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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륜기로 가버렷-284화 (284/401)

은밀한 이야기 (4)

둘이 티격태격 다툰 적은 있어도, 진짜 싸움. 연인 간의 전쟁은 아마 지금 이 순간이 처음일 것이다.

"넌 지금 그걸 내 앞에서 말이라고 하는 거야...?"

그녀의 표정과 눈빛 목소리 톤 하나하나가 날 선 반응을 보여 주지만, 거기 맞서는 나도 만만치 않았다.

"왜? 그게 어때서?"

"넌 나랑 사귄 목적이 결국 섹스라고?"

"그냥 섹스가 아니잖아. 너랑 하는 거잖아."

"그게 결국 그 뜻이잖아!"

남녀가 바라보는 사랑의 의미와 행위가 다르다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다를 줄이야.

그것도 다른 사람도 아닌 이혜정이랑...

놀랍다 못해 경이롭다는 표현이 이럴 때 쓰는 말이구나.

"그만하자. 너도 지금 감정만 앞서 있고 뭔가 서로 자기 이야기만 하는 거 같아."

"근데 진짜 한 번은 이야기하고 싶었어."

"뭘?"

"너 왜 나랑 같이 안 자?"

"..."

"어차피 너도 나 오기 전까지 내 침대 쓰고 있었고. 침대는 두 사람이 써도 부족하지 않게 크고 넓은데."

"이미 한집에 있는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

"있어. 커! 얼마나 큰데!"

"사귀면 꼭 같이 자야 돼?"

"사귀는 사이면 같이 자는 게 맞아. 심지어 동거하는데. 각방을 쓴다는 게 더 이상한 거야."

익범이네 이야기를 해 줬다.

이 녀석은 동거는 아닌데, 여자 친구가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해 거의 그 집에서 생활을 한다고 들었다.

키도 190 넘는 놈이 여자 친구 침대에서 둘이 자느라 힘들다고 궁시렁거리는데 그게 어찌나 부러운지.

형네를 봐도 그렇다. 형네도 결혼 안 했지만 부부같이 지내잖아.

연인이니까. 그게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이니까. 비단 섹스를 하지 않더라도 동건데. 왜 따로 자냐고?

"그건 그 사람들 이야기지. 그리고 이 침대 니가 사 준 거잖아."

"니가 바닥에서 잔다고 하니까 신경 써서 그런 거지."

"그러니까 처음부터 내가 나간다니까..."

"왜 나가? 집이 좁아? 두 사람이 지내는데 부족해? 너가 서울 사는 거 싫어해? 아니잖아."

"그러니까 내 생활은."

"내가 너한테 방세를 달라고 했어. 생활비를 반반 내라고 했어."

"그래... 그건 고마워."

"그리고 너 은근 요즘 그런 거 있어. 내가 너 만지려고 하거나 안으려고 하면 거리감 두는 거."

"내가 언제?"

"아니라고 하자. 어?"

매일 섹스섹스한 일상을 기대한 건 내가 너무 밝히는 놈이라 그렇다 치자.

손도 못 대게 하는 건 뭔가 아니잖아.

이건... 사귀는 사이에 이러는 건... 이런 건 연애가 아니야.

"내가 너 만지는 게 싫어?"

"싫진 않아."

"근데 왜 거리를 둬?"

"그거야. 니가 만져도 이상하게 만지니까 그러지."

그러면서 하나하나 과장된 몸짓으로 보여 주는데, 내가 자기 엉덩이를 만지려고 하면 꼭 손가락을 세워서 가운데 넣으려고 하고 가슴을 만져도 그냥 만지는 게 아니라 밀가루 반죽 주물럭거리듯 만지고 젖꼭지를 괴롭히고 그런단다.

"그... 그건."

공수가 오고 가는 상황에선 뭐라도 반박을 해야 하는데, 얘 입장에서 듣고 보니 그게 또 그렇게 되는구나 하고 이해되는 나였다.

"오케이. 그건 미안."

"이상해. 불쾌할 때 장난 아니야. 징그럽다고."

"야. 내가 미안하다고 했잖아. 징그러울 건 또 뭐야."

솔직히 그냥 사과하고 넘어가고 싶었는데. 징그럽다는 단어가 괜히 자존심을 꾹 찔러서 반박하고 나섰다.

