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륜기로 가버렷-71화 (71/401)

〈 71화 〉 THE REAL WORLD CHAMPION (3)

"마하야? 너 왜 혼자 들어와? 상률이는?"

"아. 감독님 지금 기자님 만나고 계세요."

"상률이가 기자를 만나고 있다고?"

"왜? 설마 싸우는 거야?"

"아니요. 그런 건 아닌 거 같고. 먼저 들어가 있으라고 하셨어요."

"이 자식 내가 그렇게 언론에 대립각 세우지 말라고 했는데..."

"형님. 별 문제 아니겠죠. 한 코치도 생각이 있는데."

800m시합을 앞두고 이두희 감독님과 육상연맹 코치님들이 함께하고 계셨다.

한상률 감독님과 다르게 연맹은 언론과 가까이 지내고 싶어하는 것 같다.

나도 운동에 집중해야 하는 건 알지만, 가끔은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은 의문이 든다.

모르겠다. 그냥 감독님이 시키는대로 하는 게 맞겠지. 형이 그러라고 했으니까.

이두희 코치님과 시합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연세대 이현석 교수님이 찾아오셨다.

"아이고~~ 마하야!!"

"어? 교수님?"

"음? 현석이 너가 어떻게 여기있냐?"

"하하하하! 어떻게는요. 비행기 타고 왔지."

"교수 개그야? 너 한국에서 중계하고 있었잖아."

"선배. 무슨 소리세요. 지금 육상 중계 다 현지로 바뀐 게 언젠데."

"진짜?"

"교수님. 정말요?"

"그렇다니까!!"

이두희 감독님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셨다.

"하하하... 마라톤도 아닌데 방송국에서 우리 경기를 보여준다고? 하하 참..."

"원래 잘 안 해줬나요?"

"나 이후론 너가 처음이라 봐야지."

"어어..."

"역시 메달을 따니까 대우가 바뀌는구나."

"암. 그럼요! 아이고 마하야 이 녀석! 한번 안아보자."

"어어 교수님!"

"야. 야! 애 내려놔. 다쳐 임마."

"하하하! 아이고! 이 자랑스런 녀석!!"

이현석 교수님과 함께 일하시는 캐스터 분과도 인사를 나눴다. 스포츠 뉴스에서 자주 뵙던 남자 아나운서였다.

"반가워요. 구마하 선수. 금메달 축하하고."

"우와... 아나운서... 아... 악수 한번만 부탁드려도."

"부탁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영광이지. 선배님이라고 불러도 돼요."

"선배님요?"

"교수님이 그러시던데, 우리 학교 들어온다 그랬다며?"

"암! 와야지. 맞지 마하야?"

"하하... 네. 뭐. 연대면 제가 감사하죠."

이두희 코치님이 이 교수님을 돌아보시며 웃으셨다.

"현석아. 넌 작년까지만 해도 경희대 경희대 우리 경희대 하던 놈이 어떻게 하루 아침에 입이 바뀌냐?"

"선배님. 뭔 소리에요. 우리야 소속팀에 애정을 가지는 게 우선 아닙니까."

"어이고... 이런 걸 무슨 교수라고..."

이두희 코치님이나 이현석 교수님 우리 한상률 감독님과 천병욱 대사부님까지.

연맹 어른들도 그렇고, 먼저 대한 체고 그 덩치 크던 감독님도 대표팀 출신이라고 그랬지? 어른들을 보면 국가대표에서 맺어진 끈끈한 인연들이 부럽게 느껴진다.

"구마하 선수? 왜 그래요?"

"네? 제가 왜요?"

"갑자기 표정이 어두워 보이길래."

"아니요. 그런 거 없는데."

아나운서 아저씨의 한 마디에 어른들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왜?! 너 뭐 이상있어?"

"구마하 선수. 어디 아파요?"

"마하야. 문제 있으면 참지말고 빨리 다 말씀드려!!"

아이고. 이거 무서워서 찬물이나 마시겠나...

"아니요. 그냥 감독님이랑 교수님 말씀하시는 거 보다보니까요"

느낀 그대로 말씀드렸다.

어른들 이야기를 제가 함부로 말 할 건 아니지만, 이렇게 함께 있다보면 다들 동료 선후배라는 끈끈함이 보여 굉장히 부러워 보였다고 전해드리니.

