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느낌 (1) >
한수빈이 초대장을 건네주자 익범이와 재민이가 눈으로 쌍욕을 쏘고있다.
그래 니네가 봐도 예쁘지...? 이런 사람이 날 찾아왔다는게 믿기지 않지 그치?
근데 말이야...
그녀에겐 가시가 있어....
"오... 진짜 공연이네요?"
"아하하하~ 그럼 진짜 공연이죠. 제가 거짓말하는 줄 알았어요?"
"아니. 음... 예술의 전당 같은 데는 또 처음이라."
"학교에서 하는 공연이에요."
"아 네."
예술의 전당이라... 강남 클럽과는 또 다른 분위기겠지...?
장소는 일단 안심되는데.
"근데 저를 왜?"
"그냥 좋으니까."
"..."
아니야 웃지 마. 웃을 게 아니잖아. 승우 형도 이 사람은 위험한 사람이랬어.
근데 날 좋아한다고? 허허허~ 진짜로??
"후후. 마하 씨도 좋아요?"
"아.. 하하..."
"그럼. 그날 봐요."
"저. 수. 수빈 씨? 잠깐만요!"
"음?"
"아. 그..."
"왜요?"
살면서 이런 순간이 또 올까? 그녀가 내 인생 마지막 여자면 어떡해?
진정해 쫄 거 없다. 가시 박힌 장미라고 하기엔 너무 아름다운 꽃이다.
뭐든 예쁜 건 조금 싸가지가 없는 거니까.
도전하는 자세야말로 나의 본질이 아니던가.
가봐. 한 번 더 가보는 거야.
빠른 다리 뒀다 어디다 쓴다고. 여차하면 또 피하면 그만이잖아.
"왜요? 그날 무슨 약속 있어요?"
"아. 그게 아니라. 혹시 표 한 장만 더 주시겠어요?"
"표?"
그래도 역시 홀몸으로 그녀의 초대장을 소화하기엔 뭔가 속이 더부룩해. 누구를 데려가는 게 좋겠어.
승우 형은 또 얽히기 싫다고 할 것이고, 대학 사람들보다는 고등학교 친구들이 괜찮을 거 같다.
여자는 여자가 안다고. 혜정이가 같이 가면 좋겠지만 그건 현실적으로 어려울 테니, 남수가 시간이 되려나?
"친구 누구?"
"저요!"
"저... 저요!!"
"아. 고등학교 친구가 이런 걸 좋아해서."
"후후후. 여자?"
"아니요. 남자."
수빈 씨는 오늘은 나만 생각해 딱 한 장만 들고 왔단다.
"그날 줄게요. 그럼. 안녕."
"네. 가세요."
그녀가 차에 올라타 훅 떠나가 버렸다.
포르쉐라. 김태윤이 로고에 말 찍힌 차는 급이 다르다던데, BMW도 사람 휘청이게 만드는데 저건 얼마나 할까? 대체 뭐 하는 집안이길래...? 대통령의 숨겨진 외손녀는 아닌 거 같고, 진짜 재벌이라도 되는 건가?
"후후후~ 마하 씨도 좋아요? 야 이 씨! 누구야 대체!!"
"저 사람이냐? 클럽에서 만났다는 게?"
"후우. 어..."
"왜 한숨인데! 저쪽도 너 좋아하는 거 같구만!!"
"그래. 기뻐 날뛰진 못할망정 왜 한숨을 쉬어? 사람 짜증 나게?"
"있어. 뭔가 좀 말 못 할 그런 게..."
"이 새끼... 너 지금 우리한테 자랑하는 거 아니지?"
"아니야. 니네가 생각하는 거랑 다르다니까..."
"됐으니까. 야. 나 이제 육상팀 관두고 농구에 올인한다."
"나도. 학점 신경 써야 돼..."
"아 진짜 이 새끼들 그런 게 아니라니까!!'
"꺼져! 가서 니 고등학교 친구들이랑 놀아!!"
"그래. 어차피 우리야 대학에서 만난 짧은 인연이지... 반가웠다. 유명한 사람 알고 지냈네."
"아 이 자식들 유치하게!"
그날을 계기로 익범이와 재민이가 나한테 편하게 욕을 하기 시작했다.
한수빈은 어쨌든 셋이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였다고 생각한다.
* * *
"보자. 여긴가?"
다음 날 학교 아카라카 공연을 포기하면서까지 X를 끌고 청담동을 찾아왔다.
