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륜기로 가버렷-69화 (69/401)

〈 69화 〉 THE REAL WORLD CHAMPION (1)

[이번 올림픽에서 최대 이변은 역시 한국 육상의 메달 획득 소식이었죠. 시민들 사이에서도 때 아닌 달리기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취재에 이영섭 기자입니다.]

무더위의 기승이 접어드는 8월 말. 남자 800미터 시합을 이틀 앞둔 날이었다.

한국에 있는 이주영이 가족과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

"하여간 인간들 대단해... 언제 그렇게 육상에 관심이 많았다고..."

"당신도 어디가서 그런 소리 하지마. 세상 다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법이야."

"오빠. 그 친구랑은 통화 했어? 컨디션 어때?"

"뭐. 나쁘지 않다는 거 같애."

"이번에도 메달 또 딸까?"

"모르지. 금메달이 쉬운 것도 아니고."

"혹시 그 친구 또 메달 따면 오빠한테도 뭐 좀 와?"

"하하하! 자기야? 왜 그런 걸 생각해?"

"왜? 당연한 거 아냐? 고생은 우리 남편이 다 했는데. 학교도 빌려 줘 훈련도 시켜 줘. 남 좋은 일만 시키면 난 기분 나쁘지."

"안 그래도. 내년에 우리 학교로 선수들 보내겠다고 여기저기 난리야."

"정말?"

"그래. 대한체고도 지금 자기네 감독직 맡아 달라 그러고. 나도 정신 없어."

"오~ 그래? 좋네."

"하하하! 이제 좀 만족해?"

구마하의 인기에 힘입어 한주 고등학교도 세간의 관심이 쏟아진다.

이주영도 여기저기 들어오는 인터뷰 요청과 기자들 때문에 정상적인 일정이 어려울 정도였다.

이주영은 그냥 친구와 제자가 남은 도전에 최선을 다해주길 바라고 있었다.

"오빠. 체육복 말고 정장 입고 가."

"으하하하! 진짜 그만 좀 해."

"아이 그러지 말고... 먼저도 그냥 운동복 차림으로 방송 나왔는데, 입고 가. 어? 가서 갈아입어."

"알았어. 다녀올게."

"응. 수고해. 우리 남편."

아내의 말을 들으면 중간은 간다고 하던가?

남자 800미터 시합을 앞두고 구마하의 세 번째 금빛 도전에 오늘도 일찌감치 기자들이 한주 고등학교를 찾아와 카메라를 들이밀고 선수들에게 인터뷰를 요청하고 있었다.

"이 선생."

"네. 교감 선생님."

"아이고 요즘 운동장을 보면 기분이 좋다가도 그렇고. 나쁘다고 하자니 또 그건 아니고."

"죄송합니다. 저희도 일이 이렇게 될 줄 몰랐습니다."

"영군 고는 오히려 조용하다고 하던데. 그렇게 따지면 또 우리 입장이 그리 나쁜 건 아니고."

"마하 이 녀석 돌아오면 학교로 한번 찾아오라고 하겠습니다."

"암. 당연히 그래야지. 훈련은 우리 학교에서 했는데."

"하하하! 그렇죠."

"그리고. 저기. 요즘 바쁜 건 아는데."

"네."

"우리 친척 중에 스포츠 기자 하는 녀석이 하나 있거든. 인터뷰 좀 해주면 안 될까?"

"알겠습니다."

"이 선생도 너무 비싸게 굴지말고. 왜 이렇게 깐깐하게 그래."

"아니요. 제가 비싸게 구는 게 아니라, 상률이도 가만히 있는데, 제가 뭐라고 나서기도 애매하잖아요."

"그쪽은 시합에 집중하겠지. 이따가 부탁해."

"네. 알겠습니다."

점심시간. 이주영은 기자들과 단독으로 자리를 가졌다.

"선생님. 오늘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K일보 임한기라고 합니다."

"네. 반갑습니다."

"요즘 정신 없으시죠?"

"바쁘죠. 원래도 우리 대회로 정신 없는데, 그래도 좋은 경험이라 생각합니다. 애들도 관심 가져주셔서 더 열심히 하고 있고요."

"생각보다 선수들이 많이 보이더라고요."

"네. 진작 그만둔 애들도 돌아오고. 인기라도 타보려고 하는 애들도 있고, 뒤늦게 도전해보는 친구들도 있고. 그냥 운동하면 건강해지니까, 다 받아줬습니다."

"학생들 하는 말이, 다른 학교도 요즘 많이 찾아와서 훈련한다고 그러던데."

"하하하! 우리 학교 땅이 원래 기운이 좋거든요."

"그럼요. 금메달이 두 개나 나왔는데요."

구마하 선수와 첫 만남은 어땠었냐?란 질문을 받으며 인터뷰가 시작됐다.

"한 감독이 전화가 왔었어요. 자기네 학교에 엄청난 재능을 가진 애가 하나 있는데, 데리고 와보겠다고. 이름도 특이하고 뭔가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긴 하더라고요."

