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댄스 (5)
"기분이 어떠냐?"
"뭐가. 헉. 허억."
"9초 93. 신기록이잖아."
"꺼져. 세계 기록이 놀리냐?"
"이 새끼. 왜 이렇게 삐딱하게."
"닥쳐. 멘탈 나갔다면서 9.88을 찍어?"
결승전을 앞두고 잠시 쉬는 시간. 동민이를 찾아왔다.
막상 대기록을 달성한 녀석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다시 시합을 준비하고 있다.
몸이 이글이글거리고 있었다.
200m나 팀 계주 등. 다른 종목에 출전하는 우리와 다르게 전주 시청 명찰을 가슴에 짊어진 동민이는 오직 100m 하나만 보고 있어 남은 게임에 모든 것을 쏟아부을 예정인 것 같다.
몇 번이나 숨이 넘어가라 훈련하더니 이제 자기 힘을 쓸 줄 알게 된 건가?
친구가 이렇게 든든하고 의지 되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중학교 때 김태윤을 만났을 때도 이런 기분이었는데.
"힘내자."
"당연하지! 넌 뒤졌어."
"하하하! 이 새끼."
"마하야."
"어?"
"잘해라."
"그래. 너도."
동민이의 시합이 기대되는구나.
내가 뛰는 경기인데도 기대가 돼.
응원을 하면서도 한편으론 지고 싶지 않다는 승부욕이 꿈틀거린다.
한국에서도 이런 경기를 할 수 있게 되다니. 역시 스포츠는 멋있다.
"음? 지성아. 어디 가냐."
"네. 형. 화장실 좀."
"또? 너 아까도 화장실 가는 거 같던데."
"아니 그냥. 물을 많이 마셔서."
그리고 여기 동민이 말고도 또 한 명. 승부욕에 불타는 녀석이 있다.
지성이의 표정이 바뀌었다.
진수도 아니고 늘 자신보다 몇 단계 아래라 생각하던 선수한테진 게 생각보다 분했는지, 애가 시합을 마치고 난 뒤로 표정에 긴장감이 어리고 있었다.
"동민이 형 보고 와요?"
"어. 새끼 가서 얼굴 좀 보고 오니까 꺼지라고 막 지랄지랄을."
"형은 좀 어때요?"
"괜찮아. 좀 나아졌어."
"동민이 형... 대단하네요. 일부러 분위기 띄우려고 그러는 줄 알았는데."
"원래 한다면 하는 놈이잖아."
동민이가 불이라면 지성이는 물이구나.
저쪽이 이글거리는 내공을 가졌다면 여기는 차가운 힘을 가지고 있다.
지성이 몸에서 은은하게 뿜어져 나오는 푸른 빛을 보았다.
감정은 분하나 그런 와중에도 냉정 침착함을 유지하고자 하는 의지가 힘을 각성시키는 것 같다.
얘가 왜 강한 선수들 앞에서 미리 겁먹고 굴복하는지 조금 이해가 된다.
보통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투쟁보단 자기 발전이 더 성과가 높다고 형도 그랬었지.
"지성아. 긴장하지 마. 하던 대로 하면 돼."
"후우... 그래야죠."
"한숨 쉬지 말고 새끼야. 천하의 권지성이 약한 모습은."
"아. 누가 약한 모습을 보였다고 그래요."
하하하! 얘가 은근 짜증을 낼 때도 다 있고. 아무리 푸른 내공의 소유자라고 하더라도 분하긴 분한가 보구나.
"형. 나 안 져요. 다 이길 거야. 도하는 내가 가요."
"어쭈? 승리 선언까지?"
"그거라도 해야 될 거 같아서... 아 씨 학교 사람들이 옆에서 자꾸 띄워 놓는 바람에..."
"하하하! 기대가 무섭지."
"먼저 언론 타고 방방 뜬 게 없지 않아 있던 거 같아요. 방심하고 있었어."
"그럴 수도 있지."
