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가 특별한 이유 (8) >
"하하하! 그 새끼 이럴 때도 있잖아. 뭐 씨발! 내가 언제 그랬어? 지가 방금 그래놓고"
"크하하하! 맞어 맞어."
"진짜 정석이 그 성격으로 손님 상대는 어떻게 하냐?"
"형이 일은 잘한데, 오히려 싹싹하다고 아저씨 손님들이 좋아한다고 하셨어."
채민서고 뭐고 다 잊고 우린 정석이를 생각하며 신나게 웃었다.
"아. 얘도 같이 왔으면 좋았는데..."
"마하야. 형한테 얘기는 해봤어?"
"슬쩍 빼주면 안되냐고 물어볼까 했는데. 그것도 정석이가 절대 하지 말라고 그래서."
자리에 없는 놈이 잘못이다.
없으면 씹혀야지 뭐 어떡하라고.
억울하면 따라오든가 왔으면 내가 밟혀주지.
"얘들아. 너넨 밥 먹다 말고 뭔 수다를 그렇게 떨고있냐?"
"아 감독님. 그냥 오랜만에 만나다 보니까요."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마하야. 갈 시간이다. 움직이자."
"네."
감독님이 태윤이랑 남수한테 신용카드 한 장을 건네주시며 말씀하셨다.
"이걸로 밥 값 계산하고, 간식들 사먹고. 스키 빌려. 마실 거 먹을 것도 챙겨서 나중에 보자."
"선생님 어디 가세요?"
"마하 일 가는데 나도 같이 가봐야지."
"너 오늘도 뭐 있어?"
"오후에 행사장. 사진 찍고 그런 거 한다 하더라고."
"알았다. 고생해라."
"바쁘네. 새끼."
"암튼, 선생님. 진짜 다 사도 되는 거죠?"
"그럼. 한도 크니까 먹고 싶은 거 다 사. 애들도 부족하지 않게 챙겨주고."
"알겠습니다. 남수야 백화점 가자."
"오케이. 일단 애들 밥값은 먼저 계산해주고."
"새끼들아! 그거 내 돈이야!! 아껴 써!"
* * *
"태윤아. 스키 타려면 뭐 뭐 빌려야 되는 거야?"
"글쎄다? 나도 처음이라. 가보자. 가서 보면 알겠지."
"보드 없나? 난 보드 타보고 싶은데."
"근데, 마하 진짜 대단하다... 아까도 밥 값 몇 십만원 나오는 거 같던데..."
"광고가 몇 개냐. 상금만 삼십 억인가 그랬다는데. 새끼 돈 많지."
"하하하.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운동이나 진지하게 해볼 걸."
식당을 나와 스키장으로 이동하는 친구들.
김태윤과 남자 친구들이 우르르 앞서가고, 박남수와 이혜정이 남은 아이들과 뒤따라 걷고 있었다.
"삼십 억...? 장난 아니다..."
"마하 돈 많어. 그러니까 너네도 그냥 젤 비싸고 좋은 걸로 달라고 그래. 스키는 장비빨이라."
"야. 박남수. 니네 돈도 아니면서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 거 아니냐?"
남수에게 장난스레 쏘아대는 채민서를 보면서 이혜정이 무거운 표정을 지었다.
한숨이 나오는 걸 막을 수 없다.
이러니 저러니 민서를 부른 건 자신이니 책임은 져야 하는데.
마하도. 그런 일이 있었으면 진작 말을 해주지... 사람 불편하게...
둘만의 시간이 없던 것도 아니고. 아무리 파트너 관계라고 해도 그렇지...
"혜정아. 들었어?"
"응? 뭘?"
"구마하 돈 겁나 많다는데?"
"걔 돈 많은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으이구~ 좋겠다?"
"..."
채민서는 속 사정도 모르고 이혜정에게 다가와 팔짱을 낀다.
모두들, 처덕처덕 지나가는 차들과 눈길을 지나 스키장으로 돌아왔다.
주최측에서 마련한 단상이 준비되어 있고 구름같은 인파가 모여있는 가운데 친구 구마하가 우뚝 서서 진행을 맡은 연예인과 마이크를 쥐고 있었다.
"어? 야. 저기 뭐 하나봐?"
"민서야! 야! 거길 왜 가."
"뭐 어때? 우리 친군데. 가보자!"
"..."
모두들 신니아 멀리 앞서가고, 박남수와 김태윤이 우두커니 멈춰있는 이혜정에게 다가와 말했다.
"너무 그렇게 신경쓰지 마."
"그치만..."
"야 됐어. 미친 새끼, 지가 오라고 했으면 더 잘 챙겨보든가. 안 그러냐? 일은 우리한테 떠맡기고 왜 이제와서 너한테 뭐라고 하는데."
"그래도... 난 진짜 민서 쟤랑 둘이 그런 일 있는 줄 몰랐으니까..."
"그러니까. 몰랐으니까 눈치 보지 말라고. 아는데 엿 먹으라고 채민서 부른 거 아니잖아."
"..."
"그래. 우리도 있고. 혜정이 너도 그냥 애들이랑 재미나게 노는 것만 생각해."
