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챔피언의 무게 (3) >
"소파는 왜?"
-일단 가 봐.
"싫어."
-왜 싫어?
"...분명 이상한 거 하자고 할 거 아냐."
-오~ 이혜정 눈치 빠른데. 같이 보면서 하자. 나도 보여줄게.
이혜정은 구마하와 화상채팅을 하고 있었다.
워낙 바쁜 애고 서울 집 빌려준 것도 고맙고. 이웃들. 생활들. 아파트 근처 맛집이나 반찬가게. 그동안 혼자 살며 느낀 점. 올림픽 관련된 이야기들. 얼굴을 보며 다정다감한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그런데.
-섹스는? 남자친구 없이 섹스는 못 할 거 아냐? 너 마지막으로 한 게 언제야?
여자의 기분이 틀어진다.
분위기를 망치는 상대방에 깊은 빡침과 인간적인 실망스러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그래 알어. 마하 섹스 좋아하는 애라는 거 나도 아는데.
우리니까 그런 이야기 할 수 있는 것도 이해하는데.
그래도 정말 몇 달 만에 얼굴 보는데.
지금 여기선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데, 얜 왜 이렇게 철이 안 들어...
할 얘기가 얼마나 많았는데...
"야. 너 진짜..."
-이것 봐. 너 지금도 화내고 있잖아. 스트레스가 쌓인 거라니까.
왜 이렇게 분위기를 못 맞추지?
그래서 짜증이 나는 게 아닌데.
자기 행동이 지금 나를 화나게 만든다는 걸 모르나?
하지만 그는 남자친구가 아니었다.
단 한번도 내 소유가 된 적이 없었다.
서로 좋아는 하지만 그 마음을 받아주진 않았다.
연애 상대에게서나 느낄 감정 때문에 내가 지금 기분이 상하는 게 맞나?
짜증과 서운함이 동시에 밀려오는 가운데, 이상하게 호기심도 작동하고 있었다.
"뭐하자고? 설마 진짜로 하자고?"
-어.
"...그게 돼?"
-그럼 당연히 되지. 애초에 폰섹스가 왜 있는데, 하물며 서로 얼굴 보는데.
서로 보지도 만지지도 못하는데, 정말? 어떻게 그렇게 되는거냐니 서로에게 이야기를 해주고 각자 상대방을 생각하며 자위를 하는 거란다.
"그건 섹스가 아니잖아."
-아 된다니까.
"...이런 건 또 누구랑 해봤어?"
-이건 나도 처음이야.
이렇게 얼굴만 보는데? 서로 이야기만 나누는데? 각자 그냥 자기 몸 만지는데 그게 섹스가 된다고? 정말로?
"야!! 너 뭐해!!"
생각이 정리되기도 전에 구마하가 혼자 훌러덩훌러덩 옷을 벗는다.
감정과 다르게 포인트를 제대로 짚은 그였다.
이혜정의 마지막 섹스는 1년 전. 구마하 채민서와 함께한 정신 나간 밤을 끝으로 그녀는 수도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구마하가 먼저 노트북을 들고 자리를 옮겼다.
호텔에 배치된 테이블과 1인 소파로 간 것 같다.
모니터 상에 그의 단단한 물건이 덜렁거리며 지나갔다.
이혜정은 형용하기 어려운 웃음을 지어보였다.
"하하... 얘 좀 봐... 진짜 미쳤나봐...?"
그리고 구마하가 정리가 끝난 듯 자세를 잡고 앉았다.
마치 왕이라도 된 듯 당당하고 굽힘 없는 모습이었다.
"..."
여전히 멋진 몸이다. 튼튼한 근육과 넓은 어깨. 갈라진 복근과 터질 듯 힘줄을 불끈거리며 세우고 있는 그의 심볼이 모니터 안에 꽉꽉 들어차 있었다.
"넌 부끄럽지도 않냐...?"
-뭐 어떠냐 넌데.
"......"
-난 니 앞에서 문 열고 똥 싸도 아무렇지 않어.
"하하하~ 야. 더럽게 뭐라는 거야..."
그래. 나는 마하랑 하는 걸 좋아해.
그의 몸에 안기는 것도 좋고, 그가 내 몸을 만지는 것도 좋아.
마하는 사랑을 나눌 때 이런 세상이 있구나 할 정도로 엄청난 쾌락을 느끼게 해줘.
하지만 그래서 무서운 거야.
내가 쾌락의 노예가 되는 것 같아서...
내 안의 어떤 인식이라든지, 지켜왔던 것. 그런 것들이 다 허무하게 무너져 내리고, 내가 알지 못하던 욕망이라던가 하는 게 날 잡아 삼킬 것 같아서.
그렇게 거리를 두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돌고 돌아 그가 눈앞에 있다.