"형 진짜로 괜찮은 거 맞죠? 뭔가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인 거 같은 분위긴데?"
"괜찮다니까. 근데 아마 방금 준결승이 오늘 베스트 기록일 거 같아."
"역시 부담감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
스포츠는 피지컬도 피지컬이지만, 멘탈이 진짜 중요하다.
아무리 최신 컴퓨터 갖다 놔도 윈도me 깔면 답이 없듯 몸이 준비가 되어 있어도 마인드가 한번 흔들리면 제 실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오늘은 동민이랑 너. 내일은 200m 진수. 400m도 처음으로 도전하고. 아 씨발 긴장돼 미치겠네..."
"긴장요? 형이요?"
"야. 나도 긴장하지. 난 뭐 사람 아니냐."
"흠. 그럼 진짜 형들 말대로 오늘이 마하 형을 잡는 날인가?"
"하하하! 이 새끼들. 니네는 나랑 훈련해서 좋다고 하면서!!"
"그거랑 그거는 다른 문제죠."
"좋다. 이런 때 너네랑 시합할 수 있어서."
"우리도 마찬가지죠."
박문기의 개짓거리는 더 이상 문제 되질 않는다.
오히려 티켓이 한 장밖에 없기에, 우리는 친분을 내려 두고 승부에 진지해질 수 있다.
그렇게 따지니 나도 아직 수행이 부족하구나.
무슨 일이 벌어지든 늘 베스트 컨디션을 유지하는 게 프로의 자세거늘.
흠. 정말 누가 이길까? 진짜 기대된다.
* * *
오후 4시. 100m 결승전을 앞두고 모두들 대기실로 모였다.
대기록을 달성한 동민이도, 동민이한테 졌던 진수도. 다들 자기 컨디션을 유지하느라 서로를 돌아보지 않았다.
나도 혼자 조용히 의자에 앉아 마음을 다스리고 있는데 진수가 다가왔다.
"와 살벌해라. 야. 애들 저러니까 무섭지 않냐?"
"가만히 있어. 집중하는데."
"넌 좀 어때?"
"괜찮아. 나아졌어."
"지성이는 아니라던데?"
"이것들이 하나같이... 아주 날을 잡아라."
"잡아야지. 이런 기회가 어딨다고."
지난 갈등을 이겨 내며 진수와 돈독한 무언가가 생긴 것 같다.
애가 밉살스러운 소릴 해도 감정이 흔들리지 않는다.
그런 만큼 우리는 사람들 들리지 않게 조용한 목소리로 민감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지성이. 동민이. 너. 셋 중 누가 이길 거 같냐?"
"그걸 당사자한테 묻는 놈이 어딨다고."
"너라면 답을 알 거 같아서."
"셋 다 아니고. 너. 김진수."
"하하하. 난 기권이지. 이 판에 무슨 재주로 껴."
"동민이 분하지 않냐? 지성이는 좀 억울해하는 거 같던데."
"100m는 누가 어떻게 이겨도 괜찮아. 200m만 내주지 않는다면."
"흠. 주 종목이라."
"아무튼, 어때? 오늘도 니가 이길 거 같아?"
"아니. 확신할 순 없어."
"설마 연맹이 니 발목을 잡을 줄이야... 진짜 모를 일이다."
"딱히 연맹 때문은 아니야. 나도 아까 잠깐 지성이 만났는데"
뭔가 한국 경기는 당연히 내가 이길 거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었다.
재수 없긴 해도 그럴 수 있다고 본다. 난 올림픽과 세계 선수권에서 정상을 밟았으니까.
그래서도 다른 이들을 동정하고, 그 마음이 나를 흔들었다.
결국 방심이었던 거다.
동민이가 지성이를 이기듯, 나도 이길 수 있다.
박문기고 연맹이고 상관없다.
그래서 이 리스크를 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누군가의 개수작이 아닌, 나라는 놈의 안일한 마음이 내 정신을 흔들었으니까.
"그렇게 생각이 들더라고. 그래서도 지금 시합 앞두고 최대한 침착하려고 노력하는 거고."