"응..."
구마하도 마이크를 들며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네. 안녕하세요. 인사드리겠습니다. 한국 육상 국가대표 구마하입니다."
사람들이 박수를 쳐주며 함성을 질러준다.
친구들도 누구보다 환호성을 질렀다.
세 사람도 먼 발치에서 지켜본다.
"생각보다 엄청 모이셨네요. 구마하 선수 인기가 정말 대단합니다."
"하하하... 솔직한 말로 저보다는 경품 추천이 더 목적이지 않으실까요...?"
"아. 또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진행을 맡은 제가 뭐라 할 말이 없는데..."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연예인에 밀리지 않는 구마하의 입담에 사람들은 큰 웃음을 지었다.
"구마하 선수도 내일 스키에 도전하신다고 들었는데요."
"네. 일반부로 참가하고요. 경기에 맞춰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질문 하나만 드려도 될까요?"
"네. 말씀하세요."
"육상 스키.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스키요."
"오~ 육상이라고 하실 줄 알았는데, 왜 스키를?"
"저기, 아래서 주최측 팀장님이 보고 계셔서요..."
사람들이 깔깔 웃으며 난처하게 손사레를 치는 기업 관계자를 돌아본다.
즐거운 분위기에 MC도 미소를 지으며 진행을 이어갔다.
"하하~! 육상 영웅 구마하 선수가 생각하는 스키의 매력은 뭔가요?"
"역시 폼이죠."
"폼요? 오~ 어떤 폼이요?"
"스키는 안전장비 다 갖춰 무리하지 않고 타시면 절대 위험한 운동이 아닙니다. 그리고 고글 쓰고 마스크 쓰고 헬멧까지 챙기면 얼굴이 안 나오잖아요. 그럼 제가 봐도 저 자신이 뭔가 엄청 멋있더라고요."
"왜요? 구마하 선수 충분히 멋있는데?"
"아 그러지 마세요. 저 진짜 제 얼굴 싫어해서..."
그러자 단상 아래 사람들이 아니에요! 오빠 멋있어요!! 라는 응원을 보내준다.
구마하도 웃으며 한 사람을 돌아보았다.
"감사합니다. 근데 누님 같으신데, 왜 저한테 오빠라고..."
행사는 두 사람의 만담으로 더 없이 즐거운 분위기로 마쳤다.
구마하도 사람들에게 인사말을 남긴다.
"이렇게 많은 분들 집접 뵙는 건 공항 때 이후로 두 번 짼대. 지난 여름 많은 관심과 응원주셔서 정말 감사드리고요. 그리고 여러분 모두 올 겨울 베르디파크에서 안전하고 즐거운 스킹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네. 먼 곳 까지 와주신 우리 스키어 보더분들께 한말씀 해주시자면?"
"꼭 헬멧을 착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안전도 중요하지만, 헬멧 쓰는 게 더 멋있어요."
모든 일정을 마친 저녁. 육상 연수원 식당에서 구마하와 친구들이 저녁식사와 음주파티를 시작했다.
한상률과 김정준도 멀리서 아이들을 지켜보며 말한다.
"꼭 조교 돼서 애들 MT 따라온 거 같네요."
"하하하~! 그러게. 정준 씨는 MT 가봤어?"
"1학년 때 한번? 그 뒤로는 운동하느라 못 갔어요."
"난 한번도. 팀 단위로 합숙이나 전지훈련만 가봤지..."
"부럽네요. 일찌감치 성공을 이룬 선수의 삶이란."
"후후후. 부럽지. 부러운 놈이야."
한상률도 친구들과 웃고 떠드는 구마하를 돌아본다.
"여유롭게 즐길 수 있고. 새로운 것에 도전도 할 수 있고."
"형님. 그냥 애들끼리 놀라하고, 저흰 자리 옮길까요?"
"그러자고."
두 사람이 조용히 술과 안주를 챙겨 자리를 비켜준다.
구마하와 친구들은 한상률이 나가는 것도 모른 채 수다 삼매경에 빠져있었다.
"야. 근데, 너 말 되게 잘하더라."
"나도 떨리지. 떨리는데, 아까 MC 보던 분도 지난 번 어디서 한번 뵙던 분이고, 그리고 뭐 올림픽 때 생각하면... 이정도는"
"하긴, 그때 사람 진짜 많았잖아."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사적인 자리였다.
친구들도 구마하에게 질문을 계속 던졌다.
디아다스랑 NICE 계약은 어떻게 된 거냐?
다음 올림픽도 국가대표로 나가는 거냐?
넌 군대 면제 된 거 맞지? 등등.
다양한 호기심에 구마하는 조금 난처하단 듯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하하하! 야 니네 뭐 어디 방송국에서 보냈어?"
"그래도. 신기하니까."
"신기할 것도 많다. 디아다스는 헛소문이고, 난 원래 처음부터 NICE랑 계약돼서 다른 데랑 일 못 해."
