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녀와 로미오. 야수와 줄리엣 (10)
"에이. 아니라니까 그러시네. 우리가 기자님을 왜 피해요."
"임 기자님이세요?"
"너 가만있어. 아니. 표를 바꾼 게 아니라 갑자기 들어가자니 표가 없었다니까? 그럼요. 당연하지. 언론은 못 믿어도 임 기자님 믿지."
귀국 하루 전 감독님이 여기저기 빗발치는 전화로 고생 중이셨다.
아무래도 상황이 상황인 만큼 우리가 보는 것보다 한국에선 내 복귀 소식에 큰 관심을 가지는 것 같다.
"기자님!!"
"아니야. 마하 아니라니까. 걔가 여기 왜 있어."
"기자님! 저 마한데요!!"
"너 이 씨 조용히 안 해? 가만 안 있어..."
"기자님! 우리 여기서 5시에 출발해요!!! 도착 시간은 찾아 보세요. 그때 뵐게요!!"
"으하하하 끊습니다! 국제 전화라 그러나 통화가 끊기네..."
통화를 마친 감독님이 얼굴이 벌게지셔서 돌아보신다.
"뭐 하는 거야!! 기껏 따돌리고 있는데!"
"감독님. 우리 그냥 정면 돌파해요."
"야. 다른 때랑 달라. 환영하는 자리가 아니라니까?"
"뭐 어때요. 어차피 마지막인데. 그냥 뚫고 가요."
"너. 지금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이야. 까딱하면 연맹이 가지고 있는 모든 문제를 너한테 덮어씌울 수 있어."
"옛날에 이주영 감독님이 그러셨어요."
"주영이 뭐?"
"에이스는 에이스의 숙명이 있다고."
나도 감독님의 의견에 동의한다.
대표 팀을 관두고 최대한 빨리 한국을 빠져나온 것도 그런 구설수에서 피하고 싶은 마음이 컸었다.
하지만, 돌아가기로 결정한 이상, 피하지 않겠다.
정면 돌파다. 그렇게 해야만 한다.
나는 별로 자각하지 못할지라도, 사람들한테 구마하란 존재는 대한민국 육상의 간판이니까.
연맹이 딱해서가 아니야. 선수들이 안타깝기 때문이지.
지금 한국 육상에 가해지는 모든 비판적인 시선, 부정적인 의견은 내가 짊어진다.
"어떻게 좋은 얘기만 들어요. 가끔 나서서 욕도 먹어 줘야죠."
"너 인마..."
"괜찮아요. 대표 팀 감독했으면 이것보다 더 욕먹었을 건데요 뭐. 하하하!!"
미국을 떠나 인천 공항에 도착.
정면 돌파를 택했지만, 막상 돌아오니 역시나 긴장된다.
"후우. 나 선글라스 어딨지? 당신이 챙겼어?"
"왜 자기가 긴장해서 그래. 마하도 아니고."
"아 심장 떨려. 오랜만에 언론 앞에 나서려니까 왜 이렇게 부담스럽냐..."
"감독님. 물 좀 드릴까요?"
"아니. 마셨다간 바로 토할 거 같아... 그냥 끝날 때까지 아무것도 입에 안 대는 게 좋겠어."
"대표 팀도 맡으신 분이 뭐 이런 거 가지고..."
"여보. 우리 그냥 인천에서 다시 표 사서 나가 버릴까...?"
"왜 이래 자꾸. 긴장 풀어. 좋은 뜻으로 복귀하는데 누가 뭐라고 한다고 그래?"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몰라. 언론 이 새끼들 개자식들이야..."
개인적 트라우마가 도지시는가?
그런데, 감독님 말씀대로 공항에 내리자마자 직원분들이 다가오셨다.
"오셨군요 구마하 선수. 한 대표님 맞으시죠?"
"뭡니까? 정장 입은 분들이? 우리 나가서 잘못한 거 없는데?"
"상황을 설명드리기 위해서 찾아왔습니다. 느낌만 봐서는 대선 후보 귀국보다 더 난장판입니다."
"사자성어로 설명드리자면 아비규환 그 자체입니다. 적나라하게 표현하면 개판 오 분 전이고요."