"구마하는 언제 어느 때고 구마하다 이건가."
진수가 피식 미소를 지으며 돌아본다.
"부탁이 있는데 마하야."
"어 뭔데?"
"이왕 컨디션 떨어진 거 내일까지 좀 흔들리면 안 되냐?"
"하하하! 개새끼들 진짜 오냐오냐해 주니까."
"나도 오랜만에 금메달 좀 받아 보자. 승리가 고프네."
"씨발 내일은 세상 두 쪽 나도 베스트 컨디션으로 나온다. 반드시!"
너스레를 떨고 있는데, 진수가 어깨를 묵직하게 감싸 안았다.
"그래. 웃어 인마. 혼자 무리하지 말고."
"아. 팔 치워 암내 나."
"어떤 결과가 나오든. 사람들이 너한테 욕할 일 없어. 우리 회사에서도 아는 사람들은 알고 있어. 니가 연맹 설득해서 이런 선발전 열 수 있게 됐다는 거."
"됐어 내가 좋아서 한 거야..."
"시합 잘해 보자."
"그래."
진수한테 말한 대로 정말 한 치 앞을 모르겠다.
사람들은 기록만 놓고 내가 결승까지 다 이길 줄 알지만, 멘탈은 분명한 리스크라 반드시란 확신이 들지 않는다.
동민이일까? 녀석은 나와 똑같은 훈련량을 소화하며 마침내 자신의 내공에 손이 닿았잖아. 9.93 이상을 보여 줘도 이상할 게 없어.
아니면 전통의 강자 지성이?
아까는 좀 흔들리는 거 같더니, 시합이 다가올수록 애가 표정이 차분해지는 게 의외의 결과를 낼 거 같다. 이도 저도 아니면, 일찍이 그랑프리를 돌며 예방 주사를 맞은 진수일까? 녀석은 오늘 하루 누구보다 평정심을 갖추고 있었잖아. 베스트 컨디션은 저렇게 느긋한 상황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고.
"선수들 시합 준비해 주세요."
"네. 가자 얘들아."
"예!!"
서울 시청 소속 선배님을 따라서 운동장으로 나갔다.
앞뒤. 오랜만에 친구들과 결승인데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같은 자리에서 아까는 장난스레 도발하던 동민이도 지금은 조용히 숨만 몰아쉰다.
지성이는 승부를 앞두고 마음을 날카롭게 벼렸는지 건드리면 베일 것 같다.
자연체에 접어든 진수는 그 자체로 강자의 여유가 느껴진다.
모르겠다. 모르겠어. 어떻게든 되겠지.
다만, 지금 이 순간 내가 느끼는 감정은.
"마하 씨."
"네. 선배님."
"친구들이랑 결승 뛰니까 어때? 좋아?"
"모르겠어요. 그냥 뭐."
"같이 훈련했다면서. 대체 뭐야? 거기 들어가려면 무슨 자격이 있는 거야?"
"그런 거 없어요. 그냥 운동하고 싶은 사람들 아무나 오셔도 돼요."
"멋지다. 부럽네. 내 친구들은 다들 은퇴 했는데. 동료들끼리 같이 운동하고 다 같이 결승전도 나오고."
뿌듯함과 성취감이었다.
아테네나 토리노에서 메달을 땄을 때도 느끼기 어려운 그 어떤 커다란 만족감이 가슴속 한가득 차오르고 있었다.
[1번 레인 대한 체대 권지성.]
지성이. 나를 알기 전까지 늘 1등만 하던 한국 육상의 기대주.
천재는 세계를 알고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으며, 거기서도 흔들리지 않으려 마음을 다잡았다. 지성이는 굳건한 선수가 될 거다.
[3번 레인. 전주 시청 이동민.]
재능이라면 나를 넘어설 수도 있다고 했지만, 늘 자신의 한계점을 미리 그어 놓았던 동민이는 이제 리미트가 해제되었다.
