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일은 좋은 일이 생기면 좋겠어 (5) >
"아아~ 으음~"
겉모습만 그럴싸하지 방음이 전혀 안 되는 펜션이었다.
윗층에서 들려오는 야릇한 소리는 점점 더 또렷해져 갔다.
이혜정은 소파에 누워 두근두근 쥐죽은 듯 누워있었다.
민혜 선아 그리고 자신. 세 사람의 우정이 생각났다.
셋이 모이면 한 사람은 주로 들어주는 역할을 맡고 둘이 떠드는데, 민혜가 그런 편이었고 자신과 선아가 토크쇼를 펼치는 편이다.
거기서도 선아는 더 애교가 많고 분위기를 주도하는 친구였다.
늘 귀엽고 방방 뛰기만 하던 애가 저런 소리를 내다니...
어딘가 속상하기도 하면서 마치 자신이 그들과 한 자리에 있는 듯한 상상력이 더해지고 있었다.
"엄청 젖는데? 왜 이러는 거야?"
"아 몰라... 그런 소리 하지 마."
그래. 이정석 쟤는 왜 저런 소리를 하는 거야... 선아 부끄럽게.
소리는 점점 더 노골적으로 변해갔다.
한참 이불이 부스럭 거리더니, 추릅추릅 쪽쪽 거리는 애무소리가 들려왔다.
그럴수록 선아의 소리도 더더욱 커졌다.
"하아~ 앙~"
"목 괜찮아?"
"응. 아아~"
대체 뭘 하길래 목이 괜찮냐는 말이 나오는 거지?
이정석 쟤도 남자는 남자구나...
그리고 우리 선아도 여자였구나...
가끔 두 사람 관계를 상담해준 적이 있었다.
너무 모텔만 가려 하는 거 같다. 아직은 하는 게 좋은 지 잘 모르겠다.
그랬던 애가 어느새 저렇게...
"할까?"
"응... 근데 있어?"
"있지. 아까 구마 차에서 가지고 왔어."
하... 한다... 선아랑 정석이가 진짜로...
그때부터 살 부딫히는 소리와 함께 선아의 신음소리가 작아지기 시작했다.
"으음."
"괜찮아. 애들 잔다니까."
"흐음 그래도. 응~~!"
이혜정은 정석이를 생각해본다.
선아는 늘 정석인 보는 것과 다른 애라는 했었다.
형이라 그런가 행동도 의젓하고, 남들이 볼 때는 마냥 웃기고 헛소리하는 애 같아 보여도, 둘이 있으면 다정다감하고 짜증이나 투정도 잘 받아주는 어른스러운 면이 있다고 해줬다.
오늘 실제로 두 사람과 아침부터 함께 다니다 보니 그 말이 뭔지 알 것 같았다.
우정과 사랑의 관계를 구분할 줄 아는 사람. 진짜 나에게 소중한 것이 뭔지 더 집중해줄 수 있는 사람.
외면이나 직업 학력이 아닌 사람의 됨됨이를 따졌을 때, 그는 충분히 여자를 만날 자격이 있었다.
그랬던 두 사람이 지금 사랑을 나누고 있다.
귀엽고 친근한 내 친구를 여자로 만들고 있다.
이혜정은 혼자 허벅지를 문질거리며 외로움을 꾹 달래야만 했다.
"하아 하아~"
선아의 소리에 맞춰 이혜정도 두 다리를 꾹 오므린 채 손을 넣고 있었다.
누구나 섹스 스위치가 있다. 그리고 이런 스위치는 개인의 성적가치관에 기반한다.
밖에서 보는 것과 다르게 이혜정네 집안은 그리 화목한 편이 아니다.
매번 큰 사업에 도전해 실패하는 아빠. 그런 아빠를 못 마땅해 하는 엄마.
그녀가 이른 나이에 남자친구들과 관계를 가진 건 단지 개인의 일탈이 아니었다.
이혜정에겐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그 자체가 하나의 스위치였다.
그래서 그녀는 늘 평범한 관계를 꿈꾸고 있었다.
평범한 행복. 평범한 만남. 평범한 연애.
