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물가의 토끼처럼 (8) >
"후진을 양성하라고...?"
역시 무림인은 시각이 다르구나.
뭔가 간결하게 핵심을 파고드는 건 역시 형만이 가진 관점이겠지.
나도 문제점을 지적만 할 게 아닌 해결책을 찾고 싶긴하다.
육상팀도 만들었는데 까짓 거 내가 못 할 것도 없지 않나? 생각들지만.
막상 움직이자니 여러가지 상황들이 발목을 잡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일단 태릉이 걸린다...
태릉 입촌이 이제 며칠 안 남았다.
근데, 선발전을 치르지 않은 선수촌 입촌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니야.
그건 엘리트 체육이라고 할 수도 없어.
이건 특혜야. 특혜는 어떻게 봐도 그들만의 잔치지.
뭐 누군간 어차피 니네가 뽑히는 건 똑같은데 뭐하러 그러냐 할 수도 있겠지만.
아니야. 기회는 동등하게 주어지는 게 맞어.
그래야 나도 세상에 떳떳하게 고개들고 살 수 있다고.
옳은 건 바른 길을 가는 법이니까.
부정적인 배경을 타파하고 싶은데 나한테 득이 된다고 냉큼 따르는 건 진짜 아니다.
"..."
그렇다고 선수촌을 거부하면 어디서 훈련하지?
연세대로 가자니 이제 막 학기 시작한 단계라 쉽지 않을 테고. 이 교수님은 천병욱 아버지 그 이상으로 연맹과 가까운 분이신데...
아무리 나래도 제대로 된 훈련 환경 없이 운동이 될까?
괜한 고집에 이것저것 거부하다 결국 내가 설 지지기반마저 무너뜨리게 되는 건 아닐지...
이래서 사람들이 변화를 원해도 원래로 돌아가는구나 싶어진다.
아. 이럴 때 감독님이라도 옆에 계셨다면.
한구스포츠와 상의하면 뭔가 좋은 방법이 나올텐데...
멕시코로 간다고 하셨는데. 신혼여행을 뭐 얼마나 오래 다녀오려고 그러시는지...
진짜 어디 상담할 분 없나...?
"어른이 되는 게 쉽지 않구나. 나이들면 더 하겠지."
상의할 사람이 선뜻 떠오르질 않는다.
천병욱 아버지나 이현석 교수님. 연맹과 깊은 관계를 맺은 사람들과는 상담이 어렵고.
이두희 감독님? 뭔가 상담드리고 고민을 나누긴 조금 거리감이 있는 분이라 꺼려지고.
정준이 형은 스키 팀이니 육상에서 벌어지는 고민을 나누기 그렇고.
상택이 형은 병특으로 지금 훈련소 들어가 있고...
진짜 누가 없나...?
이렇게 보니, 난 감독님이나 우리 형 말고는 의지할 사람이 정말로 아무도 없구...
"나가 아니구나."
한 분 계셨어.
나한텐 감독님이 또 한 분 계시잖아!!
한주고로 가자.
이주영 감독님이라면 뭔가 새로운 답을 알려주실지도 몰라.
* * *
다음 날. 용인 한주 고등학교로 찾아갔다.
뭔가 오래 되지 않은 거 같으면서도 굉장히 낯설고 그립다는 느낌이 들었다.
"운동장이 굉장히 열악했구나... 처음 시작할 때는 여기도 엄청났었는데."
연세대나 태릉을 겪어보니 한주 고의 시간들이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더 좋은 훈련환경들에 벌써부터 눈과 몸이 익숙해진 걸까?
이래서 내가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을까?
오후 수업이 진행되고 있을 시간이었다.
따로 체육수업을 하거나 훈련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보이질 않는다.
그래도 주차장에 이 감독님 차가 서있는 걸 보고, 지체없이 체육실로 찾아가 문을 두드렸다.
"응. 들어와."
불쑥 모습을 나타내자 감독님도 깜짝 놀라며 반응해 주신다.
"어?! 너?"
"감독님. 안녕하셨어요."
"하하? 어? 마하야. 니가 왜 여깄어?"
