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륜기로 가버렷-112화 (112/401)

< 스페셜 리스트의 가치 (2) >

"감독님... 네?"

"뭐? 회식 해. 학생들이 먹고 마시면 얼마나 나온다고?"

"운동하는 사람들인데요?"

"그래서? 운동하는 사람이 다 너만큼 먹냐?"

"아 제발요..."

"마하야 100만원 큰 돈이야."

"연금이잖아요!"

"이야~ 부럽다. 남들은 은퇴해야 받는 돈, 넌 벌써부터 받는구나. 그거 죽을 때까지 나오는 거 잖아?"

"아니 그게 아니라.. 어~ 어! 감독님. 제가 신생 육상팀 주장이라서 돈 나갈 데도 많고."

"현석이 형이 학교 차원에서 지원금 끌어온다고 하던데?"

"..."

"아니면 뭐? 사람들 데리고 룸싸롱이라도 가려고? 단합 차원에서?"

"아 진짜..."

연세대 신생 육상팀이 정식으로 발족되었다.

학생회에서 부실로 쓰라고 조그만 방도 하나 내줬고, 부원도 서른 명 왔다갔다 호응도 뜨겁다.

그런 이유로 금전적 상한선을 높이나 했는데.

감독님은 철두철미하게 금고를 잠가 버리셨다.

"아무튼, 안돼. 정 쓰고 싶으면 먼저 마윤이 형님 승락 받고 와."

"형이 허락해주겠냐고요!!"

"이 자식이 아까부터 오냐오냐 하니까. 너 이제 막 나한테 소리 질러? 내가 니 매니저 한다고 우습게 보는 거야?"

"아니요... 죄송합니다..."

"마하야. 형님이나 내가 니 돈 가지고 도망칠까 그러냐?"

"아우 아니죠... 제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겠어요..."

"그럼 그냥 시키는 대로 해!! 우리가 니 자식 망하라고 이러는 거 아니잖아!"

아 진짜 내가 아무렴 차 가지고 헛짓 하겠냐고.

여자들 꼬셔서 맨날 섹스나 하고 놀러다니고 그러겠냐고.

물론! 그런 시간도 있을 수 있지. 없다곤 할 수 없어. 그건 나도 인정해.

하지만 지금 나에게 차는 여가가 아닌, 박상택을 겨냥한 시위운동 같은 건데...

"너 차 때문에 그러는 거 아냐."

"..."

"사. 누가 뭐래? 니가 쓰는 100만원에서 쓰라니까?"

"......"

"마하야. 한 달 100만원이면 차 값 내고, 유류비, 보험. 다 해도 남어. 아니냐?"

"저... 감독님 혹시 감독님도 무슨 특별한 능력이 생기셨나요?"

"무슨 능력?"

"사람 속을 읽는다던지...?"

"니 녀석 얼굴 보면 뻔하지."

수십 억을 가지면 뭐하냐. 한 푼 쓰고 싶어도 꺼낼 수가 없는데...

그날 밤 형한테 전화를 걸었다.

"아! 형이 돈을 왜 막어!!"

"뭐? 그럼 돈 있으면 그걸 다 써?"

"써야지. 그럼. 그래야 경제도 돌아가고. 어? 소비도 증진되고, 일자리도 생기고. 사람들이 돈 안 쓰면 취업 고용 이런 거 다 어떻게 굴러가는데?"

"니가 안 그래도 우리나라 경제 잘 돌아가고, 남들이 돈 잘 쓰고 있다."

"형... 차 하나만 살게. 어?"

"마하야. 너 지금 전세금 나갔고, 그리고 집 매매 금액은 따로 나갈 것이고."

"집 뭐? 형도 집 샀잖아. 그리고 전세금 뭐? 이거 나갈 때 돌려 받는 거고."

"마하야. 돈 무서운 거야. 형 말 들어."

"아 진짜..."

"필요하면 일을 해. 대학생이잖아 성인이 됐으면 일 해서 벌면 되잖아."

"그 돈도 내가 일해서 번 돈이잖아!!"

"그게 어떻게 니가 번 거냐. 국민들이 널 좋게 봐서 주신 거지."

"아 그렇게 따질 게 아니지... 나도 정신없이 여기저기 얼굴 비추고 다녔다고..."

"이 자식이 진짜 좋게 말하니까. 너 자꾸 그러면 그 자취방도 내쫓으라고 감독님한테 전화 드려."

"..."

"말 들어. 학생 답게 살고. 그리고 어른들한테 꼬박꼬박 예의 있게 굴어."

"걱정하지 않아도 내가 알아서 잘하고 있다고..."

