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음식 (5)
[몇 시에 들어온 거야?]
[4시.]
[술 조금 마시라니까...]
[얼마 안 마셨어. 술보단 안주를 축냈지. 아직도 소화가 안 돼.]
[자긴 했어?]
[잤지 당연히. 넌 지금 어디야?]
[점심 먹고 나와서 외갓집 가는 길.]
다음 날 설 당일은 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어제 이런 일이 있었다. 뭐라 뭐라 했다. 우리 이야기도 밝혔다. 애들이 축하한다고 다음에 놀러오겠다고 하는데 너한테 물어본다고 했다 등등.
친척집에 간 혜정이는 느리지만 꼬박꼬박 답장을 보내 줬다.
[흠. 애들 오면 내가 잠깐 성남에 와 있을까?]
[그러면 안 온다고 할걸. 너랑 나랑 같이 보고 싶어 하니까.]
[좀 그런데...]
그렇지? 나도 그래. 둘이 같이 사는 거 보이는 게 뭔가 민망하다랄까...?
[아무튼, 다음에 얘기하고. 뉴스 보니까 차 막힌다는데, 거기는 어때?]
[괜찮아. 평택에서 그렇게 멀지 않고. 하지만 돌아갈 때는 엄청 막힐 거 같애.]
[외가는 어디야?]
어제 일로 아직도 즐거움이 넘쳐 나는 나와 다르게, 혜정이는 연신 지겹다. 부모님들 또 냉랭해서 피곤하다. 친한 친척들은 오지도 않았다. 심심해 미치겠다 투덜투덜거린다.
[아. 명절이고 뭐고 그냥 빨리 집에 가고싶다 ㅠㅠ]
얘가 말한 집은 우리 두 사람의 집이겠지? 끝나고 올라오면 빨리 데리고 돌아갈까 싶어진다.
"야."
"어?"
"넌 늦게 일어나서 누구랑 그렇게 문자를 하냐?"
"어. 아니 그냥."
"혜정이?"
"..."
"하하하! 뭘 그렇게 놀라. 정석이한테 들었어. 둘이 만난다며."
그럼 그렇지. 이놈이 무슨 입이 무거워. 어딘가는 털어놔야지.
"축하한다."
"됐어. 뭘 축하까지 해."
"왜. 축하할 일이지. 너 걔 어릴 때부터 좋아했었잖아."
"..."
"하하! 뭘 그렇게 나쁜 짓 하다 들킨 것처럼 얼굴이 굳어."
"아니. 형은 저기... 내 여자 친구들 다 아니까."
"근데, 진짜 너 얼굴 엄청 보는구나. 이번엔 혜정이에 먼저는 수빈이. 그때 그 운동했던 친구도 그렇고."
"다빈이는 여기에 비하면 예쁜 편은 아니지."
"깜찍하지. 이 자식이 지 얼굴은 생각도 안 하고 사람 외모를 평가해?"
"잘생긴 사람이 뭘 알겠어."
오랜만에 형이랑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수정이 누나가 없는 형은 어떤 기분일까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형은 누나랑 좀 어때?"
"우리야 뭐. 똑같지."
"형도 누나 없으면 편하고 그런 거 있어?"
"후후후. 하하하하~!!"
"오~ 뭐지? 웃는 게 뭔가 있는데? 형도 그래?"
"수정이도 은근 옆에서 뭐라 하는 게 많아."
"누나가 형한테? 진짜?"
나는 도인의 다른 말이 구마윤인 줄 알았다.
아니구나. 우리 형도 남자였구만.
"와. 형이 그런 걸 느낀다고? 처음 알았어."
"감정이 아니라 그날그날 기분이라는 게 있잖아. 피로도 있고. 몸도 지치고. 알아서 잘하는데, 옆에서 한 번 더 짚어 주면 괜히 신경 쓰이니까."
"그러니까 내 말이. 여자들은 그걸 모른다니까? 남자가 애도 아니고."
"그래도. 난 수정이가 걱정해 주는 거 좋아."