"구마하 선수는 처음부터 잘했었나요?"

"천재형이죠. 하지만 단순히 자기 재능만 믿었다면 그렇게 발전하긴 어려웠을 겁니다."

이주영이 들려주는 생생한 경험담에 기자들도 신이 난다.

"아~ 그럼. 1년 사이에 그렇게 몸이 커진 거라고요?"

"네. 처음 만났을 땐 175정도 됐었나? 몸도 가늘고 딱히 힘이 있어 보이진 않았습니다. 애가 많이 노력했어요."

"확실히 직접 지도하신 감독님이라 그런가 이야기가 다르네요."

"어디서 또 이야기를 들으셨습니까?"

"연맹을 갔었는데..."

기자들도 뒷북치는 느낌이 없진 않지만, 연맹에서 주최하는 자리를 찾아갔었단다.

육상연맹 부회장 박문기가 한국에 남아 언론을 상대하고 있었다.

막상 선수 이야기는 하나도 없고, 너무 연맹 자랑만 하길래 김이 빠지는 느낌이었단다.

"이해해주시죠. 연맹에서 마하한테 큰 기회를 주신 것도 맞으니까요."

"그렇다기보다는, 뭔가 선수 이야기를 감추고 있었다 같은 느낌을 전해받았거든요."

"그것도 맞을 겁니다. 한 감독이 언론과 거리를 두는 편이거든요. 아마 지금도 그럴 겁니다."

"네. 아테네 현지에 있는 동료들이 이야기 해주는데, 단체 회견 아니고서는 따로 선수한테 접근을 못 하게 한다 하더라고요."

"한 감독이 까다로운 것도 있는데, 다른 무엇보다 시합을 우선하기 때문에 더 그럴 겁니다. 그랬기에 마하도 운동에 전념할 수 있었고요."

자신들의 교육 철학이나 훈련 방법.

그 외에도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이주영도 나쁘지 않은 시간이었다.

"뭔가 구마하 선수가 좋은 지도자를 만났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이고 이거 어쩌다 보니까 제 자랑을 한 거 같은데, 우리도 기합을 줄 땐 줍니다. 그러나 한 감독이나 저나 따로 매를 든 적은 없습니다. 맞아서 하는 운동이 즐거울 순 없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으니까요."

"뒤늦게 운동을 시작해도 괜찮은지 궁금해 하는 학부형이나 지도자 분들이 많습니다. 여기에 대해선 뭐라고 해주시겠습니까?"

"개인의 선택이죠. 거기에 제가 뭐라고 할 이야기는 없습니다."

"아무래도 구마하 선수가 특이한 케이스겠죠?"

"많은 이들이 프로나 올림픽 메달을 목표로 어려서부터 운동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소수의 선택받은 사람만 코트에 설 수 있다는 미국 NBA나 프로 스포츠 경기를 보면, 고등학교나 대학에 들어가 운동을 시작한 사람들도 없진 않아요. 물론 예체능 계열에 재능의 영역은 간과할 순 없습니다. 우리도 마하가 그렇게까지 성장하리라 생각 못 한 건 사실이에요.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선수의 뼈를 깎는 노력이 있었습니다."

이주영은 그렇기 때문에라도, 한 감독은 단거리를 자신은 중거리를 선수에게 교육했다고 말했다.

"오히려 선수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다면, 절대 그런 지도 방법을 쓰진 않았겠죠. 부상 문제나 체력 문제도 그렇고."

"으음. 어려운 도전을 해낸 것이 선수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그렇죠. 올림픽 메달이라니, 정말 꿈에나 그리던 장면들 아닙니까."

처음부터 올림픽을 목표로 운동을 시작한 구마하지만, 한상률은 몰라도, 자신은 그냥 이 녀석이 더 건강한 학생이 되기를 바랬다는 말로 감상을 마쳤다.

"그런데, 생각보다 너무 큰 선수가 됐네요."

"하하! 한 감독이 바라던 대로 됐으니까요. 저야 고마운 일이죠."

"오늘 말씀 감사드립니다. 시간 내주셔서 고맙고요. 더 뭐 하실 말씀 없으십니까?"

"고교 육상계에 구마하 선수 말고도 많은 재능 있는 선수들이 있습니다. 성운 여고의 최다빈이라든지, 대한 체고 권지성. 우리 학교 동민이도 그렇고. 아 맞다 수원 체고의 김진수 선수는 마하도 한번 이긴 적이 있어요."

"정말요? 으음 수원 체고라."

"우리 육상인들 모두 한국 육상에 계속되는 관심 가져주시면 반드시 국민들의 기대에 보답하겠습니다."

*    *   *

인터뷰를 마친 임한기 기자가 사무실로 돌아와 후배와 이야기를 나눴다.

"인터뷰 잘 하셨어요?"

"어. 서울대 출신이라더니, 말 잘 하더라."

"서울대면 다 말 잘합니까? 선배님도 좋은 대학 나오셨잖아요."

"야 인마. 난 기자잖아. 질문하는 사람이라고."

