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타는 청춘 (3) >
"마하야 넌 오늘 친구 누구누구 불렀어?"
"대학 친구들 밖에 안 와요. 남수도 여자친구 만나느라 바쁘고. 정석이는 일하고. 태윤이 이 새끼는 연락도 없고."
"태윤이 여행가지 않았나?"
"형이 어떻게 알어?"
"먼저도 휴학인가 뭐 방학 같은 거 하고 여행갔다고 그러던데?"
"아니 어떻게 나도 모르는 걸 형이 알고 있어?"
"먼저 가게와서 얘기 해주더라고. '형 올 때 선물 사올게요.' 이러면서."
"이 새끼들. 아니 왜 나한테는 연락을 안 하고..."
"정석이 있어서 왔다가 이야기 나눴지. 아무렴 너를 외면했을까."
오늘은 NICE 행사날. X를 타고 다 같이 여의도 행사장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럼 형 남수 여자친구도 봤어?"
"봤지. 은정이. 둘이 가끔 놀러 와."
"아 이 얄팍한 우정... 빌어먹을 놈들..."
"너 정석이 여자친구는 봤냐?"
"정석이 여자친구 있어!??"
"정석이 여자친구는 누나도 봤는데?"
"...미친놈들. 진짜 뭐야? 왕따도 아니고."
"하하하! 그러니까 좀 내려와. 너무 서울에만 붙어있으니까 그러잖아."
"아 또라이들... 진짜 친구 다 필요없어."
"남수도 모를 걸. 너도 정석이한테 아는 척 하지 마. 아직은 혼자 숨기고 싶어하는 거 같더라."
"그런 게 어딨어! 이 새끼 당장 전화해서 뭐라고 해야지! 뭔데? 아니 왜 그런 걸 나한테 말을 안 해줘??"
"운전이나 해."
마포에서 여의도. 헤엄쳐서 가면 금방인 거리를 도로에 묶여 있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뒤에 앉은 수정이 누나가 차 여기저기 둘러보며 말했다.
"와 마하야 근데 차 진짜 좋다."
"누나 좋죠? 제가 한 대 사드릴까요?"
"됐어. 누나도 차 있어. 그냥 니 차 좋다고 얘기한 거야."
"음. 경차라 여기저기 주차하기도 좋지."
"아 진짜 왜 그러고 사냐고!! 내가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그래. 이 참에 돈 이야기를 마무리 짓자.
틈만 나면 설득작업을 했는데 돌덩어리를 삼킨 듯 형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냥 있는 것 좀 쓰고 사는 게 그렇게 안돼는 거야?"
"어. 안돼."
"누나. 누나가 봐도 진짜 너무한다 생각되지 않아요?"
"근데 마하야 누나도 웬만하면 니 편 들어주고 싶은데... 내가 봐도 너 씀씀이가 커진 건 있어."
"제가 뭘요? 저 진짜 돈 안 쓰고 사는 편이에요."
"그 시계는 뭐니 그럼?"
"이거요? 이거 제가 산 거 아니에요. 수빈이가 선물해 준 거에요."
"...진짜?"
"제가 시계를 왜 사요. 어차피 맨날 땀흘리고 있는데. 오늘은 그냥 사인회도 있고 하다보니 애가 차고 오라고 해서 차고 나왔지."
"맞어. 어제도 그러던데. 수빈이도 차 있어?"
"있어!! 걘 포르쉐 타고다녀!"
형은 포르쉐가 뭔지 시계가 뭔지 몰라 반응이 느리지만. 수정이 누나는 아니었다.
"아니 걔는 대체 집안이 뭐길래... 그런 걸..."
"수정아 왜? 비싼 거야?"
"잠깐만 마윤 씨. 마하야 누나 시계 한번 봐도 돼? 그거 진짜지?"
"잠시만요. 신호 걸리면 빼드릴게요."
잘그락 시계를 빼 뒤에 앉은 누나한테 건네줬다.
