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륜기로 가버렷-98화 (98/401)

< 미워도 다시한번 (9) >

"진짜 허허허... 이걸 누구한테 말 할 수도 없고..."

구마하는 혼잣말을 곱씹으며 몸을 씻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 두 친구가 자신에게 이런다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어디 그런 게 하루 이틀이던가, 운동을 시작한 이래로 그의 삶은 늘 놀라움의 연속으로 흘러오지 않았던가.

"그래 뭐 새삼 이런 걸로."

구마하는 곰곰이 마음을 진정시켰다.

명경지수. 마음 속 잔잔한 호수를 바라보며 내공을 다듬 듯 감정을 눌러 담았다.

"후우. 애들이랑 고기나 구워먹어야지."

아무리 봐도 섹스는 물 건너갔고, 누구 한 사람을 택할 수 없는 상황에 무리해서 균형추를 잃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는다.

혜정이와 민서가 머리채를 잡고 싸워도 말리면 그만이지라는 마음으로 샤워를 마치며 수건을 들었다.

그런데.

"어라? 팬티를 안 가져 왔네?"

형제만 사는 집이라 벗고 다녀도 이상할 게 없어 그냥 씻으러 왔더니 속옷이 없군.

잠시 고민에 빠지는 구마하.

그냥 벗고 가? 아니면 귀찮게 입었던 걸 다시 입어?

작은 걱정에 마음 속 잔잔한 호수에도 잔물결이 일어난다.

구마하는 허탈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쟤네가 내 몸 처음 보는 것도 아니고 한심하게 이런 걸로 고민하냐. 안 그래? 여긴 우리 집이잖아."

다시 고요한 마음의 평화를 찾으며 큰 수건으로 하체만 둘둘 가리며 문을 열었다.

비누향이 첨가 된 뿌연 김이 빠져나가며 소파에 앉아있던 혜정이가 고개를 돌린다.

그녀의 표정이 상기되어 있었다. 구마하도 차분하게 손을 펼치며 입을 열었다.

"야. 오해하지 마라. 이건 그냥 내가 팬티를 안 가져가서"

"..."

저벅저벅 걸음을 옮기는데, 혜정이의 굳은 표정이 그에게서 다시 거실로 돌아간다.

뭐지? 얘 왜 이래? 하면서 구마하도 고개를 돌렸는데.

마음 속 잔잔한 호수에 태풍이 몰아친다.

"뭐... 뭐야?"

"야... 얘 좀 어떻게 해봐..."

"마하야. 다 씻었어?"

"......"

채민서가 훌렁훌렁 옷을 벗고 다소곳이 앉아 있다.

이 친구가 말도 없이 벗고 덤벼드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근데 저건 대체 뭘까?

"혜정아."

"왜...?"

"너 올라가서 해피 데려왔어?"

"아니야! 지가 가져온 거야!!"

구마하도 민서 목에 걸려있는 개목걸이에 말문이 막힌다.

평정심은 개뿔... 이건 또 뭔데?

비정상적인 것을 몸에 걸친 채 다소곳이 은은하고 순종적인 미소를 지어보이는 채민서.

그녀의 모습은 지금껏 구마하가 겪은 차원이동과 출생의 비밀. 혜정이나 여자들과의 관계. 환골탈태나 아테네 금메달 신화를 넘어서는 충격을 전해준다.

"야... 너 그게 뭐야?"

"아~ 이거?"

구마하의 물음에 민서가 촤르륵 쇠줄을 손으로 들어보이며 말했다.

"어때?"

"..."

"너 너가 조... 좋아할 거 같아서..."

민서의 말에 이혜정이 구마하를 보면서 소리쳤다.

"대체 둘이 뭔 짓을 하고 다니는 거야?! 너 저런 거 좋아해?!"

구마하도 당황하며 손사래를 쳤다.

"뭐... 뭐래? 내 취향 니가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근데 쟨 왜 저러는데...?"

친구의 말을 무시하며 채민서가 그에게 다가와 손에 쇠줄을 쥐어주었다.

"뭐... 뭔데? 개라도 되겠다 이런 거야?"

"응."

"..."

"난 너가 기뻐하는 건 뭐든지 할 수 있어."

과거에 그런 소리를 부르짖던 어떤 만화가 있던 거 같은데, 근데 끝이 별로 안 좋지 않았나?

구마하는 멍하니 현재 그가 처한 상황을 돌아보았다.

영국인지 호주인지 모르지만, 인간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해 존재하는 한 연구기관에서 발표했는데, 지구상에 존재하는 사람의 수만큼 성적 취향도 다양하단다.

그중 대표적으로 명성을 떨치는 것이 있으니 바로 새디즘과 마조히즘으로 대표되는 SM.

민서는 마조였다.

마조히즘(Masochism)은 피학성애의 하나로 특정 상황에서 학대당하는 걸 좋아하는 이상성욕의 발현을 꿈꾸는 사람들.

구마하는 무언가에 홀린 듯 촤르륵 줄을 잡아당기니 민서도 아~! 하면서 끌려온다.

"어우야... 어우... 어우 이건 무슨..."

