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륜기로 가버렷-262화 (262/401)

미녀와 로미오. 야수와 줄리엣 (11)

"오늘도 시작하기에 앞서 외쳐 봅니다. 우리의 목표는!!"

"아 저 새끼 씨발..."

"하하하. 놔 둬. 니가 말했잖아."

"아 이동민 병신 새끼..."

대표 팀에 합류했다.

생각보다 어색하거나 그런 건 없었다.

오히려 다들 반겨 주다 못해 놀려 먹지 못해 안달이었다.

"마하야! 계주 파이팅!"

"아 누나... 좀 가요. 스키 선수가 왜 와서 이래..."

"야. 지금 누가 누구한테 뭐라고 하는 거야. 하계 종목 때문에 우리가 더 고생인데."

"새끼야 너도 와서 훈련 껴. 넌 스키 선수 아니냐?"

"아이고 진짜... 형 은퇴 안 했어?"

"뒤질려고 이 새끼가."

원래 아시안 게임은 여름. 늦어도 가을엔 개막을 하고 대회를 마친다.

이번엔 개최지가 중동인 까닭에 한국 시각 겨울에 개막이 되는 만큼 태릉은 동계 종목까지 한데 뒤섞여 더 없이 복작복작한 상황을 이루고 있었다.

"저분이 박상택 선수지? 니네 선배."

"선배 아냐. 개야 개."

"야 새끼야... 아무리 그래도."

"하하하! 그만큼 친해. 저 형도 우리 있는데 와서 욕하고 지나가잖아."

"형은 어딜 가나 친한 사람들이 많네요."

"얼마 없어."

"왜? 너 먼저 그 수영 김태준가? 걔랑도 친하더만."

"태주는 올림픽 때 만났잖아. 잘 아는 사이는 아니야. 선수촌 올 때마다 한 번씩 인사하는 정도지."

나와 같이 초청 선수로 아테네를 갔던 태주는 현재 한국 수영의 핵심이자 메달 기대주로 성장하고 있었다.

먼저 지나가다 인사한 펜싱 선수도 그렇고, 귀국 때 기자 회견이 아무래도 다른 종목 선수들에게도 인상이 깊었나 보다.

"야. 빨리들 먹고 일어나. 우리는 목표를 위해서!"

"아 씨발 너 진짜!"

"하하하! 새끼. 혼자 흥분해서 지랄이야."

"제발... 동민아. 제발 성공해라. 그래서 꼭 너도 한번 언론에 시달려 보길 바랄게."

"몰라. 난 기자 이런 거 상대 안 해. 늘 목표만 보고 갈 거야."

"아 저 새끼 존나. 죽여 버려."

"뭐 병신아? 크하하하! 그건 맞잖아."

그래도 나랑 지성이가 오니까 다들 좋단다. 뭔가 다시 팀이 된 거 같단다.

나도 그렇다. 이동민 새끼 지랄하는 거 빼고는.

"훅. 훅. 쟤도 좋아서 그러지."

"헉. 허억. 적당히 하든가. 내가 좋아서 그런 것도 아니고."

"후우. 근데, 지성이 대단하네."

"왜?"

"난 니가 쟤 이름 꺼낼 때 당황했는데, 막상 당사자는 아무렇지 않게 합류해서 뛰고 있으니까."

"권지성이잖아. 돌덩어리 같은 새끼. 야. 진수야 우리 쟤 앞으로 돌이라고 부를까? 권스톤 어때?"

"하하하! 애들도 아니고."

"야. 권스톤!! 이게 앞으로 니 별명이다!"

처음부터 이리될 거라고 예상이라도 한 듯, 지성이는 정말 부처님 같은 모습으로 꾸준하게 땀을 흘리고 있었다.

대신, 아주 불이익이 없는 건 아니었다.

나는 한국 육상에 새로운 파벌을 형성했고, 지성이는 대한 체대 사람들과는 거리가 생기고 말았다.

"그냥. 우리 학교로 와. 자퇴하고. 내년에 새로 시험 보면 되잖아. 넌 국내 성적도 있고, 학생 때 성적은 말할 것도 없고."

"싫어. 난 우리 학교가 좋아."

"야. 연세대는 실업 팀 활동도 같이 할 수 있어! 돈도 벌고 좋지 않냐?"

"마하 형. 난 우리 학교에서 형같이 자유롭게 운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거야."

"...그 학교가 그게 될까?"

"생각보다 학교에선 나한테 다가오는 사람들도 많아요."

"그래? 너 왕따 아녔어?"

"아 형. 그게 뭐야."

"아니. 다행이라고. 사람들이 너 막 피하거나 그러지 않아?"

"후후. 구마하 최측근인데. 형 노하우 빼기 위해서라도 날 그냥 버리진 않지."

"다행이네. 진짜 다행이다. 잘됐다 지성아. 필요한 거 있으면 얘기해. 다 알려 줄게."

"나도 그렇지만. 역시 다들 체중 관리 때문에 갑자기 식사량을 늘리는 게 어려워요."

