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피니 나비가 모이는구나 (2)
우리 한구 스포츠는 나와 관계된 업무가 팔 할을 넘는 관계로, 내가 휴가를 떠난 김에 감독님도 통 크게 한 달 휴가를 계획하고 신혼여행을 가셨다.
태평양 연안 카리브해에서 새신랑과 새신부는 즐거운 시간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미국 ESPN 방송을 보셨는데, 광란의 3월이라 불리는 NCAA 전미 대학 농구 대회가 진행되고 있었단다.
"그래서요?"
"멕시코에서 한 달간 뭐 하냐. 바로 와이프랑 짐 챙겨서 미국으로 넘어갔지."
"허우... 돈 많으시네요."
"하하! 다 니 덕이지."
한구 스포츠는 엄밀히 스포츠 매니지먼트 회사였다.
그리고 우리 감독님은 자본주의의 끝판왕이라 불리는 미국에서 스포츠 시장을 목격하셨다.
꿈이 보이셨단다. 진짜 사업이 뭔지 이번에 알게 되셨단다.
마침 4월이 되자 MLB까지 개막해 한국에서 접하기 어려운 다양한 것들을 보고 느끼셨다고 해 주셨다.
"먼저 NICE에서 만났던 사람 있지? 본사에서 나왔다던."
"제이슨이요?"
"어. 그분이랑도 자주 만나고."
"아, 그럼 연락을 해 주시죠. 우린 다들 감독님 어떻게 된 줄 알고 걱정하고 있었잖아요..."
"일도 있었지. 소매치기도 당하고 여권 핸드폰도 잃고 그랬었어."
"살아 계시는 게 다행이네요."
"그럼. 총 안 맞은 게 어디냐. 하하! 넌 어떻게 지냈어?"
"저도 정신없었어요."
"니가 정신없을 게 뭐 있냐. 운동만 하는 녀석이."
"감독님 저 대표 팀 안 들어갔어요."
"그건 또 뭔 소리야?"
주변에 이현석 교수님이나 연맹이 있다 보니. 아무런 걱정을 하지 않으셨었단다.
"혼자 운동하고 있었다고?"
"완전 혼자는 아니고요. 전주 내려와서 동민이랑 같이 있었어요."
"야. 그래도 선수들끼리 그게 되나... 코치가 있어야지. 정준이는...?"
"일부러 전화 안 했어요. 정준이 형도 지금 새로운 애들 만나서 전지훈련 준비 중이다 보니까. 상택이 형이랑은 통화했는데. 그쪽도 뭐."
"하긴, 거긴 설상이라 입장이 조금 다르긴 하겠네."
연맹이나 대학의 도움 없이 홀로서기를 했고, 박문기의 꼬장에 대회는 출전하지 못했지만, 대신 동민이가 이번에 진수를 꺾는 쾌거를 보여 주었다고 말씀드렸다.
"정리하자면, 니가 지금 선발전 걸고 총대를 메고 있다 이거구나."
"네. 뭐 딱히 나서자는 건 아니고. 그냥 주변을 봐도 그게 맞는거 같더라고요."
"허허... 너도 참..."
"저도 감정적으로 나선 건 아는데요..."
"아니야. 잘했어. 그렇게 나와야 내 새끼지. 잘했다 이놈아! 칭찬해 줄게!!"
역시 우리 감독님이다.
주변 어른들 다 뭐라고 하는데 유일하게 날 이해하고 받아들이 신다.
정말 자유로운 영혼이 아닐 수 없다.
이주영 감독님이 말씀하셨던 한 감독님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라는 게 뭔지 알 것도 같아.
이런 분이 어떻게 학교 선생님을 하고 있었을까?
하긴, 나도 운동선수가 됐는데. 인생 어디로 흘러갈지 누가 알겠냐.
"동민이는 얼마나 잘했다는 거야?"
"일단 단거리로 돌아오라고 했고요. 10.17인가 나왔어요."