"감독님 뵈러 왔어요."
유명한 사람이 뭘 이렇게 기척도 없이 찾아오냐고 한마디 하시는데. 그래도 반가운 표정과 기뻐해주시는 눈빛에 벌써부터 마음에 의지가 생기는 기분이다.
"아하하하! 너 진짜 뭐야? 정말로 여기 있어도 돼?"
"그럼요. 저 며칠 전 들어왔잖아요."
"그래. 금메달 축하한다. 경기 잘 봤다야."
"고맙습니다..."
"근데 뭐야? 축하받는 사람 얼굴이 왜 이렇게 어두워? 앉아라."
안 그래도 축구 대표팀 시축하는 걸 보셨단다.
그래서 지금 바쁘게 여기저기 방송 다니고 얼굴 비추고 있을 줄 아셨다는데.
"그럴 상황이 아니에요..."
"왜? 상률이가 몸값 아끼재?"
"하하... 감독님..."
힘없는 대답에 이 감독님도 목소리가 바뀌신다.
"뭔가 있구나."
"네..."
"흐음. 스트레스를 안고 찾아 온 슈퍼스타 제자라... 하하! 부담되는 걸?"
"감독님... 왜 이렇게 상황이 어려워지죠?"
"뭔데? 무슨 일이냐?"
"..."
얼굴 뵙자마자 걱정거리부터 드리긴 좀 그런 거 같아 괜히 말을 돌리고 있었다.
"근데 왜 아무도 없어요?"
"누구? 우리 애들?"
"네. 오늘 훈련 없는 날이에요?"
"그게 아니라. 내일부터 춘계대회 있어서 다들 지방 내려갔어. 아쉽다. 너 오는 줄 알았으면 애들도 신났을 건데."
"아아~ 아. 4월이지. 그럴 시기가 됐네요."
달력을 돌아보았다.
지난 추억의 뜨거움이 떠오른다.
고3 처음 참가한 춘계대회에서 다빈이도 만나고, 진수나 지성이 진운이와 친해졌었는데.
"근데 감독님은 왜 여기 계세요?"
"난 내일 현장으로 가기로 해서. 어쨌든 난 학교 선생님이랑 직업도 있으니까."
"어? 그럼 애들끼리만 대회 갔어요?"
"아니지. 코치 선생님들이 인솔했지."
"...코치님들도 계세요?"
"아하하! 그럼. 야. 우리 육상부가 인원이 몇인데. 이제 나 혼자 못 해."
지금의 한주 고등학교는 동민이와 내가 훈련하던 경기도의 작은 학교가 아니다.
전국에서 몰려든 육상꿈나무들로 또 다른 강자로 부상했다.
부원들도 백 여명에 달하고, 입학하는데도 까다로운 심사기준이 있다.
거의 체육교등학교 수준이었다.
"우와... 감독님. 성공하셨는데요?"
"크하하하~ 다 니 덕이지."
"에이 제가 한 게 뭐가 있다고."
"야. 지금 3학년 애들은 너랑 반 년 같이 운동했다고 어깨에 힘 장난 아니야."
"그래요? 다행이네요. 애들도 보고 싶은데."
"그래서? 뭔데? 그렇게 위대하신 슈퍼스타가 왜 이런 얼굴을 하고 있는 거냐? 걱정되게."
"그게 참 뭐랄까..."
"말해봐라. 상률이도 없어서 나한테 찾아온 거 같은데."
"감독님 제가요..."
두서는 없지만 그럭저럭 현재 느끼는 문제점들을 말씀드렸다.
연맹과의 갈등. 동민이와의 다툼. 그리고 엘리트 체육의 피폐함까지.
여러 상황을 전해듣자 감독님도 얼굴에 미소가 사라지셨다.
"하나같이 쉬운 문제는 아니구나."
"제가 너무 주제넘게 나서는 걸까요...?"
"동민이랑은 왜 싸운 거야?"
"모르겠어요. 새끼 갑자기 지랄을..."
"야. 그래도 동민이는 내 새낀데."
"저는요...?"
"하하! 넌 상률이가 있잖아."
