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륜기로 가버렷-135화 (135/401)

< 처음이기에. 처음이니까. 처음이라서. (1) >

"보자. 광고는 다 잡아야지?"

"그럼요. 광고는 잡아야죠."

"기업 행사는? 그거 말고도 여기저기 불러주는 곳들이 많은데."

"정치 행사는 빼면 안 될까요? 지자체도 그렇고. 또 보나마나 박문기 이 인간이 부르는 자리가 절반일 건데..."

다음 날. 한구 스포츠.

감독님과 앉아서 스케쥴을 정리하고 있었다.

"확실히, 연맹 홍보 차원이라기엔 조금 도가 넘는 감이 있지..."

"분명 자기가 정치 하려고 제 얼굴 팔고 다니는 거라니까요!"

"그래 과감하게 뺄 건 빼자. 세계선수권도 끝났는데 이제는 스키에 집중해야 돼."

"감독님... 저 지금 스승의 은혜를 느낀 거 아세요?"

"먼저는 우리도 몰랐으니까 휘둘렸지. 이제는 그럴 필요 없어."

그럼에도 빠질 수 없는 자리는 가겠지만, 이제 우리의 목표는 동계올림픽이다.

"박상택인가 그 친구는 아직도 저쪽에 넘어가 있겠지?"

"남반부는 지금이 겨울이라고 하니까요."

당연히 감독님도 박상택과의 일을 알고 계신다.

도전을 넘어선 승부.

그럼에도 우리는 도전하는 자세로 동계 올림픽을 보고 있었다.

우리의 상대는 박상택 개인이 아닌 세계니까.

"정준 씨도 너 세계선수권 마치면 뉴질랜드 한번 다녀오자고 하긴 했었는데, 전화 한번 해봐야겠다."

"감독님. 저 그런데요. 이번엔 개인시간 조금은 낼 수 없을까요?"

"왜?"

"아니... 그게."

"뭐 할 거 있어?"

"그게 아니라... 제가 여자친구가 생겨서..."

"너가? 언제?"

전부터 좀 이러저러 이야기가 있던 사람이 있었고, 이번에 세계선수권 끝내고 와서 사귀기로 했다고 말씀드렸다.

"오오~ 축하한다."

"하하하. 감사합니다."

"야. 근데 혹시, 비행기에서 너 아니지?"

두근두근 시침을 뚝 때면서 감독님을 보며 물었다.

"비행기 뭐요?"

"아니. 나도 미친 소리라는 건 아는데. 자고 일어나니까 사람들이 그러길."

"네... 뭘요?"

"퍼스트 쪽에서 누가 섹스를 했다는 말을 하더라고..."

하긴, 그렇게 소리를 내는데, 사람들이 다 자고 있던 것도 아니고...

"아. 저도 들었어요."

"어 그래?"

"네. 어우... 저도 그때 바에서 라면 먹고 있는데, 진짜 뭔가 아찔하더라고요..."

"정신병자들 아냐? 대체 생각이 어떻게 미쳐야 그런 짓을 하는 거야? 돈 많으면 염치도 없나."

죄송합니다 감독님... 앞으론 정신 붙들고 염치도 챙기고 살겠습니다...

"아무튼, 저 연애 할 시간 조금만..."

"그래. 그것도 어떻게 정리해보자. 니 녀석도 일상의 여가가 있어야지."

"고맙습니다!!"

"단, 오늘은 안돼."

"네? 왜요? 뭐 있어요?"

"NICE에서 빨리 보잔다. 일 얘기가 있는 거 같더라."

* * *

"무슨 소리야? 그런 거라면 당연히 이해해야지."

"정말? 오늘 만나기로 했는데?"

"돈 벌러 가는 걸 뭐라고 해. 자기야. 나 그렇게 이해심 없는 사람 아니야."

NICE와 기간이 있었는데, 저쪽이 먼저 계약서를 바꿔 쓰자고 전해왔다.

올림픽에 이어 세계선수권 우승이 뭔가 다른 방향을 제시한 것 같다.

"가서 얘기 해봐야 아는데, 아무래도 저쪽에서 내 이름으로 된 신발을 낼 생각인 거 같애."