"우리 형네 가게로 가면 돼. 거기 가면 많이 먹을 수 있어."

"그건 광고잖아요."

"하하하~ 이 새끼."

정리할 건 정리하고, 그렇게 모든 생활이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생각보다 연맹 관계자나 현 코치님들도 그렇게 나한테 터치하는 건 없다.

오히려 자문을 구하는 일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마하야."

"네 코치님."

"너 두준이 허리 어떻게 알았어?"

"장대 하시는 분 말씀이시죠? 그냥 자세가 예전 같지 않길래. 혹시 모르니까 병원 한번 가보시라고 그랬어요."

"괜히 대표 팀 감독을 맡기려던 게 아니구나..."

"아니에요. 그냥 두준 씨 원래 뛰는 폼 깔끔했는데, 갑자기 틀어지니까 봤던 거죠."

"역시..."

"아 코치님. 그런데 이거 최 감독님한테는 말씀하지 마시고요."

"알지 그럼. 그냥 또 몸 안 좋아 보이는 애들 있음 바로바로 얘기해 달라고 따로 불러서 이야기한 거야."

내공을 보는 눈은 선수촌에 와서 제대로 빛을 본다.

몸이 안 좋은 선수들. 어딘가 영양에 결핍 있는 인물들.

가깝거나 혹은 안면이 있는 정도라면 지나가다 한마디씩 흘려주는데 그게 그렇게 도움이 된다고 난 다른 의미로 도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뭐 틀린 말은 아니라고 본다. 곤륜이 도교와 관계가 없는 것도 아니고.

그런 도사의 눈으로 봤을 때. 내가 없는 지난 몇 달은 다들 꽤 몸을 혹사당한 시간인 것 같다.

나는 대표 팀을 나갔고, 연맹은 시민과 언론의 질타를 받았으며, 현 지도부는 감정적으로 선수들을 훈련시켰다.

진작부터 빡시게 굴렀던 동민이나 진수 진운이는 괜찮지만, 나머지 선수들이 상당히 피로도가 몰려 있는 게 보인다.

원래도 운동선수는 보기만 멀쩡하고 건강하지 알고 보면 다들 병자들인데, 거기다 추운 계절이 겹치다 보니 부상자가 속출하고 있다.

"5,000m는 다들 포기했대."

"여자 높이뛰기도 부상으로 뒤늦게 후보 선수 찾고 있다더라."

"그러니까 진작 마하 말을 듣지."

"됐어. 그런 얘기 하지 마."

박문기의 합리적인 방침도 문제지만 계절적인 영향이 정말로 컸다.

원래 육상은 여름 종목이고 11월이면 시즌이 종료된다.

그런데 지금은 대회가 12월에 있어 어쩔 수 없이 겨울에 운동을 하는지라 마른 선수들. 몸에 지방이 잘 없는 다이어트에 신경 써 왔던 종목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잘 먹자. 그래야 돼. 그래야 안 다친다."

"진운이도 고생이더라. 이제는 체중 조절을 해야 되는데."

"넌 어떻게 근육 키우면서 지구력을 가졌냐?"

"나도 좆뺑이 쳤어. 쉽게 보지 마."

역설적이게도, 박문기나 연맹에서 차출을 거부당했던, 남자 창던지기나 여자 원반 같은 경우가 선수들의 컨디션이 좋았다.

태릉에 들어와 몸을 혹사당하지도 않았고,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자기 컨디션을 유지하며 운동을 해 온 덕에 관리가 잘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분들은 지금 나를 너무 좋아한다.

"마하 씨."

"네. 형님. 어 오늘 어떻게 오셨어요?"

"아. 검사할 게 있어서. 그보다 나 마트 갈 건데. 뭐 필요한 거 없어? 내가 사다 줄게."

"에이. 그러지 마시라니까요."

"고마워서 그러지. 어떻게 기회를 얻었는데."

"괜찮아요. 그리고 진짜 없어요."

"그럼 뭐 먹고 싶은 건 없어? 치킨 좀 사 올까? 선수들이랑 먹어."

"하하하! 네. 형님도 같이 드세요."

태릉은 하계 동계 모두가 모여 있어 워낙 복작복작한 상황이라, 던지고 날리고 해야 하는 필드 종목은 현재 대한 체대에 모여서 훈련 중이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그쪽에선 지금 다빈이가 완전 악의 축에 속해 있었다.

"보면, 잘하지도 못해. 그냥 애 악만 살아 가지고. 왜 그렇게 빨아 주는지."

"예쁘잖아. 애 인물은 인정해야지."

"운동을 얼굴로 하냐고? 그럴 거면 가서 연예인을 하든가."

전 여자 친구의 욕을 듣는데, 그 욕을 하는 사람이 치킨을 사 준 사람이다.

복잡하다 사람의 감정이라는 건 참으로 복잡해.

"마하 씨. 잘 헤어졌어."

"어디 아픈 데는 없어요?"

"누구? 최다빈? 몰라. 최 감독이 알아서 하겠지."