"잔소리라며? 왜 이제 와서 딴소린데??"
"하하하. 좀 넘어가."
그때 혜정이한테 문자가 들어와 빠르게 답장을 해 줬다.
"그냥 전화를 해. 난 문자 하는 거 별로더라. 직원들을 봐도 그렇고."
"그건 형이 아저씨라 그래. 어른들 같이 있는데 어떻게 전화를 해. 전화할 수 있는 상황이면 얘가 먼저 통화를 했겠지."
"너 설마. 저쪽에선 모르셔?"
"아줌마만 알고. 아저씨는... 뭐."
"흐음."
"그러니까 형도 조심해. 괜히 혜정이네 아저씨 보고 친하게 인사하다가 실수한다."
"야. 니가 연애하는데 왜 내가 조심해야 되냐?"
형도 핸드폰을 만지막하고 있었다.
"어디 연락 올 데 있어?"
"없어."
"형도 누나한테 문자 하려면 문자 해."
"됐어."
"설마. 돈 아까워서 안 보내는 거 아니지? 형 요즘엔 기본 제공 문자라는 것도 있다. 안 쓰면 그게 돈 버리는 거다."
"마하야."
뭔가 형 얼굴이 조금 의미심장해 보인다.
"왜? 뭔데?"
"나 그냥 수정이랑 결혼할까?"
"..."
"싫으냐?"
"해! 하라니까!! 돈 부족하면 내가 준다고!!"
"야 형도 벌어. 먼저 은행에서 통장도 새로 만들어 줬고. 이제는 저금하러 가면 음료수도 주고 그러셔."
"하하하. 우와! 형!!"
형 입에서 결혼 이야기가 나오다니. 꼭 내가 프러포즈를 받은 것 같아 방방 뛰었다.
"그럼. 누나가 그냥 집에 간 게 아니었네."
"자기도 서른 넘었는데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 없다고 하는데, 좀 충격적이더라고."
"그건 형이 너무한 게 맞지. 누나도 나이가 있는데."
"어른들 뜻을 반하고 싶진 않았는데..."
"어른 누구? 형이 어른이잖아. 우리 집에 형보다 더 어른이 어딨어."
"수정이 부모님들..."
"아 좀 제발. 들어 봐. 어제 애들이 그러는데. 내가 국민 영웅이란다. 그런 국민 영웅을 키운 게 누구야? 구마윤이잖아. 여기서 어른이고 뭐고가 무슨 상관이야 형은 영웅을 키웠는데."
"후후 이 자식..."
"그냥 주변 신경 쓰지 말고 형네만 봐. 누나가 그런 거 따져? 수정이 누나는 형 한 사람만 보고 있는데. 솔직히 지금까지 참아 준 누나가 고마운 거지."
"니가 뭘 안다고"
"아 왜? 나도 성인인데! 나도 연애해. 사랑도 하고. 오히려 그런 쪽으론 형보다 내가 더 오랜 시간 고민하고 생각해 왔어!!"
"후후. 자식. 알겠다."
혜정이한테도 바로 이 기쁜 소식을 전달해 주었다.
[그래서. 형 결혼한대. 아까 방에서 누나랑 통화하는 거 들었어.]
[정말? 잘되셨다.]
[누나도 지금 집으로 오는 중. 역시 명절이라고 그냥 간 게 아니었어. 나름의 시위였던 거야.]
[클래식하네. 서운하다고 친정으로 가시다니.]
[너는 나랑 싸우면 성남으로 안 올 거야?]
[난 상대방을 내보내지. 내가 왜 나가?]
내 집인데 나를 내보낸다고? 흠. 굳이 따질 필요는 없나?
아무튼, 밝고 희망찬 소식에 새해부터 가슴이 훈훈하다.
이제는 수정이 누나가 아니라 형수님이야.
와 형수님라니.
진짜 가족이잖아.
우리 형제한테 사람이 생겼어!
[혜정아. 우리도 결혼할까?]