"우와~! 정말? 그거 아무나 하는 거 아니잖아?"

"하하하. 진짜로 감사한 일이지."

"그럼 자기 차 값은 해결 된 건가?"

"아 그거야 진작에 끝났지!!"

세계선수권은 결승만 올라도 상금이 수여된다.

금메달은 6만달러, 은메달은 3만달러, 동메달 2만.

4위 5위 6위도 1만 오천에서 1만 정도 큰 돈을 받고, 7, 8위에게도 소정의 상금이 주어진다.

나는 100m, 200m 우승에 800m 결승에 올라 5위를 했으니, 세계선수권 상금만 13만 달러. 원화로 1억 5천 정도 되는 상금을 수여 받았다.

"차 값 벌고, 연맹에서 오는 건 반반 회사랑 나눌거야."

"...연맹도 줘?"

"많이 줘."

"우와~ 운동 선수 할 만 하네..."

"하하! 그럼 성악 그만하고 운동하든가."

흠. 근데 이렇게 따지고 보니까...

"음."

"왜?"

"어. 아니야."

제기랄. 연맹에서 상금 준다고 또 사람 여기저기 휘두를 거 생각하니 뭔가 아찔해지는구나...

아니야. 감독님이 정리해 주신다고 했어. 우리도 이제 휘둘리지 않어.

"그냥. 조금 바빠질 거 같아서. 이런 상황이면 대회 전보다 더 여기저기서 부르거든."

"자기야. 난 자기 가끔 봐도 되니까. 열심히 해. 그럼 돼."

"우와..."

"난 열심히 하는 모습이 좋아."

수빈이를 처음 만날 순간이 떠오른다.

승우 형의 경고. 옆방에서 들려오던 불쾌한 소리. 돈이 물같이 흘러가던 공간.

한편으론 그녀를 굉장히 위험하고 질 나쁜 사람이라고 여겼는데, 이렇게 보면 또 배려심 깊고 응원도 해주는 정말 좋은 여자친구가 아닐까 싶다.

여자친구의 든든한 응원을 받으며 자리를 옮겨 NICE 사람들을 만났다.

우승 축하 인사와 광고 계약, 일정 조정. 신발 발매 등. 여러 일에 관한 논의가 진행됐다.

"그럼 제가 개발에도 도움을 드려야 되는 건가요?"

"구마하 선수는 데이터랑 디자인 쪽으로 의견만 주시면 됩니다. 크게 부담은 없을 거예요."

"알겠습니다."

내 이름을 건 신발이 나온다. MAHA n.1을 만나는 시간이 기대가 된다.

* * *

"그래서? 이대생이라고?"

"네. 언제 소개해 드릴게요."

"됐어. 뭘 또 그렇게 까지 하냐."

"왜요? 감독님이신데?"

"야. 감독일 뿐이지. 인사 시키고 그런 거 하지마. 나도 부담 돼."

일정을 마치고 성남으로 가는 길이었다.

형과 친구들. 이주영 감독님 및 여러 사람들과 축하파티가 마련되어 있었다.

"제가 운전해도 되는데."

"너는 니 차 운전해. 내 차는 내가 운전할 테니까."

"피곤하지 않으세요?"

"비즈니스를 타서 그런가 별로 시차도 잘 모르겠고. 그것보다 니 여자친구나 말해 봐. 이대생은 어디서 만난 거야? 너 운동만 했었다며? 소개 받았냐?"

"아... 클럽요."

"클럽? 그런 덴 또 언제 갔었어?"

"전에 짧게. 저도 딱 한번 가봤어요."

"이 자식 알게 모르게 할 짓 다 하고 다니는구나. 시간 널널한가 보네."

"아! 아니죠! 저도 그날 딱 하루 쉬는 날이었어요!!"

"하하하! 다급하기는"

"그리고 뭐 어떻게 하다보니까, 만나고. 뭐하고. 그렇게 사귀게 됐죠."

당사자도 밝히기 싫어하는 걸 내가 떠들 이유 없으니 일부러 수빈이네 집안이나 그런 건 말하지 않았다.

"예쁘냐?"

"크하하하! 감독님. 진짜 예뻐요!!"

"오~ 목소리가 당당한데? 혜정이보다 더?"