"허허허... 여보. 역시 우리 다시 나가자..."
"그 정도로 몰렸어요...?"
공항 직원분들이 멀리 출국장 문 너머를 가리키시는데, 뭔가 바글바글한 그림자들이 뭉쳐 있었다.
"이야... 봤냐?"
"하하. 내가 뭐라고..."
"어머어머... 어쩜 좋아. 왜 이렇게들 몰려왔어?"
"그러니까 내가 말했잖아... 환영해. 당신 남편 이런 일 해."
"가족분들은 따로 움직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들었지? 당신 먼저 나가 있어야겠다."
"나 선글라스 어딨어? 모자도 쓸까? 여름에 우리 산 거 그거 지금 쓰고 나가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지 않겠지?!"
"사모님. 진정하세요."
"그래. 방금까진 나한테 침착하라며?"
"아니 그래도 진짜 이럴 줄 몰랐지... 직접 겪으니까 무섭다... 잘해 마하야. 알겠지? 여보도."
"응. 알았어."
"고맙습니다."
부랴부랴 새신부가 선글라스를 끼고 빠져 나가고. 감독님과 둘이 남아 사람들이 빠지길 기다리고 있었다.
"죄송해요. 감독님."
"뭐가? 니가 왜?"
"신혼여행 갔다가 돌아올 땐 보통 같이 손 붙잡고 나가고 그러잖아요."
"가족이잖아. 뭐 가족끼리 손을 잡아."
"크하하! 아직 그 말 하긴 좀 빠른 거 아니세요?"
"신은 존재해. 진짜로. 모든 게 좋을 순 없는 노릇이야."
"뭐 신까지 찾고 그러세요."
"저 사람 말고 너. 갑자기 세상 모든 게 다 만족할 순 없다는 말이 생각나서. 너랑 일하는 건 너무 좋은데. 돈도 잘 벌고 재밌고. 그치만 어쩔 수 없이 늘 언론을 상대해야 하니까... 이게 참 힘들다."
"금방 끝나요. 앞으로 또 얼마나 이런 일 있겠어요."
"후우... 아무튼간, 뭐라고 할 거냐?"
"기자들이 어떤 걸 묻느냐에 달렸죠."
"쓸데없는 얘긴 하지 마. 묻는 말에 다 대답해 줄 필요도 없어. 어차피 지들 입맛에 맞게 포장할 거 말 아끼는 게 좋다."
"네."
"...너 정말 괜찮은 거 맞냐? 너무 태연한데?"
감독님 말씀대로 기자들이 바글거리고 있어도 뭔가 대수롭지 않았다.
"그냥. 은퇴는 은퇴구나. 진짜 앞으로 또 언제 이렇게 스포트라이트 받겠나 싶고."
"못 본 사이에 진짜 성장했구나. 좀 어른스럽다 이제."
"치열하게 살았잖아요. 많이 시달렸고."
"하하. 이 자식 세상 지만 치열하게 사는 줄 아나."
"감독님은 놀고 계셨고."
"야 인마! 누가 놀았다고 그래!! 나도 일했다니까!!"
긴장감을 풀기 위해 웃고 떠드는 동안, 공항 경비대가 무전을 받는다.
사람들의 안내를 받아 출국 게이트 앞에 섰다.
문이 열리고. 기자들이 정신없이 플래시를 터트리며 사진을 찍었다.
큼직한 방송국 카메라도 보이고 사다리를 놓고 층층이 둘러쌓은 인파 저 너머로 팬들이 귀국 환영 플래카드를 걸어 놓고 응원을 해 주고 있었다.
누가 그러셨더라? 개판 오 분 전이란 게 이런 거구나.
"구마하 선수! 여기 좀 봐 주세요!"
"앞에 앉으라고!! 사진 안 찍히잖아!"
"다시 대표 팀에 합류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뭔가요?"
"이봐요 거기만 취재합니까!!"
"연맹과의 갈등이 심한 걸로 아는데, 무슨 대화를 나눴나요?"
"선수 선발 과정에서 대립이 있었다고 하던데. 한 말씀 해 주세요!"
"대표 팀을 다시 맡는 건가요?"
선수 하나에 뭐 이렇게 관심이 많은지.
