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륜기로 가버렷-70화 (70/401)

〈 70화 〉 THE REAL WORLD CHAMPION (2)

"형님도 돌아가시면 정신 없으시겠네요."

"네. 일도 밀렸고, 가게도 그렇고."

"아니. 그보다는... 역시 언론이..."

"너무 걱정마세요 선생님. 그것도 관심의 일환 아닙니까. 우리도 홍보되면 좋죠."

"긍정적으로 생각해주시면 다행이고요."

구마하의 응원단이 돌아가는 날이었다.

한상률이 구마윤과 티켓팅을 마치고 돌아왔는데, 그 짧은 사이 기자들이 찾아와 있었다.

"어떻게들 오셨습니까..."

"선생님! 이분들 기자들이래요!!"

"저희 그냥 밥 먹으러 간 이야기밖에 안 했어요!!"

"후우..."

"남수가 한숨을 쉬는 게 썩 좋은 상황은 아닌 거 같구나. 얌전히 좀 있어라 이놈들아"

한상률도 임한기가 건네주는 명함을 받았다.

"으음. 임 기자님 이시라고요..."

"네. 혹시, 이주영 선생님한테 연락 받으셨는지?"

"예. 뭐 어제 전화로 이야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바로 공항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요..."

"아무래도 인연이 있었나 봅니다."

모두들 임한기를 통해 한국에서 구마하의 인기를 전해들었다.

"진짜요? 그 정도라고요?"

"그럼. 지금 한국에서 구마하 선수 장난 아니야."

"육상 자체가 인기운동이 되고 있어요. 구 선수 취재 때문에라도 각 언론사마다 기자들 파견 보내고 난리난 상황이고요."

친구들은 좋아하지만 한상률은 나지막히 한숨을 쉬었다.

구마하도 스승의 눈치를 살핀다.

"하하하! 야. 들었냐? 너 장난 아니라는데?"

"몰라... 난 시합이 우선이야."

"아저씨. 얘한테 궁금한 거 있으시면 저희한테 물어보시면 돼요."

"네. 저희가 다 알아요."

"오 그래? 구마하 선수 정말 그래도 돼?"

구마하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조금 모자란데, 애들은 착해요."

"뭐야!! 이건 또?"

"야 이 씨. 기자님한테 그렇게 말하면 어떡해?"

"뭐. 이렇게 안 하면 니네 말이 진짠 줄 알 거 아냐. 그치 남수야?"

"몰라... 니네들 쪽팔리니까 말 걸지 마."

"하하하! 정말 친한가보네."

"친하긴한데, 제정신 아닌 것도 맞아요. 얘네들 지금 고3이 여기와서 저 응원하고 있는 거라니까요? 수능 얼마 남았다고."

"어 진짜? 듣고보니까 그러네."

"고3이 친구 응원을 하려고 여기까지 왔다? 선배님 기사감 아닌가요? 육상의 기적은 간절한 우정에서부터."

기자들의 언변에 구마하나 친구들이 스리슬쩍 녹아든다.

"뭐. 실제로 고마운 놈들이죠..."

"늦었거든."

"그래. 포장하지마. 이 새끼 이제와서 지 이미지 관리하고 있어."

"후우... 아 진짜 쪽팔린다..."

잡다한 이야기도 그만. 떠날 시간들이 다가온다.

"먼저들 돌아가고. 멀리까지 와줘서 고맙다. 정말 큰 힘이 됐다."

"네. 선생님."

"형님도 즐거운 여행 되십시오."

"고생하시죠. 마하야?"

"응."

형제는 서로를 강하게 끌어안는다.

"끝까지 다치지말고. 잘해."

"알았어. 일주일 뒤에 봐."

"먹고 싶은 거 많이 준비해 놓을게."

"후후후. 응."

구마하는 친구들과도 돌아가며 으스러져라 껴안고 인사를 나눴다.

후배 기자가 임한기에게 다가와 슬짝 카메라를 들어보이며 물었다.

"선배님. 이 장면 찍어둘까요?"

임한기가 손을 들어 막으며 고개를 가로젖는다.

"가만있어. 우리가 타블로이드 잡지는 아니잖아."

"아. 네. 죄송합니다."

한상률은 두 사람의 행동을 조용히 살펴보았다.

게이트를 빠져나가는 가족과 친구들을 보면서 구마하는 툴툴거렸다.

