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륜기로 가버렷-166화 (166/401)

< 승자와 패자 (5) >

"너 마하랑 친구라며?"

"어? 오빠가 걔를 어떻게 아세요?"

"내가 마하를 알거든."

"네...?"

커피에서 식당으로. 그리고 와인바로.

이제는 하루를 잡고 주말에 만나 영화를 보며 모든 것을 함께 하는 식으로.

잠자리와 스킨십을 제외한 이혜정과 이도형의 시간은 켜켜히 쌓여가고 있었다.

"어떻게 아는 사이냐는 표정이네."

"뭔가 나도 모르는 가운데 이상한 연결고리가 만들어 진 거 같아서..."

"나 수빈이랑도 친해."

"수빈? 마하 여자친구요? 그 하얀 언니???"

"하얀 언니는 뭐야?"

"아니. 피부가 하애서."

"하하하! 그래 맞다. 걔 좀 하얗지."

"뭐죠? 어 뭐지? 진짜로 무서운데..."

"그러니까 내가 처음 볼 때 말했잖아. 무서우면 112 누르라고. 핸드폰 빌려줄까?"

이도형은 일부러 정보를 흘리며 새로운 흐름을 만들었다.

"언니가 제 얘기를 했다고요?"

"응. 한번 보고 오더니 정말 예쁜 애가 있다고. 그래서 내가 널 찾아온 거야."

"아니 내가 뭐라고... 그 언니야말로... 뭔가 좀 TV에서 나온 사람 같았는데..."

"수빈이가 그렇게 말하는 여자애는 처음이었거든. 뭐 얼마나 예쁘길래 그러나 궁금했어."

"...진짜로 뭔가 의도가 있는 접근이었네요."

"그렇지. 아주 음흉한 속내를 감추고 있었지. 늑대야 늑대. 나쁜 새끼야."

"오빠? 오빠 이야기잖아요?"

"혜정아."

이도형이 선뜻 이혜정의 손을 붙잡는다.

"네..."

"나랑 사귈래?"

"...음흉한 속내를 감추고 있다면서요."

"안 감출래. 이제는 그냥 드러내면서 말할 거야."

"..."

"너가 좋다. 진짜야. 호감의 감정을 지난 지 오래 됐어."

"저를 뭐 얼마나 아신다고..."

"지금까지 본 느낌 그대로 이어지겠지."

"..."

"사귀면서 알아가자. 안 될까?"

"으음. 근데 갑자기 좀..."

"그럼 넌 내가 보자고 할 때 왜 나오는 거야. 오늘도."

"오빠가 보자고 했잖아요."

"그러니까. 너도 나 싫은 거 아니잖아."

이혜정이 조금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그렇게 막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은 저도 하고 있어요..."

"그래? 다행이다."

"근데 오빠는 나이도 많고..."

"내가 뭐? 나 20대야."

"스물 일곱인데요? 대학원 나인데..."

"남자는 군대가 있어. 난 군필이고. 이제 취직하면 더 이상 만날 사람도 없고. 내가 돈 벌어서 너 맛있는 거 사주고. 여행도 같이 갈 수 있고. 오히려 낫지 않을까?"

"..."

"아닌가 이런 문제가 아닌가? 내가 그렇게 아저씨 같나...? 이거 나름 관리 한다고 하는데..."

장난스레 당황하는 이도형을 보면서 이혜정도 피식 웃어보였다.

"오빠 같은 스타일이 여자애들한테 인기는 좋죠."

"다행이네. 그래도 좋게 봐줬구나."

"그런데요. 오빠. 한번 생각해 볼게요... 그냥 오늘 답하는 건 좀 아닌 거 같아요."

"그래. 나도 보채진 않을게."

* * *

"아 씨발..."

"미친 새끼. 보자마자 욕지랄이냐?"

"니네 먼저 먹고있지 말라니까."

"그러니까 빨리 오라고 했잖아. 차 끌고 오는 새끼가 뭐하다 이제 오는데."

"새끼들아! 차 끌고 오니까 늦지! 막힌다고!!"

성남에 내려왔다.

남수네 집앞에 있는 치킨집에서 정석이 남수를 만났는데. 애들을 보자마자 뭔가 자연스럽게 반가움에 가슴에서 욕이 터져나왔다.

"아 이제 좀 뭔가 살 거 같네."

"그래. 욕 해라. 니가 세상에 욕 할 곳이 우리들 말고 또 있냐."

"그것도 그러네. 씨발년. 그동안 고생했다."

"그래서? 어떻게 좀 그 미친 소리는 가라앉은 거야?"

"어. 후우. 좀 진정됐어."

"그래도 인터넷에선 아직 떠드는 인간들 있던데?"

"야. 그거 다 고소해."

"아 몰라. 피곤해 지껄이라 그래."

"하하하. 너한테도 안티가 있구나."

"있지. 나 이 새끼 안티야. 내가 카페 만들까 했는데, 카페 열 줄 몰라서 못 했어."

