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느낌 (2) >
잘 생겼냐는 질문에 남수가 한참을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뭐래 병신아? 갑자기 뭔 개소린데?"
"아 이 씨발년이..."
그럼 그렇지. 괜한 이야기에 혹 했던 내가 병신이지...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나도 어쨌든 곤륜 사람이고, 우리 가문은 부모님부터 형까지 다들 잘 생겼으니까...
"하하하~! 이 새끼 상처 받은 거 같은데?"
"꺼져... 아 오늘 왜 너랑 간다고 했을까... 태윤이를 부를 걸..."
"멋있어지긴 했지. 몸도 그렇고. 차도 BMW 타고 옷도 깔끔해졌는데."
"닥치라고 짜증나니까..."
"진짜라고 새끼야! 그리고 우리 이 얘기는 너 운동 시작하면서부터 계속 해줬어. 너 이제 괜찮다고."
"됐어. 조용히 해. 죽여버리기 전에..."
"야. 우리 눈에 니는 그냥 똑같지. 갑자기 잘생겨 보이고 그러겠냐?"
남수가 웃으며 물었다.
"왜? 누가 잘 생겼데?"
"요즘 그런 이야기를 가끔 들어... 몰라 나도 진짜 모르겠어서 물어보는 거야."
"마하야 너 영화 대부 봤냐?"
"아니. 왜?"
"거기서 마피아 보스가 죽기 전에 아들한테 그러거든? 안전을 보장하는 놈을 경계해라. 그 새끼가 배신자다."
"그래서 나더러 잘 생겼다고 하는 사람을 조심해라 이거냐...?"
"니가 멋있어 진 건 있는데, 호감 사려는 사람들 다 받아주지 말라고. 너 가끔 사람들 환심 사려고 호구같이 굴 때 있잖아."
의심해 마하야. 넌 특별한 사람이니까.
혜정이에 이어 남수까지 이런 말을 하는구나...
"내가 믿음이 안 가나...? 왜 다들 이런 소릴 하지...?"
"또 누가 그랬냐? 한상률?"
"있어. 감독님 말고 저기... 가까운 사람."
"누군지는 몰라도, 그 사람이 널 존나 소중하게 생각하는 거다. 좋은 사람이네. 가깝게 지내라."
"...무슨 근거로 그러냐?"
"내가 널 그런 마음으로 보니까."
"게이 새끼. 이제 그쪽으로 가는 거냐?"
"뭐래 병신아. 하하하!"
지랄을 해도 친구의 진심을 모를 순 없다.
다들 참... 걱정이 많구나.
"걱정 마 알아서 하고 있어."
"그래. BMW 타는데 알아서 해야지. 누가 누굴 걱정해."
중심을 잡아라 끌려 다니지 마라. 좋은 이야기 같다.
소중한 사람들이 해준 이야기인 만큼 잘 새겨 들어야겠다.
떠들다 보니 어느덧 구룡터널을 지나고 있었다.
하늘은 어둑어둑 해졌고, 마침내 거대한 삿갓을 덮어 씌운 문화 예술의 전당에 도착했다.
"와... 씨..."
"왜?"
"니가 성공한 것도 있지만. 그래도 우리가 BMW 끌고 예술의 전당을 가니까 뭔가 미친 거 같아서."
"하하하하! 그러게."
"좋은 구경해보네. 존나 상류층 된 거 같은 걸? 하하하!"
상류층이라...
클럽에서의 일들이 떠오르는 말이라 별로 달갑게 들리진 않는 걸.
주차장 진입을 기다리고 있는데, 남수가 말했다.
"좋은 사람이면 좋겠다."
"누가?"
"너 여기 초대한 분. 그래서 너한테 혜정이를 지울 수 있는 그런 사람이면 좋겠어."
"아무튼, 가보자."
두리번 두리번 주차장을 나와 공연장을 찾아갔다.
여기저기 오늘 공연을 알리는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수빈 씨 말고도 다섯 사람 정도가 더 있는데, 남수가 관심 있게 지켜보며 물어본다.
