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하나의 사랑과 추억 그리고 쓸쓸함. (3)
수빈이도 만족하는 답변이 된 건가. 또 다가와서 여기저기 입을 맞춰 주며 가슴에 기대어 눕는다.
"자기가 느끼는 가장 큰 불안은 뭔데?"
"널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만나게 될까 싶은 거..."
"에이. 그런 일이 어딨어."
"있을 수도 있지. 자기는 멋있으니까."
"하하하하! 멋있으면 좋아해야지?"
"모르겠어. 불안해. 곧 뉴질랜드 갈 건데. 내가 모르는 어떤 여자가 널 데려가면 어쩌나 싶기도 하고..."
"와 진짜 왜 성악을 했어? 드라마 작가를 했어야지."
토닥토닥 쓰담쓰담 해 주며 말했다.
"가끔 그런 말이 나오긴 하는데. 근데 내가 그렇게 여자들한테 인기 있는 사람이 절대 아니야."
"...장난으로 하는 말이야? 좀 짜증 날라고 그러는데."
"이런 걸 장난으로 떠들어서 뭐 해!"
"그럼 진심으로 하는 말이였어? 화가 나는데."
"하하하..."
"자기야. 자기가 여자들한테 얼마나 치명적인 존재로 다가오는지 몰라서 그래?"
"그런 건 지금 잠깐 떠오르는 유명세에 혹하는 애들이지. 나 그런 거 젤 싫어해."
"...나도 처음에 자기 그래서 좋아하게 된 건데?"
"그러니까. 내가 섹스는 싫다. 차라리 연애를 하자고 했었잖아."
"..."
수빈이가 멀뚱멀뚱 보면서 말했다.
"자기야 반대로 물어볼게. 만약 자기가 금메달도 못 따고 그냥 저냥 열심히 운동하는 선수 였으면, 내가 자기를 만나서 사랑에 빠졌을까?"
"아니겠지?"
"근데, 왜 스스로의 가치를 폄하하고 있어..."
"잠깐만. 이건 성과가 아니라. 그냥 나라는 놈의 생김세를 말하는 거잖아."
"...그러니까 불안하다고."
"뭐야. 말이 꼬이고 있어. 이랬다 저랬다 하면 나더러 어쩌라고."
수빈이도 진지한 표정이 되었다.
다크 모드는 아니고 뭔가 이해할 수 없다는 학구적인 분위기로.
"진짜로 자기가 별로라고 생각해?"
"하하! 아니 내가 별로라는 게 아니라. 그렇게 여자들한테 인기가 없다는 거지."
"...지금 진심으로 그렇게 믿고 그렇게 말하는 거지?"
"어!!"
"...정말로? 스스로 여자들한테 어필될 매력이 없다고 생각해?"
"아 당연하지! 날 왜 좋아해?"
"잘생겼잖아."
"허허허... 와 미치겠네. 자기가 나를 최고로 멋지게 봐 주는 건 좋은데."
이건 남들의 시선이 아니라, 내 안의 솔직한 마음이니까.
"그러니까. 내 얼굴은 뭐랄까. 어. 난 이렇게 생겼으니까 더 노력해야 되는 거고. 내가 노력할 수 있는 원동력은 나의 어떤 외모적 콤플렉스가 크고."
"..."
"남자는 여자들이랑 다르게 화장을 하거나 할 게 아니니까. 이건 막 뜯어고치지 않고선 바꿀 수 없으니까 대신 몸을 어떻게든 키워 낸 거고."
"자기야? 지금 뭐라는 거야 한마디도 이해가 안 돼...?"
"뭐가. 아무튼 그런 거라고. 그렇게 고생해서 얻은 성과를 가볍게 보고 다가오는 사람은 싫어서. 좀 더 뭔가 진지한 사랑을 나눌수 있는 상대를 만나고 싶었던 거고."
"외로웠다며."
"그것도 있는데, 아 배고프다고 밥만 먹어? 뭘 먹고 싶은지. 무슨 맛이 당기는지. 하나의 현상엔 다양한 이유가 있잖아."
수빈이가 진짜 너무 놀란 표정으로 내 얼굴을 양손으로 붙잡으며 말했다.
"진짜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거야?? 진짜? 진심으로? 자기가 못 생겼다고?"
"어..."
"우와..."
"왜? 뭘 그렇게 놀래?"
"뭐라는 거야. 자기가 얼마나 멋있는 사람인데. 아니 나한테는 내가 예쁜 거 아냐고 물어보던 사람이. 왜 본인은...?"
"못생겼잖아."
"하느님 맙소사... 얘를 어쩌면 좋니... 객관적으로 본인이 못났다고 생각한다고?"
"어."
수빈이도 손을 떼어 내며 털썩 주저앉아 물어본다.
"와..."
"뭐 예전보단 많이 나아졌지. 근데 내가 절대 잘생긴 얼굴은 아니잖아."
"우와. 하하하... 우와아~ 자기야? 마하야??"
"하하하. 나야말로 진짜 미치겠네..."
"가치관이 달라서 그런가? 아니면... 뭐지? 왜 이런 인식의 괴리가 생기는 거지?"