"그게 왜 징그러워."

"징그럽지! 의도가 불순하잖아!"

"야. 그렇게 따지면 모든 남자의 행동이 다 불순하지."

"넌 다른 여자들한테도 그래?"

"하하! 미치겠네. 아 왜 지금 그런 얘기를 꺼내!"

"그럼 나한테만 이러는 거야?"

"그러니까 그것도 좋아하니까 그러는 거라고..."

미치겠네. 내가 하는 애정이 담긴 행위를 그녀가 부정하면 나는 뭐라고 해야 하는지...

"혜정아 내가 싫어?"

"..."

"말해 봐. 내가 싫은 거야?"

혜정이는 씩씩 콧김을 내뿜으며 마치 인내심의 한계가 오는 듯한 표정을 보여 주었다.

"이건 너에 대한 감정의 문제가 아니야..."

"그럼?"

"......"

"아니 그렇게 노려보지만 말고 말을 해 봐. 뭐 다 싫다고 하면 난 어떻게 하라고."

"너에 대한 마음이 아니라 내 기분이 그렇다는 거잖아."

그 기분이 왜 지금 그렇지?

언제는 내가 자기 안 만졌나??

아니 우리가 한 번도 안 한 사이도 아니고???

그리고 내가 자기 그렇게 만져서 기분 나쁘다는 건, 그게 결국 싫어한다는 뜻 아냐?

"좋아하는 사람이 만지면 좋은 거 아녔어?"

"마하야. 여자는 때와 장소. 그리고 분위기라는 게 있어."

"때와 장소. 분위기라..."

내일은 혜정이 알바도 없고 나도 일정이 없다.

지금 우리는 한집에서 같이 살고 있다.

무엇보다 오늘 밤 생각보다 진중하고 좋은 대화를 나눴다.

추억을 언급하고 나에 대한 호감적인 시선을 비춰 주었다.

무엇보다 그녀가 진중하게 공부하던 옆모습에서 내가 매력을 느꼈다.

"말은 진짜..."

"아니. 맞잖아. 이보다 더 좋은 때와 분위기라는 게 어딨는데?"

그녀가 손가락을 척 들어 아까 벗어 둔 옷가지들을 가리켰다.

"너 씻었어?"

"..."

"나갔다 왔잖아. 밖에서 화장실도 갔을 것이고 여기저기 앉았을 거 아냐."

"그건 씻으면 되는."

"뭐가 됐든. 순서라는 게 있는데. 지금도 너 가까이 가면 호프집 기름 냄새 나는데. 그런 몸으로 뭘 한다고."

그녀가 내가 만난 다른 어떤 여자들보다 철저한 위생 관념을 가지고 있음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난 지금 섹스가 아닌 넓은 의미의 스킨십 전반에 관한 이야기를.

"말 돌리지 마. 결국 하자는 건 같잖아."

"그러니까. 같은데."

"후우. 마하야. 너가 이러니까 내가 거리감을 두는 거야..."

잠깐만. 지금 실토했다.

"맞다고?"

"그래. 맞아."

"...그럼 니가 날 안 좋아하는 게 맞네."

"제발... 말을 그렇게 듣지 말고..."

그녀가 이마를 꾹 눌러 잡으며 말했다.

"나는 너를 싫어하는 게 아니고. 좋아해. 좋아하지만."

"사랑해?"

"들어 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때와 장소 분위기를 언급하는데 들었던 얘기를 왜 또 반복하는지...

"그 얘긴 아까 했잖아."

"...넌 내가 아무 때나 원하면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아니."

"뭐가 아냐... 아닌 애가 사람을 그렇게 대해?"

"원하면 아무 때나 하고 싶은 건 맞지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아."

"..."

"난 절대 상대방이 동의하지 않는 섹스는 하지 않아. 이건 내가 가진 원칙이야."

"그럼 나한텐 왜 그래?"

"그러니까! 말을 하잖아. 좋아하니까 그러는 거라고."

이상하다.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싸울 주제가 아닌 거 같은데 대체 왜 이러는 거지?

감정이 앞서서 그런가? 아니면 그냥 그동안 눌렸던 서운함이 터지는 건가?

"잠깐만. 야 잠깐만."

잠깐만 정리해 보자.

