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륜기로 가버렷-104화 (104/401)

< 신촌에 내려온 운석 (4) >

"뭐야. 왜 전화 했어."

"목소리 싸늘한 거 봐라. 차라리 전화를 받질 말든가."

"니가 안 걸면 나도 안 받지. 왜? 뭔데?"

"혜정아. 친구간에 전화도 못 하냐?"

"싫어. 너 안 만날거야. 절대!"

"저기요. 저도 그쪽말고 다른 용건이 있어서 연락 드렸거든요. 혼자 착각하지말고."

집 부탁을 드렸던 혜정이네 어머니가 통화가 안 되길래 어디 가셨나 그거 물어보는데, 애가 막 착각을 하고 있다.

"엄마 요즘 외할머니 아프셔서 시골 가셨어."

"음. 그렇구나. 그럼 조금 더 기다려 봐야겠네."

"왜? 뭔데? 엄마 오늘 밤에 온다고 했으니까 내가 물어봐 줄게."

"아 그때 집 얘기 한 거. 어떻게 되고 계시나 해가지고."

"어디로 구할건데? 신촌? 방 몇 개?"

"야. 됐어. 이게 진짜 어딜 들어오려고..."

혜정이가 자기도 옆에서 주워들은 게 있다면서 말해주는데.

"너 집을 살 때 그렇게 막 쉽게 사는 게 아니야."

"그럼?"

"일단은 전세로 살면서 분위기를 봐야지."

"허허. 그래서?"

"난 거기가 좋더라. 강남."

"하하하하! 강남은 나도 좋지. 비싸니까 문제지."

"왜? 너 돈 많잖아."

"나도 요즘 일 없어. 이제 그런 것도 다 끝났고."

"흠. 그렇구만."

"어떠냐? 학교에서 친구는 많이 사겼어?"

"음. 뭐. 내가 원체 어딜가든 이쁨을 받는 스타일이니까."

"그래도 너도 내가 편해지긴 한가보다. 말 이렇게 막 하는 거 보면."

"뭐 그런 것도 있지."

"하긴. 그렇게 했는데. 불편하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야. 시끄럽다고."

"혹시, 영 몸이 근질근질하다 하면 내가 뭐 이혜정이라면."

"그리고 나 OT가서 괜찮은 애 이미 만났어."

"오오~ 빠른데?"

"서운하지? 그치? 막 가슴이 휑하고 그러지?"

"하하하! 아니. 축하해주고 싶은데?"

"진짜?"

"그럼. 남자친구 사겨야지. 이혜정이 남자 없이 어떻게 산다고."

"야. 끊어!! 너 두번다시 나한테 전화 하지 마!!"

다시는 전화하지 말라면서 통화 끝내고 바로 문자를 보내준다.

[내일 엄마가 전화한다고 했어. 그러니까 앞으로 나한테는 연락 금지. 혹시나 남자친구 오해받기 싫음]

"그래. 잘 사귀어라."

혜정이야 예쁘니까 뭐 그럴 수 있겠지.

아 내가 걱정이네. 여자친구라...

과에선 뭔가 이렇다 하고 느낌을 주는 애들이 없고.

학교엔 예쁜 애들이 가끔 보이긴 하는데, 그렇다고 불쑥 다가가서 말 걸면 싫어 할 거고.

동아리 같은 거 나가면 좀 다르겠지만 그건 도저히 할 시간이 없고.

"젠장. 운동이 동아리다."

자꾸 잡생각이 나길래 신체단련실을 찾아갔다.

몸도 풀고 이것저것 쇠질을 하면서 근육을 만들고 있는데, 우르르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어온다.

"어? 야 저기. 구마하 아니야?"

거울을 보면서 자세에 집중하고 있는데, 한 무리의 키 큰 사람들이 다가와 구경했다.

"이야... 힘 장난 아니네."

"안녕하십니까! 농구부시죠?"

"그래. 야 야 말 걸지 마... 이게 지금 몇이야?"

한 사람이 바벨 숫자를 세보면서 말한다.

"넷 다섯. 100. 양쪽 200이라고...?"

"훅. 후우!!"

"야. 다치겠다. 비켜주자."

"고맙습니다!!"

양쪽 100키로 씩 매달고 열심히 스쿼트와 런지를 끝내고 땀을 닦았다.

일찍 친구가 된 익범이가 다가와 놀란 얼굴로 보고 있다.

"와... 200?"

"최근에 스키 타면서 중량이 조금 더 올랐어."

"세계 챔피언이 그냥 된 게 아니구나..."

"너도 조금씩 올려 봐."

"야... 난 그렇게 못 해. 무릎 나가."

익범이를 통해서 농구부 친구들을 사귀게 됐다.

운동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서전트 점프 이야기가 나왔다.

"그거 말하는 거지? 제자리 뛰는 거. 아직 안 재봤는데."

"그래?"

그러자 다른 농구부 선배들도 다가와 이것저것 물어보며 한번 가서 측정 해보자고 하는데.