"..."

천병욱과 한상률이 구마하를 키웠듯이, 박문기와 최일묵도 최다빈을 스타로 만들어 내려 하고 있었다.

모르겠다. 난 딱히 스타가 되려고 한 것도 아니고, 아버지나 감독님이나 우리 이렇게 살자고 원해서 사는 것도 아닌데.

"마하 형. 안 자고 뭐 해요."

"어. 그냥 야밤에 너무 먹었나 소화가 안 되네."

"아까 다빈이 누나 얘기 나와서 좀 그랬죠?"

"그런 거 없어..."

"그 형님도 참. 은근 입이 가벼워."

"넌 다빈이랑 연락 자주 하냐?"

"안 하죠. 그 누나 입장에선 나도 배신잔데. 받지도 않아."

"누가 누구를 배신한 건지..."

"그래도 형 들어오고 나서부턴, 누나도 좀 편해졌을 거예요. 언론이 관심을 안 가지니까."

"7종은 계속 니네 학교에서 훈련한다냐? 여기 안 온대?"

"왜 와요. 나 같아도 지금 나가라면 나가고 싶은데. 넓은 학교 놔두고."

"나도. 우리 학교로 가고 싶다. 아 씨발 사람 너무 많어..."

"수영 부럽다. 수영은 수영장 자기들만 쓰니까."

"펜싱도. 펜싱도 자기들만 쓰잖아."

"개나 소나 육상이지. 하하하!"

"야. 너 개 해. 나 소 할게."

아무래도 다빈이 몸이 걱정된다.

신체 건강한 선수들도 저렇게 나자빠지고 있는데, 걔가 지금 제대로 운동을 하고 있다는 게 말이 안 된다.

실제로 투창 형님도 제대로 하는 것도 없다고 그러고. 문제가 없다면 그게 더 이상해.

며칠 뒤. 잠깐 쉬는 시간이 생겨 대한 체대를 찾아가 보기로 했다.

"진운아. 너 내일 쉬지?"

"어. 잘 건데. 왜?"

"나 니네 학교 갈 건데. 같이 갈래?"

"...거길 왜 가. 너 지금 학교 가면 별로 좋은 시선 못 받아."

"왜? 대한 체대라서?"

"아 김진수 저 새끼 또..."

"근데 넌 거기 왜 가려고 그러냐? 가뜩이나 지금 최 감독님이랑 그쪽 사람들 다 거기 몰려 있는데. 가지 마. 몰매 맞아."

"다빈이 한번 보고 오려고. 걱정돼."

"뭘 걱정해. 니네 헤어진 지 오래됐잖아."

"그러니까. 종목이 겹치는 것도 아니고. 어쩌면 대회 내내 얼굴 볼 일도 없을 건데."

"야. 니네는 헤어졌으면 인연 끝이냐? 너네 나 미국 간 동안 나한테 이메일 왜 보냈어? 인연 끝내야지."

다음 날. 진수와 진운이를 데리고 대한 체대를 찾아갔다.

마침 종강을 맞이하여 몇몇 과에서 종강 파티를 하고 있었다.

"대한 체대도 그런 걸 해?"

"야. 우리도 대학이야. 선수 아니라 일반 학생들도 많아!"

"걔네는 그럼 뭐 하냐? 선수들 매니저?"

"너네는 놀러 가면 올림픽 공원 가서 산책하고 그러지 않아?"

"미친놈들아! 차 세워 나 갈 거야!!"

몰랐는데 대한 체고랑 대한 체대랑 붙어 있구나.

얘네가 왜 이 학교로 바로 왔는지 이해된다.

"저기가 빙상장. 국제 규격이랑 똑같아."

"오오~ 니네 학교도 빙상장 있냐?"

"고대에 있지. 우리는 아마 목동 가서 훈련하고 그럴걸?"

"시설은 진짜 최고야. 솔직히 태릉보다 여기서 훈련하는 게 더 좋아. 아마 지성이도 그럴걸?"

"오~ 자부심. 야. 니네는 뭐 없냐?"

"없어. 우린 그냥 신촌에 술집 많아. 홍대 가깝고."

"아 씨. 둔촌동에도 맛있는 집 많거든!"

유치한 입씨름을 하기도 잠시.

종강이라고 들떠 있는 선수들 가운데 땀 냄새가 나는 곳을 찾아가 보았다.

"저기 있다."

"그러네..."

"다빈이 혼자네."

"다른 선수가 없잖아."

"왜 없어. 여자 원반이나 허들 등 같이 운동하려면 할 수 있는 건 많지."

많아도 이미 뒷말이 도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건, 최다빈 자존심에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후우... 아 추워."

"이 추운 날. 쟤는 왜 옷을 저렇게 입었냐..."

"그러게. 굳이 경기복을 입고 있을 필요가 있을까? 연습인데."

역시 한계야. 저런 상태로 운동을 한다는 게 더 이상해.

뭔가가 있어. 쟤를 저렇게 막다른 길로 내모는 무언가가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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