[진정해. 침착하라고. 거기에 우리가 왜 들어가. (--)]
[그냥. 형 결혼한다니까 나도 너무 하고 싶어서. 어? 하자!]
진심이었다. 솔직히 못 할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돈 벌지. 집 있지. 차 있지. 직업 앞으로 뭐든 할 수 있지.
나이도 스무 살 넘었고, 해외 운동선수들 중에는 20대 초반에 결혼하는 사람들도 꽤 있는데. 데보라랑 모레노도 몇 년 안에 한다고 했었고.
그러나, 외갓집에 도착했는가 혜정이한테선 문자가 돌아오지 않았다.
"결혼이라..."
가만히 있는 게 더 힘들어 차 키를 들고 밖으로 나섰다.
"어디 가냐?"
"형. 누나 차 안 가지고 갔지? 주차장에 차 있는 거 같던데."
"어. 그냥 버스 타고 움직인다고."
"누나네 집 어디야? 내가 모시고 올게."
"야. 그냥 가만히 있어. 니가 왜 수정이를 데리고 와."
"아. 가족이니까 그러지!!"
너무 행복하다. 진짜 너무 좋아서 눈물이 날 것 같다.
두 사람한테 뭘 해 주지? 집을 사 줄까?
아니. 이번 기회에 형도 면허 따라고 하고 차를 하나 해 줘?
"너 자꾸 그러면 나 결혼 안 한다."
"제정신이야? 지금 고작 이런 자존심 때문에 행복을 포기한다고."
"하하. 이 자식이 진짜..."
"이런 기분이구나. 어제 애들이 자꾸 놀려서 짜증 났는데, 이런 거야."
역시 사랑은 위대하다. 그냥 그 자체로 주변에 행복을 전파한다.
나 아닌 다른 사람들 이야긴 아무 상관없는 문제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니다.
"그냥 조용히 있어. 알겠지?"
"아. 어떻게 조용히 있어. 누나 데리러 갔다올래."
"알아서 하고. 그럼 난 저녁이나 준비하고 있어야지."
* * *
"오오~ 잘됐네. 그때 그 분이지? 조금 통통하신 분."
"태윤이도 봤냐?"
"가끔 정석이 보러 갔을 때. 인사 몇 번 드렸었어."
"정석이 너도 몰랐냐?"
"남수야. 이 새끼나 사장님이나. 내가 사생활까지 어떻게 아냐고."
연휴 마지막 날. 또 한 번 애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형 소식을 전해 주었다.
"구씨 집안은 경사 났네. 형제가 다 짝을 만나냐."
"하하하. 그러네. 그렇게 되네!"
"아무튼, 넌 왜 분당까지 나오라고 했냐?"
"사장님 결혼 문제 얘기하려고 부른 건 아니지?"
다른 게 아니라, 원래 잡혀 있었던 약속인데 일정을 조금 바꿨다.
남수 군대 갈 때도 아무것도 못 해 주고, 태윤이는 이제 곧 입대를 앞두고 있었다. 정석이도 아마 내년 쯤 갈 거 같은데 친구들을 위해 좋은 선물을 해 주고 싶어졌다.
"갑자기?"
"뜬금?"
"시계? 무슨 시계?"
"나 우리 과 애들 보니까. 입대할 때 시계 같은 거 하나씩 사고 간다 하더라고."
"오오~ 시계. 쥐 샥?"
"근데 마하야. 난 입대하기 전에 시계 하나 샀어."
"그럼 남수는 다른 거 골라."
"옷도 되냐?"
"되지."
"야! 나도 옷 사 줘!"
"나도!"
"하하. 알았으니까 가자."
행복이 완충되어 있는 기분이었다.
얼마든지 쓰고 싶었다.
새끼들. 옷 시계 해 봐야 뭐 얼마나 산다고.
"야. 명품이 어디가 많냐?"
"S백화점이 많아. 먼저 선아랑 가 봤어."
"아니야. L이 낫지."
"그럼 분당이 아니라 차라리 서울로 가는 게 낫지 않나?"
미친놈들. 하여간 뭐 하나 건수를 주면 안 돼요...