가끔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 구마하 채민서와 같은 위험한 관계에 선뜻 뛰어들 때도 있지만, 아무쪼록 이혜정은 자신의 선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 왔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같이.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를 너무나도 잘 알고. 그런 두 사람이 행복에 빠져 사랑을 나누는 이런 순간이 닥쳐오면 그녀도 더는 견딜 수가 없을 만큼 욕망이 피어오른다.
"흐음..."
윗층에서 들려오는 격렬한 소리에 맞춰 이혜정도 입술을 질근 다물고 자신을 만지고 있었다.
사랑하고 싶다.
사랑받고 싶다.
인간이라면 당연하게 느끼는 본능에 그녀도 결핍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하아 하아 너무 좋아~ 딱딱해."
"그래? 요즘 운동을 해서 그런가? 하하!"
안되겠다. 봤을 때 금방 끌낼 분위기가 아니야...
무엇보다 왜 쟤들 때문에 내가 이러고 있어야 돼...?
이혜정도 정신을 붙잡으며 주변을 둘러본다.
밖으로 나갈까?
하지만, 이 시간에? 이 어두운 숲속에서? 나가면 춥고 또 나갔다 들어오는 것도 싫어.
그럼 화장실로 도망가? 아니야. 그것도 이상해... 화장실 가서 뭐한다고. 변기에 앉아 시간 보낼 것도 아니잖아.
다시 TV를 켤까? 아니면 그만 하라고 소리쳐?
근데, 그랬다가 선아가 부끄러워지면 너무 미안해지는데...
결국 피할 수 있는 곳은 한 군데 밖에 없었다.
드렁드렁 코 고는 소리가 들려오는 1층 침대 방.
구마하가 있는 곳.
"잘 잔다..."
이혜정은 이불을 꼭 끌어안은 채 커억 커억 숨이 넘어가라 잠들어 있는 구마하를 보았다.
커다란 몸으로 더블 침대를 독차치 하고선 혼자 잔다고 팬티만 입고 누워있는 그를 보자니 괜히 열불이 터져나왔다.
"..."
근데, 진짜 몸 좋다. 오랜만에 봐서 그런가... 더 뭔가 그런 게 느껴지는 거 같애.
어두운 밤빛에도 구마하의 신체는 건강함과 매력을 감추지 못했다.
긴 팔다리와 커다란 어깨. 빵빵하게 올라선 가슴과 거북이 등짝을 연상시키는 복근.
누워 잠들어 있는 이때도 성이 난 듯 갈라진 허벅지와 다리 등을 보고 있노라면 이혜정은 괜시리 침이 꼴깍 넘어가고 몸이 뜨거워지는 기분이 느껴진다.
"아니야. 이건 쟤들 때문에 내가 지금 좀 흥분해서 그러는 거야..."
이혜정은 나직히 혼잣말을 꺼내며 침대로 가 구마하를 툭툭 건드렸다.
"야. 옆으로 좀 가 봐."
"커억 컥~"
"아 빨리. 밖에 추워. 나 여기서 잘 거야."
말도 안 되는 생때와 투정이라고 생각하지만, 원래 침대 쓰기로 했던 건 자신이니까 어느정도는 합당한 요구가 아닐까?
그런데 구마하도 컥컥 코를 고는 가운데 옆으로 돌아 누워 침대에 공간을 열어준다.
"너 깼어?"
"크어어... 크어."
"나 여기서 잔다?"
자는 거야? 깬 거야? 도무지 반응을 모르겠네...
이혜정은 가지고 온 이불을 덮으며 침대 옆에 슬며시 누웠다.
일부러 등을 마주보고 옆으로 눕는다.
조용히 눈을 감고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그런데 구마하도 잠든 자세가 바뀌어 그런가 코 고는 소리가 잦아들고 색색 거리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
조용해진 방 저 밖으로 아직도 두 사람의 사랑의 소리가 흐릿하게 들려왔다.
아니 밖에서 들려오는 게 아니라 천장에서 내려오는 건가...?
