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한 이야기 (5)
가볍게 본다라...
전에도 한번 그런 얘길 했던 거 같은데.
얘는 내가 자기를 가벼운 마음으로 좋아하고 있는 줄 아는 건가?
"사람을 왜 그렇게 쳐다봐?"
"그냥. 예뻐서."
"..."
"진짜 넌 니네 부모님한테 잘해야 돼."
"갑자기 무슨 소리야...?"
"착하게 살라는 소리다."
나는 자신감과 자존심이 다르다고 알고 있다.
자신감은 좋다. 당당하고 멋지고 어디 가서 꿀리지 않는 그런 게 자신감이니까.
근데 자존심은 뭐랄까...
물러설 곳 없는 사람들이 부리는 마지막 긍지 같은 거랄까...?
나도 진짜 자존심 하나 믿고 견뎠던 존못 찐따 시절이 있는지라 그 마음을 잘 아는데.
자존심은 뭔가 표현하기는 어려워도 내가 지켜야 할 그 어떤 선이 있다는 느낌 같다.
그 선이 무너질 때 그대로 나 자신이 무너질 거 같기에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최후의 보루 같은.
난 혜정이가 자존심을 부린다는 사실이 이해되질 않는다.
얘가 왜? 뭐가 궁해서?
얼굴 예뻐. 몸매 좋아. 머리도 좋고. 집안도 나쁘지 않아.
부모님 다 살아 계시고 교우 관계도 나쁘지 않고.
그런 애가 왜 가벼우니 뭐니 같은 말도 안 되는 불안을 가지고 있는지...
요즘엔 좀 뜸해도, 예전 한때는 진짜 미용실만 가면 머리하는 것보다 거기 있는 여성 잡지 상담 코너를 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책에선 그렇게 말했었다. 남자의 마음과 여자의 마음이 같을 순 없다고.
그래. 다른 거야. 모르는 거야.
내가 아는 이혜정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어.
뭔가 있겠지. 여자니까. 연인 앞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자존심 그런 게 있다고 치자.
여자 가슴 한 번만 봤으면 하던 시절의 내가 아니다.
혜정이가 지민이 형 만나던 6월의 그 날을 꿈꾸며 혼자 상딸을 치던 내가 아니다.
이 사람은 내 여자 친구니까. 내 사람이야.
내가 믿어 줘야지.
남자의 마음과 여자의 마음. 아니 남자의 사랑과 여자의 사랑이 아무리 달라도, 서로 통하는 게 있으니까 연애가 되는 거잖아.
궁극적으론 내가 하고 싶은 사랑과 혜정이가 만들고픈 사랑이 다를 거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난 기다리기로 했다.
굳이 그녀를 침대까지 데리고 왔어도 눕혀만 놓고 지켜만 본다.
"아 뭐!"
"뭐가? 왜?"
"왜 그러고 보고만 있냐고!!"
그래서 점점 조바심이 나는 이혜정이었다.
툭~ 하고 무방비하게 누워 있는 그녀의 옆에 무심하게 앉아 미소 지었다.
물론 나도 침대 베갯머리에 헝클어진 혜정이의 머리카락과 뽀얀 피부. 가느다란 목선. 잠옷으로 가려지지 않는 볼륨 있는 몸매를 지켜보노라면 단전 아래 끓어오르는 뜨거운 기운을 무시할 순 없지만. 그래도 걱정 마라. 니가 원하지 않으면 난 아무 짓도 안 해.
그녀에게 주입받은 사랑의 제1원칙은 나에게 있어서도 언제나 첫 번째 원칙이 되었다.
난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섹스는 하지 않는다.
섹스는 폭력이 아니니까. 사랑의 다른 말이니까.
"...너 지금 일부러 이러는 거지?"
"음? 뭐가?"
"..."
"하하하! 뭐가?"
"...나 방으로 갈 거야."
"어허. 같이 있자니까."
"야."
아직, 연예인을 만나진 않았지만, 수빈이도 그렇고 다빈이도 그렇고. 벨라루스의 빅토리아나 많은 매력적인 여성들을 만나 봤었다.
난 혜정이가 그런 사람들에게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진짜 얘는 개인적인 취향이 아니라, 어딘가 애정의 관점을 넘어서는 사람을 소유하고 싶다는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구석이 있어.
정말로. 농담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얘는 부모님한테 감사하다고 매일 아침 절하고 발 씻겨 드리고 그래야 되는 애라고.
어떻게 이렇게 생기냐고.
"혜정아."
"...왜? 뭐?"
"넌 니가 예쁜 거 알지?"
"아니. 모르는데."
"왜 몰라. 너 먼저 민서한테도 그랬었잖아. 넌 니가 이쁜 거 안다면서."
"그. 그건!! 그냥 그때!"
