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륜기로 가버렷-102화 (102/401)

< 신촌에 내려온 운석 (2) >

'요'를 안 쓴다니? 그게 무슨 소리지?

"어... 저 그..."

"야. 얘 OT 안 왔어."

"그래. 잘 모를 수도 있겠지. 익범이가 잘 알려줘."

"네! 알겠습니다 선배님!!"

"..."

선배들을 보내고 익범이가 한숨을 길게 내쉬며 자리에 앉았다.

뭐지? 이 친구의 급격한 스타일 변화는?

"후우... 아 깜짝 놀래라."

"야. 뭐야? 되게 높은 사람들이야?"

"아니야. 그냥 선배야."

"그냥 선배를 이렇게 까지 깍듯하게 인사를 해?"

"하라는데 해야지. 너도 문화다 생각하고 받아들여..."

"무슨 문화?"

"아 맞다. 너 구마하였지?"

"뭐냐 그 말은?"

"아니 아니. 너 기사 봤다고. 넌 이런 거 잘 모르잖아."

익범이가 차근차근 설명을 해주는데, 체육 대학은 군대 못지않은 상명하복과 선배들의 강압적인 그런 문화가 있단다.

"고려대 정도는 아닌데... 우리 학교도 군대 문화가 있더라고..."

"어어... 그래서 '요'를 안 쓴다?"

"다나까라고 들어봤어?"

"일본 놈 같은 이름은 또 뭐냐?"

"하하하~ 일본 이름이 아니라."

우리 형도 군대를 안 갔고, 주변에서도 아직 그런 사람들이 없어 모르고 있었다.

선배나 교수님들과 대화에서 모든 종결 어미는 '다' 나 '까'로 해야 한단다.

"선배님. 밥 먹었습니까?"

"그럼 큰일 날 걸? 식사 드셨습니까? 로 가야지."

"미치겠네. 이건 뭔..."

자유롭고 낭만 넘치는 대학생활이 아니었단 말인가?

여자친구와 캠퍼스에 누워 꽁냥 거리다 학교 끝나고 자취방에서 폭풍섹스 하고 배달 음식 먹고 또 폭풍섹스를 하는 그런 거 아니었어?

"허허. 이거 참..."

"그래도 저분들은 나은 거야."

"저게 낫다고??"

"응."

"..."

굳이 신입생들만 모이는 자리에 찾아와 인사 받고 가는 선배들이 나은 정도면...

"그래서 내가 OT 안 오는 게 나았다고 하는 거야."

"..."

"후우. 그냥 그러려니 해야지. 어쩌겠냐. 신입생인데."

"그렇긴 하지만..."

체고, 체대. 모든 체육인들 가운데 그런 문화가 깊게 뿌리 박혀 있음을 모르는 건 아니다.

다만, 난 그런 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만나 성장하는 시간을 가져왔다.

예의가 없는 건 아닌데, 이제와서 강압적인 문화를 주입하라니, 여간 가슴이 답답한 게 아니었다.

"걱정 마. 선배들도 구마하한테까지 그렇게는 못 하겠지."

"그건 그거대로 문제 아닐까?"

"우리는 후배들 만나면 잘해주자."

"그런 말 하는 사람이 보통 보면 나중에 가서 흑화하던데..."

"하하하! 야 나 안 그래. 나 원래 후배들한테 잘 해줬어."

아무튼, 고익범이란 친구를 만나고 선배라는 몇 사람들을 알게 되었다.

남들은 다 내가 구마하라는 걸 알아도, 나는 아직 아는 얼굴이 없는 상황.

그나마 마음 기댈 곳이라면 이현석 교수님 정도인가?

근데, 선배들이 저 난린데, 교수님은 뭐 어떻게 대해야 하는 거야?

"어 그래. 마하야."

"네. 부르셨습니까!!"

"하하하. 뭐하냐? 들어와서 앉아라."

"넵!"

입학식을 마치고, 익범이는 농구부 신입생들을 만나러 가고, 나는 이현석 교수님이 불러 연구실을 찾아왔다.

먼저도 한번 감독님과 들어온 자리였다.

오늘도 그때 못지 않게 딱딱하게 굳은 자세로 앉아 있었다.

그러자 교수님이 느긋하게 맞은 편 소파에 앉으시며 물어보신다.

"너 뭐해?"

"네?"