뭐가 됐든 내일 쟤들 얼굴을 어떻게 보나... 왜 거기서 잤냐고 하면 추워서 들어왔다고 하면 되려나?
미치겠네... 쟤들 때문에 이게 뭐야... 사람 염장지르는 것도 아니고...
근데 정말 너무 오랫동안 안 하긴 했어...
마지막이 대체 언제야...? 마하랑 민서랑 미친 밤을 보낸 게 마지막이잖아...
알바에 학교 생활에. 바쁜 서울 살이에 적응하다보니 사랑도 연애도 귀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그렇게 맘에 드는 상대방을 보질 못 했다.
생긴 게 괜찮다 싶으면 딱 봐도 바람둥이였고, 성실한 사람이다 싶으면 다른 외적인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모든 기준을 새로이 바꾼 건 바로 여기. 이 덩치 큰 놈. 이 말 같은 놈.
"으이그..."
이혜정은 괜히 이불을 퍽 차며 짜증을 부린다.
진짜 누구를 만나든 얘랑 비교 할 수 밖에 없어...
먼저 잠깐 썸 있었던 이도형이 그나마 괜찮았지만, 그 백설 언니라는 사람과 관계 있던 거 보면 뭔가 찜찜하고. 단지 섹스나 하자고 아무나 만나는 건 진짜 아니고...
그건 학교에서 짧게 만난 애랑 깨질 때도 느꼈잖아...
그렇게 어영부영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혜정도 사람인지라 어쩔 수 없는 호르몬에 이끌려 가끔 그런 게(?) 당기는 날이 있다.
그럴 땐 구마하가 선물해 준 장난감(?)으로 혼자 기분을 달래곤 했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지.
내가 얼굴이 없어 무슨 흉이 있어.
상대도 없이 혼자 드라마나 영화로 기분을 낸다는 건 생각보다 쓸쓸하고 외로운 지라 자위도 멈춘지 오래 됐다.
"야?"
이혜정은 자세를 돌아누워 구마하의 뒷퉁수에다 대고 자그마하게 묻는다.
"넌 말로만 나 좋다고 그러지? 실제론 운동이 더 좋지?"
이기심을 부리자면 이런 말을 해보고 싶다.
다 그만하고 내 옆에 있으면 안 돼? 넌 메달도 땄고 사람들 인정도 받았잖아.
너도 지금 힘들다면서. 무엇보다 사랑받고 싶었다면서 울었었잖아...
너 여자 막 만나고 다니는 거 왜 그러는 지 알어. 외로워서잖아.
내가 사랑해줄 수 있어. 그 외로움 내가 채워줄 수 있어.
대신, 너도 그만큼 나한테 집중하고 나만 봐줘야 돼.
그것이 이혜정의 본심이다.
그러나 이것은 개인의 이기적인 마음이기에 전달될 수 없다.
무엇보다 이기적인 마음을 덜어내고 그를 보자면.
"머리 길으면 더 괜찮을 건데..."
이혜정은 손을 들어 구마하의 뒷통수를 쓰다듬는다.
형제인 구마윤을 제외하면 구마하의 과거부터 현재까지를 제일 잘 알고있는 사람은 이혜정일 것이다.
정말로 작고 외소한 애였었다.
엄마는 형을 보면 동생도 언젠가 멋있어 질 거라곤 했지만, 그 말이 현실이 되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필요했었다.
그리고 그는 동년배 누구보다 찬란하고 빛나는 사람이 됐다.
지금도 자기 꿈과 확신에 찬 몸짓으로 인생을 개척해 나가고 있다.
그런 모습이 좋다. 그건 누가봐도 멋있다고 할 수 있는 삶이니까.
개인의 성공을 넘어 자신이 속한 사회와 누군지도 모를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기대치를 충족시켜주려고 애쓰고 인물.
뭐라 할 수 있겠는가?
결국 성공한 사람의 인생이라는 게 다 그런 것이거늘...
그 순간, 낯선 손길이 느껴져 그런지 구마하가 천장을 보며 눕는다.
이혜정은 베게 높이가 안 맞아 푸우 푸우 입으로 숨을 쉬는 구마하를 지켜보다 머리를 편하게 맞춰주었다.