"제가 해도 될까요?"

"뭐 어떠냐. 가보자."

농구부원들의 호기심 측정을 위해 체육관으로 옮겨갔다.

쿵쿵 여자 농구 부원들이 운동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내가 오니까 꺄악 소리들을 지르는데.

"왜? 왜지?"

"하하하! 너가 인기스타는 인기 스타네."

"갑자기 들어가기 싫어지는데..."

"가봐. 내친김에 덩크도 해보든가."

"덩크가 될까?"

농구부 지도 교수님이 너네 체력실 안 있고 여기서 뭐하냐고 물어보시다가.

"그래? 한번도 안 재봤다고? 그럼 한번 해 봐야지!"

교수님까지 흥미진진한 눈으로 점프를 체크해 보자며 같이 가신다.

벽 한쪽에 붙은 줄눈이 그려진 치수판을 보았다.

"오~ 생각보다 엄청 높은데?"

"마하야. 방법은 굳이 설명해주지 않아도 알지?"

"음."

"한번 멋지게 뛰어 봐! 우리도 세계 챔피언 기 좀 받게."

"네 교수님!"

슬슬 앉았다 일어서며 허벅지와 무릎에 예열을 해주고 폴짝폴짝 뛰며 종아리에 충격을 주었다.

송진을 바르며, 힘껏 어금니를 악물어 제자리에서 점프.

쿵!

소리를 내고 착지해 고개를 들어보니, 음. 잘은 몰라도 제법 높게 찍힌 거 같다.

"우와..."

"젠장... 하하."

"제기랄..."

101Cm가 나왔단다.

높은 거 같은데, 다들 조금씩 들을락 말락 욕을 하고 있길래 마냥 좋아하지도 못 했다.

그러자 교수님이 갑자기 어깨를 딱 잡으며 말씀하신다.

"구마하 자네. 혹시 농구 해볼 생각 없나?"

"네? 하하하..."

"슬램덩크 봤지? 자네라면 최고의 리바운더가 될 수 있어. 자네야 말로 내가 찾던 강백호야. 어때? 기본부터 시작해서."

"하하하... 하하..."

아무튼 서전트 점프 일로 농구부 사람들과 많이 가까워질 수 있었다.

익범이와도 더 친해지고 전화번호를 나누며 친구들을 사귀게 됐다.

"우리 교수님은 진심인 거 같던데?"

"야. 내가 농구를 어떻게 해. 축구면 몰라도."

"하긴, 넌 다리를 잘 쓰겠구나."

며칠 학교를 다녀보니, 팀 스포츠와 다르게 우리는 개인종목이라 사람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훈련 때문에 다른 학생들과도 접점이 잘 없고, 조금 대학 생활이 단조롭게 흘러가는 것 같았는데. 역시 운동하는 사람은 운동하는 사람들을 만나는구나.

"마하야. 선배들이 너는 잘 안 건드리지?"

"뭐. 건드리고 자시고. 그것도 얼굴을 봐야."

"하키부는 어제 집합 했다더라."

"진짜. 대학까지 와서 그러고 싶을까..."

"그러니까. 나도 보니까 우리 농구 쪽에선 좀 덜한데, 아 씨 첫날 그 인간들 생각할수록 짜증나네."

"익범아 선배니까 말 조심해야 되지만, 봐라. 신입생들 있는 자리 찾아와서 인사받고 가는 게 그게 선배냐?"

"대학 오면 멋있는 사람들만 있을 줄 알았더니."

"여기도 결국 사람 사는 곳이었다는 거지."

이야기를 나누며 느끼는데, 얘도 나 못지않게 자유로운 환경에서 운동을 해왔던 거 같아 물어더니.

"아아~ 그래? 그럼 너 영어 잘하겠네."

"어. 뭐."

"야 잘 됐다. 나 안 그래도 요즘 영어공부 하는데. 앞으로 너한테 물어보면 되겠다."

"하하하! 야 됐어. 그런 거 안 해."

고익범은 외국에서 태어나 중학교까지 그곳에서 운동을 했고, 고등학교 3년을 거쳐 대학에 들어왔다.

외국인 전형도 됐지만, 애가 운동을 잘해서도 스카웃이 된 케이스라고 했다.

얘도 운동 잘하는구나.

"진짜? 그래서 한국을 왔다고?"

"응. 할아버지와 약속이었거든."

"그럼 군대는?"

"가야지. 한국인인데."

"으음. 그래도 아깝다. 미국에 있었으면 NBA를 도전하지."

"하하! 마하야. NBA는 괴물이야."

미국 국적을 포기하고 한국인으로 한국 프로농구의 문을 두드리고 싶은 익범이.

국가와 미래를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감독님 말씀대로 다양한 만남이 사고의 틀을 넓혀주는 기분이다.

"하긴, NBA애들 보니까 괴물이긴 하더라."

"봤어?!"

"어 아테네에서. 파티 존나 하더만."

"진짜? 누구??"