"마하야. 여기서 누구냐?"
"이 사람."
"한수빈이라. 흐음."
"왜?"
"뭔가 애매한데? 사진이라 그러나...?"
"뭐가 애매해?"
"예쁘긴 한데, 내 눈엔 혜정이가 조금 더 괜찮은 거 같은..."
"미친 새끼. 야 너 가. 이 새끼가 진짜..."
"하하하. 나 오늘 니네 집에서 자고 갈 거야."
"내일 학교는?"
"버스 타고 가면 되지. 서울에서 등교하는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
"..."
"왜?"
"음. 아냐. 그래도 돼."
그래. 뭐. 흠. 그렇지 뭐.
그날은 그날이고 오늘은 오늘이다.
오늘도 섹스각이 잡힌다고 보기는 어렵지.
남수랑 둘이 저녁에 치킨 시켜 맥주 한 잔 하는 것도 괜찮을 거 같다.
"흠. 근데 표가..."
"왜? 표 없어?"
"어. 한 장 밖에 없어서 오면 준다고 했었거든."
"전화해 봐."
그러고 싶은데, 전화번호가 없다...
이렇게 보니까 또 이상하네. 한수빈과는 뭔가 접점이 없으면서도 있다는 사실이 조금 신기하게 느껴진다.
보통 먼저 좋다고 하는 사람이 자기 전화번호 밝히고 그러지 않나?
"없으면 사지 뭐."
"야. 뭐 하러 돈 써. 저쪽이 준다고 그랬다면서?"
"됐어. 이거 얼마나 한다고. 매표소 가보자."
남수랑 건물 밖 매표소를 찾아가는데, 어떤 신체 건장하신 분이 다가오셨다.
"실례합니다. 구마하 씨 아니십니까."
"네. 왜 그러시죠?"
어...? 오~ 뭐야 이 사람? 몸에서 막 푸른 빛이 나고 있는데? 일반인이 이런 기운이 난다고?
"마하야 아는 분이야?"
"아니. 그건 아닌데..."
"안녕하십니까. 한수빈 씨가 보내셨습니다."
"어. 네."
"오시면 이걸 전해드리라고 하셨습니다."
"..."
신체 건장한 아저씨가 작은 쇼핑백을 건네줬다.
안에는 최신 핸드폰과 초대장이 들어 있었다.
"오... 마하야 뭐냐 이거?"
"허허..."
"전 그럼."
"저기 잠시만요."
"네. 말씀하시죠."
"수빈 씨는 지금 어딨나요?"
"공연 준비중이십니다."
자기 용건만 남기고 가버리는 강해 보이는 아저씨.
절대 그냥 일반인이 아니다. 그렇다고 운동 선수도 아니다.
꼭 군사 훈련을 한 그런 사람인 거 같다.
경호원인가? 뭐야 진짜 대통령의 숨겨진 외손녀 이런 거야??
"흐음."
"와... 뭐야? 대체 누군데? 저 사람은 또 뭐고? 뭔데 핸드폰을 줘? 무슨 접선하듯이?"
"일단 표는 생겼네."
초대장을 남수에게 건네주고 꺼져있는 핸드폰을 켰다.
"진자 무슨 007 접선 하는 것도 아니고..."
"어? 야. 마하야?"
"왜?"
"이거 너랑 나랑 자리가 다른데?"
"진짜? 봐 봐."
남수가 표를 보더니 숫자가 다르단다.
둘이 공연장 옆 좌석 배치도를 찾아가서 보니, 나는 제일 앞 중 하나고, 남수는 중간 어딘가였다.
"뭐야... 친구 온다고 얘기 했는데 왜 좌석을 이렇게...?"
"자리가 없어서 그랬나 보지."
그 순간 수빈 씨한테서 전화가 들어왔다.
"네. 여보세요?"
"마하 씨 왔어요?"
"...네."