제발 이런 열정을 정치나 사회에 쏟아 봤으면...
차분히 주변을 둘러보며 질문들을 정리하는데, 그 와중에 임한기 기자님이 가장 앞에서 가장 늦게 질문을 주셨다.
"어서 와요. 구마하 선수."
"네. 기자님."
"가까운 지인들이 탈락하자 대표 팀을 나갔다는 의혹이 있는데 사실입니까?"
고맙습니다 기자님. 민감한 질문을 가장 빨리 던져 주셔서.
"권지성 선수에 대해 말씀하시는 거라면. 네 맞습니다. 그게 대표 팀을 거부한 이유입니다."
기자님도 '야 그렇다고 사람 이름을 직접 밝히면 어떡해...?'라는 듯 당황한 얼굴로 쳐다보신다.
지성이 이름이 나오자 다른 기자들도 얼씨구나 미친 듯이 질문을 쏟아 내며 벼락이 치듯 플래시가 터졌다.
가만히 질문을 들었다. 헛소리도 있고, 생각보다 민감한 이야기도 있었다.
뭐라 하든, 내가 갈 길은 하나밖에 없었다.
"여기 혹시 생중계 카메라 없습니까?"
케이블 뉴스 채널에서 카메라를 잡아 주고 있었다.
다행이네. 편집 없이 이야기할 수 있어서.
"우선, 현 대표 팀 선수들. 네. 제 친구들이죠. 잠깐이나마 대표 팀 감독을 맡는다고 했을 때 저에게 이 선수들은 누구보다 필요한 자원이었습니다."
"구마하 선수! 국가 대표를 사적으로 운영하려 했다는 의혹을 인정하는 겁니까?"
"어느 분이시죠? 어디 계세요? 방금 누가 그러셨나요?"
질문을 던진 사람을 똑바로 돌아보며 말했다.
"그 친구들 기록을 알고 계십니까?"
"...기록이 얼마죠?"
"권지성 이동민은 9초 기록을 낼 수 있는 세계적인 레벨이고, 김진수 선수는 10.00 국내 4위의 성적을 냈습니다. 200m 경기에선 저를 이겼고요."
"그럼. 군 면제 때문에 일부러 지인들에게 승부를 양보했다는 말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미안하다 얘들아. 너네 이러고 있었구나...
더 늦지 않게 들어오길 천만다행이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올 초, 여름까지. 전주에서 이동민 선수와 같이 훈련했습니다. 그리고 뒤늦게 다른 친구들이 우릴 찾아왔고요. 선수들은 누구보다 땀 흘리고 고생했습니다. 기록은 그렇게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니까. 미리 따로 잘하는 선수들만 뽑아 운영했다는 의혹도 인정하는 건가요?"
"그만 좀 하세요. 그게 왜 의혹이에요? 제가 왜 그런 소리를 들어야 됩니까? 누가 사람을 그렇게 편 갈랐다고 그래요."
"...방금 구마하 선수가 본인 입으로."
"저랑 운동하고 싶었으면 절 찾아왔으면 되는 겁니다. 제 친구들 같이요. 누가 그런 말을 하는지 몰라도 본인들이 움직이지 않고 왜 저한테 그 책임을 씌웁니까? 왜 뭐라고 하는 거냐고요?"
감독님이 말리지만 이미 피가 머리에 몰려 있었다.
"친구들 아닌. 선수가 아닌. 그냥 일반인도 같이 운동하고 싶다고 한 사람은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선수는 사람 아닌가요? 가까운 사람들이랑 같이 지낸 게 왜 문제가 되는 거죠?"
기자들도 뭐라 할 말은 없었다.
아무리 쓰레기 같은 기자라 하더라도 어느 정도 팩트는 가지고 있을 테니까.
난 그때 대표 팀도 아니었고, 휴학생이라 대학 팀에 소속되지도 않았다.
내가 개인으로 무슨 행동을 하든, 학교 시설을 유용한 것도 아니고. 내 돈 주고 내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누구와 운동을 하더라도 그 시점에선 아무 문제 될 게 없다.