실업팀 선수인 친구의 입장을 이해 못하고 여러 이야기를 꺼낸 게 애를 화나게 한 거 같다 말씀드리자, 원래 사람은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 하는 게 정상이라고 하셨다.
"상률이랑 나도 서로 이해 못 해."
"...그래요?"
"그럼. 그냥 걔는 그렇구나. 나는 이렇구나 하고 살고있어. 내 시각에서도 그 자식 마음에 안 드는 거 많다."
"하하... 그건 몰랐어요."
"친구끼리 싸우지 말고 잘 화해해라."
"네. 한번 연락해 볼 게요."
"근데, 갑자기 엘리트 체육은 왜 고민하는 거야?"
"..."
"연맹이랑 싸우는 것도 너한텐 같은 이야기겠지?"
"네."
"왜? 누가 뭐라고 했었어?"
"아니요. 그냥... 그게 보기 싫어서."
"뭐가?"
"그냥 뭐. 운동을 괴롭게 하는 모습이라든지. 악습관 같은 것들이..."
"흐음."
"저도 저 잘났다고 이러는 건 아니고요."
"마하야. 일단, 엘리트 체육이 꼭 그렇게 나쁜 건 아니지 않을까?"
예상외의 답변이었다.
깜짝 놀라 이주영 감독님을 가만히 보며 여쭤보았다.
"왜 그렇게 말씀하세요...?"
"너는 지금 생활이 싫어?"
"지금 생활요...?"
"유명세도 있고. 생각지도 못한 주변의 기대나 압박 등. 쉽진 않겠지만 그래도 예전과 지금을 비교해 봤을 때 어디가 더 괜찮다고 할 수 있을까?"
운동을 시작하기 전과 지금을 비교하자면. 당연히 지금이 낫지.
지금은 뭐... 주머니도 부족하지 않고. 섹스나 여자도 그렇고...
하지만 그렇게 나 좋은 것만 따지기엔...
"근데요 감독님. 꼭 그렇게만 말할 수 없는 게"
"엘리트 체육은 이기기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붇는 걸 말하는 거지."
"그래서 문제가 되는 거 아닐까요?"
"승리에 대한 열망이 없다면, 구마하를 향한 사람들의 환호성도 없겠지."
"..."
"엘리트 체육을 부정한다는 건, 너가 얻은 성과도 같이 부정한다는 뜻이 되는 거야."
"그게 그렇게 되나요...? 전 엘리트 체육을 한 사람이 아닌데요?"
"자. 마하야. 내가 요즘 아이들을 보면서 느끼는 게 뭔지 알어?"
선수 그리고 지도자. 그럭저럭 체육계에 인생 절반을 투자하신 이주영 감독님께서 요즘에 와서야 우리나라에 이렇게 운동선수가 꿈인 학생들이 많다는 걸 깨닫고 계시단다.
"학부형은 말 할 것도 없고, 애들도 장난 아니야. 그 사람들은 다 운동으로 성공하면 너같이 살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어."
"..."
"그리고 그러기 위해 모든 것을 걸고 있고."
이건 또 무슨 이야기냐... 어느새 내가 그런 상징이 되어 있던 걸까...?
"저같이 살고 싶어 한다고요?"
"응."
"왜... 왜요?"
"넌 부와 명예 인기. 세상의 인정. 모든 걸 가졌으니까."
팬들이 많다는 건 알고 있었다.
나를 목표로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 내가 부정하는 길을 그들이 걷고 있다면...
"이렇게 말하면 넌 서운하게 들릴 수 있어. 하지만, 지금 너가 내 앞에 들고 온 고민은... 솔직히 일선에서 아이들을 가리키는 입장에선 공감하기 어려운 문제야."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감독님도 성공을 위해 희생을 감수하는 방법을 부정할 순 없는 거라고 하신다.
"너도 어쨌든 운동은 어렵게 했잖아."
"전... 저는 그래도 감독님들한테 맞진 않았잖아요."
"후후. 그렇게 생각해주면 고맙고."