"어? 임 선배. 여기 계셨네요. 국장님이 부르시던데요."

"지금?"

위에서 호출이 와 찾아가보니, 당장 여권 챙겨 아테네로 가란다.

"지금요?"

"뭔 소리를 하는 거야? 기자가 지금이고 나중이고 어딨어. 취재 거리 있으면 움직이는 거지."

"아니. 그래도 현지에 다른 기자들이 없는 것도 아니고..."

"다들 태권도랑 유도쪽으로 정신이 없다잖아. 우리 말고 다른 신문사나 언론도 지금 사람들 보내고 있으니까, 그 비행기 타고 갔다 와."

임한기 기자는 짐을 챙기며 전화를 들었다.

"어. 갑자기 일정이 잡혀서. 알았어. 면세점 가보고 있으면 연락할 게."

가족에게 출장 소식을 알리며 이주영에게도 전화를 걸어본다.

"네. 선생님. 아 다름이 아니라, 저희도 현지 취재가 결정됐는데요."

앞으로도 한국 육상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줄테니, 만나기 까다롭다는 한상률과의 벽 좀 허물어 달라는 부탁을 하자.

"하하하... 어려운 이야기네요. 일단 말은 해놓겠습니다. 그런데 한 감독이 그리 녹록하진 않을 겁니다."

"걱정마시죠. 원래 미움 받는 게 저희들 아닙니까."

서둘러 넘어간 그리스 아테네.

비행기에서도 기사를 작성하느라 뜬 눈으로 밤을 보낸 임한기와 동료 앞에 지중해의 강렬한 햇살이 쏟아진다.

"어우... 엄청 덥네.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그러게요. 한국은 시원한 거였네요..."

"보자. 도착했다고 연락을 드려야 하는데."

임한기가 핸드폰을 꺼내는데 로밍에 문제가 생겼나 통화가 연결되질 않는다.

"에이 씨 이래서 서두르면 안된다고."

"선배님. 아까 저쪽에 통신사 있던 거 같던데, 거기 한번 가보시죠."

"그래."

다른 기자들이나 언론이 호텔이나 경기장을 찾아갈 때 K일보의 임한기와 동료기자는 공항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어? 어! 선배님!! 저기요!!"

"왜? 뭐야?"

고개를 돌리자, 구마하가 몇 사람의 청년들과 공항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뭐야? 저 친구 왜 여깄어."

"그 시합 때 나왔던 친구들 배웅해주는 거 같은데요?"

하늘이 내려주는 기회를 놓칠 수 없다.

임한기와 동료 기자가 구마하를 찾아가는데.

"지랄말고 병신아! 아 씨발 진짜..."

"미친놈아! 지랄이 아니라. 진짜로 그냥 쫓겨났다니까."

"그래서 니가 안 했다고? 그 말을 지금 우리더러 믿으라고?"

"개새끼가 이제와서 말 바꾸고 있어 뒤질라고."

"진짜라니까!! 아니 왜 말을 안 믿어! 남수야. 넌 나 믿지?"

"하하하! 글쎄다. 니가 우릴 속인 게 한 두번도 아니고."

아테네 공항을 동네 편의점으로 만드는 아우라에 기자들이 먼저 걸음을 멈추고. 친구들을 향해 웃고있던 박남수가 인기척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

처음보는 한국 어른들이 놀란 듯 그들을 보고 있었다.

박남수는 다급하게 걸쭉한 욕설을 뱉고 있는 친구들을 말리는데.

"야. 야!!"

"아 왜?"

"뭐?"

"어?"

김태윤도 고개를 돌려 기자들을 보며 물었다.

"아저씨들 누구세요?"

"아... 우린 저기 기자들인데요..."

한국 기자란 말에 구마하와 친구들의 얼굴이 저승사자라도 만난 듯 어두워진다.

"어... 그러니까 우린..."

"아니... 저기..."

"후우. 미친놈들... 그러니까 내가 그렇게 평상시 말조심 하라니까..."

"야. 너도 지금 욕 하고 있잖아..."

"그래. 왜 우리한테만 지랄인데?"

구마하도 정신을 차리며 고개를 들었다.

"지... 진짜로 기자세요?"

"하하하~! 아니 무슨 이야기들을 하고 있었길래 그렇게 겁을 먹어요?"

"아... 그냥 밥 먹으러 갔는데. 나왔다고요."

"네. 네! 맞아요! 너무 느끼하고."

"맛도 맛이고 생각보다 비쌌어..."

"하하하하~! 어감은 뭔가 심각해 보였는데 그게 밥 문제였어요?"

임한기의 눈에 구마하의 첫 인상이 바뀐다.

그는 육상연맹에서 말하던 한국 선수단의 히든카드도 아니고, 언론에서 말하는 다가가기 어려운 스타도 아니었다.

오히려 이주영이 말해준 딱 그 또래의 건강한 고등학생의 모습이다.

"반가워요. 임한기 기자라고 합니다."

"아. 네. 구... 구마하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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