"정석이를 보고 배우든가. 애가 싹싹 하니까 적응도 잘하고, 손님들도 이제는 친근하게 대해주시고 그러잖아."

"크하하하! 형? 그 새끼 미친 놈이야! 지금 누굴 보고 뭘 배우라는 건데!!"

통화하는 김에 여러가지를 물었다.

"기운을 보기 시작한 뒤로 확실히 좀 특별한 아우라가 느껴지는 사람들이 있어."

"있지. 특히 운동하는 사람은 나도 모르게 내공이 발달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근데, 일반 학생들 중에서도 가끔 그렇게 은은한 빛을 내는 사람들이 보여."

"마하야. 머리 좋은 사람은 내공도 깊은 법이야."

"내공은 파워 아냐? 머리가 왜 내공이 돼?"

"무형의 힘은 다 내공이라고 표현 할 수 있어."

형은 인내력도 내공이고, 지혜도 내공이라고 했다.

사람의 기운은 단지 파워 하나가 아니란다.

"대충 끼워 맞추는 거 아니야...?"

"끼워 맞추긴. 내가 그래서 사람을 잘 보잖아. 제대로 배우지 않아도 손해 본 적 없고. 형한테도 사기꾼 많이 찾아 왔었다."

"그건 뭐 인정할 수 밖에 없네."

"마하야. 너가 그런 힘에 눈을 떠서도 더 조심하라는 거야."

"왜?"

"앞으론 더더욱 좋은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좋은 사람들을 볼 수 있어."

돈에 휘둘리면 결국 그런 사람들과 어울리게 될 것이고.

참고 인내하며 나아가면 발전되는 사람들에게 이끌리게 될 것이다.

그것이 내공의 본질이라 했다.

"지금 갖고 있는 것만 하더라도 충분하잖아. 안 그래?"

"..."

진짜 말이라면 못 하면 개기기라도 하지...

"학교는 좀 어때? 사람들은 많이 사겼어?"

"당연하지. 내가 우리 학교 육상팀 주장이야! 시범경기 때도 얼마나 끝내줬는데. 사람들 막 고함 지르고 박수 치고."

"그래. 잘하고 있다."

아무튼, 이 깐깐한 아저씨들을 당해낼 수는 없고. 아니 진짜 둘 다 결혼이나 하든가. 왜 다들 장가를 안 가는데? 나이는 먹어 가지고?

후우... 마음을 놓으면 안 되는데. 육상팀을 만들어도 바뀌는 건 없어. 시위는 계속 되어야 한다. 섹스 섹스한 대학생활도 중요하지만, 이건 그와는 또 다른 도전이니까.

"돈을 번다라..."

NICE도 스키 관련 이야기가 나왔지만, 아직 성적이 미미한 관계로 계약으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설령 된다 하더라도 그건 스포츠니까 동결되는 자금에 묶이겠지.

차라. 차...

더도말고 딱 천 만원만 있으면...

"음?"

천 만원이란 금액에 슬금슬금 뭔가가 떠올라 며칠 뒤 참가하는 육상대회 팜플렛을 열어 보았다.

"그래! 있다!! 하하하! 있어!!"

성인 경기엔 고교 대회와 다르게 상금이 걸려 있었다.

설마 상금까지 뭐라고 하시진 않겠지? 내일 감독님 찾아가 여쭤봐야지.

* * *

"이것도 설마 동결 되나요?"

"으음..."

감독님도 상금은 생각 못 하신 듯, 머리를 긁적이고 계셨다.

"젠장. 학생 대회에 뭐 이렇게 상금이 높아...?"

"뭐가 높아요. 그거 우승해도 200만원 밖에 안 하는데."

"..."

"보자. 1500까지 네 종목에 바로 이어서 열리는 대학실업팀 경기까지 더 하면."

"1500은 안 하기로 했다."

"네? 갑자기 왜요?"

"이현석 교수랑 이야기 된 거야. 앞으로도 1500은 운동목록에서 빼."

"저 뛸 수 있는데요?"

"세 종목만 나가도 충분해. 아무리 내공이니 뭐니 해도, 스테미너에 영향을 받잖아. 피로는 보이지 않게 누적되는 법이니까."

"그럼. 세 종목이면... 그건 오케이 해주시는 거죠?"

"..."

감독님이 팜플렛을 내려놓으며 자세를 바꾸셨다.

"솔직히 말해 봐. 여자 때문이냐?"

"그것도 조금은 있긴 있죠... 근데 진짜 조금이라..."

"그럼 많은 건 뭔데? 집에서 학교가 너무 멀어? 마포에서 연대 가는 교통편이 없어? 걸어오는 중간에 서강대에서 범이라도 튀어나와? 니한테 차가 왜 필요한거야?"

