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타는 청춘 (5) >
설명해 줄 시간이 부족했다. 고익범은 일단 뛰면서 느껴보라 말해준다.
"일단 가자. 하면서 알려줄 게."
"야. 근데 저쪽도 농구 좀 하는 사람들 같은데 내가 되겠냐?"
"돼. 충분해. 너 피지컬에 점프력이면 리바운드만 잡아줘도 우리가 이겨."
"근데 넌 왜 이렇게 긴장하고 있어?"
"후우우... 아니. 내가 브라운 제임스랑 공격진을 이룬다니까... 실수하면 어쩌나 싶어서..."
"야 그런 게 어딨어. 이게 정식 시합도 아니고. 져도 돼."
"하하하. 해봐라. 농구가 그렇게 만만한가."
상대팀과 합의을 본 브라운도 돌아와 말했다.
"저쪽도 동의했어. 구는 적당히 봐주지만, 고 너는 안 된다고 하더군."
"네. 괜찮습니다."
"구. 고. 심플해서 좋군."
브라운이 분위기를 주도하며 손을 모았다.
"오케이 오케이! 컴 온 가이즈. 심플 프렌즈. 렛츠 두 잇!"
브라운 제임스가 포함된 3 ON 3 스트릿 농구시합.
우연찮게 펼쳐진 경기지만 구경하는 관중들도 NICE 관계자들도 다들 환호성을 지르며 코트 주변에 몰려들었다.
"오오~!"
브라운이 점프볼을 따내며 공을 가드 고익범에게 건네줬다.
고익범은 큰 키와 미국에서 익힌 농구센스로 한국에 온 뒤 포워드를 맡고 있지만, 미국에서 원래 맡았던 포지션은 가드.
익범은 오랜만에 공을 돌리며 시합을 이끌었다.
"후우. 후우."
학교에서 하던 시합과는 차원이 다른 집중력이 그의 감각을 끌어 올렸다.
이 게임이 나의 인생을 바꿀 거란 기대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NBA 루키 브라운이 관심있게 보고있고, 슈퍼스타 친구는 농구에 문외한이다.
뭔가 역할을 해내야만 해.
고익범이 주변을 둘러보며 공을 튕겼다.
미군 병사가 자세를 낮추며 손을 뻗자, 그가 현란한 드리블을 펼치며 돌파를 성공. 브라운에게 패스를 던져 줘 어시스트 포인트를 올렸다.
골인 2:0. 아무도 예상 못 한 고익범의 빠른 움직임에 관객들은 함성을 지르고 브라운도 다가와 하이파이브를 건넸다.
"원더풀 맨."
"고맙습니다."
"오~ 이 새끼. 은근 멋진데?"
"시끄러. 우리 수비 차례야. 들어가!"
고익범이 자신감을 얻었다.
브라운도 흥이 살아나고 미군병사들도 시합에 진지함을 가지게 되었다.
구마하도 일단 농구 초심자답게 골 밑에 자리를 잡았다.
"홀 던 브라더!"
"물러서지 마! 들어가 있어!!"
지키라니 지키고 들어가라니 들어가지만. 골 밑은 전쟁터였다.
구마하는 벽에 부딪힌 듯 미군 병사의 압박에 밀려 넘어지고 만다.
"어이 씨... 이거 파울 아냐?"
다시 동점. 원 코트 경기인만큼 이번엔 위치를 바꿔 브라운 팀이 패스를 돌리며 돌파구를 찾는다.
고익범의 빠른 몸놀림을 본 상황에서 상대방은 골밑에 방어진을 펼쳤다.
브라운이 패스를 받아 돌파를 시도하지만 밀착 방어에 가로막힌다.
"헤이. 구!"
"어우 정신 없어. 나한테 왜 패스해?"
"마하야. 여기!"
"어 어!"
구마하는 어찌저찌 고익범에게 패스를 넘겨주는데, 공은 다시 반대편에 있는 브라운에게 재빠르게 넘어가고. 이곳 저곳에서 다음 지시 사항이 내려온다.