먼저 패션쇼 선생님네 사무실인데, 무대 이후 사흘 만에 전화를 걸었더니, 선생님이 입구까지 나오셔서 반겨주셨다.
"어서 와!! 잘 찾아왔네. 차 안 막혔어?"
"조금 막히긴 했는데 그래도 오는 길이 크게 어렵진 않았어요."
"차 멋지다. 마하야 너랑 잘 어울려."
"하하하... 애물단지죠 뭐..."
"정장 맞추고 싶다고? 어디 가니? 시상식?"
"아. 음악회에 초대를 받았는데, 예술의 전당이래요. 그런 자리가 처음이라 그냥 좀 깔끔하게 입고가야 될 거 같아서..."
"잘 왔어. 그런 거라면 우리가 전문이니까, 들어와 어서. 마실 거 뭐 줄까?"
"물이나 한 잔 주세요."
"어떻게 그러니. 얘들아. 가서 시원한 주스 좀 가져와."
먼저 동대문에서 혜정이랑 산 깔끔한 옷들이 아직 많지만, 그래도 뭔가... 어쨌든 수빈 씨가 초대한 자린데, 걔랑 산 거 입기는 조금 그렇고 해서 새롭게 디자이너 선생님을 찾아왔다.
그런데, 여기서도 이혜정이 골라준 것과 비슷한 옷들을 가져와 입어보라고 하신다.
"음. 이게 낫나요?"
"왜? 뭐 찾는 거 있어?"
"뭔가 조금 밋밋한 거 같아서."
"마하는 화려한 스타일 좋아하니?"
"모르겠어요. 솔직히 옷 그렇게 잘 입는 편도 아니고. 저야 뭐 맨날 후드티에 운동복이죠."
"넌 키 크고 태가 좋아서 뭘 입어도 다 잘 어울리지만, 이렇게 입는 게 젤 멋있어!"
디자이너 선생님도 똑같은 말을 하셨다.
여자들 눈은 다 비슷비슷하구나.
이것저것 걸쳐보고 세미 정장 같은 옷이 없어서 이걸로 할게요 라고 말했다.
"온 김에 다른 것들도 걸쳐볼래?"
"아. 저 그냥 이렇게 한 벌만 있으면 될 거 같은데."
"옷 별로 없다며. 입어 봐. 입고 그냥 맘에 드는 거 가져 가."
"네? 아니요! 살게요!!"
"누나가 주는 거라 생각해."
"그런 게 어딨어요. 선생님이랑 제가 뭐..."
"얘. 너랑 나랑 뭐. 너 내 모델이야. 자꾸 이럴래 사람 서운하게?"
"..."
"협찬이라 생각하고. 앞으로도 필요한 옷들 있으면 언제든지 찾아와. 응?"
"허허허... 고맙습니다. 자주 올게요."
"그래~"
뭐 공짜로 주면 좋은 거지.
아무튼 깔끔하게 갖춰입고 성남으로 넘어갔다.
* * *
경원대학교 정문.
"빨리 와. 지금 출발해야 돼."
"미친놈아 갑자기 무슨 음악회를 가자고 지랄인데??"
"어. 보인다. 남수야 이쪽."
"어디? 너 어딨어?"
"여깄잖아."
빵빵하고 클락션을 울려주니 새끼 놀라기는.
"지랄 미친놈! 진짜 BMW라고...?"
친구들 중에 처음으로 X를 보는 남수였다.
녀석이 한 걸음에 달려와 문을 열고 웃고 욕하고 난리가 났다.
"하하하 미친놈아! 이건 또 뭐야?! 너 진짜 차 샀어?"
"빨리 타... 쪽팔리게 하지말고..."
"오~ 구마하~ 이러니까 인간이 달라 보이는데?"
"아 제발... 사람들 쳐다보잖아..."
좋으면서도 머쓱한 기분이었다.
남수는 차에 올라타서도 여기저기 눌러보고 만져보면서 신나하고 있었다.
"이야~ 너 진짜 뭐냐? 그 옷은 또 어디서 났어?"
"음악회 간다고 입었어."
"니가 장소에 따라서 옷을 바꿔입는다고? 갑자기 그런 센스가 어디서 생겼냐?"
"...나 얼마 전에 패션쇼 갔다가 디자이너 선생님 만났잖아."
"패션쇼는 언제했어?"
"모르냐? 기사 났는데."
"병신아 내가 니 기사를 왜 봐. 애들 다 너한테 관심 없어."
"씨발놈이 친구라는 새끼가..."
아무튼 갑자기 무슨 음악회냐고 묻길래 설명해주려는데.