"후후. 진짜 와줬네. 고마워요. 우리 오늘 끝나고"
"저기 수빈 씨 잠시만요. 이거 표가 좌석이 다른데..."
"응? 근데?"
"아. 친구 같이 왔는데, 얘만 혼자 놔두기 좀 그래서요."
남수가 자긴 괜찮다고 그러는데, 가만히 있어. 아닌 건 아닌 거니까.
"그래서 저기 좌석을."
"음... 친구는 남자?"
"네. 그때 남자라고 했었잖아요."
"알았어요. 그럼 마하 씨 옆에 앉으라고 해요. 거기도 빈 자리니까."
"네? 누구 있지 않아요?"
"내가 다 샀어요. 빈자리 많어 괜찮아."
이 사람 진짜 뭐지...? 돈이 얼마나 많으면 대체 이러는 거지...?
"뭐래?"
"허허허. 남수야. 너 그냥 내 옆에 앉으면 된단다..."
"괜찮다니까. 왜 그러냐?"
"...일단 가보자."
뭔가 내가 그동안 겪어보지 못한 사람인 건 확실하다.
아무리 대학생들 공연이래도, 초대권을 남발했든 교수가 사람들을 채워 넣었든 좌석은 꽉꽉 차고 있었다.
그런데 맨 앞줄 세 자리가 텅텅 비었다.
세 줄 중 가운데, 젤 중앙이 나를 위한 좌석이었다.
"..."
"마하야... 설마 저기냐...?"
"아까 좌석표 봤잖아..."
"야. 이 사람 진짜 뭐야? 너 누굴 만난 거야?"
남수랑 둘이 의자를 빼고 앉는데,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어도 다가와 말을 걸지 못한다.
뒤로 한 좌석이 떨어져 있어 그들은 그들 우리는 우리의 세계에 있는 것 같았다.
남수도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뭔가... 분위기가 엄청 위화감이 드는..."
"이제 알겠지? 내가 왜 널 데리고 왔는지..."
"누군데?"
"나도 모른다고! 이름이랑 학교만 알어."
"허어... 이 새끼 대체 클럽에서 누굴 만나서..."
"예쁜 게 문제가 아니라니까?"
"그래. 함 보자. 곧 있으면 나오겠지."
시작에 앞서, 둘이 속닥속닥 거리면서 예술이란? 성악이란? 우리가 아는 성악은 월드컵 때 조수미의 "너와 나 지금 여기에 두 손을 마주 잡고" 그거 말고 없지 않냐고 있는 싼티 없는 싼티 다 내면서 앉아 있었다.
"어. 시작 하나보다."
불이 꺼지며 무대에 조명이 비춘다.
조용히 하고 있으니, 무대 위 옆방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드레스를 입고 수빈 씨가 사뿐히 걸어 나온다.
그녀가 등장하자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울렸다.
"우와..."
"..."
"마하야. 설마 이 사람이냐...?"
"어..."
"미쳤네... 혜정이랑 잘 헤어졌다..."
"너 아까 차에서 했던 말은 뭐냐?"
"야. 앞에 봐. 저 분 지금 너 보고 있어."
신나게 박수를 치다 수빈 씨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가 후훗 하면서 씩 웃더니 다시 여기저기 손을 흔들며 공연을 시작했다.
"우와..."
성악이 뭔지 모르겠다. 이 음악이 좋은지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녀의 몸에서 빛이 나고 있었다.
조명을 받아서 나는 인위적인 빛이 아닌, 강한 내공이 발휘될 때 뿜어지는 그런 내공의 빛이었다.
적어도 무대에는 진심이네. 내공이 빛을 발한다는 게 그 증거지.
예쁘다. 클럽이나 학교, 다 밤에만 봤는데, 이렇게 보니까 피부가 진짜 하얗네...
아 어렵다. 좋아해도 되는 건지. 그냥 피해야 되는 건지... 너무 어려워.
클럽에서 짧지만 강렬한 키스를 나눴던 순간이 생각난다.
그날과 다르게 무대에서 보여주는 그녀의 순수한 매력이 나를 현혹 시킨다.