"우와... 롤렉스 처음 봐... 이거 진짜 맞지?"
"왜? 얼만데 그래?"
"천 만원은 할 걸..."
"허... 내가 아는 그 천 만원?"
"응. 어우 기스낼까 무섭다. 마하야 여기."
"나도 잠깐 보여 줘."
역시. 한수빈. 역시 천만원의 여신.
부담되지 않게 골랐다더니... 또 천만원이냐...
형이 시계를 건네주며 말했다.
"왜 그렇게 비싼 거지?"
"그러니까 그걸 알려면 우리도 쓰고 살아야 한다니까?"
"너. 수빈이랑 다닐 때 자존심 안 서서 자꾸 돈 얘기하는 거야?"
"그런 건 아니고. 그냥 딱 백만원 이러면 여러모로 신경쓰인단 말이야."
"그러라고 막은 거잖아. 백만원이 작은 돈이 아니야."
"차는? 식비는? 사람들은 어떻게 만나라고? 데이트도 거의 수빈이가 내는데."
"차 값은 먼저 상금으로 해결했다며."
"형. 이게 지금 그냥 굴러가? 얘는 기름 안 먹어?"
"기름 값도 못 낼 정도면 차를 팔아야지."
"진짜 답답해 돌겠네! 아 누나! 이런 사람이랑 왜 연애해요?"
"괜찮아. 우리는 만족하고 살고있어."
"내가 형 차도 바꿔주고. 집도 사주고. 아 나도 그러고 싶다고!!"
"난 이미 내 집 있어. 너랑 달리 자가고."
"마하는 자가아냐?"
"전세야 전세. 후후. 난 자가지만."
"뭔 후후야! 이상한 걸로 자부심 느끼지 말라고!"
"누나도 그냥 누나 차 타고 다니면 돼. 그래도 마음은 고맙다 얘. 좀 감동스럽다."
"아후... 아우 진짜..."
똑같으니까 사귀겠지. 닮았으니까 사랑하고. 우리 형이나 수정이 누나나 아우 진짜...
답답한 속내를 누르며 차근차근 설명해줬다.
"형. 내가 은근 사람들을 많이 만나. 운동하는 친구들도 있고. 걔들 돈 없어. 내가 사야 돼. 형도 늘 그랬잖아. 주변에 쓰는 건 아끼지 말라고."
"그랬지."
"그러니까 백만원은 아니라고. 부족해. 지금도 내가 여기 왜 일하러 가는데? 돈 벌면 뭐해? 광고비 받으면 뭐하냐고? 내 생활을 달라질 거 없는 거."
"운동해. 사람들 만나고 다니지 말고."
"으아아! 으악!! 아악!!!"
"시끄러. 조용히 운전이나 해."
벽을 대고 주먹을 지르면 뼈라도 단단해지지. 어우 미쳐...
오죽하면 형 말에 껌뻑죽는 수정이 누나도 내 편을 들어주며 말했다.
"근데 마윤 씨. 진짜 사람이 버는 만큼 씀씀이가 커지는 건 어쩔 수 없어."
"나도 동의하는데. 이 녀석은 절제가 없어서."
"내가 무슨 절제가 없어!! 절제력 없는 놈이 운동은 어떻게 그렇게 하는데!!!"
"그건 좋아서 하는 거잖아."
"형. 나도 쉬고 싶을 때 많거든. 근데도 봐라. 오늘도 새벽에 나가서 혼자 한강 뛰고 왔잖아."
"그건 니가 예전부터 해오던 거니까 그러지."
"...누나 진짜 형이랑 헤어지면 안 돼요?"
"미안. 그건 안돼."
그래도 계속 두드리니 형한테서도 한숨이 흘러나온다.
"후우... 왜 이렇게 자꾸 돈을 쓰려고 그러는 거야?"