나는 그녀를 좋아해 안고 싶고 같이 있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녀는 내가 좋아도 때와 장소 분위기를 가리고 싶단다.

왜지? 왜 그러지?

"혜정아."

"왜...?"

"...나랑 하는 게 싫어?"

아닌데. 이게 아닌데. 뭔가 더 핵심을 찌르는 질문이 있는 거 같은데...

"지금은 싫어."

"그럼 그렇게 말을 하면 되잖아."

"니가 먼저 옛날에 여자애들 알았으면 좋았겠다 뭐다 그런 소리를 했잖아."

우와... 다시 원점. 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야?

다빈이부터 시작해 참 여러 사람을 만나고 사귀어 왔었다.

긴 연애도 있고 짧은 불같은 연애도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사람들 중에서 누구도 이혜정같이 내게 대립해 온 여자는 없었다.

심지어 그 재벌가 상속녀 한수빈조차 무슨 일이 있으면 일단 굽혀 줬지 이렇게까지 대립각을 세우진 않았었는데.

첫사랑의 파워가 대단하구나.

이런 사랑싸움은 처음인데.

하지만 감정 섞인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새롭게 알게 되는 것들이 있었다.

그녀의 진심 어린 감정이라든지, 나를 보는 시선이라든지.

"우리는 더이상 파트너가 아니야. 연인이야."

"그래. 맞아."

"섹스가 전부가 아니라고. 그 이상의 관계가 되어야 돼."

"그 이상이 뭔데?"

"적어도 잠만 자는 건 아니라는 거지!"

오늘 미래에 대해 물어본 것도 그렇고, 혜정이는 혜정이대로 변화를 만들기 위해 많은 신경을 쓰고 있었다.

왜냐면 우리는 서로가 좋아서 만나게 된 게 아닌 말 그대로 쾌락을 위해 뭉쳤던 사이니까.

"나도 좋아하니까 그러는 거잖아."

"그게 이해가 안 간다고 좋아하면... 그냥 같이 좋은 시간 보내면 되는 건데."

"그러니까... 너한테 가벼운 여자로 보이기 싫은 내 마음을 왜 모르냐고..."

결국 이혜정은 최후의 필살기를 썼다.

운다. 우는 여자한테 더 이상은 뭐라고 할 수가 없어 자리를 피해 나왔다.

"후우..."

마침내 그녀가 바라지 않던 샤워를 했다.

뜨거운 물 아래서 계속 생각했다.

오해를 풀기 위해 이야기를 꺼냈는데 더 큰 오해가 쌓이는 건 왜일까?

행복하자고 하는 연애가 가끔은 왜 이렇게 힘든 거지?

형도 수정이 누나랑 이러려나?

정석이 새끼는 뭘 어떻게 하길래 착하다는 소리를 듣는 거지?

차근차근 내가 머리가 나쁜 건지. 뭐가 문제가 되는지를 되짚어 보았다.

그러니까. 너는 섹스가 전부가 아닌, 그 이상의 감정들을 연인 간에 나눠야 한다. 이건데.

연인 간에 섹스 그 이상의 감정을 대체 뭐로 확인하자는 거냐고.

"..."

어디가 문제인지 알 거 같다.

이건 은퇴 후 하고 싶은 게 뭐냐는 질문과도 같다.

나는 너무 모르는 게 많다.

운동은 잘해. 내가 챔피언이지. 엘리트 체육에 대한 반감을 떠나서 그런 자부심은 있다고.

하지만, 운동 외 다른 영역에 있어서 나는 정말로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그저 본능만을 쫓아다닐 뿐.

괴롭다. 속이 꽉 찬 사람이 되고 싶은데.

말만 챔피언이 아닌 진짜 멋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데...

일단, 나가서 이 오해는 풀어야겠다.

나에게 섹스는 사랑의 다른 말이다.

마냥 쾌락에 젖어 상대방을 무시하고 정액이나 흩뿌리는 일탈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랑을 느끼고 싶다.

사랑을 가지고 싶다.

그렇기에 상대방을 안고 싶다.

그 마음만 인정받으면 된다.

"음?"

"..."

씻고 나오자 혜정이가 거실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과제 한다며."

"...일로 와서 앉아 봐."

또 대화의 장인가?

이럴 시간에 했어도 세 번은 했겠다 싶지만, 그냥 조용히 있어야지. 나도 건네주고픈 말이 있었으니까.