"후후후. 재밌어?"

"..."

반성과 사죄. 진심어린 눈물과 용서. 그리고 섹스로 이어진 지난 시간에서 그녀의 몸안에 자리한 욕망이 열매를 맺고 꽃을 피웠다.

"있어. 나 갈게."

"혜... 혜정아? 어디가?"

"야. 놔!"

이혜정도 뒤늦게 정신을 차리며 벌떡 자리에서 일어선다.

이곳은 그녀가 상상하던 그런 공간이 아니다.

저들의 행위는 뭔가 내가 아는 기본을 넘어선다.

이건 야한 게 아니라 뭔가 이상해...

"아. 놓으라니까!"

"야... 야. 아니야. 절대 나 그런 적 없어."

"으음~"

"어어...? 미... 민서야?"

혜정이가 가는 걸 붙잡는 사이, 채민서가 무릎을 꿇고 다가와 수건을 들추며 그의 몸에 키스를 했다.

주인의 의사는 반영하지 않는 건강한 하반신은 신난 듯 반응하며 채민서의 입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이혜정이 잔뜩 찡그린 시선으로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

"뭐야... 너도 좋아하고 있었네...?"

"아! 아니지! 이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거잖아!"

상황이 어찌됐든 파격적인 광경에 이혜정도 걸음이 굳어버렸다.

검은 개줄을 차고있는 민서가 마하를 입으로 애무하고 있다.

다른 사람이 하는 걸 직접 보다니... 이래서 남자들이 야동을 보는구나...

그때 무언가 철커덕하는 소리를 내며 그녀의 팔에 걸렸다.

"뭐. 뭐야? 이건?"

"후후후"

어느새 수갑을 꺼내든 민서가 혜정이를 붙잡았다.

그리곤 다른 한 쪽을 자신의 팔에 철커덕 채워 버린다.

"가지마. 우리랑 같이 있자. 응?"

"야... 이 이건 또 뭐야! 언제 이런 걸!!"

이제는 야한 걸 떠나 겁이 난다.

그때 구마하가 채민서의 머리를 확 잡아 채며 자신의 몸에서 떨어뜨렸다.

"야. 너 뭐하는 거야?"

"왜?"

"혜정이한테 왜 이래. 이거 당장 안 풀어!"

"너가 보내기 싫어하니까..."

"어이 채민서 너 진짜 미쳤냐? 어디서 내 핑계를 대고 있어."

"마하야...?"

실망과 두려움의 눈빛으로 올려다보는 민서를 보며 마하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야. 너 이래서 나한테 사과 한 거야?"

"그게 무슨 소리야...?"

"엎드려서 빌고 욕 해달라 그러고. 그것도 결국 니 이런. 어? 이 개줄 같은 거냐고!"

구마하가 채민서의 눈 앞에 촤르륵 거리는 개줄을 들이밀며 따졌다.

"아. 아니야. 난 그냥."

"너 자꾸 이러면 니가 나한테 잘못했다고 한 것도 다 거짓말로 밖에 안 보여. 그날 니 행동도 다 니 성욕을 채우기 위한 역할극으로 밖에 안 보인다고."

"마하야... 아니야. 그건 절대 아니야. 난 정말로"

"자기 취향만 강요하고, 자기 멋대로 이러고 있고! 너는 나 좋다는 애가 어떻게 내 기분은 하나도 신경을 안 쓰고!"

"미... 미안. 화내지 마..."

민서가 꿈꾸는 욕망이 있어도 구마하는 자신의 선을 지킨다.

그가 바라는 섹스란 이런 것이 아니다.

"빨리 혜정이 수갑부터 풀어 줘."

"응..."

채민서가 부랴부랴 정신 차리며 주섬주섬 열쇠를 가져와 자신과 이혜정의 팔에 찬 수갑을 풀었다.

"그리고 옷 입어. 혼자 먼저 막 훌렁훌렁 벗지 좀 말고. 얘도 있는데."

"응... 미안..."

"아니 내가 무슨 널 때렸어 침을 뱉었어? 대체 왜 이러는 거야? 어?"

"욕 했다며."

"뭐...?"

이혜정이 수갑을 푼 손목을 주물주물 만지며 말했다.

"애한테 욕은 왜 하냐..."

"아니... 그... 그건 물론 욕은 했지만..."

"아니야. 혜정아. 그것도 내가 마하한테..."

"야. 됐으니까 진짜로 옷 좀 입어. 넌 춥지도 않냐?"

혜정이가 민서의 코트를 가져와 풀썩 벗은 몸을 덮어주었다.

그리곤 손을 뻗어 목에 걸린 목걸이를 풀면서 말해준다.

"이 흉측한 것도 빨리 풀고..."

"..."

"아니 이건 어떻게 푸는 거야... 왜 이렇게 안 돼...?"

"나와 봐. 내가 할 게."

채민서가 주섬주섬 목줄을 풀어내며 뚝뚝 눈물을 흘린다.

"그냥... 이러면 마하가 좋아할 줄 알고..."

"후우... 야 그런 게 어딨어. 쟤가 변태야?"