-하하하! 야 이러고 있으니까 뭔가 쪽팔리긴 하다.
"그럼 옷을 입어! 변태 같애?"
-정말 싫어?
"..."
남자와 여자는 사랑을 느끼고 이루는 과정이 다르다.
남자에게 사랑은 종착역이지만, 여자에게 사랑은 출발역이다.
남자는 연애를 시작해야 여자를 알지만, 여잔 남자를 알아야 연애를 받아들인다.
남자는 자신의 호감을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하고, 여잔 자신의 호감을 어떻게 감출지 고민한다.
적어도 보통의 연애란 그런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복잡다단한 과정을 거춰야 이루어지는 것이 바로 서로를 믿는 남녀간의 섹스. 사랑이 되겠다.
두 사람은 그 복잡한 과정을 건너뛰고 말았다.
그래서 관계에 있어 여러 감정들이 꼬여있었다.
하지만, 비상식적인 시작을 했기에 그들은 둘만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었다.
"진짜로 하고 싶어?"
-야. 내가 하고 싶은 게 아니라니까. 너 요즘 아무도 안 만나고 다닌다면서.
"...그건 내가 알아서 할 게."
-알아서 한다는 애가 완전 상대방한테 겁먹고 있잖아.
틀린 말은 아니다.
또 좋아하는 누군가가 나의 과거를 문제 삼을까 일부러 남자들을 피한 것도 있었다.
-혜정아. 겁먹지 마. 부끄러워할 필요 없어. 나야.
"...너가 뭔데?"
-니 친구.
하고 싶긴 해. 사랑을 나누고 싶어.
서로를 보며 느끼는 교감과 맺어짐을 이루고 싶어.
내 안으로 퍼지는 뜨거운 쾌락을 느끼고 싶어.
누구라도 상관 없지만, 마하랑... 얘랑...
많은 상대를 만나본 건 아니지만, 그는 정말이지 맹렬하게 안겨온다.
발끝이 저릴 정도의 그런 섹스를...
둘이 함께 있는 그런 느낌을...
"너 이러려고 오늘 나랑 화상채팅 하자고 한 거야...?"
-하하하! 아 됐어. 이게 진짜. 내가 하고 싶어서 그러겠냐?
"..."
-이런 말이 어떨지 몰라도 야 난 어제도. 아우 됐다. 그냥 됐어. 괜히 나섰네. 그냥 옷 입을게. 진짜 니 말대로 우리가 무슨 상관이라고.
혼자는 어렵다. 이미 혼자서는 많은 날을 보내봤었다.
자위가 어색한 시절이 언젠지 모르게 이혜정도 평범한 자기 위로로 기분을 달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끝나면 밀려오는 허전함이 싫고 외로워 그것도 요즘은 멈추고 있었다.
"...근데 여긴 커튼도 없고. 누가 볼 수도 있고."
-누가 봐?
"...여의도에서 보이지 않을까?"
-하하하! 야! 여의도 그 먼 데서 어떻게 봐!!
정 그러면 완벽한 사생활이 보장되는 자기 방으로 가란다.
집안 안방엔 커튼이 쳐져 있었다.
이혜정도 노트북을 들고 방으로 들어가 본다.
-혜정아 옷장 열어 봐.
"옷장은 왜?"
-아래 쪽에 박스 하나 있을 거야. 예전에 사놓고 안 쓴 게 있어.
"...뭔데?"
장롱 구석에 있는 박스를 열어보니 역시나, 여성 딜도와 러브젤이 있었다.
그럼 그렇지 이 자식...
"야! 너 이거 설마 그 언니랑 쓰던 걸..."
-안 썼어! 새 거야!
"..."
-진짜야!! 작년 가을에 산 건데 쓰고 자시고 할 상황도 되기 전에 정신없이 바빠져서.
한수빈. 구마하의 전 여자친구. 어디 아픈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하얀 피부를 가진 매력적인 여성분.
엄청 예뻤어. 꾸미기도 잘 꾸미고. 솔직히 화장 어떻게 하는지 배우고 싶었는데.
두 사람도 많은 사랑을 나눴겠지. 여기서 이 침대 위에서.
내가 아는 방식으로. 혹은 내가 모르는 그들만의 방법으로.
구마하와 한수빈을 떠올리자 이혜정의 골반이 가녀리게 저려온다.
-혜정아. 마음 놓고 잠깐 스트레스 푼다 생각하자.
구마하는 이미 단단해진 물건을 스리슬쩍 만지고 있었다.
경찰 불러 신고해도 이상할 것 없는 상황에서 그녀도 천천히 욕망이 달아오른다.
"야. 이건 해봐야 너만 좋지. 난 무슨..."
-왜? 내가 만져준다 생각하고 천천히 해 봐.
"..."
-믿어 보라니까.
이혜정도 구마하의 침대에 올라가 눕는다.