무언가를 관찰하고 이야기를 할 땐 나쁜 면만 보지말고 좋은 면도 있음을 같이 바라보라신다. 그래야 목소리에 힘이 생기고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면서, 이 감독님이 어깨를 슥 두드려 주셨다.
"타파해야 하는 건 맞어. 다른 길을 찾아야 하는 것도 맞고. 하지만 지금 당장 너가 원한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야."
"그렇죠."
"아니면 뭐야? 구마하가 원하니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 이런 거야?"
"아! 아니요. 저도 제가 그렇게 잘났다고 생각하진 않고요..."
"물론, 이건 내가 학생들을 책임져야 하는 지도자 입장에서 이야기지. 체육인의 한 사람으로선 이런 고민을 해주는 게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감독님은 그냥 이중적으로 보고 계시는 건가요?"
"어쩔 수 없잖아. 원래 이상과 현실이 다른 걸 어떻게 일치하고 살어."
그러니 그냥 단순하게 보라고 하신다.
쉽고 간결한 시각이 나를 자유롭게 할 거라면서.
당장은 선수의 한 사람으서 내 입장만 먼저 챙기라고 해주셨다.
"형도 비슷한 얘기를 했어요."
"형님은 뭐라셔?"
"후진을 양성하라고..."
"정답이네."
엘리트 체육이 아니어도, 나 같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은거니. 그 방법을 직접 증명해보이면 된다고 하셨다.
"근데, 장소라든지 현실적인 문제가 걸려요."
"해보고 싶은 마음은 있는 거구나."
"...저도 입으로만 떠들고 싶진 않거든요."
"흐음. 구마하 코치라. 이야~ 생각만해도 대단하긴 하다. 나도 배우고 싶다."
"정말요...?"
"그럼. 우리나라에 세계신기록 가지고, 올림픽이랑 세계선수권 금메달 가진 육상선수가 어딨어?"
"어... 흠."
"그렇지만 마하야. 다르다. 달라."
"애들 가르치는 거요?"
"그래. 너같은 재능가진 선수 만나기가 쉬운 일이 아니야."
"감독님. 저 그래서요."
재능을 육성하고 발굴하기 보다, 당장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강하게 만들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설마. 동민이를 말하는 건가?"
"네."
"흠. 동민이라. 확실히 동민이도 재능은 있지. 하지만 친구끼린데 그게 될까? 뭣보다 넌 당장 태릉으로 가야 한다며?"
대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더 깊은 내막을 알려드렸다.
"그래. 작년에도 선발전 없다는 건 문제 있다고 봤었어. 올해도 똑같이 가는구나."
"그러니까요. 고등학교 선수들 중에도 재능있는 사람들 있을 건데."
"결국 돈 이야기지. 가능성을 보고 투자하느냐. 결실을 보고 바로 수확에 들어가느냐. 나도 박문기 회장의 방침은 찬성하고 싶지 않어."
"연맹이 그렇게 대단한 건가요?"
"이거야말로 어려운 문제야. 진짜 어려운 문제지."
감독님이 대표팀의 이야기를 해주신다.
"상률이같이 태극마크를 달아 본 사람은 다르겠지만, 나는 아무래도 조금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어."
"어떤 식으로 보시는데요?"
"음. 일단 너의 문제에 국한해서 이야기 하자면, 천병욱 전무님과 박문기 회장의 노림수는 같으면서도 다를 거야. 의도까지 일치한다고 보긴 어려워."
"어디서 갈릴까요?"
"두 분 다 널 연맹이 필요한 방법으로 끌어들이고 있지만, 박 회장이 사심이라면 천 전무님은 널 공적으로 어필하려 하시지."
"...잘 모르겠어요."
"마하야. 지금까지 우리나라 육상에서 대표팀의 힘이 그렇게 강했던 적이 별로 없어."
이건 또 처음듣는 이야기네.
"그래요? 대표팀인데요?"
"우리나라 육상계를 비하하는 말도 되지만, 어차피 국제대회를 나가도 경쟁력 떨어지는 거. 선수들이 굳이 뭐하러 대표팀 생활을 해. 당장 나한테 돈 되는 실업팀에 집중하는 게 맞지."