여기저기 논쟁을 펼치다 결국 성남 시민들이 제일 많이 가는 백화점을 골랐다.
여기도 명절이라고 가족 나들이객을 비롯해 사람이 진짜 많았는데.
친구들과 넷이서 뭉쳐 다니니 누가 알아봐도 크게 다가오지 않고 쾌적하게 돌아다녔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어디 갈 때 보디가드를 두고 다니는구나."
"이 씨발. 야. 우리가 니 딱까리냐?"
"하하! 그런 게 아니라. 나 원래 이렇게 돌아다니면 여기저기 많이 다가오고 그러거든."
"야. 구마. 그럼 넌 데이트는 어떻게 하냐?"
"잘 안 해."
"어? 혜정이랑 어디 안 가?"
"장 보러 가거나 이럴 땐 움직이는데, 애가 아무래도 사람들 시선이 부담되는지 나가자고 해도 꺼려 하더라고."
세 놈이 잠깐 서로를 돌아보며 무슨 말을 해 줘야 하는지 고민하는 표정을 보였다.
근데, 어느새 지들 일 아니라는 듯 그냥 쇼핑에 집중한다.
"그것도 다 고마운 거야."
"그래. 씨발. 감사한 줄 알아."
"내가 뭐라고 했냐?"
"하하하! 마하야. 저쪽으로 가 보자."
스포츠 시계 매장에 들러 이것저것 고르고 있었다.
태윤이가 진지하게 하나씩 차 보고 물어보고 하자, 시계 안 산다던 두 놈도 금방 동화되어 꽤 오랜 시간을 한 자리에 멈춰 있었다.
"오. 진짜 사람들이 모여든다."
"어? 남수 뭐가?"
"너 있으니까. 사람들 모인다고."
애들이랑 물건 고르느라 집중하고 있었는데 고개를 돌리니 쇼핑 나온 시민들이 큰 반원을 그리고 있었다.
"야. 구마. 이거 어떠냐?"
"어? 어."
"왜? 우리 눈치 보지 말고 가서 사인해 드리고 싶으면 해 드려."
"아 미친놈아. 누가 눈치를 보는데..."
"들으셨죠? 방금 얘 욕하는 거."
"야!"
"하하하... 친구분들이신가 봐요."
"저희 모르세요?"
"아 제발 김태윤!"
"크하하! 야. 이분이 우릴 어떻게 알아!"
하여간 언제 어디서든 든든한 놈들이 아닐 수 없다...
세 놈이 겸사겸사 내 것까지 맞추자며 땅불바람으로 콘셉트를 잡는다느니 뭐라느니 시끄럽게 굴길래 조용히 한 발 빠져 있었다.
"이게 낫네."
"아니지. 저거지."
"야. 너무 크다고. 패션이 아니야. 군사용으로 봐야지."
"아 군사는 무슨. 내가 군인이냐?"
"너 입대하잖아."
서로들 극딜을 하면서 쇼핑을 하는 애들이 자랑스러워 조용히 카드만 쥐여 주고 뒤로 빠질까 하는데. 직원분께서 가만히 쳐다보며 말씀하신다.
"저기..."
"죄송해요. 애들이 좀 시끄럽죠? 예의를 못 배워서."
"아니요. 그게 아니라. 저 구마하 선수."
"네?"
"진짜로 은퇴하신 거세요?"
"아. 네."
"그러시구나. 으음..."
직원분의 안타까운 미소에 애들도 관심이 동해서 물어보았다.
"왜요?"
"마하 팬이셨어요?"
"하하. 아니요. 그냥 아쉬워서요."
"야. 들었냐. 아쉬우시다잖아."
"빨리 사과드려! 새끼야."
"미친놈아. 제발 목소리 좀 낮추라고..."
"하하하. 근데 저만 그런 거 아닐 거예요. 아마 성남 사람들 다 구마하 선수 때문에 올림픽이랑 그런 국제 경기 재밌게 봤을 건데."
"저. 저도요!"