"헤이! 돈 무브!"
"마하야 브라운이 슛 쏘면 리바운드 잡아서 공 돌려야 돼"
젠장 좁아터진 구석에서 뭐 이렇게 하라는 게 많어???
고등학교 2학년까지 170이 되지 않았던 그에게 농구는 관심 밖의 경기였다.
슬램덩크도 그냥 유명하고 재밌다길래 봤을 뿐. 경기 운영에 관한 모든 것에 그는 농구 초심자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 했다.
"아니 그냥 엉덩이로 밀고 들어오는데 이게 파울이 아니라고?"
"하하하! 구. 릴렉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정도로 농구를 모를 거라고는..."
NICE 사람들도 조금 당황하고 있었다.
자사 모델인 구마하와 브라운 제임스가 멋진 활약상을 보여주어 기업 이미지를 높여야 하는데, 정작 이번 행사의 큰 축이라는 그가 일반인보다 움직임이 떨어지다니...
"팀장님.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 다섯 골만 하자고 할 까요?"
"분위기를 봐라. 저 사람들한테 이미 행사는 뒷전이야. 뭐라고 시합을 중지시켜. 그냥 둬."
밀리고 넘어지고. 간간히 브라운과 고익범이 멋진 모습을 보여주지만, 경기는 3:2인양상. 결국 두 팀간 점수는 벌어진다.
"후우 후우... 아 그러니까 내가 안 한다니까..."
"괜찮아. 처음 하는 건데 어때."
"릴렉스 구. 잘하고 있어."
사람들에게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은 구마하는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잘하고 싶어도 모르는 걸 어떡하라는 말인가.
농구가 단지 몸만 좋다고 되는 경기도 아니고, 내공이 있든 없든 이건 기술이 필요한 시합이거늘. 혼자 씩씩 거리며 구겨지는 자존심을 주워 모으는 그때.
"자기야 힘 내!!"
꺼져가는 사나이의 자존심에 한 줄기 힘찬 목소리가 다가와 일으켜 세운다.
관중석 한쪽에서 들려온 한수빈의 목소리에 구마하가 고개를 돌렸다.
그녀가 구마윤과 수정이 누나와 함께 여유롭게 웃고 있었다.
마치 진다는 건 애초에 걱정도 되지 않는 것처럼.
"잘하고 있어. 멋있어!"
"...그래. 아직 게임이 끝난 게 아니지."
"오~~ 구. 누구야? 걸 프렌드?"
"야. 야! 저 저분 그때 그 사람 아냐!"
쪽팔린 모습을 보이고 있었구나.
그래. 여자친구가 보고 있는데.
응원해주는 사람이 있어.
포기할 순 없다.
"브라운. 아까 저 사람이 너한테 한 건 파울 아니지?"
"스크린 아웃이라는 거야."
"그건 파울 아닌 거지? 진로방해 이런 거 없지? 나도 그렇게 해도 되지?"
"물론. 그리고 지금 너한테는 약간의 핸디캡이 적용되고 있지."
14대 8. 이제 세골이면 경기가 끝난다.
지고 싶지 않다.
구마하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해 반드시 이길 작정이다.
"익범아 시키는 대로 할 게. 뭐 해야 돼."
"일단 리바운드가 너무 안 돼. 공격은 되는데 그것도 공이 돌아와야."
"오케이 알겠어. 리바운드랑 그리고 또?"
"와... 너 이 새끼. 방금 까진 져도 그만이라는 식으로 대충하더니, 여자친구 응원받았다고..."
"아 소개팅 해달라고 할 게. 빨리!!"
"자 봐 봐. 너도 몇 번 겪어서 알 거 아냐. 허리를 낮춰. 그리고 온 몸으로 버텨. 골 밑에서 자리를 놔주지 말라고."
"하하하! 이 새끼 소개팅 해준다니까 표정 바뀌는 거 봐.“
구마하는 고익범에게서 스크린 아웃과 리바운드에 관해 배웠다.