"혼내려고 부른 거 아니야. 왜 이렇게 경직되어 있어?"

"아. 저. 그게..."

그게 말입니다? 그게 아니지 말입니다? 뭐라고 하는 거지?

"야? 마하야?"

"네?!"

"긴장 풀어 이놈아. 너 왜 이래? 갑자기?"

"저 교수님... 그게 아니라, 그러니까, 제가 갑자기 이러는 건 나름 어떤 이유가..."

"무슨 이유?"

잠깐. 뭔가 고자질 하는 거 같은데?

그냥 그런 문화가 있다는 걸 굳이 내가 거부할 순 없는 거 아닐까?

살다 보면 부당한 것들도, 받아들이고 그러고 그냥 나아갈 때도 있는 거니까.

"아무 것도 아닙니다."

"군대야 뭐야? 이 자식 왜 이래? 상률이가 나 보고 뭐라고 해?"

"아... 아닙니다."

"흠. 이 자식 그거구만. 막상 학부생으로 만나니 떨리냐?"

"네. 조금요."

아차, 조금입니다? 조금 그렇습니다?

약간 알겠다. 질문은 까로 가고 대답은 다로 하면 되는구나.

"교수님."

"음?"

"전 왜 부르셨습니까?"

"하하하! 야. 그만 좀 해 내가 더 어색해!! 말도 상황에 하나도 안 맞고."

"..."

"크하하하~!! 아이고 그럼 그렇지. 왜 이러나 했다. 마하야 너 그러다 상률이가 나 죽여. 진짜 그만해."

"......"

"벌써 누구 만났어? 애들이 뭐라고 하냐? 교수님 앞에서 말 조심하래?"

"아니요. 아니. 아닙니다."

"크하하! 어이고 이 자식..."

"저 교수님. 갑자기 좀 혼란스럽긴 해요..."

"그래. 넌 더 그렇겠지."

한상률 감독님의 울타리를 벗어나자, 거친 세상에 던져 진 기분이다.

"첫날인데 어색해 미치겠어요... 아는 사람도 하나도 없고."

"너한텐 상률이나 이 선생이 전부였으니까. 우리도 다 오냐오냐 잘한다 해줬고."

"네..."

"근데 마하야. 이게 보통의 체육인들 세상이야."

"..."

"둘이 있을 땐 편하게 하고. 아무렴 사람들 많은 자리에서 우리끼리 담소 나눌 일 있겠냐? 나도 주변 교수들한테 점수 따야지 안 그래?"

"그냥... 제가 말 실수 할 거 같아서요."

"누구냐? 어떤 놈이 너한테 그랬어? 내 이 새끼들 그냥"

"어어! 교수님! 아니에요. 절대 그러지 마세요."

"무엇보다 이제 와서 너랑 나랑 멀어질 필요가 없잖아? 자식 서운하네."

"...죄송합니다."

"걱정 마라. 너가 어른들 앞에서 실수 할 놈이면 내가 아니라, 진작에 상률이가 알아서 뭐라고 했을 거다. 꼭 그런 놈들이 지 싸가지 없는 건 지나가도 남 예의 바르지 못 한 건 무시 못하는 법이잖아?"

"하하하..."

"그리고 나도 상률이 정도는 아니어도 니 녀석 인성은 알고 있다."

"고맙습니다. 아니. 아 이건 다가 맞구나."

부르신 건 다른 게 아니고, 수업 신청이나 기타등등 잘 하셨냐는 걱정 때문이라고 하셨다.

"동계체전 하면서 부랴부랴 어떻게 하긴 했어요."

"앞으로 학교 생활 잘하고. 이제는 계절이 계절이니만큼, 여름 세계선수권 준비도 해야지?"

"네! 그럼요."

"훈련 시간 잘 맞춰서 리포트 하나만 올려놔라. 나도 같이 일정 좀 짜게."

"네. 알겠습니다 교수님."

"그래. 그렇게 해. 가봐."

고등학교는 정해진 일정이 있고, 대회나 많은 것들이 기관과 학교가 주최가 되어 선수는 따라가기만 하면 되지만. 대학은 스스로가 자기 시간표를 짜야하기 때문에, 훈련이나 기타등등에 있어서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가 없다.

모든 것을 내가 알아서 해야 한다.

말 그대로 성인으로써 주체적인 삶을 시작하는 것이다.