"철두철미하게 실력으로 판단했습니다. 친분으로 사람을 뽑은 게 아니라, 오히려 뽑혀야 될 선수가 떨어졌다는 데 충격이 컸습니다."
"박문기 연맹 회장과의 갈등에 대해서 말씀해 주세요."
"최일묵 코치와도 이야기가 있던데 해명해 주세요."
"해명도 갈등도 없습니다. 어른들이 대표 팀 맡아 달라고 하실 때 잠깐 이야기가 있었는데, 선발에 관하여 당연히 나올 수 있는 의견이 있었을 뿐이에요."
감독님이 이제 그만하자는 눈빛을 주신다.
나도 더 이야기해 봐야 우리만 입장 불리해질 걸 알기에 마무리를 지었다.
"기록을 보세요. 저와 가까워서 그렇지. 이 선수들은 지금 국내에서 가장 기록이 좋은 선수들입니다. 실력대로 평가를 받지 못했기에 항명을 했을 뿐. 연맹과의 갈등은 여러분이 보시는 것과 그 내용이 다릅니다."
"구마하 선수! 항간에는 대표 팀이 이렇게 흔들린 이유가 구마하 개인에게 너무 치우쳐져서란 말도 있는데. 이 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
"제가 돌아온 이유는 목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만하자. 이제 그만해요. 개소리 들어 봐야 시끄럽기밖에 더 합니까.
기세 있게 목소리를 높이자 그렇게 시끄럽던 장소가 조용해졌다.
"태극기를 짊어진 구마하 개인이 아니라, 팀 코리아로서 단상에 서기 위해 모든 역량을 쏟아 내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친구라고 생각하지 않고 선수라고 봤기에 더 매몰차게 대해 왔고요. 고생을 이겨 냈기에 다들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승부에 양보? 한심하고 짜증 나는 말이네요. 서로 열심히 한 걸 알기에 더 승부에 치열했으면 치열했지 봐주고 이런 건 없습니다. 저와 제 친구들이 노력한 모습은 전주 김제 익산 군산을 비롯한 전북 시민들이 지켜봤으니 가서 물어보세요."
왜? 물어봐. 용기 있게 진실을 밝히라고.
모두가 떠들 땐 신나서 물어뜯더니 조용해지니까 왜 아무도 질문을 하지 않는데?
"더 질문 없으십니까?"
그나마 임한기 기자님이 친분이 있어 차분히 물어보신다.
"그럼. 대표 팀도 아닌데, 왜 그렇게까지 선수들에게 진심을 쏟았습니까?"
"이기고 싶어서요."
"..."
"내가 아닌 우리나라가. 일본과 중국이 포함된 아시안 게임이란 무대에서. 우승을 목적으로. 다른 사람이 아닌, 내 친구들을 단련시켰습니다."
"그렇게 국내 1, 2, 3, 4위 단거리 베스트가 만들어진 거네요."
"네. 정말로 부탁드릴게요. 누구도 부끄럽지 않은 고생을 했습니다. 제발 기자님들도 이상한 의혹만 부르짖지 마시고 기록을 확인해 보세요. 이 친구들이 단지 저랑 친하고 가깝다는 이유로 비난받고 욕 들을 실력을 가진 애들이 아니라고요."
어딘가 숙연해진 가운데, 감독님이 정리해 주셨다.
"여기 있는 구마하 선수를 비롯하여 연맹과 선수들. 한국 육상 팀은 아시안 게임에서 최선의 결과를 내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릴게요. 저희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가자 마하야."
기자 회견장을 빠져나가는데 멀리 자리한 팬분들이 큰 박수를 쳐 주셨다.
혼란스러운 현장을 나오자 연맹 관계자분들이 다가오신다.
"차. 준비했습니다."
"저희가 가도 되는데."
"구마하가 오는데 우리가 어떻게 모르는 척합니까."
서울로 돌아오며 연맹 내부 이야기도 들었다.
늘 그렇지만, 이번에도 예상 가능한 범주에서 이야기가 진행됐고. 해외 귀화 선수도 받아들이는 판국에 자국 내 에이스를 왜 모르는 척하느냐는 의견이 설득력을 가지게 됐다.
"지성이가 말한 그대로네요."
"승부의 세계가 늘 그렇지. 조용히 있어."