"하하하하. 또라이 새끼."

"야 마하야 너 카페 하나만 만들어서 나한테 관리자 주라."

"와 창의적이다. 구마하가 운영하는 구마하 안티 카페."

"하하하. 하여간 미쳤다니까"

오랜만에 친구들과 앉아 맥주도 먹고 그간 이야기도 나눴다.

"태윤이도 오려고 했는데, 걔 뭐 요즘 너도 알다시피."

"전화했어. 동아리 무슨 공연 있다고."

"어이 구마."

"음?"

"갑자기 이런 이야기 좀 그런데..."

"뭐? 말 해."

"음. 아니다. 너 여기 온 거 수빈 씨는 아냐?"

"알지. 수빈이도 좀 내려가서 쉬고 오라고 그랬고. 감독님도 그러시고."

"야. 한상률도 이번에 결혼 늦췄다며?"

"...사모님 만나서 이야기 했어. 사모님도 이런 상황에 결혼은 좀 아닌 거 같다고 동의하시고."

"존나 미안했겠다..."

"괜찮아. 감독님이랑 그런 신뢰는 있고, 무엇보다 사모님도 내가 무너지면 생활이 안 된다는 걸 아니까 믿고 기다려 주신다고 하셨거든."

"하하하! 진짜? 이 새끼 너도 뭐 존나 많네."

"많지. 많어. 근데 겸사겸사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해."

자리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데, 차는 그냥 남수네 아파트에 세워두리고 하고 정석이와 둘이 걷고 있었다.

"이제는 너까지 피냐?"

"후우~ 펴야지. 그럼. 난 직장인인데. 직장인이 담배를 안 펴? 직무유기야."

"하하하! 핑계도 좋다."

"...마하야."

"뭐야 병신아. 진지하게 이름 부르지마. 좆같애."

"야. 그날 너랑 수빈 씨랑. 우리 선아. 그리고 혜정이 이렇게 모인 날..."

"아 그날 얘기하지 마. 뭔가 다 그때부터 일그러진 거 같애."

"쓰레기통 치우는데 계란찜이 버려져 있었다."

"...뭔 소리야?"

정석이가 묵묵하게 걸으며 말했다.

"나도 좀 놀래서 선아한테 물어봤어. 누가 음식을 버렸었냐고."

"...그런 일이 있었나?"

"선아도 그러더라고. 모르겠다고. 자기도 그때 뭐 혜정이랑 너랑 이야기 많이 하느라 모르겠다는데."

"..."

"위치가 수빈 씨 바로 옆이였거든. 선아도 그거 너가 덜어서 줬다고 그러고."

"실수로 그랬나..."

"..."

"그래서. 이런 말을 나한테 하는 이유는?"

"그냥. 음. 아 씨발년아 오해하지 말고."

"말을 해. 이미 상황 좆같게 다 말해놓고."

"난 음식장사를 하니까 그런 마음에서 해주는 말이야."

정석이는 먹는 걸 함부로 하는 사람은 그만큼 어딘가 문제가 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단다.

"진짜 손도 안 댔어. 그냥 흘려다기 보다는 버렸다는 느낌이었어."

"..."

"나도 좀 이상해서. 한번 말해본 거야."

"그날 수빈이가 선아한테 말을 좀 직설적으로 하기는 했지..."

"야. 그럼 우리 선아가 이상한 애가 되잖아."

"정석아. 우리 진짜 남수도 그렇고. 우리 그건 정말 마음 든든하게 먹고가자."

"뭐?"

"누가 우리 옆에 있어도. 우리 넷은 절대 흔들리지 않는 거야."

"말이라고 하냐 미친년아. 이 씨발 년 넌 존나 흔들리려고 했던 거지?"

"그러니까. 너. 니나 좀 조심하라고."

"우리 선아는 남 험담하고 그런 짓 안 해!"

"그럼 수빈이는!!"

아 젠장. 말을 못 하겠네.

이 사람 성질을 아니까...

"그냥 흘렸겠지. 미안하니까 말을 못 한 거고."

"그럼 다행이고."

"뭐가 다행이야! 사과해! 내 여자친구 의심한 거잖아!"

"...꺼지고. 야 그때 그 가방 진짜냐?"

"짭이라고! 개짭!"

"아 씨... 아무리 봐도 짭 같은 거 들고 다닐 사람이 아닌데..."

어쨌든 아파트에 도착. 정석이와 헤어져 집으로 가는데.

"어라?"

혜정이가 혼자 놀이터에 앉아 그네를 타고 있었다.

* * *

"너 뭐해?"

"어? 뭐야. 니가 왜 여깄어?"

"왜 있긴. 집에 왔지."

"너 이제 성남 안 살잖아. 자랑스런 서울 시민이."

"뭐래. 여기도 우리 집이야."

"오빠한테 그랬다며. 너 이제 성인이고 니가 살 집 있으니 거기서 지내겠다고."

"오랜만에 봐서 까칠거리냐?"