"이 자식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너도 우리 식구지 이놈아!!"

"그래요 구마하 선수. 왜 그런 서운한 생각을 하고 있어요...? 구마하 선수도 우리 육상 대표팀 소속인데."

"아니. 그게 저는 그러니까..."

"마하야. 그래 알겠다. 앞으론 사석에서 교수라고 하지말고 형이라고 불러라."

"하하하! 현석아... 그건 좀 너무 간 거 아니냐?"

"7형제 집안에 막내랑 장손이면 그정도 나이 차이 되지 않을까요?"

나는 누가 뭐래도 대한민국 육상연맹 소속의 한국 선수라는 말씀을 들었다.

소속감을 가져도 되고, 더 친밀하게 다가와도 좋다는 이야기들을 하신다.

"얘가 지금 또래가 없어서 그래."

"그거야 어쩔 수 없죠. 당장 트랙 선수만 하더라도 구마하 선수보다 7~8년은 위인데."

"확실히 우리 때가 좀 비슷비슷한 나이에서 운동들을 했었죠."

"그때가 재밌긴 했었지."

이두희 감독님은 대표팀을 맡고 계시다보니, 다른 팀 시합을 보러 가셨고, 이현석 교수님과 함께 온 아나운서 아저씨도 이야기들 나누고 오라며 자리를 비켜줬다.

"상률이는?"

"한 코치 기자들 만나고 있어요."

"상률이가 기자를 만나? 왜? 싸웠어?"

"하하. 그런 건 아닌 거 같고. 아무래도 구마하 선수 기사내용 관리 아닐까요?"

"저 교수님. 언론은 무조건 나쁜 건가요?"

"흠."

이현석 교수님이 연맹 코치님들을 슬쩍 돌아보시자, 어른들도 알았다는 식으로 고개를 끄덕이신다.

"이야기들 나누시죠. 구마하 선수. 예선 때 올게요."

"네."

"수고들 해."

이 교수님과 단 둘이 자리를 잡았다.

"하여간 인간들 바쁜 척 하기는. 그치? 시합은 너 혼자 뛰는데. 내가 뭐라고 너를 나한테 맡기고. 사람 부담스럽게."

"교수님 한 달 전만 해도 저 혼자 데리고 계셨잖아요."

"하하하! 그래. 몸은 좀 어떠냐?"

"괜찮습니다."

"언론은 나쁜 거냐라... 마하가 정말로 궁금한 건 대체 한상률은 왜 그렇게 언론을 경계하느냐겠지?"

"음. 네."

"그래. 좋은 질문이다."

언론이 감독님을 막 띄워주고 성적이 안 나오자 버렸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닐까 싶다.

어디 그런 일이 스포츠만 있겠나. 연예인이나 정치인들도 그렇고. 다 보면 인기와 관심이 사그라드는 때는 있는 것 아닐까?

"그냥. 가끔은 조금 답답하고 그래요. 기자님들 막 무시하고 돌아서는 것도 아닌 것 같고..."

"후후후. 마하가 인기의 맛을 누리고 싶구나."

"아뇨. 뭐 그정도까지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교수님이 말씀해주셨다.

"너는 지금 혼자 있지만, 우리 땐 육상에 사람이 많았어. 이두희 선배가 현역 마지막에 나나 영욱이가 막내로 들어왔고. 그리고 우리가 한창 때 상률이나 그 또래 애들이 대표팀에 들어왔으니까."

"감독님은 선수 때 어떠셨어요?"

"상률이? 싸가지가 진짜 없었지."

"네???"

"하하하! 좋게 말하면 자신감이 넘쳤고. 나쁘게 말하면 개념이란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 놈이었지."

생각지도 못 한 이야기에 관심이 쏠린다.

지금 감독님을 보면 상상이 안 가는 모습인데, 교수님이 느낀 첫인상은 결코 좋은 것이 아니었단다.

"다들 이를 갈고 있었어. 오죽하면 두희 선배도 말하길 날 잡고 빠따 좀 치라고 그러셨으니까."

"어어... 으음..."

"근데, 이녀석 위치가 아무래도 누가 건드리기가 어려운 상황인지라, 그냥 우야무야 넘어갈 때가 많았지."

"대 사부님 때문에요?"