유진 볼트가 한국에 왔을 때도 가장 대수롭지 않게 운동하던 녀석이니만큼 동민이는 앞으로도 든든한 육상의 다리가 되어 줄 거다.
[4번 레인. S생명 김진수.]
진수는 만능이다.
100미터도 잘하고 200은 빠르고. S생명 소속 팀 계주도 나가고 개인적으로 멀리뛰기까지 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엄청난 연습 벌레고 몸을 아끼지 않는다.
[5번 레인. 서울 시청.]
방금 잠깐 인사를 나눴던 서울 시청 선배님을 돌아보았다.
20대 중반만 지나도 체육계를 떠나는 사람이 수두룩한 현실에서, 나는 작은 소망을 가져 본다.
먼 미래. 우리도 은퇴하는 순간이 오겠지.
남든 떠나든 싸웠든 의절했든. 그래도 진운이까지 포함해서 다섯이 한자리에 모이면, 아마도 이번 여름을 가장 뜨겁게 추억하며 밤새도록 웃고 떠들 것 같다.
이 새끼 그때 그랬는데, 저 새끼 그랬는데.
니가 그때 이상한 짓 해서 그래. 꺼져. 니가 서운하게 만들어서 그랬잖아.
거긴 요즘 뭐 할까? 전주 무슨 식당 맛있었는데 지금도 있을까?
한번 가 볼까? 너 언제 시간 되냐. 등등등.
[7번 레인 연세대 구마하.]
이름이 호명되자 손을 들어 트랙으로 나선다.
이제 승부는 어떻게 돼도 상관없다. 대회 같은 건 관심 없어.
내가 아쉬운 건 이 친구들과의 이야기가 가을까지. 카타르 도하까지 이어지지 않아서지, 지금은 충분히 만족한다.
[준비]
시간이라는 게 원래 그렇지만,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멋진 순간을 만든 것 같다.
사람들은 2006년 여름을 독일 월드컵의 원정 첫 승으로 기억하겠지만, 나에게 올여름은 친구들과 함께한 땀과 우정 그리고 추억의 시간이 됐다.
[탕!]
부끄럽지 않은 경기를 하자.
나를 믿고 따라 준 친구들을 위해서. 그들의 노력을 위해서.
아시안 게임 참가 표가 한 장이 되든 두 장이 되든.
최선을 다해서 달리는 거다.
* * *
"네. 뭘 도와드릴까요?"
"아. 선생님 병문안 왔는데요. 병실을 잘못 들어서."
"환자분 성함이요."
"천병욱이요. 나이는 50대 후반. 아마 간암으로 수술했을 거예요."
"간담췌 병동은 나가셔서 옆 건물로 가셔야 되고요."
서울 잠실. A 대학 병원.
선수 선발전을 마친 이두희와 이현석 교수가 천병욱을 찾아왔다.
"선생님."
"어. 그래."
"좀 어떠세요?"
"괜찮아. 괜찮아."
볼이 핼쑥해진 천병욱은 창문 저 멀리 잠실 운동장을 돌아보며 말해 준다.
"어떻게 됐니?"
"이야~ 선생님. 와 진짜 오늘 경기."
"왜? 마하가 이겼어?"
"하하하. 현석아?"
"후우..."
"졌어?"
"영상으로 보여 드릴게요."
이현석이 가방에서 비디오카메라를 꺼내 천병욱에게 건네주었다.
천병욱 전 육상 전무 이사는 근육이 다 빠진 빼빼 마른 손으로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아이같이 흥분된 표정을 지어 보인다.
"어떻게 됐는데? 먼저 말을 해 줘 봐."
"보세요. 보시면 아세요."
"근데 현석이 이놈은 왜 저래?"
"하하하~ 너 왜 그러시냐는데?"
"선생님. 천천히 보시고 말씀드릴게요."
준결승까지는 천병욱도 문자로 소식을 전해 들었다.
먼저 대표 팀에서 탈락했던 동민이가 지성이를 이기며 세 번째 9초 선수가 되었다.