"알겠습니다."
"그럼 마하는 어디로 가나요?"
"태릉이요. 다들 모여 있습니다. 근데, 한 감독님은 따로 참여 안 하시는 걸로 아는데."
"아우 저는 빼 줘요. 하래도 싫어."
"하하하. 알겠습니다."
태릉에 도착. 감독님과는 또 잠시 이별이다.
"난 여기까지네. 필요한 거 있으면 얘기해라. 바로 보내 줄게."
"괜찮아요. NICE에서 신발도 새것 줬고. 옷도 뭐 나라에서 다 줄 것이고. 팬티랑 양말은 나가서 살게요."
"그래서? 넌 할 말 다 하고 나니까 속 시원하냐?"
"하하하. 감독님이 시켰다고 할 건데 괜찮죠?"
"썩을 놈의 자식. 맘대로 해라. 널 누가 말리냐. 대회 때 보자."
"네. 가세요."
"고생해라."
어쩌다 보니 가장 늦게 선수촌에 입촌하게 됐다.
숙소로 걸어가는데, 아시안 게임까지 남은 날짜가 빨간 글씨로 체크되어 있었다.
감상에 젖은 상태로 멍하니 D-39란 숫자를 보는데, 갑자기 누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어! 구마하 선수? 바로 왔어요?"
"네? 저요? 저... 아세요?"
"아니. 모르는데. 방금 공항에서 기자 회견 하는 거 봤거든요."
"아... 하하. 그걸 보셨어요?"
"네!! 식당에서 선수들 다 같이 봤어요!!"
젠장... 하필 저녁 시간에 도착해서... 뻘쭘하구만.
"다 같이... 봤다고요?"
"예!!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어요! 키야~! 구마하 아니고야 누가 기자들한테 그렇게 큰소리쳐요. 하하하!"
"하하하... 그러셨구나..."
"계주 응원할게요. 진짜로! 파이팅이 넘치는 기자 회견이었어요!! 그럼요! 아 당연하죠! 우리가 아시아의 정상이죠!!"
무슨 종목이길래 이렇게 사람이 텐션이 좋냐? 뭔가 앞으로 많이 친해질 거 같다.
"근데 왜 이렇게 조용해요? 밤인데?"
"숙소요? 아 지금 선수들 마하 씨 기자 회견 보고 다들 막 파이팅 넘쳐서 운동장 나가고 체단실 가고, 불암산 뛰고 난리 났어요!!"
어쩐지. 저녁 시간에 왜 이렇게 선수촌이 조용하나 했더니...
하여간 단순한 인간들... 그런 걸로 뭘 파이팅을 찾고... 이러니까 운동하는 사람들이 무식하단 소리를 듣는다고...
"육상 팀은 지금 어딨는지 아세요?"
"트랙이요! 같이 가실래요?"
짐도 풀지 않은 채 운동장으로 나갔다.
와우. 진짜 다들 열심히네.
동민이도 진수도. 지성이도 다들 있었다.
후보들도 있고, 중거리 선수들도 한쪽에서 꾸준히 달리고 있다.
진운이도 열심히 하고 있구나.
"날도 추운데 뭐 이런 시간에 운동을..."
"체단실 보세요. 유도 팀 있는 거 같은데 기합 지르는 거 봐요."
"저긴 늘 그렇잖아요."
"힘내세요. 저도 그럼 가 보겠습니다. 저희도 응원해 주세요!"
"고맙습니다. 아 참 근데 무슨 종목이세요?"
"저요? 저 펜싱이요!!"
한국 펜싱.
시드니에서 첫 금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아테네에선 죽을 썼던 비운의 종목.
누구를 막론하고 모두가 이번 아시안 게임을 발판으로 다음 올림픽을 노리고 있구나.
"잘해라. 육상도 파이팅."
기자들이 한 말이 머릿속에 울린다.
육상은 가장 많은 종목을 포함한 경기다.
나 하나 때문에 거기 얽힌 수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본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감독님과 약속한 대로 육상은 여기까지 하자.
뒤는 친구들에게 맡기고 떠나는 거다.
어차피 오늘 깽판 친 것까지 더해서 받아 주지도 않을 거야.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