"그렇지. 선생님이 지금도 너 엄청 애지중지 하시지?"

"네. 조금 부담스럽다 느낄 때도 있어요."

"조금만?"

"뭐. 그 이상 제가 말 할 수있나요..."

"하하하! 그래. 넌 그럴 자격이 있으니까. 근데 말이야. 그때의 상률이는 딱히 메달이 있는 것도 아닌데 지금 너 못지않은 기대와 케어를 받고 있었던 거야."

그리고 세계육상선수권 대회가 열렸다.

결과는 참혹했고 감독님은 대표팀을 떠나 아에 선수 은퇴를 선언하셨다.

다들 고소하다며 비난을 아끼지 않는 사이에, 한상률이란 이름은 대한민국 육상의 가능성으로 사라져갔다.

"난 다른 동기들보다 빨리 지도자가 됐어. 그런데 말이다 마하야. 내가 선수가 아닌 가르치는 입장이 되니 그때 보이더라."

"뭐가요?"

"상률이가 누구보다 열심히는 했었다는 거. 우리가 소인배들이었던 거야."

"..."

"녀석은 주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성적을 내야했을 뿐인데. 그걸 단지 성격과 인성문제로 치부해버리니 지놈 속은 오죽 답답했겠어. 형들 대하는데 싸가지가 없을 수 밖에 없지."

"으음..."

"그래서 나도 반성 많이하고. 뒤늦게 선배짓도 하고 형 노릇도 하면서 가까워졌는데, 실제로 알고보니 그렇게까지는 아니더라고. 개념이 뭔 줄은 알고 있더라."

"하하하..."

교수님이 말씀해 주신다.

감독님이 언론을 두려워하는 건 감독님의 상처보다 내가 당신같이 주변의 관심에 휘둘려 실패할까 봐.

"언론 무섭지. 사람들의 기대도 무섭다. 그리고 인기란 더 무서운 거다 마하야."

살면서 깨달을 지혜를 배우고 있었다.

"사람이 그렇더라. 자리에 따라서. 만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서 사람이 변해. 나는 안 그러려고 하는데, 결국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어.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니까. 당장 나부터도 학생들이 교수님 교수님 하는데 승모근에 근육이 생기더라니까."

교수님 개그에 어색한 웃음이나 지우며 이야기를 들었다.

주변에서 띄워주고 받아주면 어느 순간 그게 당연한 줄 아는데, 절대 아니다.

언젠가 나만 붕 떠 있고 세상은 제 걸음을 걷는데,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을 때가 많다.

그럴 바에야 처음부터 없는 게 낫지 않겠냐.

남이 아닌 내가 가야 할 길을 걷는 법.

감독님이 언론을 대하는 자세는 그런 거였다.

교수님이 허벅지를 툭툭 두드리시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래도 넌 잘할 거라 믿는다. 우리 육상의 슈퍼스타."

"슈퍼스타라니요. 저도 뭐 그냥 저죠."

"뭔 소리야. 너 지금 한국에서 인기 장난 아니야. 야. 사람들이 애고 어른이고 다 달리기 열풍이라니까?"

"하하하... 모르겠어요..."

교수님의 이야기가 마칠즈음 감독님이 오셨다.

"역시 현석이 형님 만네. 형님 왜 여기 계세요?"

"왔냐. 우리 마하 중계해주러 왔다."

"우리 마하는 뭔... 언제부터 봤다고..."

"너 기자 만나고 왔다며? 어떻게? 죽빵이라도 한 대 쳤어?"

"치긴요. 뚜드려 맞고 왔어요."

"오~ 한상률의 기를 꺾는 기자가 있어?"

"임한기라고 들어보셨어요?"

"알지. 그 사람 베테랑이야."

"어쩐지..."

제자로써 단언할 수 있다. 감독님은 누구보다 육상을 좋아하시는 분이다.

상처가 큰 만큼 두려움이 크셨던 거구나.

앞선 경험이 나에게 도움이 되면 도움이 됐지, 나쁠 건 없는 것 같다.

훈련의 즐거움과 성취감을 알게 해드린 분을 실망시켜드리고 싶지 않다.

"말씀은 잘 하셨어요?"

"음. 누가 기자 아니랄까봐. 말빨에 당한 거 같다."