"오~~"
"베이징은 그때가서 선발전을 치러봐야지. 더는 초청선수 자격으로 움직일 수도 없고, 메달 땄다고 바로 올림픽 가는 것도 아니라. 군대도 뭐. 아직은 대학도 안 갔는데. 군대까지 벌써 생각할 거 있을까?"
구마하의 이야기에 최익현이 웃으며 다가온다.
"마하야. 나 진짜 너 보면 부탁할 거 하나 있었는데."
"뭐?"
"우리 친척들이 내가 너랑 같이 운동장 뛰었다니까 안 믿어. 미치겠다!"
"하하하! 맞는데 왜?"
"그러니까. 너 나중에 우리 엄마랑 전화 한번 할 수 있냐? 진짜라고."
"그래. 좋아."
이런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구마하가 반갑게 웃으며 최익현과 가을운동희의 추억을 나눈다.
혜정이도 있고, 그날 시합의 주역들이 몇 몇 있는지라 다들 대화의 주제가 스타 구마하에서 그들의 일상으로 돌아가지만.
"그럼 광고비는 얼마나 받어?"
"넌 NICE가면 다 공짜야?"
"대학 장학금도 나오지? 등록금은 면제?"
어쩔 수 없는 호기심은 끝이 보이질 않는다.
행사장이나 방송에서 충분히 언급 한 거 같은데, 그럼에도 이런 걸 알고 싶어 하는구나.
그냥 웃고 떠들고 싶었는데, 친구들의 관심이 조금 버겁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그때.
친구 김태윤이 구마하를 도와준다.
"야."
"왜?"
"새끼 대답 성의없게 하는 거 봐라? 야 니네 이거 인터넷에 다 올려. 구마하 인성 알고보니 다 컨셉. 카메라 꺼내."
이 자리에 모인 이들 중 누구보다 오랜 시간을 함께 한 김태윤이었다.
다들 너무 붕붕 띄워주는 모습에 김태윤이 마하를 멀리가지 않게 붙잡아준다.
구마하도 친구의 세심한 배려가 너무 고마웠다.
"뭐래? 병신이냐?"
"뭐 씨발. 내일 대회 있는 새끼가 술 쳐먹는 거 봐라. 야 이것도 찍어서 올려. 구마하 알고보니 파티광."
박남수도 나서서 마하에게 몰리는 관심을 순화시켰다.
"그러고 보니까. 외국애들 파티도 별 거 없더만."
"진짜? 너네 가봤어?"
"응. 그때 다 같이 아테네에서."
"진짜 영화같이 막 그렇게 놀아?"
"우리랑 노는 거 똑같애. 단지 우리가 이렇게 좌식문화면, 걔네는 서서 왔다갔다 한다는 거 뿐이지. 음악도 크게 키워놓고. 별로 재미없어. 나도 정석이랑 게임만 했고."
"그래도 대단하다. 수능 앞두고 어떻게 거기까지 갈 생각들을 하냐?"
"안 가면, 저 병신 혼자 뭐하라고. 우리가 옆에서 지랄지랄 해줘야지."
"그래서 더 힘들었다고 새끼들아!"
"꺼져. 힘들다는놈이 세계신기록을 내냐?"
친구들의 노력(?)으로 구마하는 사생활이 궁금한 스포츠 스타가 아닌, 주변에서 잘 성장한 친구의 위치를 지킬 수 있다.
대화가 무르익으며 분위기는 더 없이 좋게 흘러간다.
구마하 한 사람이 아닌 각자의 다양한 이야기가 오고가고 있었다.
"근데 익현아. 너 진짜 마하 중학교 때 몰랐어?"
"알지. 내가 쟤를 왜 몰라."
"와 저 새끼! 야 너 나 운동회 할 때까지 몰랐잖아!"
"하하하! 너도 다 지난 일로 그러지마라 진짜..."
이 자리에 모인 이들 중 구마하와 같은 중학교 출신은 김태윤 이혜정 최익현 그리고 채민서 네 사람.
늘 다수가 모인 자리에서 대화를 이어가는 건 소수의 입담 좋은 몇몇이다.
대화에 참여하지 못하던 채민서도 중학교란 말에 기회다 싶어 목소리를 높였다.
"참. 마하야?"
"응?"
"그때 우리 체육 그 사람 이름이 뭐지?"
"몰라. 기억안나."
"어? 어... 그래..."
이혜정이 난처한 시선으로 주변을 둘러본다.
무슨 말을 해도 다 받아주며, 심지어 친구들이 놀리고 욕을 해도 웃고 떠들던 구마하가 단호하게 채민서의 말문을 막아버리자 다들 순간적으로 얼굴이 굳어진다.
그러자, 이번에도 김태윤이 빠르게 분위기를 잡았다.
"어? 마하야. 잠깐만. 정석이가 너 왜 이렇게 전화 안 받냐고 문자 왔다."
"음?"
정석이란 말에 구마하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본다.
"전화 안 왔는데?"
"나가서 받아 봐. 여기 좀 외져서 전파 안 닿나보지."
구마하는 그런가? 하는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고.
김태윤도 무거운 표정으로 그를 따라 나선다.
박남수도 친구들을 보며 작게 한숨을 쉬며 일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