"저기 어디서 어떤 사람을 만났는데."
"그래서? 오오~ 차 존나 좋아. 불도 들어와."
"야. 내 말은 안 듣냐?"
"말 해. 뭔데?"
"여자가 부른 자리라고. 이대생이야."
그러자 남수도 진지한 표정으로 돌아본다.
"오케이. 처음부터 말해 봐. 근데 야 차가 진짜..."
"알았어. 차 좋아. 여름에 니네들 끌고 다녀."
"진짜로?!"
"응. 어차피 나 세계선수권 때문에 7월부터 나가야 돼. 다음 달도 계속 운동만 해야되고. 세워둘바에야 누구라도 끌고 다니는 게 낫지."
"오케이! 콜!"
남수가 올 여름 다시 해운대라며 반드시 면허를 따놓겠단다.
"은정인가 걔는?"
"은정이 만나도 해운대 가지. 여자친구랑 바다 놀러가도 되잖아?"
"미친놈 너 먼저도 그래놓고 걔랑 헤어졌잖아?"
"그때는 새끼야 내가 어렸잖아."
"지금은 좀 컸냐?"
"와~ BMW끌고 해운대라... 대박이겠다..."
"호텔도 예약해줄까? 해운대 잡으려면 지금부터 서둘러야 할 건데."
"..."
"왜?"
"구마하. 너 돈 많은 거 아는데, 우리 앞에서 돈 지랄 하지마. 낯설어."
"꺼져 병신아. 내가 니네한테 쓰는 돈은 하나도 안 아까워."
"씨발. 감동을 좆같이 주고있어..."
"하하하! 태윤이 정석이 없으니까 니 새끼가 욕 하냐?"
"니가 욕 나오게 하고 있잖아."
오후 5시. 남수를 태우고 오는 길에 퇴근시간이 걸리고 말았다.
서울로 가는 길이 꽉꽉 막힌다. 이 녀석도 그냥 지가 버스타고 가도 되는데 굳이 왜 왔냐고 따져 물었다.
"차 자랑하고 싶어서?"
"그게 아니라. 박남수 카운슬링이 필요한 타임이라."
"진짜 병신이냐? 이제와서 나보다 잘난 새끼한테 무슨 얘기를 해주라고?"
"그러니까 아까부터 여자 얘기라고 했잖아!! 제발 말 좀 들어!!"
"오케이 해 봐."
겸사겸사 자동차 할부부터 여러 쌓인 이야기를 나눴다.
"그래서? 그때 클럽에서 만났던 사람이 너가 좋다고 찾아왔다?"
"어."
"예뻐?"
"...예쁘긴 예뻐."
"근데 뭘 걱정해 씨발놈아 자랑하는 것도 아니고..."
"야. 예쁘면 이야기 끝난 거냐...?"
"그럼 뭐가 더 필요한데? 집안이 재벌이라도 돼야 해? 연예인 찾냐?"
"..."
"뭐 그 사람한테 숨겨진 애라도 있어?"
"이 새끼 대학생 되더만 우리랑 있을 때랑 성격이 조금 변했는데?"
"하하하~! 조금 더 활발해졌지?"
"그게 활발이냐? 어디 아픈 거지."
아무튼, 괜히 오해하지 않게 재벌가 형들이나 클럽에서의 여러 의혹은 일부러 말하지 않았다. 나도 오직 한수빈만 보고 싶었다.
"뭔가 음... 예쁘긴 한데, 사는 세계가 좀 다른 사람 같아서."
"마하야 근데 잠깐만."
"어. 말해."
"혜정이는?"
가만히 고개를 돌려 남수를 쳐다봤다.
"왜? 뭘 봐?"
"이 새끼 갑자기 왜 이렇게 병신이 됐지...? 너 진짜 대학생 됐다고 컨셉 바꾸냐?"
"왜 지랄이야 병신아."
"씨발놈아 내가 욕을 안 할 수가 있냐고. 걔가 왜 나와??"
"너 혜정이 좋아하잖아."
"후우... 야. 진짜 그만 좀 얘기해..."
"좋아한다고는 했어?"
"그래!!!"
"진짜...?"
"몇 번을 했어. 싫데! 아 씨발 진짜... 제발! 내 앞에서 이혜정 얘기 좀 하지마."
"걔가 진짜로 너가 싫데?"
"남수야. 그냥 여기서 내려줄게. 너 가라. 개새끼 진짜..."
"자긴 잤지?"