"그럼. 책임자도 왔으니, 나도 슬슬 중계 준비하러 가봐야겠다."

"형님. 쓸데없는 이야기 하지 마시고. 시합 이야기만 하세요."

"어이고. 난리났네 난리났어. 잘났다 한상률이!"

이현석 교수님도 가시고 예선전을 준비하기 위해 대기실로 넘어갔다.

"보니까 한참 심각하던데, 교수님이 무슨 작전이라도 알려주셨어?"

"그냥 옛날 이야기 해주셨어요."

"무슨 옛날 이야기?"

"선수의 시련과 극복 뭐 그런 주제로."

"흠. 후후후. 교수라고 재기는."

예선 전 출전을 위해 신발끈을 조여묶고 번호표를 가슴에 붙이고 있었다.

"마하야. 넌 이미 금메달을 2개나 딴 세계신기록 보유자다."

"네."

"승부에 연연하지말고, 최선을 다하고 와라."

"네 알겠습니다. 저 감독님?"

"음?"

"저 감독님 믿고 따르겠습니다."

"...뭐야 갑자기?"

"솔직히 말씀드리면, 조금 답답한 게 없지 않아 있었어요. 아시잖아요. 저 원래 여자애들한테 인기 얻고 싶어서 운동 시작한 거."

"음..."

"그래도. 이제는 감독님 하라는대로 할게요."

"후후. 시련과 극복의 주인공이 나였냐?"

"걱정마세요. 저 절대 성공했다고 잘난 척 하거나 그럴 일 없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렇게 건방떨고 이러면요. 저 감독님이 아니라 우리 형한테 맞아 죽어요."

"하하하! 형님이 왜? 인성이 얼마나 훌륭한 분이신데."

"밖에서 그러겠죠. 저한테는 장난 아니에요..."

"알겠다. 일단 시합부터 잘 뛰고 와라."

"네!"

*    *    *

저녁. 아테네 올림픽 스타디움.

오전 오후내 열린 예선전을 마치고 남자 800m 결승전을 앞둔 시각.

K일보 임한기와 동료기자는 긴장감에 가슴을 졸인다.

"선배님. 왜 이렇게 가슴이 두근거리죠? 관중석도 시끄럽고."

"다들 기적을 바라고 있는 거지..."

4년만에 돌아온 올림픽. 모두가 바라는 대로 드라마가 펼쳐질 재료는 갖춰졌다.

100m 200m 세계 신기록 이자 올림픽 기록 보유자.

두 개의 금메달을 목에 건 단거리를 제패한 구마하가 800m 중거리 시합에서 또 한번 결승전에 올랐다.

"예선 성적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는데."

"그래도 일단 나왔다는 게 중요니까. 야 안 되겠다. 나 잠깐 한 감독 좀 만나고 올게."

"빨리 오세요!"

예선에서 구마하는 그리 빠른 몸놀림이 아니었다.

하지만 임한기는 그것도 작전이 아니었을까 싶은 의심을 거둘 수가 없어 단숨에 선수 대기실 쪽으로 향했다.

"한 감독님!"

"어우. 깜짝이야. 마하 이미 나갔는데, 여기서 뭐하십니까?"

"구마하 선수도 선순지만, 감독님 의견을 듣고 싶어서요."

"저요? 이 시간에?"

"작전이셨죠? 맞죠? 일부러 선수들 방심하라고 느리게 달리신 거죠?"

"결과 보고 말씀하시죠..."

"죄송합니다. 근데 시합 끝나면 더 만나기 어려울 게 예상 돼서."

"못 당해내겠네요."

한상률은 단거리 전문이라 중거리에 있어선 한국에 있는 이주영이나 중계를 하러 나온 이현석의 전략을 따랐단다.

"아무래도 예선과 결승을 다르게 본 건 사실입니다."

"으음. 그래서 일단 방심을 시켜놓자란 전략을 세웠다?"

"네. 그리고 결승은 시작부터 최선을 다해 달리라고 했습니다."

"초반부터요? 중거리는 선두가 불리하다고 들었는데."

"보통은 그렇죠. 하지만 여긴 구마하잖아요."

"하하하! 네 그렇죠."