"동민이가!?"
"네."
"이야... 원래는 얼마였는데?"
"자세히 기억이 안 나는데, 마지막이 얼추 10초 후반이었다는 걸로."
"야 그럼 나라도 너한테 대표 팀 맡으라는 소리 나오지."
"감독님. 솔직히 동민이가 그렇게 운동 열심히 하는 게 아니었잖아요. 그냥 지 운동 지 역량만큼 했을 뿐이죠."
"거기까지 사람을 몰아세우기가 어려운 거야. 그게 안 되니까 코치들이 애들을 들들 볶는 거고."
"전 딱히 몰아세우진 않았는데."
"허허허. 하여간 대단한 녀석. 너도 고생이 많았구나."
감독님이 상황을 정리해 주셨다.
피차 떨어진 상황이었지만, 우리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큰 발전을 이뤘다는 걸 기쁘게 받아들이자고 하셨다.
"난 제대로 사업이라는 걸 마주하게 되었고. 넌 선수를 넘어 지도자를 경험했으니. 얼마나 좋은 일이냐."
"해석 장난 아니네요. 하하하..."
"그럼. 뭐든 긍정적으로 봐야지 않겠어?"
"맞습니다. 그럼 감독님은 계속 미국에 계시는 거세요?"
"아니. 말했잖아. 이번에 스포츠 시장을 봤다고."
감독님은 배운 것을 단지 지식에 남기지 않고 실행에 옮기고 계셨다.
가능성이 보이는 선수를 발굴하여 후원하고 서포트를 만드는일.
현재 한구 스포츠엔 나도 있고, 정준이 형이나 상택이 형들도 있지만, 그쪽은 어디까지나 나를 서포트 하기 위해 맺어진 계약들.
이번엔 새롭게 선수 하나를 더 들이실 예정이었다.
"그래서 자메이카를 가셨다고요?"
"응."
"거긴 또 어떻게...??"
"다 근처에 붙어 있으니까. 멕시코 미국 자메이카. 온 김에 돌아야지. 하하!"
"이야~ 감독님? 국제적으로 움직이시는데요. 하하!"
"말했잖아. 놀고 있던 건 아니었다고."
"근데 왜 자메이카로 가셨어요? 거기 아는 애가 누가 있다고."
"큰 친구가 있지."
"어. 설마?"
"맞아. 니 친구. 유진 볼트가 생각나더라고."
아테네의 찐따들 중 하나였던 흑인 유진볼트.
유진이는 선수층이 두껍기로 소문난 자메이카에서도 열여섯이란 이른 나이에 대표 팀에 선출되어 2004 아테네 올림픽을 나왔다. 가히 미친 재능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스포츠는 어딜 가나 승자 독식의 세계다.
미친 재능이라 하더라도 유진이의 환경이 그리 좋은 건 아니었다.
"그래서 킹스턴으로 왔는데."
"유진이는 좋다고 그래요?"
"마하야 들어 봐."
지금까지는 안부 전화고, 이제부터가 감독님이 나에게 전화를 건 용건이 시작됐다.
"걔가요...?"
"응. 이대로면 운동을 포기해야 될 상황이 될 수 있어."
"어... 작년에 핀란드에서 봤을 땐 그런 건..."
"근력이나 성장 등 여러 가지 문제가 꼬인 상황이라 봐야 되겠지."
아테네 때도 유진은 나보다 훤칠하게 큰 키를 가지고 있었다.
녀석이 현재 척추 측만증으로 운동을 포기할지도 모를 상황에 놓여져 있었다.
척추 측만증은 외과 수술로만 해결할 수 있는데 그런 큰 수술을 했다간 선수 생명이 끝나고 만다.
감독님은 형이 나를 치료했던 기와 내공을 떠올리셨단다.
"마침. 이 친구도 어디 기댈 곳이 없었는지 반가워하는 눈치더라고."