"하하하... 미치겠네... 돌겠어... 어! 돌겠다고 새끼야! 그만 좀 해 정신 나갈 거 같으니까!!"
"..."
남수도 진지하게 쳐다보며 묻는다.
"왜 싫데? 뭐야. 그거를 먼저 얘기 해 봐."
"제발... 끝난 이야기야..."
"알았어."
"진짜 다 끝났어. 오죽하면 나랑 걔랑 아무 감정 없이 서로 방 내달라 어딜 기어 들어오냐 그런 얘기까지 했었어."
"혜정이가 니네 집에서 살고싶다고 그래? 그런데도 사귀기는 싫다고 그래?"
"걔 지금 모든 목적이 서울에서 자취하는거야. 수단 방법 없어."
"걔네 집 좀 살지 않냐? 부모님 뭐 부동산 한다며?"
"예전엔 잘 살았는데, 아저씨가 사업하면서 많이 까먹었어. 그래서 아줌마가 돈에 좀 민감하고. 진작 이사갈 거 계속 우리 아파트 살던 거 보면 모르냐."
"역시 잘 아어. 이혜정이라면 구마하만한 인간이 없어..."
"하하 야 이 씨발. 넌 내가 혜정이랑 사겼으면 좋겠냐?"
"미친놈아! 니가 맨날 입만 열면 이혜정 이혜정 했었잖아!"
"...그랬던 적이 있었지."
"그런 놈이. 걔랑 자고. 뭐 씨발 몰라. 둘이 잤는지 뭐 했는지. 근데 우리가 볼 때는"
"그래. 잤다... 잤어 새끼야. 혜정이랑 둘이 원 없이 했다."
남수의 표정도 흥밋거리나 가십을 바라는 얼굴이 아니다.
애가 진지하게 놀라고 있었다.
"근데 왜?"
"몰라..."
"야 걔도 너랑 그렇게까지 갔으면...?"
"지 앞으로 남자친구 사귈 거라고 나한테 밥 먹자는 연락도 하지 말라고 그랬어."
"..."
"이 옷도. 먼저 둘이 동대문 갔다가 산 옷들 많이 있는데, 괜히 여자 만나러 가는 길에 기분 찝찝할까 봐 다시 새 걸로 산 거야. 근데 씨발 스타일이 똑같애... 나 이거랑 똑같은 바지 집에 있어. 동대문은 존나 쌌는데 제기랄..."
"너 오늘 좀 멋지긴 해."
"남수야. 진짜 내 앞에서 혜정이 얘기 그만 해. 나도 다 마음 정리하고 있다고..."
"오케이... 미안."
"후우..."
분위기를 바꾸고 싶은데. 에잇 젠장.
"내가 여자가 많아서 싫다고 그러더라."
"그럼 여자를 정리하면 되잖아. 너도 걔 좋아하고, 걔도 그것만 아니면 받아 줄 거고."
"남수야. 여기서 문제가 뭔지 아냐? 내가 정리할 여자가 없다는 거야."
"근데 걔는 왜 그래?"
"몰라! 무슨 인간을 카사노바 취급을 해. 그러면서 계속 닦달하고 뭐하고."
"흠."
"그냥 아닌 건 아니구나 싶었어. 그러니까 너 진짜 내 앞에서 다시는 혜정이 얘기하지 마. 알았지?"
"지금 가는 사람은 뭐 하는 사람인데?"
그제서야 겨우 한수빈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클럽에서 만났는데."
"그건 얘기했고"
주절주절 덤덤하게 수빈 씨 이야기를 하면서 말했다.
"아무튼, 정체가 좀 애매해. 차도 비싼 거 타고 다니고. 근데 진짜 예뻐. 나도 좀 잘해보고 싶고."
"흠..."
"뭐 이상한 일 하는 사람은 아니야. 그냥 집에 돈이 좀 많은 거 같은데."
"마하야. 우리 누나가 그랬거든."
예쁜 애들은 예쁜 값을 하고, 잘생긴 놈들은 꼴값을 한다.
"니네 누나는 왜 남자만 꼴값이라고 그러냐?"
"여자잖아. 아무튼, 중요한 건 그 사람이 뭐하는 사람이든, 무슨 집안이든. 니가 꿀릴 건 없다는 거야."
"흠."
"중심을 잡어. 끌려다니지 말고. 씨발 지가 잘났으면 얼마나 잘났는데? 넌 새끼야 금메달 땄어."
"남수야. 하나만 물어보자."
"뭐?"
"내가 잘생겼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