"기분은 좀 풀렸어?"

"...너가 나 많이 신경 써 주는 건 알아."

내가 혼자 방금 전 싸움을 돌려보듯 혜정이도 그런 시간을 가진 것 같다.

생활비를 내라는 것도 아니고, 살림을 하라는 것도 아니다.

그런 배려는 고맙다. 연인을 떠나 인간 대 인간으로 많은 배려를 해 준다고 느낀다.

"그래서도 이상한 오해가 생긴 거 같아."

"무슨 오해?"

"결국, 너가 나한테 원한 건 잠자리밖에 없다는 오해."

주인 없이도 혼자 1년 넘게 집을 지켰던 혜정이였다.

어떻게 보면 나보다 더 집안 가구나 살림을 잘 알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난 여차하면 사 먹거나, 빨래 같은 것도 그냥 학교 세탁기 쓰거나 호텔 가서 맡기고 그러지만, 혜정인 모든 걸 다 집에서 했으니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하겠어."

"완전 아니지. 절대 아니야. 내가 널..."

"그래도... 니가 생각하는 사랑이란 개념을 난 잘 모르겠어."

"후우. 안 그래도 나도 너 보면 다시 이 얘기해 주려고 했는데."

생각한 그대로 워딩을 전달해 준다.

나의 섹스는 곧 사랑의 다른 말이고, 니가 알다시피 나는 자라 온 배경이나 환경이 그렇다 보니까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운 심각한 외로움을 가지고 있다고.

"난 애정 결핍이지. 그래서도 섹스 중독이 있는 거고."

"아니야. 그렇게 말하지 마. 너한테 정신적인 문제는 없어."

"하하. 그걸 니가 어떻게 알아."

혜정이도 피식 웃으며 말한다.

"그렇게 위태로운 사람이면 애초에 내가 좋아하지도 않았어."

여러 이야기 끝에 서로를 배려하면서도 조심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러면서도 각자의 인식과 습관 갑작스레 함께하게 된 생활에 있어선 큰 혼돈이 있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무엇보다 나와 얘가 섹스에 대한 개념이 다르다는 걸 알았다.

"나는 서로의 존재와 가치를 인정하는 과정 속에 사랑을 찾는 거지. 절대 그냥 성욕에 미치는 건 아니야."

"진짜로?"

"...뭐 물론 가끔 그런 날도 있지만."

"가끔이라고?"

"가끔이지. 야. 애초에 나는 좋아하는 마음도 없이 그냥 하자고 달려드는 그런 놈이 아니야."

"나도 그래. 나도 좋아하는 마음이 있으니까 너랑 잤던 거야."

"..."

"왜?"

"...왜 갑자기 짜증을 내?"

"내가 언제."

"방금. 목소리가 살짝 빈정 상했다는 듯이."

"니가 잘못 들은 거겠지."

그래서 2회전에 돌입.

아까 못다 한 이야기의 속편을 꺼내 들었다.

"크리스마스 때도 그래. 어떻게 그날 알바를 갈 수가 있어."

"무슨 소리야. 그건 너 한국 오기 전부터 일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던 건데. 그리고 너도 광고다 뭐다 그때 맨날 나가서 바쁘게 움직일 때였잖아!"

과연 첫사랑은 첫사랑이구나.

이혜정. 언제 어느 순간이더라도 내 앞에서 당당하고 강인할 수 있는 여자.

순종적이고 다 허락해 주는 듯한 사람들만 만나다가 이런 사람을 마주하게 되니 예상을 웃도는 난관이 앞을 가로막는 기분이다.

"어떻게 입만 열면 그러냐고. 사람이 징그럽게."

"또! 또 징그럽다고!!"

"그게 싫어?"

"싫지! 사람을 무슨 벌레 취급하는데."

"내가 언제 널 벌레 취급했는데."

"징그럽다며!"

이렇게 티격태격하다가도 툭툭 나오는 한 마디 한 마디에 지어 보이는 그녀의 표정이 나를 설레게 만든다.

"왜 지금? 왜? 진짜 그냥 그러는 거야? 갑자기 막 땡기고 그래?"

"갑자기 그러는 게 아니라. 아까 너 집중하고 공부하고 있던 표정이 뭔가 야릇했었다고."