안 그래도 어제 형이랑 전화하고 두 분이 벌써 통화를 가지셨단다.

감독님도 형 의견에 동의하고 계셨다.

내가 돈에 휘둘리다 의지가 무너질까 그런 걱정을 하고 계셨다.

"감독님. 제가 그런 걸로 꺽일 놈은 아니잖아요."

"마하야. 사람 일은 모르는 거야. 특히 돈 같은 건 인간의 절제심을 무너뜨린다고."

"일단, 육상 시즌이 시작돼서 여기저기 다녀야 하고."

"나랑 같이 가잖아."

"감독님 바쁘시잖아요. 솔직히 요즘 저보다 더 바쁘신 거 아세요?"

"그래서? 대회 때문에. 또?"

"그리고 이건 진짜 멋을 떠나서, 제가 육상팀을 바라보는 거랑 같은 선에서 이야기에요."

"해 봐. 뭔데?"

학교 선배와 작은 갈등이 있었다. 그때 체육계의 어둠을 보았다.

박상택과의 이야기에서 느끼고 분노했던 마음들을 숨김없이 보여드렸다.

감독님도 조금 놀라며 물으신다.

"스키하는 선배가 너한테 그러더라고?"

"네. 진짜 장난 아니게 시비에요."

"정준 씨는 그런 말 없었는데..."

"정준이 형은 뭐. 우리 학교 사람 아니니까 몰랐겠죠."

"아무튼 그래서?"

"그래서. 선배들이랑 있던 일 때문에 교수님이랑도 상담했는데, 그때 육상팀을 만들라고 하셨고. 저 혼자서는 무리라고 하시면서."

"..."

"차는 솔직히 그 선배 엿먹어라 이런 똥군기가 다 무슨 의미가 있냐는 항의긴 한데."

"생활 체육. 그것도 현석이 형이 하라고 한 거야?"

"아니요. 그건 그냥 사람들이 물어보길래. 누구라도 좀 필요할 거 같아서."

"니 녀석 아이디어구나. 후후후."

어느 지점에서 웃음이 나오시는지 몰라도, 아무튼 웃음은 긍정적인 신호가 아닐까?

"그래서 제가 차 끌고 가면, 그 선배도 더 이상 다른 애들한테 뭐라고 못 할 거고요."

"흐음."

"뭐... 솔직히 여자도 조금. 아주 조금? 한 100에서 4정도는 있긴 한데요."

"입에 침이나 바르고 거짓말을 해라. 40이겠지. 니가 무슨 여자를 100에서 4라고..."

"감독님. 저 그렇게 여자 밝히는 놈 아니에요."

"마하야. 나 너랑 같이 아테네 갔다 온 사람이야. 그리고 나한텐 너 말고도 태윤이 정석이 남수라는 제자들이 있어."

하여간 미친놈들 오만 데 안 떠드는 곳이 없어요...

"생활 체육이라... 그래 그런 게 있구나. 왜 나는 그 생각을 못 했을까..."

감독님은 차보다 생활체육이란 말에 더 큰 영감을 얻으신 것 같다.

엘리트 체육의 그림자를 걷어내는 일은 나보다 감독님이 더 오랜 시간 깊이 있게 고민하던 문제였다.

"그런 방법도 괜찮지 않을까요?"

"그래 내부에선 문제를 볼 수 없어. 그나마 너니까 그게 아니라고 목소리를 냈지 다른 애들이 찍소리나 했겠냐."

감독님은 솔직히 말해 우리가 이렇게 선수를 육성하면 다른 지도자들이 다 그런 방식을 따라할 거란 기대를 하고 계셨단다.

"그런 분들도 점점 나오겠죠."

"그래도... 한계가 있어."

"어떤 한계요?"

"그들이 키워내는 선수가 구마하가 아니라는 한계."

"음."

"실적이 필요한 지도자들 입장에서 너 같은 선수 만나면야 당연히 좋겠지만. 근데 그게 어디 쉬운 일이냐. 거기다 너한텐 내공이란 특별한 힘도 있는데."

"그거는 원래 다 있는 건데요."

"있어도. 그 힘을 자유롭게 쓸 줄 아는 건 현재 체육계에 너 하나밖에 없잖아."

"뭐. 그렇죠."

감독님도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이상은 결국 이상에 불과하다란 결론에 다다르셨단다.

"현석이 형님 말씀도 맞지. 엘리트 체육이 없으면 체육에 열광해주는 국민들도 없어. 나도 거기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던 건 사실이야."

"전 그냥 체육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잘못된 걸 같이 잘못됐다고 해주지 않을까... 단순하게 봤어요."

