정석이와 남수도 새로운 도전자를 받기 전에 화장실 좀 갔다오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그대로 넷이서 도망쳐 나왔다.
"파티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운동선수라 그런가 체력들이 장난 아니야."
"그것보단 승부욕이 장난 아니더라. 게임을 못하는데, 이기고 싶어 해. 계속 덤벼."
"하하하 새끼들."
태윤이를 업고 셋이서 떠들었다.
"아까 그 흑인 친구는?"
"몰라. 사라졌어."
"아~ 존나 놀았네."
"재밌었냐?"
"재밌었지. 파티도 해보고 외국애들이랑 게임도 하고."
"우리랑 게임한 애들도 유명한 애들일까?"
"몰라. 이제와서 거기 있는 게 누가 누군지 어떻게 알어."
"커억. 커어억~~"
"이 새끼는 술을 얼마나 쳐 마신거야?"
"너네는 술 안 먹었어?"
"콜라."
"나도. 목만 축였지."
"야. 근데 배고프지 않냐? 뭐 먹으러 갈래?"
식당으로 건너와 다시 이것저것 피자나 고기 같은 음식들을 가져오니, 정석이랑 남수가 가만히 쳐다본다.
"왜? 너네도 뭐 가져와. 공짜야."
"아니 그게 아니라. 너 아까도 뭐 먹으러 간다고 하지 않았냐?"
"음? 어."
"..."
"너 혹시...?"
"그래. 하고왔다."
정석이가 일어나 손을 들어 하이파이브를 내밀고, 남수는 식탁을 돌아와 안아줬다.
"이 씨발새끼. 너 진짜!"
"미친놈. 진심으로 축하한다!! 꿈을 이룬 남자가 됐구나!"
"..."
"설마. 그 금발?"
"아니면 다른 사람?"
"나중에 얘기해 줄 게. 나도 뭔가 정신이 없어서..."
친구들은 이것저것 얘기 좀 해보라는데, 그때 유진 볼트가 식당으로 찾아온다.
우리를 보더니 여기 있었냐면서 능글맞게 앉아 내가 가져온 피자를 한 점 먹는데.
"유진. 왜 얼 유 고잉?"
어디갔었냐는 말에 녀석이 씩 웃으며 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찢어진 콘돔 포장지를 툭 테이블에 올리는데.
"하하... 유 크레이지."
"You? you done?"
둘이서 가볍게 하이파이브를 하는데 정석이와 남수가 말했다.
"씨발 좋겠다 이 스포츠 맨들아."
"그래. 너네는 할 자격이 있다."
* * *
다음 날 아침.
태윤이가 술 먹고 취한 걸로 조금 혼나긴 했지만, 감독님도 그 이상 뭐라 하는 일 없이 지나가셨다.
여기까지 온 거 이정도만 해도 다행이라며, 오늘까지 푹 쉬라는 말에 다 같이 아테네 관광을 나갔다.
친구들은 한번 봤다고 지겨워하지만, 그래도 같이 사진도 찍고 그러고 있으니 나름 재밌어 하는 거 같다.
"와. 여기 진짜 와보고 싶었는데."
아테네 파나티아니코 경기장.
1대 근대 올림픽이 벌어진 곳으로 고대에 만들어진 공간을 개조해 여전히 시합장으로 쓰고 있는 곳이다.
관중석 중앙엔 황제들이 앉던 의자도 있고 바로 어제까지 양궁 경기도 벌어져 인기 만점의 관광명소였다.
"마하야. 너도 가서 앉아 봐."
"아 됐어. 줄 서기 귀찮어."
"앉아 씨발! 나 사진 좀 찍게!!"
형한테 정말로 이 새끼 데리고 일 할 거냐고 물어보니 그냥 웃고 넘어간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황제석에 앉았는데, 사람들이 알아봐서 조금 시끌벅적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와 이 새끼 진짜 유명해 졌구나."
"이제 몸 사리고 다녀라."
"니가 앉으라며!!"
다시 경기장을 지켜보고 있는데 한 감독님이 다가와 말씀하셨다.
"마라톤 결승은 여기로 들어온다더라."
"우리도 여기서 하지. 그럼 여기서 메달 받았을 건데요."
"하하! 그러기엔 트랙이 너무 형평성이 떨어지니까."
비틀 거리던 태윤이도 조금씩 컨디션이 돌아오는 거 같다.
술도 못 먹는데, 뭔 술을 그렇게 먹었냐 물어보니, NBA선수들이 주는데 어떻게 거절하냐며 뒤늦게 어젯밤의 감상을 털어놓았다.
"야. 근데 애들이 그러는데 너 했다며?"
"음."
"하하하! 미친새끼!! 선생님! 마하가요!"
"야. 태윤아. 근데 있잖아. 내가 어젯밤에 빅토리아랑 하면서"
"뭐? 하면서 뭐?"
"사랑한다고 했었거든."
"근데?"
"근데, 막 정색하면서 싫다고 했는데."
"그래서...?"
"그게 무슨 뜻이냐?"
"몰라 병신아. 이 새낀 지금 누구한테 뭘 물어보는 거야??"
* * *
모두를 보내고 다시 감독님과 둘이 남았다.
어젯밤은 200미터 시합이 끝나고 난 다음이라 허락된 자유시간이지, 오늘 밤은 오늘 밤 따로 여러일정이 잡힌다.