"하하하... 미치겠네 진짜. 아니 지금까지 내가 한 말은 뭐로 들었냐고. 다 말했잖아."
"너 아테네에서 쓰러진 건 기억 안나?"
"그게 돈 때문이야?"
"기억 나? 안 나? 그것만 말해."
"아니. 갑자기 돈 얘기하다 뭔 소리를 하는 건데??"
"마하야. 이 세상에 돈은 곧 힘이야. 우리가 아는 힘과 다를 게 없어."
사람은 힘이 다 하면 쓰러지기 마련이란다.
형은 모든 내공을 까많게 태우며 무너졌던 그 날을 잊지 말라고 하는데.
"그래서? 돈 쓰다보면 내가 또 그렇게 된다고?"
"그래."
"그러니까 벌잖아. 그만큼 벌고 있잖아 내가!"
"마하야. 욕망에 한계란 없는 거야. 특히 물욕은 버는 그 이상으로 나갈 수 밖에 없어."
"누나. 형 누나랑 있을 때도 이런 얘기해요...?"
"우와 뒷좌석도 열선 있어. 겨울에 따듯하겠다."
"아 누나! 형수님!!"
"으음. 졸려. 아 졸리다. 둘이 얘기해. 도착하면 깨워 줘."
"수정이 끌어들이지 말고 들어. 이건 아테네 때와 다를 게 없는 일이야. 너 그때도 혼자 절제하지 못 하고 주화입마에 빠졌던 걸 잊지 마."
"아 이거랑 그거랑 다르다니까..."
"갑작스레 큰 힘을 얻게 됐다는 건 똑같은 일이야. 돈이나 내공이나 뭐가 달라. 특히 너 같이 뭐 하나 해도 큰 돈 만지는 사람일수록 욕망을 절제할 줄 모르면 인생이 파괴되는 법이야."
"형. 그거 알어? 해는 하늘에 뜬다 바다가 아니라. 바람은 시원해. 겨울은 춥고 여름은 더워."
"너야말로 이야기 하다 뭔 헛소리를 하는 거냐?"
"당연한 얘기 좀 하지 말라고! 내가 애냐? 아 내가 그런 걸 몰라?"
"이 자식이. 그런데도 자꾸 버럭버럭..."
"어어! 어! 누나 보세요! 이거. 이런다니까!!"
"저는 형제간의 이야기에 관여하지 않아요. 음냐 음냐."
형도 답답한 한숨을 쉬며 말했다.
"후우. 마하야. 니가 돈의 무서움을 알고 스스로 절재할 줄 알면 내가 뭐라고 하겠냐..."
"말했잖아! 나 인내심 있다고. 나도 돈 무서운 줄 알어. 이번에 차 사면서도 얼마나 시끕했는데."
"그런 단편적인 거 말고."
"말고 뭐? 돈이 뭐가 무서운데?"
형이 무겁게 쳐다본다.
"...수빈이를 봐."
"수빈이가 왜? 걔가 갑자기 왜 나와?"
"마르지 않는 샘이 사람을 풍족하게 하는 게 아니야."
"..."
이건 또 뭔 소리야?
"형 수빈이 싫어?"
"아니. 좋아. 그래서 안타까워."
"왜? 뭐가? 걔가 뭐가 부족해서 형한테 안타깝다는 말을 들어야 돼?"
"그 친구는 마음의 병이 있어."
"..."
역시 우리 형. 그 짧은 사이에 수빈이의 내면을 알아보는구나.
"그게 돈 때문은 아니잖아..."
"여러 이유가 있겠지. 하지만 돈도 큰 부분을 차지할 거야."
"...왜? 아니 뭘 봐서? 걔네 집 부자야."
"그래서? 아무리 부자라도 어떻게 이렇게 큰 돈을 쓸 수 있어. 이런 게 그 친구를 자꾸 병들게 하는 거야. 절제가 없는 삶이란 멈출 줄 모르는 말 등에 올라탄 거랑 같아."