그러자 구마하의 코 고는 숨소리가 잦아든다.
이혜정은 자리에서 일어나 가만히 구마하를 지켜보았다.
"..."
그리곤 가볍에 입을 맞춰 본다.
그 순간 구마하가 음? 하면서 눈을 떴다.
"응? 뭐야...?"
"..."
"누구야...?"
"나야."
"...혜정이? 너 여기서 뭐해?"
"자려고. 밖에 추워서 들어왔어."
"어. 그래? 어. 어어..."
구마하는 꿈벅꿈벅 주변을 둘러보다 스륵스륵 몸을 일으켰다.
"왜 일어나? 자 그냥."
"여기서 자라고. 내가 나갈 게."
"나가지 마. 있어 그냥."
"응?"
"그냥 있어. 괜찮으니까."
"어. 어어."
아무리 스포츠 영웅이라 하더라도 잠결에 뭔가 하라면 귀찮은 법이다.
있으라고 하니 구마하는 침대 옆으로 슬금슬금 몸을 움직여준다.
"그러니까 내가 거실에 있는다니까..."
"너 거실에 있었으면 더 큰일 났지."
"...왜?"
"선아랑 정석이랑 해."
"뭐? 아 저 미친새끼..."
"욕하지 마. 뭐 어때."
구마하가 꿈벅꿈벅 눈을 뜨다 그냥 다시 잠드는 자세로 돌아누우며 말했다.
"그래서? 너도 하고 싶어서 온 거야?"
"야..."
"난 괜찮아."
"..."
"하고 싶으면 해. 나야 좋지 뭐."
히죽 웃으며 농담삼아 던진 이야기.
그런데 이혜정의 손이 구마하의 몸에 닿았다.
"진짜로...?"
어이고 이거 자다가 웬 날벼락이냐?
구마하는 또 한번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제는 거의 잠이 깨는지 목소리가 점점 더 또렷해져 갔다.
"좋아하는 애가 하고 싶다는데 싫은 게 뭐 있어."
"..."
"근데 진짜 둘이 하고 있다고? 어디서? 거실에서?"
"아니. 위에서..."
"흠."
구마하도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는데, 정말로 천장에서 쿵쿵 하는 소리와 함께 선아의 가느다란 신음이 흘러들어온다.
어엿한 섹스 마스터가 된 구마하의 머릿속에 두 사람이 분위기가 그려진다.
이제는 둘이 있는데 너무나도 태연하고 자연스러운 이정석과 김선아.
사귄지 꽤 됐으니, 당연히 섹스야 하고 지내겠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그 장면을 직접적으로 접하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정석이는 버리고 선아의 몸짓과 교태스런 목소리가 빠르게 야릇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그만큼 구마하의 하반신에도 피가 몰려들었다.
"흠."
이혜정도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문 밖을 보고 있었다.
구마하는 에라 모르겠다 하는 마음에 물었다.
"혜정아. 손 줘 봐."
"응?"
"빨리."
이혜정은 모르는 척 구마하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리곤 그가 팬티 아래로 슬금슬금 자신의 손을 가져가는 것을 가만히 따른다.
손 끝에 그가 닿았다.
뜨겁고 단단한 열이 전해지자, 그녀의 볼도 빨갏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구마하는 피식 웃으며 팬티를 내렸다.
"나도 잠결에 일어나서 뭔가 하기는 어렵고."
"..."
"그냥 꿈이다 생각하고 있을 게."
"......"
구마하는 다시 잠이 든 듯 눈을 감았다.
이혜정은 자신을 다 맡기곤 맘대로 하라는 식으로 누운 그를 지켜보며 황당함을 느낀다.
그러나 황당한 속마음과 별개로 그녀의 가느다란 손가락은 뜨겁고 단단한 기둥을 교차로 잡아들고 있었다.
그리곤 부드러운 피부 촉감을 느끼며 천천히 위 아래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만지면 만질수록 그것은 더 뜨거워지고 더 커지는 것 같다.
역시... 대단한 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