진수까지 10.00이란 기록을 달성하며 경기장을 가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켜는 거냐?"
"이거 누르시면 돼요."
"어. 그래."
비디오카메라에 달린 작은 LCD 화면에 선수들이 서 있다.
아무리 작은 화면이더라도 구마하의 모습은 바로 알아보는 천병욱이었다.
"마하가 7번이구나."
"지성이가 2번. 동민이가 3번이고요. 그리고."
"그래그래. 보고 얘기하자."
웅성웅성 작은 화면 속 시끄러운 현장이 고요해지자, 선수들이 출발 자세를 갖춘다.
곧바로 탕. 하는 소리와 함께 경기가 시작됐다.
"오오~!"
9초 선수가 셋이나 포진된 시합이었다.
승자는 생각보다 더 빠르게 결정되었고, 기대한 만큼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도... 동민이가 이긴 거야?"
"네. 하하하! 그래서 지금 이놈 이거."
"저... 정말로? 동민이? 그 동민이가?"
"말씀드려라."
"하아... 이 자식. 거 왜 남 좋은 일만 시켜 가지고."
3번 레인 전주 시청 이동민의 승리.
결과는 9.89. 작은 LCD 모니터 속에서도 경기를 마친 이동민은 제 자리에서 펄쩍펄쩍 뛰면서 좋아하고 친구들에게 다가가 안기고 바닥에 누워 파닥거리며 난리를 치고 있다.
"하하하. 열심히 하더라니."
"엄청났어요. 애가 트랙을 떠나지 못하더라고요."
"마하 이놈은 그런 코칭을 학교에 와서 해야지..."
"2위는 누구냐? 지성인가?"
"네. 9.91이요. 덤덤하게 받아들이더라고요."
"그래도 계속 기록을 줄이고 있구나. 지성이는 그렇게 조용히 나아갈 거다."
천병욱은 이동민에게 안겨 대기실로 빠져나가는 구마하를 보았다.
화면이 작아 표정을 알 수 없지만 실망하는 기색은 느껴지질 않았다.
"마하는 얼마 나왔어?"
"9.94요. 잘했어요."
"아까 저랑 박 회장 만나고 애가 표정이 무너지더라고요."
"그래도 잘했구나. 잘했어. 4위는 누구니? 현석아 이거 어떻게 돌려 보는 거야?"
"제가 해 드릴게요."
이현석이 비디오카메라를 조작하며 경기 후 뒷상황을 언급해 주었다.
"선생님이 오늘 경기장을 오셨어야 했는데."
"왜?"
"박문기 똥 씹은 표정이 진짜 가관도 아니라. 하하하!"
"왜? 박 회장은 또 왜 혼자 똥을 씹고 난리야?"
사람이 하는 일은 그 어떤 이론이 통용되는 수학이 아니고 거기서도 스포츠란 늘 변수가 작동한다.
절대 강자도 없고 절대 패자도 없다.
그래서도 선수들은 노력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재밌는 경기였어요. 진짜 보는데 가슴이 들뜨고."
"저도 뭐. 크게 아쉽진 않아요. 어차피 마하는 200도 나가고 400도 나가고. 학교 계주도 있고."
"100미터 대표는 동민이가 됐겠구나."
"네."
"선생님? 어디 보세요?"
천병욱이 창문 저 너머 잠실 운동장을 보며 말했다.
"얘들아. 너희도 이제 마흔이다. 몸 관리 잘해라 술 줄이고."
"아 또 그러신다."
"니네도 적은 나이 아냐. 말 들어 이놈들아."
아픈 것보다 오늘의 경기를 놓쳤다는 사실이 더 안타까운 천병 욱이었다.
그래도 선수들은 잘 해내고 있었다.
그날 천병욱은 은퇴 후 처음으로 마음에서 연맹을 내려놓았다.
다들 잘해 주고 있다.
열심히 하고 있다.
마하도 혼자가 아니다.
육상은 계속 발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