"안 했다고 해라. 내 기억이 잘못된 거라고 해 보라고."
"넌 지금 걔 얘기를 왜 꺼내는데!!"
단지 예쁜 게 전부가 아니다.
이렇게 놀리면 발끈하기도 하고 아까같이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진중한 얼굴도 가지고 있다.
"그러는 넌 그 표정 뭐야?"
"내 표정이 어때서?"
"되게 여유 있는 척하고 있어... 짜증 나게."
"하하하. 뭘 짜증을 내."
침대에 걸터앉아 가만히 그녀의 이마에 붙은 머리카락을 넘겨 주며 말했다.
"좋다. 진짜."
"...뭐가 그렇게 좋은데."
"그냥 너랑 있으니까."
"마하야... 넌 나 왜 좋아해?"
"좋으니까 좋은 거지."
"얼굴 때문에?"
"얼굴도 있고. 몸매도 있고. 성격 마음 다 좋지."
"뭐 다 좋대..."
"어? 지금 조금 좋아하는 거 같은데?"
"아니거든."
"맞거든! 너 지금 숨길 수 없는 기쁨의 미소가 여기 입술 끝에."
"아 왜 이래."
"하하! 맞잖아. 왜 센 척해. 너 지금 내 말에 웃은 거 맞잖아!"
꺄르륵거리며 애들같이 장난스레 볼을 찌르고 놀렸다.
혜정이도 이불과 베개에 얼굴을 숨기며 끝까지 몸을 감췄다.
"하하! 안 닿았지롱? 못 만졌지롱?"
"오. 꽤 날렵한데? 어디 이래도 피하나 보자."
"아하하! 아 야! 힘으로 하는 게 어딨어!"
한참을 둘이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웃고 떠들며 놀았다.
그렇게 있기를 잠시.
결국 체력이 떨어진 그녀가 숨을 헐떡이며 내 아래 누워 있었다.
"하아 하아."
"이제 항복하는 거야?"
"허억. 허억."
그녀의 커다랗고 촉촉한 눈빛이 말을 건넨다.
키스를 해도 좋다.
지금은 무엇을 해도 다 받아 준다.
그래도 직접 물어보았다.
"혜정아. 나랑 하는 게 싫어?"
"아니. 좋아."
"근데 왜 이렇게 고집을 부려."
"하아 하아..."
"난 너 사랑해 주고 싶어. 진짜로."
그러자 혜정이가 숨을 고르며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떻게 사랑해 줄 건데?"
뜨겁게 열정적으로.
나랑 함께 있어, 이 세상 누구보다 행복이 넘치는 그런 사람으로.
가만히 손을 내밀어 또 한 번 이마를 정리해 주자, 혜정이는 눈을 감으며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작은 입술이 열정을 받아들인다.
굵고 길쭉한 혀를 아무렇지 않게 상대하고 서로를 안고 누운 자세에서 그녀의 두 팔이 목덜미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음."
한참을 그렇게 둘이 키스를 나눴다.
몇 년이란 시간을 목소리만 들었던 연인들같이 우리는 오직 서로의 입술만으로 상대방의 체온을 느꼈다.
뜨겁다. 부드러워. 촉촉하다.
내가 내미는 혀의 움직임을 그녀의 혀와 입술이 따라와 준다.
"하아. 으음."
그리고 혜정이가 먼저 손을 내려 아랫도리를 슬며시 묵직하게 만지기 시작했다.
이것 봐. 이래 놓고 뭔 가볍고 자시고를 따지고 있냐고.
때와 장소 분위기가 어딨어.
같이 있는 지금 이 공간 서로를 느끼는 이 분위기면 되는 거지.
"엉덩이 들어 봐."
"응."
옷을 벗기는 데 있어서도 우리는 일말의 망설임이 없었다.
자주 보았고, 또 자주 느꼈던 그녀의 앙증맞은 가슴과 가느다란 허리.
따로 운동을 하는 것도 아니면서 육감적으로 발달한 골반과 허벅지가 눈앞에서 빛나기 시작했다.
그때 혜정이가 내 가슴에 푹 얼굴을 기대며 말했다.
"흐음. 냄새 좋다."
"음? 그래?"
"응. 난 원래 니 몸에서 나는 냄새 좋아했었어."
혜정이가 나는 잘 모르겠는, 내 몸에서 나는 체취를 느낄 때.
나는 그녀의 가느다란 목과 잔머리가 나와 있는 귓불을 콧김으로 간지럽히며 또 한 번 혀를 내밀었다.
"아. 목에 하면 안 돼."
"왜?"
"알바 가면 사람들이 본단 말이야."
"훗. 그럼 알바를 그만하면 되지."
"안 돼. 아직은 더 일하고 싶어."
마음은 이해되나, 거절당한 심술이 있어 그녀의 목이 아닌 가슴 언저리를 집중적으로 괴롭혔다.