"아이고 지긋지긋한 놈들. 드디어 갔네..."

임한기가 구마하와 출국장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

"먼저들 가서 아쉬운 건 아니고?"

"뭐. 어차피 가면 만날 건데요. 그리고 고3이 언제까지 놀아요. 일주일 쉬었으면 됐지."

"수험생이 여기까지 응원을 오다니. 보통 우정이 아닌가 보다."

"세 놈 다 훌륭한 부모님을 두었죠. 자식들이 모자라서 그렇지..."

"하하하! 다음엔 구마하 선수와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은데?"

"한심한 이야기 밖에 안 나올걸요..."

아련한 감정을 괜한 심술로 털어놓는 구마하에게 한상률이 말했다.

"마하야. 언제까지 떠들거냐. 그만하고 가자."

"어? 네. 저 그럼. 안녕히 계세요."

거두절미하고 돌아서는 한상률을 보며 임한기가 목소리를 높였다.

"한상률 감독님?"

"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러시든가요."

오히려 구마하가 꾸벅꾸벅 가는 길까지 고개를 숙이는 모습에 기자들의 마음이 미안해진다.

"이야~ 대체 누가 메달리스튼지..."

"그러지마라. 불쑥 찾아온 건 우리 실수 맞지."

"그래도 이야기는 들었다만. 생각보다 더 까칠한 사람이네요."

"난 저 친구 마음 이해해."

"왜요?"

"너. 회사 돌아가면 90년대 중반 스포츠 기사에서, 한상률 찾아 봐."

"저 사람도 유명한 사람이었어요?"

"달면 삼키고 쓰면 뱉고. 저 친구 행동 뭐라 할 수 없어."

"아무튼, 선배님 우리도 빨리 핸드폰 해결하셔야죠."

"아 맞다."

임한기와 동료도 부랴부랴 숙소에 자리를 잡고, 현지 동료들을 만나 취재내용을 전달 받은 뒤 침대에 쓰러졌다.

"아으 피곤해라. 그리스까지 왔는데, 일 일 일이라."

"선배님. 생각보다 다들 내일 시합을 엄청 기대하고 있네요."

"그러게. 해외 언론도 지금 취재열기가 뜨겁다더니... 구마하가 대세는 대세구나."

"봤을 땐 그냥 재밌는 학생 같던데."

"아무래도 단거리와 중거리는 같은 카테고리에 있어도 완전히 다른 종목이니까. 두 종목 메달이 가능하냐는 건 인간의 판타지를 불러 일으키겠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도전이다?"

"느낌 좋다. 그거 타이틀로 가자."

두 사람이 여러 자료를 정리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선배님. 전에도 이런 선수들이 있었나요?"

"넌 스포츠 기자가 올림픽 관련 히스토리도 모르냐?"

단거리와 멀리뛰기 메달리스트 칼 루이스를 비롯하여 다양한 선수들이 있었다.

동계 하계 두 대회에 출전해 메달을 딴 사람들도 있고, 단체종목에 출전하다 개인 도전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잘 들어. 스포츠는 각본없는 드라마야."

"각본없는 드라마의 주연이 한국 선수라..."

"너 오늘 감 좋다? 아까 공항에서도 그렇고. 이것도 나름 괜찮은데?"

"역시, 회사를 벗어난 게 뭔가 심적 여유를 주는 건 아닐까요?"

"하하하! 이 자식!"

두 사람은 쓰러져 잠이 들고 다음 날 아테네 스타디움으로 향했다.

"선배님. 저 올림픽 취재는 처음인데 장난 아니네요!"

"그러게 말이다. 아무리 올림픽이라도 이정도 흥행 쉽지 않을 건데."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사람들이 입장 대기줄을 기다리고 있었다.

각자의 언어로 각자의 기대와 관심을 표현하는 가운데, 익숙한 단어들이 들렸다.

KOREA. 그리고 KOO MA HA.

"다들, 드라마틱한 걸 기대하는 눈치다."

"이러다 또 구마하 선수가 메달 따면 정말 큰일 나는 거 아닌가요?"

"무슨 소리야. 큰일은 이미 벌어졌어. 관중들이 원하는 건 그 이상의 무엇이야."

"그게 뭘까요?"

"글쎄. 지금으로썬 기적이라는 단어로만 떠오르는데. 지켜봐야지."

동료들에게 ic카드를 건네받고 두 사람도 운동장에 들어선다.