"후우..."
누구나 페티쉬가 있고 이혜정도 그녀만의 은밀한 판타지가 있었다.
그녀에게 구마하는 세계를 열광시키는 스포츠 스타가 아닌 외롭고 힘든 상황에서 사랑을 갈구하며 눈물 흘리던 소년이었다.
그가 누군가와 다정다감한 행복을 쌓아가는 게 좋아. 물론, 그 대상이 내가 될 수도 있지만.
알잖아. 얘를 사랑한다는 건 그만한 고통과 힘겨움을 동시에 느껴야 한다는 이야기니까.
그건 싫어.
다시는 사랑하면서 아프고 싶지 않어.
노트북을 보기위해 이혜정도 옆으로 누웠다.
고통을 덜어낸 쾌락만을 누리는 시간. 구마하의 섹스.
그녀가 스르륵 바지를 벗는다.
"벗었어..."
-안 보이는데?
"니가 왜 봐. 내 기분 좋게 해줄 거라면서."
-서로서로 좀 보면 좋지 뭘.
"나 안 해."
-하하하! 알았어.
이혜정은 일부러 노트북을 바짝 끌어당긴다.
몸이 화상 캠에 드러나지 않게 그녀의 얼굴만 보이고 있었다.
구마하도 어쩔 수 없다는 듯 키득키득 웃으며 답했다.
-알았어. 그럼 오른손으로 왼쪽 가슴 만져 봐.
"야. 이상해. 역시 이건 아닌 거 같애..."
-상상해 봐. 내가 지금 널 만져주고 있는 거야.
"흐응..."
이혜정이 조심히 몸을 건드려 본다.
아무 느낌 없다. 그냥 내가 내 몸 만지고 있는 것 같다.
이게 뭐가 된다고? 어떤 흥분이나 짜릿한 감각이 안 느껴지는데?
"아무 느낌 없어."
-혜정아. 몸을 편하게 하고 누워 봐. 얼굴 들지 말고. 목이 꺾여서 더 그럴 거야.
시키는대로 침대에 누워 소리에 귀를 열었다.
침구가 주는 부드럽고 푹신한 느낌에 빠져드는 것 같다.
몇 달 째 주인은 없지만, 그래도 꾸준히 청소 관리를 해준 방안에서 무미 건조하지만 은은한 공기의 냄새가 풍겨온다.
"으음."
-손가락으로 유두 끝을 문질러 봐.
"이상해..."
-내가 해주고 있는 거야. 나라고 생각해.
"흠..."
-보일러 올렸어?
"춥지 않게 하고 있어."
-그럼 손가락 끝에 침을 묻혀서 천천히 해 봐.
혼자 자위할 때도 가슴은 만진 적은 없다.
특히 젖꽂지를 애무하는 건 처음이었다.
계속해서 문지르자 이상하게 목덜미 안쪽에서 간질간질한 느낌이 몰려온다.
"간지러워..."
-혜정아. 집중 해. 천천히 다리 들고.
"응..."
-팬티 벗어.
눈을 감고 소리에 집중하고 있으니 뭔가 그가 옆에 있는 것 같다.
이혜정이 골반 끝에 손가락을 걸쳐 스르륵 속옷을 벗었다.
-엄청 젖었네. 싫다고 하더니 역시 몸은 정직하구만.
"뭐래. 니가 뭘 봤다고..."
-혜정아. 난 지금 너 다리를 들었어. 그리고 이제 거기에 키스할 거야. 손가락에 침 묻혀 봐.
그가 다가온다. 뜨겁고 거대한 얼굴이 내 밑으로 온다.
촉촉한 감촉을 느끼고 싶어 이혜정도 손가락에 침을 묻히며 아래로 내렸다.
"으음."
-부드럽게. 나 너한테 배운대로 늘 거기에 키스 할 땐 입에다 할 때보다 더 부드럽게 하잖아.
맞다. 그는 절대 아픈 섹스를 하지 않는다.
이혜정의 손가락이 부드럽게 자신을 만졌다.
언제 그렇게 젖었는지 모르게 그곳이 매끈하고 부드러운 애액이 만져지고 있었다.
"아아~"
-좋아?
"으음. 몰라."
* * *
모니터 속에는 혜정이의 얼굴만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알 수 있다. 얘도 지금 조금씩 느낌이 오는 거야.
"혜정아."
-응...?
"내 말 잘 들리지?"
-응. 이제 어떻게 해야 돼?
오직 그녀의 얼굴만을 보면서, 오르가즘을 느끼게 해줘야 한다.
나의 첫사랑이 다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도 똘똘이 머리를 혜정이 몸에 밀어넣듯 쓰담쓰담 해주며 말했다.
"가운데 손가락으로 클리토리스를 천천히 누르는 거야."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