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륜기로 가버렷-303화 (303/401)

감정 중독 (1)

다음 날 새벽. 늘 그렇듯 눈뜰 시간에 일어났는데 혜정이가 곤하게 잠들어 있었다.

체감상 한두 시간 전에 온 거 같은데, 대체 몇 시까지 논 걸까?

거실에 나와 보니 태윤이는 혼자 소파에 뒤집혀 있고 정석이랑 선아가 혜정이 방에 있는 거 같다.

친구들 수면 방해하지 않게 혼자 이것저것 보고 있으니, 한 시간 정도 지나서 정석이가 깼다.

"뭐야... 너 안 잤어?"

"일어난 거지. 물 좀 마셔라. 목소리가 잠겼다."

"잠깐만, 오줌 좀 누고."

볼일을 마친 정석이는 드래곤볼 손오공 같은 헤어스타일로 식탁에 앉아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넌 새벽부터 뭐 하냐? 공부?"

"아니야. 스케줄이랑 일 관련 된 거 보고 있어."

"오~ 국민 영웅. 나도 좀 봐도 돼?"

"여기."

"뭐냐? 이런 건?"

"광고 기획. 콘티. 촬영 내용들. 일정 등등."

"그런 것도 니가 봐야 돼?"

"몰라도 되는데. 그냥 한 번쯤 봐 두면 가서 광고주들이랑 이야기할 때 좋아하니까."

"새끼. 열심히네."

"감사한 거지. 노력해 나도."

"근데 이 회사들은 은퇴한 놈을 왜 쓴다냐? 몸값 싸서?"

"하하하! 새끼야."

"씨발, 어차피 할 거 돈 더 달라고 해."

"아침부터 지랄하는 거 보니까 잠은 푹 잤나 보네."

"어. 야, 침대 은근 편하더라."

"좋은 걸로 샀어. 편하게 쓰라고."

"너네 따로 자냐?"

"몰라. 그런 걸 왜 물어, 변태도 아니고."

"미친년아, 어제 못 들었어? 혜정이는 선아랑 둘이 별 얘기 다 한다잖아."

"여자애들 한다고 우리도 하냐. 넌 선아랑 둘 얘기 나한테 할 수 있어?"

"아니. 싫은데."

"그러니까. 조용히 하라고."

"대가리에 야한 것만 들어찬 새끼가 매너는 존나."

"하하하! 아 씨발, 왜 이 새끼가 젤 먼저 일어나 가지고."

물 좀 마시며 몇 마디 주고받으니 정석이도 잠이 깨나 보다. 걸걸했던 목소리가 점점 또렷해지고 있었다.

"대학생들은 새벽까지 퍼마시고. 사회인은 일어나고. 평화롭네."

"다 그렇지 뭐."

"넌 좀 어떠냐? 학생도 하고 일도 하잖아."

"나야 빌어먹을 반반 무 많이 주세요지."

"그렇게 바쁘냐? 그제도 김태윤한테 생지랄을 했다며."

"존나 바뻐. 진짜 운동할 때보다 더 바뻐, 요즘이."

"좋은 거지 새끼야. 진짜 니 말대로 감사한 거고."

"아무튼, 그냥 왔다 갔다 해. 수업도 이해 안 되고, 광고나 화보이런 것도 솔직히 가서 시키는 거 하고 오는 거야. 나도 뭐하고 사는지 모르겠어."

"그래도 돈은 많이 줄 거 아냐."

"뭐... 각자 고충이 있지."

새끼. 아침부터 재미없는 이야기나 꺼내고. 다른 얘기하고 싶어 주제를 바꿨다.

"근데 얘네는 어제 몇 시에 잔 거냐?"

"몰라. 선아도 3시? 4시? 그때 오는 거 같던데."

"설마. 김태윤이랑 셋이 있었을 리는 없고."

"혜정이랑 둘이서 할 얘기 많았겠지. 오랜만에 얼굴 봤잖아."

"새벽에 잠깐 나와 보니까 거실 불 꺼지고 조용하던데. 어디서 그렇게 떠든 거지?"