공부도 그리고 훈련도. 더 나아가 취업과 미래까지.

모든 것은 나의 선택과 집중의 결과.

대학 선수의 삶이란 공부와 학업이란 두 개의 추를 어깨에 짊어지고 나가야 하는 것이었다.

"보자. 다음 수업이? 건물이?"

그래서 수원 체고의 진수나 한주 고 동민이는 대학생이 되지 않고 실업팀에 입단하는 길을 택했다.

물론, 두 녀석 다 자기 실력이 있으니 가능한 이야기였고, 동민이 같은 경우는 집안을 생각해서라도 빨리 돈을 벌고 싶어서 기쁜 마음으로 축하를 건넸다.

"여기구나."

웅성웅성 사람들이 몰려있는 강의실.

익범이 말대로 사람들이 나를 알긴 아는가, 여기저기 쳐다보면서 손가락도 들어 보이고 눈을 마주치자 웃어주는 사람들도 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쭈삣쭈삣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빈 자리를 찾아 앉았다.

체육과가 의예과와 수업이 겹칠 일은 없고, 필수 전공 같은 경우는 몇 몇 선배들 같은 사람도 있는 지라 최대한 바른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오오~ 아니? 이게 누구야! 자네 구마하 맞지?"

"네..."

그런 가운데 교양 수업 교수님이 오시며 알아보시고 인사를 건네주신다.

"이야~ 내가 이런 유명인을 만나게 될 줄이야. 잠깐 자리에서 일어나 볼까?"

이거 참...

확실히 기대와는 다른 대학생활이 될 거 같구나.

"다들 운동하는 사람들이니까 잘 알지? 우리 아테네의 영웅에게 박수 한번 쳐주자고."

"고맙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 * *

"아~ 미치겠네."

"뭐냐? 첫날부터?"

수업을 마치고 한구 스포츠 사무실로 와 소파에 들어 누워 버렸다.

"왜 왔어? 신입생 환영회 있는 거 아냐?"

"있는 사람들도 있는데, 거의 종목별로 뭉치는 분위기라서요."

"그래서? 육상은 아무도 안 끼워줘?"

"아니요. 저도 이따가 오라고는 했는데, 아직 시간이 남아서."

"그럼 학교 동아리라도 찾아갈 것이지, 왜 여기와서 널부러져 있냐."

"후우..."

한숨이나 쉬고 있으니 감독님도 서류들을 탁탁 정리하시며 말씀하셨다.

"뭐야? 신나는 대학생이 첫날부터?"

"후우... 감독님. 저 자퇴하고 지금이라도 실업팀 가면 안 될까요?"

"우리나라에 니 녀석 연봉 맞춰 줄 팀이 어디 있다고 그러냐."

"진수는 얼마 받는지 아세요? 걔는 그래도 기업팀으로 갔잖아요?"

"글쎄다. 너 없는 상황에 고교 챔피언 먹고 갔으니, 많으면 한 오천 되지 않을까?"

"오천이라..."

"광고나 행사비에 따지면 조금 작게 느껴지지?"

"..."

감독님이 서류에서 고개를 들어 쳐다보셨다.

"왜? 사람들이 뭐라고 해? 아니면 학교가 마음에 안 들어?"

"아니 무슨 군대도 아니고. 동물원도 아니고요! 가만히 있는 사람 일어나서 인사는 왜 받으라고 하는 거에요?"

"하하하~ 자식. 유명세다 생각해야지."

"아... 아까 그러는데, 진짜... 이건 아닌데 싶더라고요..."

"다 지나간다. 조금만 견뎌라."

"감독님. 이렇게 공부를 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럼. 진짜 자퇴하려고?"

"전 처음부터 실업팀에서 오퍼 없었나요?"

"없어. 이미 현석이 형이 너 시합 때 자기 학생이라고 전국민한테 다 떠벌려놔서."

"흑흑. 젠장... 제대로 꿰였어..."

"대신 명문대를 왔잖냐. 배부른 소리 그만하고."

감독님도 서류 정리가 끝났는지, 스케쥴 표를 보여주신다.

"일정이니까. 보고 아니다 싶은 건 얘기해라. 취소하게."

"아아... 이게 학생도 아니고, 연예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선수도 아니고..."

"선수는 왜 아니야? 다 하면서 해내야지."