"걔는 갑자기 왜 나와요..."

"혜정이보다 예쁘면 내가 인정한다."

"인정하셔야 될 걸요. 이혜정은 그냥 뭐 평범하죠."

"허허허 진짜? 그 정도라고...?"

"잘 꾸며요. 옷도 잘 입고. 막 귀걸이도 반짝반짝 거리고."

"이야~ 그렇게 말하니까 궁금해지는데? 혜정이보다 예쁜 애 흔치 않은데?"

"아니. 근데 왜 다들 저랑 걔를 엮죠?"

"또 누가 그랬어?"

"친구들도 그러고. 이제는 감독님도 이러시고."

"다들 두 사람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그렇겠지."

"연락도 하지 말라고 했어요. 그래 놓고 이거 보세요. 이것도. 지가 연락하지 말라고 해 놓고."

"야. 야 운전중이잖아."

"아니. 하지 말라면 지도 하면 안 되지. 축하한다느니 이런 건 왜 보내는데?"

"응원해줘서 고맙다고 보내줘라."

"감독님. 저 여자친구 있다니까요?"

"그래서? 너도 그냥 친구로 다가가면 되잖아."

"남녀 사이에 친구가 어딨어요."

하물며 섹스까지 하고 좋아한다고 말하고.

사귀자고 말하고 채이고. 그런 관계가 어떻게 친구가 돼?

"마하야. 물론 지금 곁에 있는 사람과 잘 지내는 게 가장 중요하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거야."

"..."

"인연이란 운명같이 다가왔다 또 바람같이 사라진다. 그러면서도 이어질 사람들은 다 이어지게 되어 있더라."

"감독님. 저 혜정이한테 몇 번 까였다니까요?"

"하하! 그랬어?"

"지가 싫다고 했어요. 근데 제가 걔를 왜 만나요."

"그냥. 혜정이를 떠나서, 앞으로 누군가를 만나는데 굳이 벽을 두지 말라는 거야."

감독님이 가만히 핸들을 잡으시며 말씀하신다.

"겪어보니까 그렇더라. 두 번 다시 안 볼 것 같던 징글징글한 인간들이 옆에 있고, 같이 큰 일을 하고. 무거운 자리를 맡기고. 그래서 해주는 이야기야."

"운동이랑 연애는 다르죠..."

"연애든 운동이든. 우정이든. 사람과 사람의 관계라는 건 큰 차이가 없어."

"몰라요 아무튼, 다시는 제 앞에서 걔 이야기 하지 마세요. 저 지금 여자친구 진짜 좋아하니까요."

"삐지긴 이 자식이. 야 내가 너한테 이런 말도 못 하냐!"

"..."

"알았다 알았어. 기분 풀어라. 잔치 하러 왔는데, 주인공 표정이 우울하면 되겠냐."

성남에 도착해 신나는 우승 축하 파티를 가졌다.

형과 친구들은 물론이고, 이주영 감독님이나 한주 고 동생들까지 찾아와 즐거운 자리가 이어졌다.

"정석아. 너도 그만하고 앉아서 먹어. 애들도 많은데."

"에이 어떻게 그래요 사장님. 손님이 이렇게 많은데."

정석이는 일하고, 나는 태윤이나 남수 그리고 동민이를 비롯해 한주 고 3학년 애들과 앉아 있었다.

"쟤는 이제 일하는 게 완전히 몸에 뱄네."

"정석이 혼자서 가게 맡을 때도 있어."

"그래? 새끼. 든든하구만."

"아. 쟤가 니네 친구였구나..."

"왜? 동민이 너 언제 우리 형네 왔었냐?"

"왔지. 애들 밥 사준다고. 나 얘네 고기 먹일 때 멀어도 여기로 와"

"이야. 고맙다."

친구들과 동민이가 만나는 건 처음이었다.

나를 통해 건너 건너 이야기들을 들어서 그런가 서로 간에 크게 어색함 없이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아~ 그럼 넌 그냥 취직을 한 거구나."

"그렇지. 얘가 특이한 거야. 보통 잘하는 선수들은 다 실업팀으로 간다고 봐야 돼."