호기심이 동해 집안 여기저기 둘러보니 옷방에 캔 맥주 두 개랑 안주로 먹은 것 같은 과자 봉투가 놓여 있었다.

여기서 얘기하고 놀았구나. 내 앞에서는 덤덤한 척 하더만, 허허~ 이혜정 씨. 안 그런 줄 알았는데 얘도 이런 수다를 떠네.

하긴 여잔데. 옷 가방 이런 거 좋아하겠지.

애쓴 만큼 내적 뿌듯함이 밀려오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어디를 그렇게 뒤져 보냐?"

"그냥 저쪽."

"내 여자 친구 자는 걸 니가 왜 보는데."

"옷방 봤다고 새끼야. 그리고 여기 우리 집이야."

"발끈하기는. 찔리는 게 많나 봐."

"후우. 아 진짜 왜 이 새끼가 젤 먼저 일어나 가지고..."

둘이 이것저것 주워 먹으며 떠들고 있는데, 자칭 영혼이 순수해 연애를 못 한다는 놈이 궁시렁거리며 뒤척거린다.

"좀 자자. 왜 이렇게 떠들어..."

"일어났냐."

"아니. 야 나 물 좀. 어제 별로 마신 것도 없는데... 왜 이렇게 목이 마르냐..."

"니가 와서 떠먹어. 누굴 시켜 병신아."

"어이 이정석. 물 좀 따라와."

"구가. 니네 소파에 물 좀 뿌려도 되지?"

"하하! 미친놈들. 야, 일어났으면 목욕탕이나 가자."

"목욕탕...?"

"어. 몸도 피곤하고. 봤을 때 혜정이나 선아나 점심까지 잘 거 같은데. 우리끼리 나가서 씻고 국밥 한 그릇씩 하고 오자."

"싫어."

"왜 싫어?"

"여자애들도 같이 안 가면 싫어."

"저 새낀 저래서 연애를 못 하는 거야..."

"그러니까. 병신이 지만 모른다니까..."

* * *

"애들은? 정석이 어디 갔어?"

"일어났어. 마하가 애들이랑 목욕탕 갔다가 아침 먹고 온다고 그러던데."

"아침...? 지금 12시 넘었는데?"

"모르지. 나한테는 그렇게 문자 왔으니까. 셋이 나갔다 어디 놀러 갔든가."

"나 오후에 수업 있었는데."

"나도 그래."

"흠. 근데 분위기가 학교 갈 상황이 아닌 거 같지...?"

"지금 가면 도착할 순 있어?"

"아니. 이미 늦었어."

"하루 빼. 나도 오늘은 쉴래. 너 꼭 들어야 되는 수업 아니지?"

"교양이야. 재미도 없고."

구마하와 친구들이 없는 상황. 이혜정과 김선아도 뒤늦게 텐션을 끌어올린다.

배고프다는 말에 혜정은 부엌으로 가 이것저것 냉장고에서 음식들을 꺼내 든다.

"뭔가 어제도 그랬지만, 행동이 엄청 익숙하다. 뭐가 어디 있는지 다 아는 거 같애."

"익숙할 수밖에 없지. 나 혼자 1년을 살았는데."

"니가 마하보다 여기서 더 오래 산 거지?"

"응. 작년은 진짜로 혼자 있었으니까. 쟤는 뭐. 워낙 많이 돌아다니고."

"부부네, 부부야. 그냥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진짜 결혼하는 건 어때?"

"..."

늦게까지 이어진 시간. 두 사람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사랑과 연애. 관계와 임신. 인간 구마하의 외로움과 꿈과 미래등등.

김선아는 가까우면서도 잘 모르던 친구들의 속사정을 알게 됐다.

"계란 먹을 거지?"

"말 돌리지 말고. 너도 마하 좋아한다면서."

"그게 왜 결혼까지 가는데."

"그럼 뭐 어떻게 할 건데?"

"무슨 소리야...?"

"연애라는 게 그렇잖아. 어차피 끝까지 가면 결혼 아니면 이별인데. 둘 중 하나 선택할 순간은 올 거고."