관중석은 꽉꽉 들어차 장대 높이뛰기나 투포환 예선전을 지켜보고 있었다.

여자 선수들의 시합도 벌어지고 경기장은 쉴세 없이 돌아간다.

그래도 많은 기자들이 모여있는 건 선수 대기실 앞쪽이었다.

임한기와 후배 기자도 기자석에 자리를 잡아 카메라를 세팅하는데, 마침내 예선을 앞둔 선수들이 몸을 풀기위해 운동장으로 나왔다.

"야. 카메라. 빨리!"

"어디요? 오오!"

구마하가 운동장에 나서자 관중들의 함성이 쏟아진다.

세계 각 언론사들의 대포 카메라가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따라붙으며 요란한 셔터소리를 울렸다.

"이야. 하하하! 엄청나네 정말."

"아 선배님... 그러니까 어제 그냥 일상 모습도 찍어두자니까... 괜히 눈치 봤어요."

"직업윤리를 지킨 보람을 그렇게 폄하하지 말자."

그런 가운데, 구마하가 두 사람을 알아보고 꾸벅꾸벅 인사를 건넸다.

임한기와 동료 기자도 반가움에 손을 흔든다.

"봤지? 세상이 다 알아주는 때가 온다니까."

"선배님. 그러지말고 이리와서 인터뷰 좀 해달라면 하시죠?"

"흠. 인터뷰라."

임한기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역시나 저 멀리 선글라스를 낀 한상률의 얼굴이 이쪽을 향해 있었다.

"흐음."

그래. 어디까지 기싸움을 하려는지 모르지만, 이쪽도 비싼 출장비 내고 왔는데 너무 봐줄 순 없는 노릇이지.

"이봐요~! 구마하 선수!!"

"네?"

"잠깐 이리와서 이야기 좀 하면 안될까요?"

"아. 어... 음 그게..."

구마하가 한상률의 눈치를 살필 때 임한기가 먼저 말했다.

"이주영 감독님이 말 좀 전해달라고 하던데."

"이주영 감독님이요? 만나셨어요?"

"그럼요."

이주영의 이야기가 나오자 구마하가 경계심을 허물며 다가온다.

미끼에 낚인 물고기같이 졸졸 다가오는 구마하를 보며 주변에 있던 기자들이 함박미소를 지으며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감독님이 뭐라고 하셨는데요?"

"경기 잘 하고. 응원하고 있다고."

"그리고요?"

"그게 단데."

"아 뭐에요 기자님. 진짜로 이 감독님 만나신 거 맞으세요?"

"그렇다니까."

구마하도 기자들 앞에 다가온 이상 그냥 돌아가긴 어렵다.

외국인 기자 한국인 기자 가릴 것 없이 다들 마구잡이로 질문을 던졌다.

"으아아... 기자님. 지금 뭐라고 하는 거에요?"

"하하하. 잠깐만."

임한기는 중간에서 큰 이득을 보며 이야기를 담아간다.

"어. 음. 그러니까 딱히 우승을 생각하고 있진 않습니다. 늘 그렇듯 최선을 다할거고요."

"구마하 선수! 초청선수로 나와서 참가하는 종목마다 메달을 따고 있는데, 여기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네? 어... 그러니까... 그게 딱히 잘못 된 건 아니라고 저도 들었는데..."

한국 다른 신문사에서 던진 질문에 구마하가 난처한 표정을 지어보이자, 한상률이 다가왔다.

"거기까지 하시죠."

한상률이 손을 들어 그만하라는 제스츄어를 보이고, 외국인 기자들에게도 친절하게 시합을 마치고 나중에 이야기 하자며 거절 의사를 비췄다.

"들어가 있어."

"네. 감독님."

구마하가 물러나자 기자들도 다른 선수들에게 카메라를 돌리고, 짐을 챙겨 자리를 이동했다.

임한기는 알면서 모르는 척 한상률을 외면하며 후배에게 말을 건넨다.

"주변 좀 찍고 있어. 나 잠깐 화장실 좀 갔다올게."

"네. 선배님."

그는 조용한 곳을 찾는다. 그러자 역시나 한상률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임 기자님."

"네. 감독님."

"뭡니까? 방금..."

"왜요? 얼굴이 무거워 보이십니다?"

"후우..."

"기자가 선수에게 시합을 앞둔 감상을 물었다. 문제될 거 있었나요?"