"격어봐서 알 거야. 점프력은 니가 높아. 근데 왜 공을 뺏기겠어. 자리를 잘 잡아야 돼. 그래야 상대방보다 더 빠르게 리바운드를 잡을 수 있으니까.“
"알았어."
"헤이 심플 프렌즈? 저쪽이 빨리 하자고 하는데."
"오케이. 익범아 가자."
"마하야. 니 체력이랑 점프력이면 충분히 가능하니까."
"알았어 자리잡어."
"어떻게든 리바운드만 해서 공 돌려주면 나머진 나랑 브라운이 알아서 할 테니까"
"아 알았다고!! 이 새끼 지야말로 수빈이 나타나니까 갑자기 멋진 척 하려고."
"...좀 그래 보였냐?"
"하하! 끝나고 얘기하자."
"난 그냥 아무나 상관 없으니까. 그냥 착하고 귀여운 친구면."
"크하하하! 이 자식."
지고있는 가운데서도 호탕하게 웃는 모습은 상대방에게 의아함을 자아낸다.
브라운도 구마하에게 다가와 물었다.
"이제 좀 준비 됐어?"
"어. 브라운. 농구도 꽤 힘든 경기였네."
"팀 경기가 원래 개인 종목보다 어렵거든."
"하하하! 미안해 브로. 장난이 심했어."
"이기면 용서 해주지."
흐름이 바뀌었다. 구마하가 센터에 제대로 뿌리를 박자. 마침내 트라이앵글 디펜스 존이 단단해진다.
미군 팀들은 일방적인 센터에 공 몰아주기 전법이 통하지 않자 외각 슛을 노렸다.
하지만 이것도 브라운과 고익범의 수비에 의해 정확도가 떨어진다.
"마하야!"
"헤이! 구!! 점프!!"
넘어져야 일어나는 법을 배운다.
실수를 되집으며 구마하가 자세를 낮추고 상대방에게서 포지션을 지켰다.
그리고 점프. 훌쩍 뻗는 긴 팔 끝에 깔끔하게 농구공이 그의 품으로 떨어진다.
"그렇지!!"
"나이스 플레이! 구!"
"익범아!"
기술과 경기 이해도는 떨어지더라도 점프력과 체력 만큼은 당장 어디 던져 놓더라도 제 몫을 해낼 것이다.
이제 브라운 팀은 리바운더를 얻었다.
브라운은 자신감을 갖고 빠르게 라인을 벗어나 3점 슛을 날렸다.
"하하하! 브라운!!"
"요~!"
"이야 농구도 재밌네."
14대 11. 석점 차.
상대방도 바로 한 골을 더 넣어 16대 11이 됐지만, 이쪽은 NBA 슈퍼루키 브라운 제임스와 한국 농구 명문 연세대의 일원인 고익범이 있었다.
그리고 구마하는 연이은 수비와 리바운드를 성공.
팀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조화를 이루기 시작하자 5점차 점수는 빠르게 뒤집어졌다.
"후욱 후욱!"
"후우 후우~"
"끝날 때까지 집중 하자고 심플 프렌즈."
18대 19. 서로 마지막 한 골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화려한 NBA 플레이어와 초반의 부진을 뒤짚고 제 몫을 해내는 구마하. 그리고 일반인으로 들어가 그들과 동등한 경기력을 보이는 고익범까지.
세 사람의 모습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응원의 함성을 자아낸다.
"멋있죠 언니? 그쵸? 오빠 마하 잘하죠?"
"알았어. 니 애인 대단해."
"하하하 수빈아."
한수빈은 사람들의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그의 열정에 빠져든다.
이거다. 헬싱키에서도 이 모습에 반했어.
역시 그는 땀을 흘릴 때 가장 빛이 난다.
누가봐도 첫사랑에 빠진 한수빈의 모습을 여기저기서 지켜보며 숙덕거렸다.
"여친인가?"
"존나 예쁘네... 누구야 대체?"