구마하는 슬슬 두 사람의 눈치를 보며 소파에 앉아 민서의 가방을 열어본다.

"와... 뭐냐 이건? 대체 넌 우리 집에 뭘 가지고 온 거야?"

그가 보랏빛 딜도를 하나 꺼내드는데, 버튼을 누르니 위잉위잉 요란한 움직임을 보여준다.

"진짜 뭔가 단단히 준비하고 왔구나..."

"그냥 다 너 좋으라고..."

혜정이도 요동을 치는 전동딜도를 허탈하게 보며 물었다.

"저건 다 니꺼야? 샀어?"

"응..."

"저런 거 사도 어른들이 뭐라고 안 해?"

"우리 엄마 내 물건 절대 안 건드려."

"왜?"

"건드리면 나 또 가출하는 거 아니까."

"너도 참..."

여전히 수건으로 하체만 가리고 있는 구마하가 위잉위잉 거리는 딜도를 보며 물었다.

"민서야."

"응?"

"...이거 써봤어?"

"응."

"......"

이혜정은 구마하의 수건이 스윽 올라오는 걸 보며 피식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너도 진짜 할 말 없다... 이 와중에 또 흥분 돼?"

"아니. 근데... 이건... 이거야 말로..."

채민서도 다시 기분을 차리며 고개를 돌렸다.

"내가 보여줄까?"

"..."

"..."

구마하가 이혜정의 눈치를 살피는 가운데, 이번에도 민서가 뭐라 말릴 새도 없이 혼자 다가가 그의 허벅지를 붙잡으며 고개를 든다.

"미안. 너가 하지 말라는 건 다신 안 할게."

"하하하... 민서야 너 진짜..."

"알어. 너가 쟤만큼 날 좋아할 수 없다는 거. 그냥 내 마음이 그래."

채민서가 고개를 돌려 혜정이를 향해 물었다.

"니가 봐도 내가 미친 거 같지?"

"확실히 제정신으론 안 보여..."

"혜정아 너 사람이 사람을 용서하고 받아준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생각해 봤어?"

"..."

이혜정이 구마하를 보며 말했다.

"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 나도."

"맞어. 그래서 난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 거야."

민서는 잔뜩 성나 있는 수건을 들춰보인다.

그녀의 눈앞에 건강하게 서 있는 물건을 손으로 쥐며 말한다.

"마하는 날 구원해줬어."

"..."

"부끄런 건 없어."

그리곤 입으로 달래기 시작했다.

구마하도 더는 말릴 수 없는 그녀의 분위기에 가만히 몸을 맡기며 머리를 쓰다듬는다.

"민서야. 너 그렇게 내가 좋아?"

"응..."

"고맙다. 정말로."

두 사람의 인연이 발전 될 가능성은 없다.

과거를 넘어서는 용서와 이해가 있을 뿐, 감정이 생기는 건 아니니까.

그럼에도 지금 이 순간 구마하는 채민서를 자신의 여자로 받아들이고, 민서도 그를 잊을 수 없는 사랑으로 대해준다.

"으음."

침과 애액이 뒤섞인 음란한 소리를 내며 열심히 남자를 사랑해주는 민서의 모습.

그리고 그녀의 마음에 조금씩 흥분하며 표정이 풀리는 마하.

이혜정은 조용히 두 사람을 지켜보면 작은 손을 가랑이 사이에 넣는다.

그래. 이거야. 이런 걸 보고 싶었어...

구마하도 슬쩍 눈을 떠 혜정이를 보았다.

그녀가 부끄럽고 긴장된 자세로 앉아 잔뜩 흥분된 시선으로 자신과 민서를 보고있다.

마치 처음 사자와 코끼리를 본 아이같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잔뜩 오므린 검은 치마와 스타킹 속으로 감춰진 두 손은 어른의 행동이었다.

혜정이도 흥분하고 있구나. 그녀의 행동이 지금의 분위기와 어우러져 더 큰 느낌으로 다가왔다.

"혜정아?"

"왜..."

"혼자 그러지 말고 이리로 와."

"......"

민서가 있는 가운데 손을 뻗어 그녀를 부르는 구마하.

이혜정도 이성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

마치 거역할 수 없는 신의 부름이라도 받듯, 그녀가 슬며시 다가와 두 사람의 옆에 자리했다.

"둘이 같이 해줘."

마하의 이야기에 민서가 눈을 떠 옆을 보았다.

혜정이가 바로 옆에 앉아 상기된 시선으로 보고있다.

같은 동성조차 선망을 불러일으키는 아름다운 외모였다.

이혜정도 천천히 눈을 감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채민서는 웃음을 지으며 마하를 입에서 놓고 침을 닦으며 물러난다.

민서가 있던 자리는 혜정이가 긴 머리를 귀로 넘기며 고개를 숙였다.

구마하의 입에선 뜨거운 김이 흘러 나온다.

"아~ 으음."

혜정이가 애무해주자 더 없이 좋아하는 표정을 지어내는 마하.

채민서는 그의 만족하는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흐르는 물을 참을 수가 없다.

"하아... 마하야?"

"응?"

"나 아까 그것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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