진짜 저기 어디 동화 속에 나오는 그런 사람인 것 같았다.
공주가 아름답게 차려 입고 오직 나만을 위한 노래를 불러주는 것 같다.
"마하야. 꼭 만나라. 아니 결혼해."
"끝나고 얘기하자..."
"병신이냐? 너 이런 사람을 놓고 뭘 고민하는데?"
"...니가 봐도 그러냐?"
"당연하지! 니가 살면서 저런 사람 몇 번이나 볼 거 같은데?"
"..."
미리 이야기 해두길 잘했네. 남수가 한수빈한테 완전히 빠져들어 객관적인 판단이 서질 않는다. 대신, 녀석이 헬렐레 해주는 덕에 난 조금 냉정하게 생각할 수 있었다.
언제 봐도 아찔한 사람이 아닐 수 없다. 진짜 중심 잘 잡아야지. 끌려가면 그땐 진짜 어떻게 될지 몰라. 아마 혜정이보다 더 빠져들어서 다시는 헤어 나올 수 없을지도 모를 거야.
물론, 그녀가 좋은 사람이라면 그렇게 돼도 아무 상관없어.
내가 찾던 사랑이고, 나를 사랑해줄 수 있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그날 클럽에서 들었던 여자들의 비명 소리들.
그리고 그런 인간들과 아무렇지 않게 어울리던 한수빈의 행동들.
승우 형이 그랬다. 저들 중 수빈 씨가 제일 위험한 존재인 거 같다고.
좆같은 느낌은 잘 들어 맞는다지 않던가...
* * *
"클래식도 재밌다."
"그러게 분위기 장난 아니네."
공연이 끝나고 남수와 둘이 좌석에 앉아 사람들 빠져나가길 기다리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나저나 존나 이쁘네!!"
"하하하... 내가 예쁘다고 했잖아."
"너 설마?"
"아니야. 아직 그럴 단계는 안 됐어."
"...자라. 꼭 그래야 된다."
"하하하! 미친새끼."
공연은 끝났으니 우리도 슬슬 가볼까 하고 있는데, 아까 수빈 씨가 건네 준 핸드폰으로 문자가 하나 도착했다.
"..."
"왜? 그 사람이야? 뭐래?
[뒤풀이 있는데 같이 가실래요?]
"라는데. 뭐라고 할까?"
"너 진짜 병신이냐? 그런 걸 일일이 알려줘야 돼? 당연히 가야지!!"
"그럼 너는?
"하하하 미친놈아! 지금 우정 따지게 생겼냐고!"
가라. 꼭 가라. 아직 시간도 있고, 남부 터미널 바로 옆이라 지는 버스 타고 내려가도 된다고 반드시 뒤풀이 장소를 따라가란다.
"가면 분명 와인 먹고 그러겠지만, 쫄지 말고. 빈티내지 말고! 너도 지금 BMW타고 있어. 이렇게 멋진 옷 입고 있고."
"음."
"가 봐. 가서 새끼야. 해. 꼭! 반드시!"
남수를 버스 정거장까지 데려다주고, 뒤풀이가 있다는 장소로 찾아갔다.
"어디야? 설마 또 클럽인가?"
클럽이면 안 가려고 했는데, 네비를 찍고 찾아가니 나름 그럴싸한 레스토랑이었다.
좋아 보인다.
설마 여기도 수빈 씨가 산 건가...? 아니면 그냥 잠깐 저녁 임대?
"몰라. 깊이 생각하지 마. 잘 됐어 배고팠는데."
남수도 데리고 올 걸. 새끼 배고플 건데... 다음에 맛있는 거 사줘야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있었다.
식당으로 줄줄줄 사람들이 들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하나 같이 화려하고 멋있는 사람들이라 어울리기 쉽진 않겠다 싶었는데.
그들 중 아는 얼굴이 하나 보인다.
"..."
도형이 형이 있네. 아는 얼굴이라고 해야 되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