"와 나야말로 돌겠네. 아니 내가 뭐가 잘생겼다고."
"일어나 봐. 응? 빨리."
수빈이가 일으켜 앉혀 두고 얼굴과 몸 여기저기를 신기한 듯 보고 있다.
"자기야 우리 씻고 얘기하자."
"아니. 그 전에 잠깐만."
멀뚱멀뚱 가만히 앉아 있으니, 수빈이가 무슨 조각상 쳐다보듯 여기저기 보고 만지고 머리를 갸우뚱거리며 말했다.
"왜지? 왜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지?"
"...잠깐만 이리로 와 봐."
수빈이가 몸 안에서 흘러내리는 정액을 가리며 우리는 컴퓨터앞에 앉았다.
"뭐 보여 주려고?"
"자. 이 사람 어때? 해외 패션 모델인데."
"...잘생겼네."
"그치? 그리고 이건 우리 형 우리 형은. 어때?"
"내 눈엔 자기가 훨씬 남자답고 멋있는데."
"아니. 멋있는 거 말고. 이런 게 잘생긴 얼굴이지. 나는 그냥 눈코입 달린 거고."
"..."
"난 잘생긴 게 아니라니까?"
수빈이가 침대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와... 얘 진짜 안되겠다... 자기야 내일도 무슨 일정 있어?"
"내일은 없어."
"좋아. 그럼 내일 나랑 같이 나가자."
* * *
다음 날. 신촌에 위치한 H 백화점을 찾아와 수빈이가 이것저것 옷을 골라 입혀 줬다.
"이거랑. 그리고. 이거도."
"근데, 나 이런 옷 집에 있는데?"
"그래?"
"어. 이런 베이지색 바지는 두 벌이나 있어."
"흠. 그래서 옷 입는 코드는 맞네."
"내가 고른 거 아냐. 누가 골라 줬어. 그렇게 입으라고."
"..."
"신기하네. 여자들이 고르는 옷들은 왜 다 비슷비슷하지?"
"...여자 누구?"
"또 또 다크 모드로 변신한다."
"내가 무슨 다크 모드를"
"오해하지 말고. 나 그때 자기 공연할 때 이유이 디자이너 쌤한테 갔다 왔다고 그랬잖아."
수빈이가 자리를 옮긴다.
"..."
"자기야. 아 자기야."
"후우. 후우우..."
수빈이는 혼자 몇 번 심호흡을 하더니 다시 노멀 큐티 러블리한 모습으로 돌아와 손을 잡았다.
"그래. 자기는 운동하는 사람이니까. 그날 멋있기도 했고."
"유이 쌤이 또 오라고 그랬어."
"..."
"근데 자기가 가지 말라면 안 갈게."
"괜찮아. 나도 이유이 좋아해. 패션인데 뭐."
"우와. 근데 좋다."
"왜? 뭐가?"
"우리 지금 데이트하고 있잖아."
여자 친구와 손 붙잡고 쇼핑을 하고 있다.
옷을 고른다. 저녁엔 집까지 데려다줘야 한다.
데이트다! 이건 진짜 데이트야!
"이런 평범한 데이트가 진짜 너무 하고 싶었어."
"인기 스타란 참..."
"아니야. 그런 개념이 아니라. 난 그냥."
"보자. 그럼 여기서."
"자기야 아 사람이 감상에 젖어 있는데..."
수빈이가 역시 여긴 아닌 거 같다며 압구정으로 가자고 말한다.
"압구정?"
"응."
"백화점은 종로에도 있는데?"
"거긴 내 마음에 드는 옷들이 없어."
"..."
그래서 차를 타고 부릉부릉 압구정에 도착했다.
"왜? 가만있어."
"..."
G 백화점. 나도 소문은 들은 적이 있다.
여긴 진짜 비싼 것만 판다고 들었는데...
"자기야 나가자..."
"어딜 나가. 가만있어. 여기 오니까 좋은 옷 많은데."
"여긴 명품관이잖아..."
"그래서?"
으아아... 이 바지에 적힌 가격이 대체 얼마냐...
뭔 씨발 흰 티셔츠 한 벌을 칠십만 원을 받아...
"자기야 제발... 이건 아닌 거 같아..."
"아 애같이 왜 이래? 내가 사 줄게."
"하지 마! 이런 거 입고 라면이나 먹겠어? 옷에 국물 튀면 그게 라면 국물이야? 핏방울이지!"
수빈이가 입을 꾹 다물며 웃음을 참는다.
"자기야. 와 지금 너무 귀여운 거 알아?"
"하지 마! 나 이런 옷 입고 갈 데도 없어!"
"나 만날 때 입고 나오면 되잖아."
"집에도 옷 많은데..."
"가만있어. 오늘 내가 꾸며 줄게."
"알았어. 나 멋있어! 아 멋있다. 역시 내가 최고다!! 예쁜 내 얼굴. 텔레비전도 나오고."
"야. 너. 진짜 이럴래?"
사정사정하며 말했다.
사람이 아무리 그래도 자기한테 어울리는 옷을 입어야지.
내가 무슨 명품이야 명품은...