갑작스런 응원에, 왔는지 아닌지 조차 모르던 이도형도 멀리서 수빈을 발견 할 수 있었다.
그는 밝은 모습으로 설레여하는 한수빈을 조용히 지켜보다 행사장을 빠져나갔다.
"..."
십년 만에 처음 본다.
너가 그렇게 밝게 웃을 줄 아는 애였구나...
녀석이 망가질 줄 알았는데, 왜 너가 밝아지고 있는 거니...
이도형이 우울하게 돌아서는 가운데. 시합 장의 열기는 고조되고 있었다.
아직도 점수는 18:19.
몇 차례 공방이 오고갔지만 물러설 수 없는 자존심이 점수를 용납하지 않는다.
장난으로 시작했어도 이것은 게임. 단순히 흘려 넘길 사나이들이 아니었다.
"후우. 후우. 와 존나 빡세네."
"집중해 마하야. 이럴 때 점수 나는 거야."
"어! 알겠어!"
공은 돌고 돌아 다시 팀 브라운의 소유로 넘어오고.
이제는 구마하에게도 밀착 수비가 붙고 있었다.
물론 브라운과 고익범에겐 빈틈을 내주지 않는다.
아무리 프로나 아마추어 선수가 아니어도 농구의 성지 미국에서 가죽공을 만지던 이들. 브라운도 쉽게 빈틈을 찾기가 어려웠다.
돌파를 시도하면 세 사람이 달라붙고, 패스를 돌리기엔 두 사람 다 그럴 기량이 되질 않는다.
"헤이 브로. NBA에서 이렇게 오래 끌면 파울 아닌가?"
"하하! 너야말로 이벤트 경기에 뭘 이렇게까지 진지하게 그러는 거야?"
"재밌잖아. 무엇보다 우린 직업적으로 지는 걸 싫어하거든."
"마찬가지지."
고향 친구와 가벼운 수다를 나누며 브라운 제임스가 코트를 읽었다.
구마하는 림 아래 묶여있고 고익범이 들어갈 틈을 노리고 있다.
아쉽군. 멋진 게임인데. 구의 운동신경이라면 한 시간만 여유를 잡고 가르쳤다면 진작에 승부를 결정지었을 건데.
무엇보다 덩크라도 알려줬다면...
"..."
그래. 구의 점프력이라면 아까 두 번의 블로킹에서도 충분한 높이를 보여줬어.
시작 때 부끄러운 모습도 있었는데, 해내면 히어로고 아니어도 다음을 노려보자.
브라운 제임스가 고익범과 눈을 마주치며 힘 차게 공을 튕겼다.
퉁! 퉁! 퉁!
고익범도 빠르게 분위기를 읽는다.
공의 울림에 힘이 느껴진다.
브라운이 뭔가 할 작정인데. 뭐지? 돌판가? 패스? 난 뭘 해줘야 하는 거지?
고익범은 브라운의 눈길이 향하는 곳을 지켜본다.
그가 림과 그들의 친구 구마하를 빠르게 번갈아 보았다.
"오호라..."
앨리우픈가. 좋아 마하의 점프력을 믿고 가보자.
고익범이 상대를 피해 외각으로 빠르게 몸을 뺐다.
브라운도 패스 할 자세로 공을 들어 올리자 두 사람이 미끼를 물어 코트에서 멀어진다.
림 아래 구마하만 홀로 덩그러니 땀을 흘리고 있었다.
브라운이 상대방의 블로킹을 피해 골대 위로 공을 던지며 외쳤다.
"구! 점프!!"
"어? 벌써?"
들어가면 좋고 아니어도 주인공이라면 뭔가를 해내겠지.
브라운은 승리의 여신이 가호를 내려주길 기다리며 웃으며 지켜보았다.
구마하가 높게 뛰어 올랐다. 고익범도 빠르게 외쳤다.
"마하야 그냥 꽂아! 덩크 하면 돼."
나는 농구를 모르니 동료들이 시키는 대로만 하자.