"글쎄. 여럿 있었는데 그나마 좀 친하다고 할 정도면 브라운 제임스 정도?"

"브라운 제임스!!!"

깜짝이야. 뭔데 이렇게 놀래?

"진짜? 니가 브라운 제임스 안다고?"

"어. 요즘엔 좀 뜸해도 메일 주고 받고 했는데?"

"우와! 너 생각보다 월드클라스구나?"

"그... 그래? 브라운이 그 정도 였어?"

"장난 아니지! 드림팀에 뽑혔는데. NBA에서도 아무나 올림픽 가는 거 아니라고!"

"근데, 작년 미국 농구팀은 드림팀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잖아?"

"아 맞다 그랬지... 근데, 이야기 들어보니까 그렇게 파티를 하는데 메달을 무슨 수로 땄겠냐 싶다. 자업자득이네."

"하하. 그거랑은 관계 없던 거 같은데."

어색하던 대학 생활도 그렇게 익범이나 다른 사람들을 알아가며 조금씩 적응을 해갔다.

과 친구도 많이 알고, 선배들도 생각보단 터치를 할래야 할 수 없는 상황들이 이어져 그냥 내 생활 그들 생활 갈라지고 말았다.

"안녕하십니까."

"음."

하지만 과 특성상 가끔 마주칠 수 밖에 없는 박상택과는 한번도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보지 못했다.

"..."

그러든 말든 상관없어.

난 내 운동 내 생활만 잘하면 그만이니까.

* * *

3월 말. 혜정이 어머니가 올라오셔서 집을 보여주셨다.

"오~ 여기요?"

"응. 신축은 아직 괜찮은 게 없어서 니가 말 한 대로 전세로 구해봤어."

"좋네요."

"건물 깨끗하네."

당연히 아줌마가 올라오시니 두 번다시 안 만나겠다던 혜정이도 쫄래쫄래 궁금해서라도 따라나왔다.

"염색했냐?"

"어. 어때?"

"괜찮네. 근데 색이 너무 밝은 거 아냐?"

"대학생인데 이정도 뭐."

"어이고 어이고... 마하야. 쟤 신경쓰지 말고 들어가서 집 보자."

"네."

마포 쪽에 있는 아파트였다.

국민 평형 84 제곱미터라는데 크기도 그렇고 한강 바로 앞이라 조깅하기도 좋다.

학교나 사무실과도 2~3키로 거리라 그렇게 멀지도 않고 딱인 거 같다.

"여긴 사려면 얼마에요?"

"거의 비슷하긴 한데."

"음. 그럼 그냥 매매를 할까?"

"얘. 마하야. 구 사장도 그러는데, 너 돈 너무 막 쓰는 거 아니니?"

"아니요. 그냥 저도 이런 집 살고 싶었어서."

"있어 봐. 아줌마가 더 좋은 걸로 구해줄게."

"부탁드릴게요."

베란다에서 한강을 내려다보던 혜정이도 괜히 심드렁하게 말한다.

"뭐 뷰도~ 괜찮고."

"얘. 니가 뭐라고 괜찮고 아니고 따지고 있니?"

"아줌마 그거 아세요? 쟤가 저 집 구한다니까 자꾸 자기 방 하나 내달라고 저한테."

"정말로?"

"야! 얘가 미쳤나 봐... 이상한 소리를 하고 있어..."

"마하라면 내가 우리 딸 준다."

"엄마도 왜 그래? 내가 뭐 물건이야?"

집 계약을 마무리 짓고 멀리 와주신 아주머니께 식사도 대접하고 그러고 시간을 보냈다.

"집엔 안 내려오니?"

"저도 형이 한번 오라고 하긴 하는데, 은근 뭐가 엄청 바쁘네요. 거기다 요즘엔 거의 사무실에서 자느라 몸도 좀 피곤하고."

"사무실?"

"어. 한구 스포츠 사무실. 너 빈방 필요하면 가서 지내. 나름 밤에 자기엔 나쁘지 않어."

"으음. 됐어. 한상률 있을 거 아냐."

"얘! 얘는 여자애가 무슨 소리를..."

"뭐. 어차피 빈 공간이라잖아..."

"사무실이라잖아!"

물론 뭐 혜정이가 나랑 그래서 그렇지. 애가 발랑 까지고 그런 애는 아니다.

나름 바르고 건강한 딸이지만. 가끔은 아줌마 이런 반응 보면 죄책감이 가슴을 찔러서...

"흠. 크흠. 아줌마 걱정마세요. 제가 혜정이 잘 지켜보고 있을게요."

"그래. 부탁 좀 하자 얘."

"엄마.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겨."

"왜? 마하가 어때서? 운동 열심히지. 애 인성 바르지."

"하하하~ 아하하하! 얘가?"

"이혜정. 밥이나 먹어... 이상하게 웃지말고..."

즐거운 저녁을 보내느라 단체 문자가 오는 걸 모르고 있었다.

[사체과 1학년 지금 당장 운동장으로 집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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