"누나 제발요... 아무리 그래도 너무 비싸요 여기는..."
"하하하~! 너 진짜..."
"나가자. 응? 아 나 진짜 이런 거 입으면 불편해서 더 싫어. 죽을 때나 입혀 줘."
"얘가 말하는 거 봐... 내 앞에서 끔찍한 소리 하고 있어..."
"그땐 진짜 자기가 입으라는 대로 입고 관 뚜껑 닫을게. 아 싫어. 너무 비싼 거 진짜 부담 돼. 나 유이 쌤 옷도 진짜 자기 만나러 갈 때만 입는데."
"후후. 알았어. 나가자."
둘이 손을 꼭 잡으며 밖으로 나왔다.
후우... 명품도 좋지만, 에이 그냥 벨트나 지갑 하나 정도 가지고 있는 거지. 뭔 씨...
"그래도 죽을 때까지 나랑 같이 있고 싶은가 보네?"
"그거야 뭐. 당연한 거 아닐까?"
"후후후. 예뻐 칭찬해."
근처 수빈이가 잘 가는 카페로 이동해 샌드위치와 음료수를 먹으며 점심을 먹었다.
"근데, 이렇게만 먹어도 돼? 배 안 차는 거 아냐?"
"요즘 며칠 운동 안 했으니까 괜찮아. 혹시 배고프면 햄버거 사다 먹으면 돼."
"자기야. 자기가 입고 싶은 스타일을 말해 봐. 어떻게 입고 싶어?"
"음. 난 역시 평상시는 거의 운동복이니까. 가끔 평상복 입을 땐 좀 뭔가 특별한 스타일을 추구한달까."
"하하하! 하하하하!!"
"아 웃지 말고. 물어봤으니까 답해 주는 거 아냐."
"화려하게 입고 싶구나? 알어 가끔 그런 애들 있어."
클럽을 즐기던 수빈이기에 이런 취향을 이해해 주고 있었다.
"근데 왜 백화점만 가? 아까 거기도 옷가게 많았는데."
"후후후. 난 매장에서 옷 안 사."
"오오~ 역시 클래스가..."
"백화점이 편하잖아. 둘러보기 좋고."
잠실 L백화점으로 넘어왔다. 와 오늘 서울 구경 잘하네.
* * *
"이럴거면 그냥 종로로 갈 걸 그랬나?"
"그러니까..."
"지금 따지는 거야?"
"아냐. 어차피 내가 따질 수나 있나."
"으응~ 이렇게 말 잘 들으면 얼마나 예쁠까?"
둘러 둘러 그나마 좀 편안해 보이는 스포티한 옷 가게로 왔다.
"아~ 이제 좀 뭔가 마음이 고향에 온 듯 편안하네."
"진짜 모르겠다... 자긴 이런 게 좋아?"
"어."
"..."
"왜? 너무 촌스럽나?"
"아냐. 이건 내가 인정 못 해. 나가."
수빈이는 대체 왜 이렇게 나한테 옷을 입히려고 그러는 거지?
그걸 물어보았다.
"스스로가 얼마나 멋진 사람인지 알게 해 주려고 그러지."
"옷 잘 입어서 멋지면 그게 멋진 거야?"
"응.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란 말도 몰라?"
"패션의 완성은 속옷 아니었어?"
"하하하! 아하하하! 대체 어디서 뭘 보고 다니는 거야?"
"어? 머리하러 가서 본 여성 잡지 패션 코너에 그렇게 써 있던데? 아니었어??"
"제발 이상한 것 좀 보고 다니지 마."
그나마 절충안을 찾아 스포티한 느낌도 있고 캐쥬얼한 느낌도 반반 섞은 매장을 찾아왔다.
수빈이가 새빨간 남방을 하나 가져 와 몸에다 대어 본다.
"이거 입어."
"..."
"왜? 싫어?"
"빨간색이잖아..."
"그래서?"
"남자한테 빨간 옷을 입으라고?"
"그럼 명품관 갈래?"
"아니요..."
"그리고 보자. 옳지. 바지는 이거."
빨간 남방에 이어 흰 바지?
"...진심으로?"
"응."
"남방은 입는데. 흰 바지는 진짜 싫어..."
"압구정 갈까? 나 진짜 화려함의 끝을 달리는 메이커 아는데."
"..."
"돌체? 아니야. 그래 모스키노 발렌티노도 괜찮겠다."
주섬주섬 흰 바지에 남방을 챙겨 들었다.
"후우..."
"입어 봐. 멋있어."
"후우우... 아 근데 이런 건 처음인데..."
"자기야. 내 안목을 못 믿겠는 거야?"
"아니. 그게 아니라 빨간 남방에 흰 바지는 너무 뭔가... 이 무슨 산타도 아니고..."
수빈이가 또 깔깔 웃으면서 막 툭툭 치는데.
매장 직원이 다가와 말을 건넸다.
"입어 보세요. 제가 봐도 정말 잘 어울리실 거 같아요!"
"그래요?"
말 거는 사람이 있으면 그쪽으로 시선이 가는 건 당연한 일.
수빈이가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난 모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