"감독님. 제 삶은 뭘까요? 저의 인생은 이 스케쥴 표 어디 있는 걸까요?"

"그러니까 싫은 거 있음 얘기하라고. 정리할테니까."

"광고는 안 보이네요..."

"행사도 많이 줄어들고 있는 추세지."

씀씀이가 커진 입장에서 돈은 벌어야 되겠고. 그리고 아닌 대로 이런 게 언제까지 이어지리란 보장도 없으니 벌 때 확 벌어야지.

"그냥 다 해주세요."

"수업은? 수업 많이 빠져야 될 건데?"

"돈이나 벌러 갈래요. 동물원 원숭이 할 바에는."

"마하야. 앉아 봐."

부스럭 거리고 앉아 감독님을 마주 보았다.

"우는 소리 그만하고. 그래서 내가 처음부터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라고 했잖아."

"솔직히 뭐... 그게 병행이라고 할 수나 있나요. 그냥 수업에 앉아만 있던 거죠. 저 잤어요 감독님."

"알어. 그래도 어찌 됐든 너의 삶은 운동이 전부가 아니었으니까. 어려워도 해낼 수 있을 거다."

조용히 감독님 말을 소화하고 있다가 여쭤보았다.

"저 감독님. 사람이 대학을 꼭 나와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사람마다 다르지. 누군가는 학벌을 위해, 누군가는 자신의 목표를 위해.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감독님은 서울대 왜 가셨어요?"

"난 내가 서울대 생이 되고 싶었어. 주영이도 그렇고."

"왜요? 학벌?"

"학벌 보다는, 그냥 내가 그만한 사람이라는 프라이드를 가지고 싶어서"

"정말 가끔 이해 안 되셔..."

"요즘 뭐 흔히들 대학 취직 간판 아니냐 하지만, 그래도 너한테는 대학이 나쁜 선택이 아니기에 이 교수님 말을 거부하지 않았어."

"왜요?"

"말 그대로 대학(大學)이니까. 그래 보여도 은근 배우는 게 많거든. 사람이나 생각이나."

감독님도 소파에 기대며 말씀하신다.

"마하야. 너와 다른 선수들의 차이점이 뭘까?"

"으음."

"편하게 얘기해. 우리끼린데 뭐 어떠냐?"

"역시 메달 획득 여부가 아닐까 싶어요."

"그렇지. 너는 이른 나이에 메달을 땀으로, 다른 선수들보단 몇 단계를 앞서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보다 나은 은퇴 후 의 삶을 설계할 수 있지."

"그렇게 까지요?"

"당연하지. 너 연금 나오잖아. 거기다 나중에 스포츠 센터를 차려도, 사람들이 다른 데 가겠냐? 일찌감치 메달 딴 너한테 가지 않겠어?"

"알겠습니다. 그러니까 미리미리 시간 있을 때 배워둬라 이 말씀이시죠?"

"이놈도 많이 변하네. 예전엔 뭐라고 하면 그냥 네 네! 하던 녀석이 건방져 지는구나."

"후후후. 감독님. 다나까 아세요?"

"알지. 연대도 그러냐?"

"감독님이랑 이렇게 편하게 얘기하는게 얼마나 귀하고 값진지 이제야 알았네요."

"알아갈수록 내가 참 멋진 사람이지?"

"하하하! 네."

감독님은 사람은 배워서 나쁠 게 없다고 하셨다. 선수와 학생을 병행해야 하는 이들. 혹은 프로나 실업팀에 가지 못해 대학에 온 이들. 적어도 그들보다는 월등히 나은 상황이니.

"힘들어도 가봐라. 그 끝에 또 분명 멋진 여러 가지를 만나게 될 거다."

"..."

"마하야. 이렇게 말해도 그런 표정 지으면 내가 힘이 빠지지 않겠냐?"

"아니요. 말씀은 알겠는데요. 그러다가 연애는 언제 할 수 있는지..."

"후후후. 그거야 말로 노력을 해야 되는 문제지."

"아~ 여친 사귀고 싶다."

"혜정이는?"

"채였다니까요! 몇 번을 말씀드려요?"

"언제든 놀러오라고 해라. 동국대라고 하지 않았나?"

"저 안 보고 살 거래요. 지 죽으면 그때와서 문상이나 하라고 그랬어요."

"하하하~ 귀엽게들 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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