"다들 공통된 의견을 주더라고요. 구마하의 존재감을 다른 선수들도 의식하고 있을 것이다. 왜냐면 마하는 단거리 우승자니까. 그러니, 초반부터 선두로 치고나가면, 각자의 밸런스가 있더라도 자신의 호흡을 지키기가 어려울 것이다."

임한기가 꼬박꼬박 한상률의 이야기를 받아 적는다.

"이렇게 꼼꼼한 전략을 세우신다는 건, 역시 메달을 목표로 두고 있다고 봐도 될까요?"

"메달은 이미 두 개나 땄으니까 그냥 최선을 다하는 거죠."

"알겠습니다. 구마하 선수를 보면 지구력도 상당하더라고요."

"저놈의 최고 강점이죠. 높은 파워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

"으음. 역시. 네."

"기자님. 이거 근데 기사로 쓰시면 안 됩니다. 그냥 임 기자님이니까 말씀 드리는 거에요."

"하하하! 알겠습니다."

"내일 1500m 시합도 있는데, 절대 이런 거 기사로 내시면 안됩니다. 다른 나라에서 보고 대응전략 세우면 우리도 복잡해져요."

"회사에 연락해서 절대 영어기사로 내지 말라고 해야겠군요."

800미터 결승전이 시작되었다.

선수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이 호명되고, 구마하의 이름이 불리자 경기장이 떠나가라 큰 함성이 울려퍼졌다.

"선배님..."

"왜?"

"뭔가 조금 가슴이 뜨거워지는 기분이네요."

"그러게. 이거 참. 이기면 좋겠다."

이미 한국 육상팀은 오늘 시합을 넘어 내일 1500까지 전략을 세웠다.

그러나, 전략은 어디까지나 전략. 실제 경기는 어떻게 흘러갈지 모른다.

드라마를 보고 싶은 건 마찬가지였다.

기자라 하더라도 한국인이고, 직접 현장에 와 애국가와 태극기가 올라가는 모습을 보는 건 또 다른 멋진 경험이니까.

경기가 시작된다.

구마하는 한상률이 말한대로 초반부터 일찌감치 거리를 두고 달렸다.

"선배님! 엄청 빠르게 나오는데요!!"

"고개 돌리지 말고 사진이나 잘 찍어."

작전은 알겠다만, 저런 오버페이스로 세계적인 선수들 가운데 선두를 지킬 수 있을까?

800미터는 두 바퀴 트랙을 달리는 경기였다.

선수들이 절반을 치고 나오자 땡땡땡 한 바퀴 남았다는 종소리가 스타디움에 울려퍼진다.

함성은 뜨거워지고, 구마하는 여전히 선두를 달리고 있다.

다른 선수들과의 거리는 대략 2~30여미터 되어 보인다.

"처지는 거 아니겠죠? 거리가 좁혀지는 거 같은데?"

"야. 사진. 취재에 집중하라니까!"

"네... 죄송합니다."

집중이 어렵겠지. 나도 그런데.

선수, 기자, 코치와 관중 모두가 이마에 땀방울이 흘러내린다.

600미터 마지막 코너.

구마하와 외국인 선수들의 거리가 지척에 닿는다. 하지만 여전히 선두는 구마하였다.

그리고 한국 육상팀의 작전이 먹히기 시작했다.

마지막 직선 코스를 놓고 체력을 아껴야 했지만, 상대는 단거리에서 세계신기록을 세운 선수.

어쩔 수 없이 마지막 스퍼트에서 쏟아부을 힘을 선수들이 미리 끌어 당기고.

그리고 구마하의 내공이 그의 몸을 버티게 만들어준다.

"그렇지!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선배님 가만히 좀!"

"야 인마!! 지금 가만있게 생겼어!!"

선수들이 직선코스에 들어섰다.

구마하가 최선두에서 어금니를 으스러져라 악물며 두 팔을 흔들어 속도를 올린다.

그의 땀방울 하나하나를 각국에서 몰려든 기자들과 카메라가 놓치지 않고 잡아냈다.

그렇게 구마하는 세 번째 금메달을 만들었다.

단거리와 중거리라는 복잡한 매커니즘을 넘어선 선수.

다음 날 세계 언론은 그의 사진을 전면에 내걸며 공통된 문장을 헤드라인에 올렸다.

THE WORLD ATHLETIC CHAMPION FROM SOU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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