구마하는 반사적으로 고익범의 말을 따라 손 끝에 닿는 공의 궤적을 림으로 옮겨 그대로 골인.
스코어는 18대 21. 역전 승리.
즐거운 추억의 한 페이지를 만들었다.
"하하하! 아아~ 그럼 내가 덩크를 한 거야?"
"그렇다니까!"
"구. 나이스 덩크."
"알았으면 진작 좀 할 걸. 하하!!"
관중석이 환호하며 분위기가 축제 같이 변해간다.
열심히 땀을 흘린 미군 병사들도 웃으며 다가와 악수를 건넸다.
"나이스 게임. 챔프."
"요 브로. 나이스 게임."
땀을 닦고 돌아서는 구마하가 고익범에게 슬쩍 말했다.
"익범아. 농구 은근 존나 빡신데?"
"하하하! 이 새끼가. 그동안 농구가 편한 운동인 줄 알았냐?"
"아니. 해본적이 없다니까."
남은 일정은 자유였다.
한수빈이 가벼운 파티를 준비했다며, 구마윤 원수정도 함께 가자 부르지만. 두 사람은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성남으로 내려가고. 젊은 친구들만 새롭고 호화로운 무대에 초대받는다.
"오우..."
"이야..."
"웰컴 브라운. 웰컴 코리아. 해브 펀~"
"레이디. 나이스 투 미 츄."
한수빈은 이태원에 위치한 호텔 라운지를 전세 냈다.
수영장이 딸린 시크릿 파티에 연세대 동문들과 함께 뛰었던 미군 친구들이 모여 신나는 건배사를 올린다.
무엇보다 여기저기서 어떻게들 알고 찾아왔는지 타이트하고 늘씬한 미녀들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마하야! 진짜 최고다!!"
"이 새끼! 너 존나 멋진 놈이구나! 고맙다! 이 우정 평생 가자!"
고익범과 서재민이 제대로 수혜를 얻고 있었다.
브라운과 미군 친구들도 다시 없을 한국의 추억에 빠져든다.
구마하와 한수빈과 한쪽에 앉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와... 언제 이런 걸 준비한 거야?"
"후후후. 좋아? 마음에 들어?"
"어. 아 너무 재밌는데."
"아까 NICE 사람들이 저녁 준비한다고 했는데, 취소하라고 하고 빠르게 준비했어."
"에이. 왜 돈 써. 그 사람들 돈 쓰고 놀면 되지."
"우리 자기를 최고로 멋지게 만들어 주고 싶어서."
국경을 초월한 만남이 벌어지고 있었다.
많은 젊은 연인들이 짝으로 맺어지며 춤 추고 서로 몸을 부비며 늦 여름의 노을을 배경으로 밤이 깊어가라 파티를 즐겼다.
"자기야. 아까 응원해줘서 고마웠어."
"후후! 내 덕분에 이겼다고 하는 거야?"
"암. 당연하지."
서로가 서로에 대한 애정이 최고조로 오르는 밤이었다.
한수빈도 더는 다른 여자라는 것이 그녀의 신경을 거슬리지 않았다.
"자기야. 지금 어딜 보고 있는 거야?"
"어? 아니. 저기 파리가 있길래."
"아하하하! 죽을래? 여자 엉덩이 보고 있었잖아!"
"음? 아닌데?"
"이게 진짜"
원수정이 그랬던 것처럼 한수빈은 연인에 대한 믿음을 가졌다.
그러자 그녀의 마음에 가리워진 어둠이 조금씩 사라진다.
자유를 얻는 기분에 한수빈은 진정한 웃음을 지어보이고 있었다.
"아하하하!!"
"뭐야. 오랜만에 파티 하니까 그렇게 좋아? 너무 크게 웃는데?"
"하하하! 좋지! 너무 좋지!"
"뭐가? 뭐가 그렇게 좋은 거야?"
"그냥 다~! 자기도 이 밤도. 여기있는 사람들도!!"
사랑이 불타오르는 밤이었다.
까맣게. 마지막 심지까지 정말 새까맣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