"저도 보고 싶네요. 근데 감독님. 그럼 형이 그쪽으로 가야 하는 건 아니죠?"
"아니지. 유진이를 한국으로 보내야지."
"감독님도 같이 오시고요?"
"그래서 말인데. 난 아직 여기서 할 일이 남아 있어. 기업 미팅도 있고, 너 PR도 있고."
"흠."
"형님한테 한번 여쭤봐. 된다면 비행기 표 끊어서 한국 보낼 테니까."
6월엔 나도 대회가 있다.
국제 대회고. 실전을 치른 지 오래라 경기 감각을 끌어 올려야 하지만.
그래도 유진볼트가 아닌가.
머저리 사총사와 다 같이 브라운의 파티도 참석하고 웃고 떠들던 그 미소를 생각하자면...
"알겠습니다. 일단 보내세요."
"형님께 안 여쭤봐도 되는 거야?"
"그럼요. 제 친구라고 하면 형 뭐라고 안 해요."
유진이를 떠나서 당장은 진수나 지성이의 요청을 거부할 명문이 생겨 좋았다.
연맹과의 관계나 친구들의 입장 등. 여러 가지를 따져 볼 때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될 것 같다.
그나저나 큰 손님이 오는구나.
잠은 어디서 재우지? 마포 집에 데리고 가자니 거긴 혜정이가 있고.
어차피 형이 나서야 하는 이야기니까 성남에 숙소를 하나 구해야겠다.
유진이 이 자식 키 커서 맞는 침대가 있으려나?
일단, 움직여야겠다.
민구 형한테 돌아와 인사를 남기고 안동을 떠났다.
"올라간다고?"
"네. 누가 좀 온다고 그래 가지고요."
"그럼 학교에서 보냐?"
"학교요...? 아 학교 나도 가고 싶은데..."
"다음 주 축제야. 꼭 와라. 너 진짜 이렇게까지 밖으로 돌면 그건 그거대로 서운하다."
"알겠어요. 형 교수님은 어디 계세요?"
주변에 인사를 남기고 차에 올라타 성남으로 출발했다.
가는 길에 정수한테 연락이 온다.
"그러냐? 지금 전주 가고 있다고."
"네. 형 어디세요?"
"난 지금 성남 가는 길."
"네? 어... 그럼 중간에 내려서 돌아가는 버스를..."
"하하! 아니야. 형 누구 만나서 일 보고 다시 내려갈 거니까 동민이랑 같이 운동하고 있어."
정수는 중간고사 마치고 일주일 출석 채우더니 다시 내려와 운동을 하겠단다.
실제로 이번에 변화된 몸과 체격을 보면서 애가 자신감이 많이 붙은 것 같다.
어른들도 어디 가서 방탕하게 지내는 게 아니다 보니 니 맘대로 하라면서 반찬까지 싸 주셨단다.
"고맙네. 어머니한테 전화 한번 드려야겠다. 냉장고에 넣어 놔."
"에이 됐어요. 우리 사이에 뭘 그렇게까지."
"정수야..."
"네?"
"아니다. 집 잘 보고 있어."
"형 그냥 말씀하세요. 뭐 시킬 거 있으면 얘기하고."
"아니. 집에 먹을 거 없다고. 우리 맨날 사 먹어서."
"아~아. 걱정 마세요. 아빠랑 형이 용돈 줬어요."
다른 게 아니라 '우리 사이에'라는 말이 뭔가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정석이와 나는 친구지만, 형제간에도 뭔가 깊은 관계가 형성되었다.
늘 외로웠던 나였는데... 언제 이렇게 주변에 사람들이 많이 생겼을까.
이번 동민이와의 시간도 그렇고. 새롭게 같이 운동하고 싶다고 말하는 진수나 애들도 뭔가 전보다 더 밀접한 사이가 된 것 같고.