"같은 말도 좀 브레이크 없는 차라고 해라."
"뭐든 이 자식아."
아 진짜 답답하네.
"아니 그거야 그럴 여력이 되니까 쓰겠지..."
"마하야. 난 솔직히 너보다 수빈이가 더 걱정 돼. 그 친구 계속 그렇게 가다간 결국"
속이 까맣게 되어서 재만 남게 되고 말 것 이란다.
뭘 그렇게까지 겁을 주냐고 반박하고 싶지만.
나도 내공을 보는 눈을 가지게 된 이상, 우리 형이 누군가를 보는데 있어 틀린 판단을 할 사람은 아니라는 걸 안다.
"...누나? 누나가 봐도 좀 그래보였어요?"
"글쎄... 난 마윤 씨 정도는 아니지만. 애가 정에 목 말라 보이기는 하더라."
"누나 안 자고 계셨네요."
"하하하... 마하야..."
수정이 누나도 형한테 물어본다.
"마윤 씨는 그 친구 어디서 그런 걸 느꼈어요?"
"첫 인상과 중간 마지막이 너무 달라지더라고."
"뭐가 달러. 웃기만 잘 웃더만."
"그러니까. 사람의 표정이 그렇게까지 빠르게 밝아진다는 건 속에 아픔이 많다는 이야기니까."
"마하야 근데 진짜로 그런 애들이 있어. 겉으로 보기엔 멀쩡한데 속으로 정말 곪아터진 애들. 너가 많이 아껴줘야 돼."
"우리 잘 지내고 있는데..."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닐 거야."
"..."
클럽에서의 불안한 기억을 잊을 수 없다.
가끔 터져나오는 과격한 말투나 사람에 대한 차별적인 인식도 있다.
그냥 재벌이라 그렇겠지 싶었지만, 역시, 어른들 눈에는 그런 게 보이는구나.
나도 어느정도 느끼는 게 있어 부정을 못 하겠다.
"가급적이면 그 친구 씀씀이도 너한테 맞추도록 해."
"됐어. 거기까지 형이 뭐라고 하지 마. 우리가 알아서 해."
"마하야. 누나 뭐 하나 물어봐도 돼?"
"네. 뭐요?"
"아무리 돈 많은 집안이래도, 거기 어른들은 그렇게 돈 써도 애한테 뭐라고 안 하셔?"
"누나. 수빈이네 집안이 한동그룹이에요..."
"어?"
"한권석 회장님이 수빈이 부모님이라고요. 그냥 얘는 카드에 한도가 없어요."
그 말에 수정이 누나가 완전히 내 편으로 돌아섰다.
"마윤 씨! 이건 아니야! 마하 말이 맞어! 얘도 쓸 땐 써야 돼!!"
"왜... 수빈이네 부모님 뭐하시는 분인데?"
"재벌이라잖아!! 진짜 재벌!!"
아무튼 여의도에 도착.
어휴... 일이나 하자...
* * *
"아. 네 맞아요."
"어머... 어머머! 어머~~ 수빈아!!"
"하하. 언니 왜 그러세요?"
"얘. 언니가 한 번만 안아보면 안 되니? 좋은 기운 좀 받자. 응?"
"아하하..."
세 사람이 여의도에 도착.
구마하는 NICE 사람들과 진행을 위해 이동하고, 한수빈은 어제에 이어 구마윤 원수정과 친목을 다져가고 있었다.
"못 알아봐서 미안하다. 부모님이 큰 일 하신다면서."
"아... 아니요... 굳이 아실 일도 아니고."
"말 실수라도 한 거 없나 모르겠네."
"오빠 그러지 마세요. 저 그냥 어제랑 똑같이 대하시면 돼요."
"그래. 신경쓰이게 했다면 미안하다."
구마윤이 웃으며 자리를 이동했다.
원수정과 남아있는 한수빈은 괜한 후회가 밀려오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