"그래 바로 그거야. 내가 왜 그 단순한 접근을 못 해서..."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지, 가만히 감독님을 보고 있으니.

"복잡하게 너랑 회사를 차렸을까... 이렇게 컸다고 지 고집만 부리고 스승 우습게 아는 놈이랑..."

"하하하... 감독님? 아 왜 말씀이 이상하게 빠져요?"

"아무튼 자금은 안돼. 대신, 그래. 상금은 인정하마."

"정말이시죠! 진짜죠? 나중에 딴 말 하기 없으시기에요!!"

"대신 너무 비싼 건 아니야. 돈 무서운 것도 분명히 알아야 하는 이야기야."

"네. 알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 구마하 어른들의 값진 말씀 가벼이 흘려듣지 않습니다.

스승님과 형님의 말을 믿고 따라왔기에 지금의 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한구 스포츠를 나와 바로 BMW 매장을 찾아갔다.

뭐? 페라리는 아니잖아?

"실례합니다."

"네. 어서오세. 어?"

"안녕하세요. 차 좀 보러 왔는데요."

"어~어! 구마하 맞죠?"

"하하하! 네 맞습니다."

영업 딜러께서 작년 아테네 올림픽을 아주 즐겁게 보셨다면서 친절하게 응대를 해주셨다.

"잘 오셨어요! 올림픽 영웅이 우리 차를 타 주신다면 저희도 영광이죠!!"

"벤츠로 할까 했는데, 친구들이 요즘엔 BMW가 세련됐다는 이야기를 해줘서요."

"당연하죠! 벤츠는 시대에 뒤떨어지니까요. 젊음엔 역시 BMW! 보세요. 이 로고도 원래 바이에른 주의 문양에서 따온 걸로, 나중엔 항공기 프로펠러를 상징하게 됐거든요."

"오~"

"구마하. 속도의 사나이! 속도 하면 뭡니까? 마하 아닙니까~!!"

"그렇죠. 마하죠."

"구마하 선수. 제가 짧게 노래 한 소절 들려드릴까요? 기차는 빨라 빠르면 비행기. 크~ 바로 여기. 비행기 프로펠러."

"오오~ 오오오!"

"구마하 선수? 비행기는 높아 높으면 그 다음은?"

"백두산?"

"아니죠. 금메달이죠."

크으~ 완벽한 설득력이다.

살면서 이보다 더 논리적인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그의 말에 감동해 악수하는 손을 내밀자 그도 굳세게 맞잡는다.

"좋습니다. 계약하시죠."

"하하하~! 시원시원 하시네요. 차는 어떤 걸로?"

"저. 일단 제 몸에 맞게 크면 좋겠고요."

"네~ 그리고요?"

"제가 운동을 해서 이것저것 짐 칸이 넓으면 좋겠고, 또 스키를 타서 장비 실을 수 있는 그런 것도 있으면 좋겠는데요."

"있습니다! X5가 딱! 이쪽으로 오시죠!"

"오오~ 오! 이 차 드라마에서 봤어요!!"

"레져. 투어. 그리고 드라이빙. 모든 부분에 있어서 완벽함 그 자체. 이 녀석도 마치 지금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네요."

"으음! 음!"

"구마하 선수. 말은 주인을 알아본다고 합니다. 차도 주인을 알아보는 법이죠."

"흠! 한번 앉아봐도 될까요?"

"물론이죠~! 자. 여기!"

그래서 어찌저찌 하다보니 계약서랑 금액 설명까지 들었는데.

"으음..."

"왜 그러십니까? 뭐 마음에 안 드시는 거라도?"

"아. 아니요..."

어이 씨... 생각보다 쌘데...? 이거 진짜 감당할 수 있을까...?

"저... 조금 깍을 순 없겠죠?"

"하하하~ 해드릴 순 있는데, 그럼 할부기간이 길어집니다. 결국 더 비싸게 사는 게 될 거에요."

"으음..."

"계속 타실 거면 몰라도, 언젠가 중고차로 파실 예정이시면 너무 크게 가져가지 않으시는게 좋습니다."

"왜요?"

"구마하 선수. 차는 계속해서 신형이 나옵니다. 기술은 발전하니까요."

"아~ 나중에 바꿔타야 하니까?"

"그렇죠. 젊음! 에너지! 높은 비행기 다음은 뭐다?"

"알겠습니다! 까짓 거. 몇 달 뒤 세계선수권인데, 가서 상금 벌어올게요!"

"하하하! 과연 사나이 답습니다."

기분 좋게 차를 계약하고 돌아와.

감독님한테 뒤지게 혼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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