축제하니까 꼭 오라고 한 민구 형의 이야기나 멀리 해외에서 아픔을 가지고 도움을 받으러 오는 유진이까지.
형이 말했던 나의 문파를 만들라는 게 이런 뜻인가.
사람이 많아지니 번거로운 것도 있지만, 한편으론 가슴이 든든해진다.
"후후후. 형한테 말하면, 무림에선 다 그러고 산다고 하겠지?"
형이 장사를 하며 자신의 일가를 만들었듯이, 나도 운동계에 나의 일가를 만들고 있구나.
* * *
3일 뒤. 인천 공항. 형과 함께 유진이를 맞이하러 공항에 나갔다.
"흑인 친구라고?"
"어. 형도 아테네에서 봤어. 나랑도 같이 뛰었잖아."
"몰라. 그렇게까지 세세하게 기억나진 않아."
형은 유진이를 치료해 주기로 했다.
다만, 형의 능력이 되는 선에서의 이야기고. 동양인과 서양인은 기본적으로 체질이나 기의 구성이 다르기에 안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염두해 주었다.
"그건 내가 어떻게 해 볼게."
"그나저나 감독님도 조금 의외긴 하다. 그냥 우리 능력을 받아들이신 건가?"
"감독님은 그 부분에 있어선 의심을 하지 않으셔."
"열린 사고를 가지고 계시는구나."
한참 수다를 떨다 보니 플로리다행 비행기가 도착했다는 소식이 들어온다.
"나오겠다."
"어우 어색한데..."
"하하! 형이 어색할 게 뭐 있어."
"야. 난 영어 같은 걸 진짜 몰라."
"됐어. 내가 가운데서 통역하면 돼."
그리고 저 멀리 유진이가 한국에 도착했다.
시커멓고 삐적 마른 녀석이 손을 번쩍 들며 반갑게 인사를 건네고 있다.
"Hey~ MAHA!"
"브로!!!"
"...마하야. 저 친구냐?"
"어. 형 잠깐만."
스테판이 이런 기분이었겠구나.
브라운은 엄밀히 회사 간의 일 때문에 한국을 찾았다 만난 거지. 이 친구는 나를 보러 해외에서 찾아왔다.
내 손님인 것이다.
그것도 부상을 해결하기 위한 간절함을 안고.
"으하하! 마하!"
"이야! 니가 한국을 오다니!!"
"갑자기 미스터 한이 나타나서. 내 몸을 치료할 수 있다고!!"
우리는 커다란 반가움을 서로를 으스러져라 끌어안는 것으로 표현했다.
"근데 진짜 되는 거야?"
"설명이 조금 필요한 일이긴 한데."
"뭔데? 설마 약은 아니지?"
"하하하! 이 자식이. 가자. 우리 형 소개시켜 줄게."
형도 유진이와 굳건한 악수를 나눴다.
유진이도 내 형이란 말에 존경심을 가진 예의 있는 몸짓을 보여주었다.
"니... 니 친구라고...? 정말로...?"
"아 왜 떨어. 형 그냥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편하게 하라니까. 내가 다 번역해 줄 수 있다고."
"야 그게 아니라... 너 정말 이 친구 치료해 주고 싶은 거 맞지?"
"왜?"
"세상에 이런 사람이 진짜 있구나..."
유진이는 싱글벙글 우리를 보며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해 하고 있었다.
"이 친구는 아마 지금 무림에 던져놔도 무림 서열에 자기 이름을 올릴 수 있을 거야."
"...그게 무슨 뜻이야?"
형이 말했다.
만약 치료가 잘되어 유진이의 내외공이 정상 궤도에 오르게 된다면.
현세에선 그 누구도 유진 볼트를 이길 수 없을 것이란다.
그것이 나라고 할지라도.
"마하. 브라더가 뭐라고 하시는 거야?"
"어... 너 강해 보인데."
이렇게 칭찬에 약하고 수줍어하는 놈이 그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허허. 이거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