"..."

"이건 징그럽거나 내가 미치는 게 아니야. 그냥 니 모습이 그만큼."

"그만큼 뭐?"

"매력적이었다는 거지."

좋아할 거면 좋아하고 화를 낼 거면 화를 내고.

사람이 급격한 감정 변화를 느끼면 엉덩이에 털 난다는데.

아 그래서 여자들이고 남자들이고 다 거기에?

"솔직히 말해 봐. 지금도 하고 싶어?"

"솔직히 말해서. 이럴 시간에 다섯 번은 했겠다."

"무슨 다섯 번까지나..."

"왜 이래? 나 구마하야."

"...너 세 번이 한계 아니었어?"

"하하하하. 몸이란 훈련을 통해 강해지는 법이고, 나는 한 달 전까지도 살얼음판 같은 대회를 위해 몸을 단련해 왔었지."

"다섯 번..."

"왜? 안 믿겨?"

"그게 진짜 돼? 아니. 그렇게 하면 여자는 뭐 느껴?"

"안 믿기면 시험해 보든가."

"..."

"해?"

"또... 그냥 어떻게든 틈만 나면..."

난 그냥 너의 있는 그대로의 여러 모습이 사랑스러워하고 싶다는 것이라 말해 줬다.

혜정이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해 또 혼자만의 해석을 덧붙이고 있었다.

"그게 결국 잠자리만 원한다는 거 아냐?"

"후우. 그래. 그렇다고 하자..."

"왜? 맞잖아."

"아니라고... 그건 다르다고."

"어떤 모습이든 상관없다며. 내가 막 아침에 일어나서 부스스해도? 입에서 입 냄새 나도? 머리 헝클어지고 다리 털 막 나 있고 그래도?"

"아니. 사람이 어떻게 매번 완벽할 수 있냐고. 그리고 그런 모습까지 다 포함해서 좋으니까 사귀는 거 아냐?"

"..."

"넌 내가 언제나 멋지고 완벽했으면 좋겠어? 그런 걸 좋아하는 거야?"

"모르겠어."

"그래. 이 마당에 우리가 뭘 알겠냐. 그만 떠들고 잠이나 자자. 밤 12시에 쟤네는 사촌끼리 뭘 저렇게 떠드냐고 뭐라 하겠네..."

그렇게 다 포기하고 방으로 들어가 제주도로 떠난 장금이가 어떻게 돌아오는지나 보려는데, 혜정이가 묻는다.

"정말 아무 상관 없다 이거야?"

"뭐가?"

"아침에 일어나서 입 냄새 나고 그래도 상관없다며..."

"..."

조용히 그녀를 보았다.

왜인지, 지금 그녀의 생각을 알 것만 같다.

"너. 나한테 완벽하게 보이고 싶어?"

"어."

"왜?"

"그래야 좋아할 거 아냐."

"..."

여자란 이런 존재구나.

이미 서로의 항문을 보았고 생식기를 받아들였고 어디에 점이 있는지 뭘 하는지 다 아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을 감추고 꾸미려 한다.

"같이 잘래?"

"음..."

"고민하지 말고. 자다가 방구 뀌어도 뭐라고 안 할게."

"야!! 나 자다가 방구 같은 거 안 뀐다고!!"

알겠다. 얘가 왜 이러는지.

우리가 동거 상태니까 그렇구나.

우리는 그냥 남자 친구 여자 친구가 서로의 집을 드나드는 게 아닌, 한 지붕 한 가족이 됐으니까 그게 혜정이 마음에서 방어막을 펼친 거야.

말 그대로 언제 어느 때라도 할 수 있는 관계가 된 것이 그녀의 마음을 조심하게 만들고 있었다.

가볍게 보다니 절대 그러지 않아.

오히려 소중해서 더 기쁘게 해 주고 싶지.

"어~~어? 왜! 왜 이래?"

"자자."

"야. 내려 줘!"

싫다고 버둥거리는 그녀를 번쩍 들어 방으로 옮겼다.

혜정이도 잠깐은 바둥바둥 팔다리를 흔들지만 침대에 내려놓자 이내 조용히 바라만 본다.

"..."

"쓸데없는 자존심을 부리고 있어."

"내가 언제..."

지금. 어제. 그제. 내가 돌아오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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