"마하 형! 전 내년에 연대 갈 거에요!"

"네! 저도 그냥 형 따라갈래요!!"

"하하하... 대한 체대를 가야지. 우리 학교를 왜 와. 우리는 육상에 변방인데."

"무슨 소리에요. 세계 육상에 구마하가 있는 곳이 중심이죠!"

"우와~ 마하 저러고 있는 거 보니까 진짜 운동하는 놈 같네."

"야. 근데 얠 너네 학교로 취급 해 줘? 영고 출신이잖아."

"마하 형은 우리 선배죠!"

"그럼요. 누구보다 자랑스러운 한주 고의 선배죠!"

"개새끼들... 고생한다고 때마다 찾아와 밥 사주는 형 놔두고, 말하는 싸가지 하고는..."

"하하하! 동민아 참어."

동생들 운동 고민도 들어주고 우리가 경험한 세계 대회 이야기도 전해주고 있는데, 아무래도 멤버가 멤버다 보니까 역시 여자 이야기가 안 나올 수가 없었다.

"야. 근데 넌 그래서 연애는 언제 하냐?"

"그러니까. 이거 뭐 더 바빠지네. 여자 만날 시간이나 있겠나?"

"어? 마하 형 여자친구 있으세요?"

"찾는다잖아! 이 자식들아! 그렇게 이해력이 떨어져서 니네가 무슨 연대를 가!"

조용히 잔만 들고 있는데, 남수가 눈빛을 빛내며 물었다.

"어이 구마하."

"왜?"

"이 새끼 너 또 누구 만났지?"

"뭘? 미친 놈아. 내가 뭘?"

"새끼 분위기가 뭔가 숨기고 있는 거 같은데?"

"하하하! 남수야. 니네는 그런 것까지 아냐."

"알지. 그럼."

"동민아. 남수의 촉은 틀리지 않어."

태윤이 말에 지나가던 정석이까지 한 마디 해준다.

"맞아. 박남수가 구마하 보면서 그렇다면 그런 거야."

"시끄러 새끼야. 넌 앉든가 일을 하든가."

"이 씨발놈이. 사장님! 구마하가 저한테 갑질해요!! 태윤아 당장 기자불러! 남수야 사진 찍어!!"

정석이 미친 행동에 시끄럽게 웃음소리가 터진다.

녀석이 으쓱하며 한주 고 동생들을 툭 치면서 말했다.

"야 이 새끼가 운동은 잘 할지 몰라도. 다른 건 다 구라야. 특히 여자 이런 거."

"꺼지라고 병신아!"

"이 씨발년. 너 오늘 이거 다 계산하고 가. 서비스까지 계산서에 다 밀어넣어야지."

"하하하! 미친 새끼!"

겸사겸사 정석이도 잠깐 앉아서 물어본다.

"근데 무슨 얘기 하고 있었냐?"

태윤이와 동민이가 대충 상황을 설명해주고 남수가 계속해서 물어봤다.

"아~ 진짜? 어이! 구마. 너 또 외국 나가서 누구 만났냐?"

"하하! 진짜? 너 언제? 너 우리랑 맨날 같이 붙어있었잖아."

"형 진짜요? 형 외국 사람 만나요?"

"..."

하여간, 내가 여자에 미친 게 아니야. 이 씨발 서서 오줌 싸는 새끼들은 다 똑같애.

"맞지 새끼야? 너 누구 만나는 사람 있지? 그치?"

그래. 숨길 건 없다. 수빈이랑 내가 잘못된 만남을 가지는 것도 아니고, 내가 뭐 고등학생도 아니고. 얘네도 내 이야기 대충은 알고 있고.

"남수야. 나 수빈이랑 사겨."

"어? 어어???"

남수의 커다란 리액션에 친구들도 물어본다.

"뭔데? 누군데? 그렇게 놀래?"

"남수야 너 알어? 너 봤어?"

"수빈이? 다빈이 말고 수빈?"

남수가 손을 들어 친구들을 말리며 재차 확인하듯 물었다.

"진짜? 진짜로?"

"그래."

"...구라치지마 병신아."

아 저 또라이 새끼.

숨겨도 구라고 진실을 밝혀도 구라고.

뭐 어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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