옆 가게 직원분까지 슬쩍 대화에 끼어드셨다.
"진짜로 저는 구마하 선수 보면서 처음으로 국가 대표 경기가 재밌다고 느꼈어요."
"아... 고맙습니다."
사인해 주세요. 사진 찍어 주세요 같은 팬들은 많이 봤지만, 이렇게 은퇴와 선수 활동에 대해 안타까운 이야기를 듣는 건 처음이었다.
"진짜 복귀하실 생각은 없으세요?"
"어디 부상 있거나 하신 건 아니죠?"
"어..."
"저기. 저희 이거 시계 좀..."
"아. 네! 죄송합니다."
친구들이 나서서 분위기를 끊어 주지 않았다면 뭔가 더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눴을 거 같다.
"오. 저런 게 진짜 있구나."
"내가 그때 얘기했잖아. 이 새끼 구마하라고."
"마하. 우리 친구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너 생각보다 대단하구나?"
불편한 건 아니었다.
그냥 뭔가 내가 하던 활동이 생각보다 사람들에게 더 큰 영향이 있다는 걸 처음 느끼는 순간이라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지 몰랐다.
"신기하네. 저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은 처음 봤는데."
"은퇴하고 사람들 보는 거 처음 아니냐?"
"처음이기도 하지. 특히 성남은."
"쇼핑은 더 어렵겠다. 이런 분위기면."
"그러니까. 비켜 주는 게 좋겠네."
원래는 형네 결혼 때 선물할 가구도 둘러보고 애들이랑 옷 매장도 구경하고 그러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빠르게 쇼핑을 마치고 백화점을 나왔다.
"이야~ 그래도 차니까 다르다. 고맙다 마하야."
"아. 야. 김태. 니꺼 줘 봐."
"아 꺼져. 새끼야. 그러니까 내가 아까 제대로 고르라고 했잖아!"
"아 씨. 남수야 별로냐?"
"괜찮아. 잘 어울려."
"선아한테 물어볼걸... 야. 구마 이거 바꿀 수 있어?"
"..."
"야. 너 왜 그래?"
근처 카페로 건너와 있었다.
애들이 시계를 차 보며 자랑을 하는데 머릿속에 들어온 아까 그 매장분의 표정이 사라지질 않는다.
남수가 툭 치면서 분위기를 환기시켜 줬다.
"야. 뭘 그렇게 생각해?"
"아니 그냥."
"아까 그 사람들 말이 걸려?"
"뭐..."
"됐어. 넌 할 만큼 했어. 지금까지 따낸 메달이 몇 갠데."
"그래. 그리고 동하계는 뭐 아무나 하냐?"
"신경 쓰지 마. 마하야. 니 인생 니가 결정하는 거야."
"그래. 자기들이 너 훈련하는데 뭐 보태 준 거 있어?"
"후후후. 아 제발 미친놈들아. 진지할 거면 진지하고 아니면 말고. 두 놈이 뭔 당근과 채찍도 아니고."
그때 태윤이가 한마디를 꺼냈다.
"근데, 아까 그분을 떠나서. 솔직히 아쉬운 건 다들 있지 않냐?"
"뭐 어떤 의미로?"
"이 새끼 국가 대표 그만둔 거. 재밌던 건 사실이잖아."
"그건 그렇지."
"그래? 정석이 너도?"
"너 시합 있는 날은. 특히나 메달 결정되는 그런 날은 단대 오거리 뒤집어져. 축제야 그냥."
"야 이 씨. 돈 때문이잖아. 미친놈아!"
"그게 어때서? 재밌는 건 재밌는 거지."
"남수 너도 그러냐?"
"난 뭐. 그래도 말했잖아. 우리가 아쉬워도 니 인생이라고. 훈련이 보통 힘든 것도 아니고."
"..."
"잘했어. 저분들도 좀만 지나면 잊어 주실 거야."
잊혀진다라. 내가 잊혀진다는 건가...?
"흠..."
자연스러운 거라고 해야 하는 거겠지?
그러기 위한 은퇴기도 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