"결국 돈이 문제다...?"
"꼭 그렇게 단순하게 보긴 어렵지만 어느정도 영향은 있겠지. 그런데. 과거와 다르게 이제는 너라는 슈퍼스타가 등장했어. 천 전무님 입장에선 계속해서 선수들에게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줄 상징이 필요하신 거야. 마치 우리 한주 고 애들이 널 목표로 훈련에 임하듯이, 전국 모든 체육선수들에게 너라는 상징을 앞세워 대표팀으로의 갈망을 불러 일으키는 중이겠지."
그렇게 된다면, 바닥에 떨어져 있는 대표팀 이미지도 바뀔 것이고, 자라나는 세대들도 대표팀을 생각하는 마음이 달라질 거라 기대하고 있을 거라 하신다.
"감독님."
"음."
"오늘 감독님 뵈면서 이야기 나눠보니까. 결국 모든 문제가 저한테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 나는 누군가의 꿈이기도 하면서, 목표기도 하고. 수단과 방법이 된다.
"이런 상황이면 제가 더 중심을 잡아야 하는 게 맞겠죠?"
"사람은 언제 어느 때라도 자기 중심을 잘 잡고 있어야 돼."
"역시, 태릉을 거부해야 될 거 같아요."
단호한 목소리에 이주영 감독님이 걱정스레 물어보셨다.
"거부해서 어떻게 하려고?"
"선발전을 열어달라고 하려고요."
불이익이 갈 수 있다고 하셨다.
내가 정론을 펼치더라도 어른들은 자기 입장이 더 중요하니까.
"이미 생각이 막힌 어른들은 큰 뜻이 아닌 자기 체면을 먼저 따질 거야."
"괜찮아요. 형이 저도 어른이라고 했어요."
"후후후. 믿는 길을 가보고 싶다?"
"네."
"힘내라. 선생님은 늘 널 응원해줄게."
"고맙습니다."
한주 고에서 나와 천병욱 아버지께 연락을 드렸다.
"네. 아버지."
"하하~ 그래. 마하야. 푹 쉬고 있니?"
"아버지..."
"그래. 왜 그러니? 무슨 문제 있어?"
"저. 진짜 아버지 아들 된 거 맞죠?"
"그럼. 왜 그러는 거야 걱정되게."
"저... 꼭 대표팀 들어갈게요. 그리고 메달도 왕창 따서 아버지 목에 다 걸어드릴게요."
"마하야. 무슨 일이냐? 너 지금 어딨어?"
"대신, 한 가지만 부탁 드릴게요."
"뭔데? 감독은 지금 구하고 있고."
"감독님보다, 선발전을 꼭 열어주세요."
천병욱 아버지도 한동안 말씀이 없으셨다.
"그게 무슨 소리야. 당장 입촌이 다음 준데...?"
"부탁드릴게요."
"인석아. 선발전이 그렇게 쉽게 열리는 것도 아니고. 경기 일정이라는 것도 있고. 올해는 벌써 일정이."
"어차피 아시안게임 11월이니까 8월이나 9월이면 시간 충분하지 않으세요?"
"..."
"아버지..."
"후우..."
스키에서 벌어진 논쟁을 잠재운 것도 내가 스키 선수 선발전을 치러 실력으로 나를 증명했기 때문이었다.
선발전이 열려야 한다.
반드시.
모두를 위해서.
"진짜 그래야 된다고 봐요. 이대로가면 이겨도 이기는 게 아닐 거 같아요."
"후우... 일단 회장님한테 말씀은 드려보는데, 다음 주 입촌은 예정대로 하고"
"선발전이 열리기 전까진 저 절대 태릉 안 갈 거에요."
"그건 또 무슨 소리냐..."
"죄송해요. 진짜 죄송해요 아버지. 근데, 아버지 저 아들이니까. 아들 고집 한번만 들어주세요. 끊을게요. 부탁드려요! 제발요!! 꼭 성과로 보답 드릴게요!!"
"마. 마하야! 마하야!!"
자. 일단 끊고. 오는 전화도 막고.
"후우..."
전주로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