"글쎄다. 제일 보기 싫은 사람을 제일 보기 싫은 순간에 만나서 그런가?"

"..."

"가. 난 아직 더 생각할 게 있어. 안녕."

비어있는 그네에 앉아 가만히 혜정이를 보면서 물었다.

"차였냐?"

"완전 반대거든."

"뭐야 그럼? 양다리 걸쳐?"

"..."

"야. 이혜정. 사람이 도의적으로 그건 아니지."

"니가 뭔 상관이야. 그리고 양다리도 아냐."

"뭐야? 너 먼저 사귄다던 애는 어디가고?"

"걔랑 끝낸지가 언젠데..."

깔깔깔!!! 크하하하!!

왜 그렇게 웃음이 터졌을까. 정말 애들이랑 있을 때보다 더 크게 웃은 거 같다.

물론 혜정이는 굉장히 불쾌하단 시선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미쳤나봐... 왜 웃어? 그게 웃겨?"

"크하하! 와 뭐냐 너? 나한테는 연애 왜 그렇게 짧게 하냐고 뭐라고 하더니?"

"..."

"아 왜? 장난이지. 뭘 그렇게 쳐다 봐."

"야. 구마하. 너 뭐야?"

"뭘? 내가 뭐?"

"너... 니가 그 오빠..."

"어? 뭔 오빠?"

"아니야 됐어..."

뭐야 얘 왜 이래???

"무슨 오빠. 왜 답답한 얼굴하고 있는데."

"...너 진짜 몰라?"

"몰라 뭔 소리를 하는 거야."

"너 도형이 오빠 알어? 몰라?"

"알지. 어? 근데, 니가 그 형을 어떻게 아냐?"

"..."

뭐지? 도형이 형 이름이 왜 나오지? 요즘엔 수빈이한테도 듣기 어려운 이름이 이도형인데.

"요즘 나랑 만나고 있어..."

"어어??"

"뭘 놀래고 그래. 니가 말했으면서."

"뭐야? 나 그 형 안 본지 꽤 됐어... 아니. 따져보면 한번 보고 못 본 사람인데."

"진짜 거짓말 할래?"

"야 진짜야! 내가 너한테 이런 걸 왜 거짓말을 해."

"후우. 그렇다고 하자..."

뭔데? 아니 씨. 뭐야? 아까 정석이에 이어서 혜정이까지...

"언니가 내 얘기를 해줬데."

"..."

"그래서 우리 학교까지 찾아와서."

"수빈이가 니 얘기를 왜 해?"

"몰라. 엄청 예쁜 애가 있다고. 그랬었다고..."

이도형이든 수빈이든 한 사람의 이름만 불렸다면 아무 상관 없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이름이 동시에 혜정이의 입에서 나왔다는 건...

그건 뭔가 나에게 불안함을 준다.

"야. 자세히 말해봐. 하나도 빼놓지 말고."

"자세히고 말고도 없어. 그 오빠가 어느날 우연을 가장하고 다가와 접근을 했고."

"그리고?"

"그리고 가끔 차 마시고 밥 먹고. 땡."

"잤어?"

"이 씨! 야!! 내가 넌 줄 알어!!!"

퍽퍽 한참을 맞았다.

아니 왜 내가 맞지??

걱정해주는 사람을 왜???

"야. 왜 때려... 너도 나한테 뭔 일 있으면 잤냐니 뭐냐니 먼저 물어보잖아."

"..."

그런데 갑자기 이혜정이 뚝뚝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아니 뭐야. 좀 말을 하고 감정을 움직여 봐."

일단 울고 있으니 달래주는데. 와 사람 미치겠네.

"흑. 흐윽..."

"혜정아 너 진짜 왜 이래? 야 나 지금 걱정돼서."

"흑. 몰라. 다 너 때문이야..."

뭐가 나 때문인지. 토닥토닥 달래주며 들어보니.

도형이 형 말고 잠깐 학교에서 만났다는 남자친구가 진짜 있긴 있었는데.

"그래서? 둘이 여행을 갔는데?"

"흑. 흐윽. 근데..."

혜정이니까 당연히 남자애도 좋아했을 거다.

설렘과 두근거림을 안고 두 사람은 침대에 누웠는데.

"..."

근데, 애가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에 상대방이 놀라 그 상태로 굳어버리더란다.

"그래놓고 한다는 말이..."

"아이고... 됐다 그만 얘기해라..."

토닥토닥 혜정이를 다독여줬다.

그래. 그럴 수 있지...

그거 중요해. 누군가한테는 정말 중요한 문제가 된다.

하지만.

"근데 혜정아..."

"흑. 흐윽. 응?"

"...그게 왜 내 잘못이야? 김우진이한테 따져야지."

"야!! 넌 이런 분위기에서 그게 무슨!!"

"아니. 인과는 제대로 따져야... 야 내가 너 처음은 아니. 아니 좀 흥분하지 말고!! 쫓아오지 말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