"일단, 대한체육회 회장님과 다 같이 나가서 식사하기로 했으니까. 저녁은 밖에서 먹는걸로 알고."
"우와~"
"왜?"
"감독님. 제가 그런 자리까지 가야하나요?"
"마하야. 넌 더 이상 단순한 육상선수가 아니야. 메달리스트야."
"메달 저만 받은 것도 아니잖아요..."
"물론, 모든 메달이 다 값지다고 하지만, 어떻게 하겠냐. 그냥 감사하게 여기고 다녀오자."
전무후무한 결과를 낸 덕에 나에겐 앞으로도 여러 역할이 주어질 거라 하신다.
당장은 감독님도 잘 모르는 상황이라, 연맹이나 주변에서 시키는대로 하는 수 밖에 없다고 하셨다.
사진도 찍고 기자들도 오고, 어이고 이게 밥 먹으러 나온건지 뭔지...
"정신없네요."
"한국가면 더 할 걸?"
"후우... 뭔가 아찔한 기분이에요."
"그러니까 몸가짐 잘해야지."
"네."
"간단하게 답하지말고. 너 어제도 여자랑 있었다며?"
"네? 누... 누가 그래요?"
누가 들으면 어쩌시려고 이러나 주변을 두리번 거리니, 감독님이 툭 치면서 말씀하셨다.
"쫄지마. 그정도 주변은 다 살피고 이야기 하니까."
"그래도요 감독님... 근데 어떻게 아셨어요?"
"아까 애들이 다 얘기해줬다."
"아 미친놈들 진짜... 감독님 저기 그게 아니라요..."
"알어. 널 뭐라 하는 건 아니고. 나도 들은 게 있으니까 조심하라는 거야."
메달리스트는 인기를 누린다.
특히나 우리 같이 유명한 메달리스트한테는 더 여자들이 달라붙는다.
"징크스 같은 것도 있고, 자랑도 있을 것이고. 여자들이 그냥 안 둔다고 하더라."
"..."
"뭐 그것도 스타의 숙명이라면 숙명이니까. 근데 이 자식. 말하다 보니까 열받네?"
"......"
그런가? 빅토리아도 그래서 그랬던 건가?
그냥 메달 따고 유명하고 그러니 한번 해본 게 전부였나?
"후우..."
"왜? 너한테 뭐라고 하는 거 아니라니까."
"아니요. 그냥... 후우우...."
"이 자식이 한숨을 쉬어? 야. 그럼 어쨌든 내가 니 선생인데, 맘껏 놀고다녀라. 여자들이랑 원 없이 즐겨라 이래야 되냐!"
"아니요... 감독님 그런 게 진짜 아니라요..."
"그럼 뭔데?"
그런 줄도 모르고, 어제 같이 있던 사람한테 사랑한다고 했다니, 감독님이 깔깔 배를 잡고 웃으셨다.
"하하하!! 이 자식!! 사랑은 뭔 놈의 사랑이야!"
"아... 진짜 좀 비참해지는 기분이에요."
"아이고 마하야... 우리가 진짜 가까워지긴 가까워졌나 보다. 이런 이야기도 하고."
한 감독님은 그건 그 친구 말도 맞을 거라 하셨다.
좋은 감정을 가지고 선을 넘었지만, 사랑은 다른 것이니. 그 친구가 나를 가볍게 보거나 한 건 아닐 거란다.
"소위 말하는 따먹은 건 아니라는 뜻이지."
"감독님이 그런 말씀도 하세요??"
"뭘? 넌 어제 여자랑 자고 왔잖아?"
"..."
"아무튼, 실망하지 말고. 늘 여자 문제는 조심해야 되겠다. 큰 경험으로 삼으면 돼."
"저 감독님. 그럼 왜 그런 거래요?"
"뭘?"
"사랑은 다르다고 했는데, 뭐가 다른 건데요?"
어른이시니까 나보단 더 답을 알겠지 싶어 물어보았다.
"마하야. 사랑이 뭐냐?"
"사랑이 뭐긴요... 사랑이 사랑이죠."
"그러니까. 니가 원하는 사랑이 뭐냐고? 여자랑 할 수 있으면 그게 사랑이야?"
"아니요."
"그래. 너부터도 사랑이 뭔지 모르는데, 그 말을 쉽게 내뱉으면 상대방이 받아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멍해진다.
뭔가 그럴싸하게 들리긴 하는데, 여전히 이해가 잘 안 된다.
"그럼 제가 뭐라고 했어야 하죠?"
"글쎄다. 내가 해 줄 말은 아닌 것 같고, 한번 더 그 친구를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는 게 좋을 거 같다."
"만나 줄까요?"
"그럼. 당연하지. 너 인마 대통령도 너랑 통화 하고 싶어서 줄 서고 있는 놈이야."
한 나라의 대통령과 벨라루스의 인기 금발미녀 스포츠 스타.
후자가 더 큰 무게감으로 다가오지만, 일단은 나도 그만한 급은 된다는 뜻이니까.
"흠."
그날 밤. 올림픽 선수촌으로 돌아와 다시 한번 벨라루스 숙소를 찾아갔다.
대체 사랑이 뭐냐? 비너스여 답을 알려달라.
콘돔? 혹시 모르니 챙겨왔다.
어제 브라운한테 받은 건 썼으니까. 휴게실 갔는데 있길래 그냥 가져왔다.
그래도 일단 목적은 대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