혜정이도 작은 목소리로 아파... 라며 투정하지만, 한번 거절한 이상 두 번 세 번 안 된다는 말을 하지는 못했다.
늘 그렇지만 그녀의 하얀 피부 위에 남기는 키스 마크는 또 다른 정복욕을 불러일으킨다.
자신의 몸을 보며 곤란해하는 이 표정 또한 내 마음에 불을 지핀다.
"못됐어. 이렇게 하지 말라니까. 지워지는 데 오래 걸린다고..."
"뭐 어때. 나만 볼 건데."
"..."
"아니야? 설마 다른 놈도 봐?"
"미쳤어. 얘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달아오르는 분위기 가운데, 얼토당토않은 헛소리로 긴장감을 늦추고.
그대로 봉긋하게 솟아오른 그녀의 분홍빛 유두 끝을 입에 물었다.
"으음."
키스 마크는 강한 흡입력으로 피부에 빨간 자국을 남기는 행위라면.
애무는 그와는 다르게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촉감을 달래는 일이다.
마치 녹기 직전의 크림 소프트 아이스를 한 입 베어 물 듯 그녀의 가슴을 물고 애무했다.
"으흠. 응~"
점점 그녀의 소리가 일상의 평범함에서 연인 간의 달콤함으로 변해 간다.
버둥버둥 투닥거리던 장난스러운 몸짓도 교태를 부리고, 달아오르는 호흡에 맞춰 아랫배가 들썩거렸다.
"하아 하아~"
그녀는 얌전한 사람이다.
나와 민서. 세 사람이 함께한 시간이 있지만, 나는 그녀의 본성을 그렇게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혜정이는 성을 알고 즐길 줄 아는 여인이 된다.
내가 불편하지 않게 허리를 들어 주고, 단단한 허벅지에 끼워 놓은 가랑이를 슬며시 움직이며 골반을 압박한다.
원래 우리는 학생 때부터 즐기던 우리만의 원 패턴 섹스가 있었다.
가슴을 애무하고 클리토리스를 자극하고. 가끔 혜정이가 기분이 좋으면 오럴을 해 주고 충분히 젖었다 싶으면 삽입.
하지만 오늘 나는 그런 우리의 경직된 패턴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덧붙여 보기로 한다.
"음?"
"팔 들어 봐."
"응...?"
"괜찮아. 제모하지 않았어?"
"나 털 없어!!"
가슴을 애무하다 팔을 들어 겨드랑이를 핥아 주었다.
당연하다는 듯 간지럽고 느낌이 이상하다고 난리다.
"아하하. 야. 하지 마. 이상해."
그렇지. 이상하지. 무엇보다 느낌이 강하니까 심해지면 괴로울 것이다.
하지만 겨드랑이의 간지러움을 느낀 이상 다른 부위의 간지러움은 크게 와닿질 않는다.
그래서 자세를 바꿔 그녀의 허벅지 안쪽을 부드럽게 키스해 준다.
"흐으음..."
"조금만 참아 봐."
간지러운 느낌 그 이상으로 지금 그녀의 골반에서 뜨거운 애액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마하야. 그만 이상해."
"안 돼. 조금만 참아 봐."
가녀린 두 다리가 밀려오는 감각에 발바닥을 비비며 움직인다.
다리가 모일 때마다 골반은 벌려지고 붉은빛을 띠는 그곳이 점점 생생하게 움찔거리기 시작했다.
참다못한 혜정이가 먼저 말했다.
"그. 그만!"
애원하는 목소리를 무시하며 계속해서 허벅지를 간지럽혔다.
그러면서도 손으로 그녀의 클리토리스를 가볍게 쓰다듬어 주기 시작했다.
"하아. 학!"
꽤나 부끄러운 자세가 아닐 수 없지만, 지금 혜정이는 그런 걸 신경 쓰긴 어려운 상태였다.
"뭐. 뭐야. 왜... 왜 이래...?"
"좋아?"
"좋은데... 왜? 허벅지 거기 왜?"
"음. 분위기 깨는 거 같아서 말해 주기 싫은데, 여기 혈관이 뭉쳐 있거든."
"..."
"후후후. 말했잖아. 난 너 기분 좋게 해 주려고 하고 싶은 거라니까."
여러 사람을 만났던 나와 다르게, 혜정이는 2년 전 나를 마지막으로 다른 남자를 만나지 못한 거로 알고 있다.
아니. 어쩌면 작년 여름 산장에서의 하룻밤이 마지막일 수도.
한 방향으로만 흐르던 그녀의 감각이 다양한 물길에 새로운 것들을 알아 간다.
"으음~."
"혜정아. 이번엔 엎드려 볼래?"
"응."
그녀가 자존심을 버리고 자신의 모든 걸 다시 내게 내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