"저기. 앞으로 우리 선수 함부로 불러세우고 그러지 마시죠."

"저도 들었는데. 감독님이 구마하 선수 학교 선생님이시라면서요?"

"네. 맞습"

"그런데, 이제 매니지먼트를 차리신다는 말씀도 있고."

"..."

"언론을 멀리하는 건, 소속 선수에 대한 관리입니까? 아니면, 지도자로서의 보호입니까?"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마하의 위치도 예전과 다르다. 한상률의 표정에 여유가 사라진다.

"마하는 선수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런 선수의 실력과 성과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고요."

임한기도 두 손을 모아 정중한 자세로 한상률을 마주보았다.

"감독님. 그럼 앞으로 저희와 이렇게 거리를 두시면 안되는 거 아닐까요?"

"안타깝게도 언론에 대한 신뢰도가 그리 높은 편이 아니라서요."

"어제 저를 보시고도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어제 뭘 말씀이십니까."

"우리 동료가 말한대로, 구마하 선수를 응원하러 온 친구들의 우정. 충분히 기사거리가 될 수 있지만 어디에도 그런 기사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사생활이니까요."

"맞습니다. 감독님. 전 선을 지키는 언론인이 되고자 늘 노력하고 있습니다."

임한기가 정중한 어조로 다시한번 한상률을 보며 고개를 숙였다.

"감독님. 저는 스포츠가 드라마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선수들은 드라마의 주연들이고요."

"그럼 기자님은 작가입니까?"

"네. 맞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야기를 다루느냐에 따라서, 선수의 이야기는 감동이 될 수도 있고, 숫자만 담긴 기록으로 남기도 하겠죠."

임한기의 이야기에 한상률은 씩씩 숨을 몰아쉰다.

"너무 경계하지 마시고요. 저는 구마하 선수에게 해를 끼칠 사람은 아니라는 겁니다."

"..."

"이주영 감독님을 먼저 만나뵙는데, 저에 대해서 다른 말씀은 안 하시던가요?"

"교감 선생님이 가족 어르이라고 하더군요."

"하하하!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이 감독님을 만나면서 한 감독님께 다가갈 수 있게 다리를 놔달라는 이야기도 했고요."

"그래서. 다가와 뭘 어쩌겠다는 겁니까?"

"기회를 주십시오."

"무슨 기회 말입니까?"

"구마하라는 주연배우를 다룰 수 있는 기회 말입니다."

임한기는 절대 선수에게 누가 되는 기사를 쓰지 않겠다고 말했다.

"우리 마하가 그렇게 잘못을 저지를 애도 아닙니다."

"그럼요. 그건 친구들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뭐 그들간의 주제는 별도로 둔다 쳐도 말이죠."

"후우우. 하여간 이놈의 자식들..."

"사내자식이 다 그런 맛이 있는 거 아닙니까."

임한기는 한상률의 빗장을 하나씩 풀어열었다.

"감독님. 감독님도 이제 매니지먼트로 가신다면, 언제까지 언론과 적을 두실 수도 없는 것 아닙니까. 지금 여기서 느끼는 그 이상으로 한국엔 구마하 신드롬이 불고 있습니다."

말로는 당해낼 수 없다는 생각에 한상률이 고개를 들었다.

"무엇보다 감독님은 세계챔피언을 키워냈는데, 아직도 언론이 두렵습니까?"

"거 참..."

한상률이 깊은 숨을 내쉬면서 임한기를 보았다.

"제가 이래서 기자란 직업을 경계하는 겁니다."

"왜요?"

"말씀을 너무 잘하니까요. 또 쉽게 사람을 믿게 만들 거든요."

"하하하~!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그리고. 마하는요. 이놈이 제 제자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한상률이 자부심 넘치는 목소리로 말한다.

"스포츠를 떠나서 그녀석 자체가 드라마입니다."

그의 말대로 언제까지 언론과 적을 둘 수도 없는 법이다.

내가 아닌 구마하의 미래를 위해서. 한상률이 먼저 악수를 내밀며 협력관계를 구축했다.

"기자님은 기자님의 일을 하는 거고, 저는 제 일을 하는 거죠."

"네. 이주영 선생님도 그랬지만, 다들 건강한 사제지간 같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네요. 앞으론 믿을만한 언론도 필요한 법이니까요."

"특종만 건네주시죠."

"지켜보시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녀석 자체가 드라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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