"그럼 너는 정석이랑 헤어지지 않으면 결혼할 거야?"

"쟤랑 끝까지 가면 못 할 것도 없지 않을까?"

"그렇게 간단하게 결정이 된다고?"

"그렇잖아. 지금도 2~300 벌고. 나중에 가게 차리고 이러면 더 벌 거고. 집도 있겠다. 먹고 사는데 불편할 거 없겠다. 난 쟤랑 평생 살아도 나쁘지 않을 거 같은데."

"다른 사람도 만나 보고 그래야 되는 거 아닐까?"

"넌 마하 놓고 다른 사람 만나고 싶어?"

"...아니, 너네는 둘 다 처음 연애하는데."

"문제없으면 그냥 쭉 가는 거지."

"허어..."

간단하게 차려진 토스트와 계란프라이로 브런치를 때우고, 두 사람은 차를 꺼내 앉아 어젯밤 나누던 대화를 이어 갔다.

"솔직히 말해 봐."

"뭘?"

"진짜 마하 좋아해?"

"...좋아는 해."

"그럼 된 거 아니야?"

어제는 술이 들어간 상태에서 새벽 늦은 시간 피곤한 몸으로 대화를 나눴다. 하지만 지금은 남자애들도 없고 둘만 있었다.

텐션은 높고 집은 넓다. 두 사람의 대화는 거침없고 꾸밈이 없다.

"그럴 능력은 되잖아."

"너무 세속적이잖아."

"그게 어때서? 다 그러고 사는데."

"그리고 조건을 따져도 마하가 되지. 나는 아니야. 결혼이 한 사람만 준비됐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넌 뭘 그렇게 준비하려고 하는데. 쟤가 뭐 지 수준에 맞춰서 혼수해 오래?"

"무슨 우리 엄마냐...?"

"아줌마도 그런 소리 하셔?"

"아. 어쨌든! 지금은 싫어. 학교도 졸업 안 했는데, 무슨 결혼이야 결혼은..."

그의 마음을 받아 주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당사자가 싫다 하니 김선아는 다른 방향으로 주제를 이어 갔다.

"아무튼, 나는 니가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해."

"어디가...?"

"너가 잘해 주니까 쟤도 더 잘해 주려고 하는 거겠지."

"그러니까 그게..."

"힘든 것도 있어. 알어. 하지만, 지가 좋다는데 뭐라고 할 거야.

마하 감정까지 니가 뭐라고 할 수는 없어."

"..."

"그래도 하지 말라는 건 안 하고. 어떻게 보면 니 말을 규칙보다 더 엄격하게 지키는 애한테 널 사랑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

"알어, 나도. 내가 투정 부리는 거..."

"물론 뭐. 하는 데 있어선 좀 과하다는 생각은 들지만..."

이혜정의 불만은 비단 선물 공세에만 있는 게 아니다.

섹스에 있어서도 이제는 지쳐가는 게 있다.

그의 체력은 꺼질 줄 모르지만 이쪽은 한계가 있으니까.

"근데 진짜로 그렇게 돼?"

"뭘..."

"막 세 번 네 번 이렇게 쉬지 않고..."

"해. 정말로."

"와... 역시 운동한 애라..."

"좋은 게 아니야. 엄청 힘들어. 나중엔 그냥 힘 다 빠져서 난 가만히 누워만 있고 싶은데, 막 달려들고 이러면."

"그래도 우와... 너도... 보기와는 다르게..."

"뭐래, 진짜 미쳤나 봐..."

김선아의 반응에 이혜정은 한숨을 쉰다.

모든 게 자랑 같은 불만이 되고 있었다.

표면적으로 그는 그럴 능력이 있으니까.

"크흠. 뭐 어쨌든. 남자애들 씀씀이 큰 건 정말 어떻게 할 수 없어. 정석이만 봐도 내 친구들 CC하는 애들이랑 비교가 안 되는데."

"흐음..."

"능력이 돼서 해 주겠다는데. 그걸 뭐라 할 수는 없어. 빚을 내서 명품을 사다 바치는 것도 아니고."

"너 정말 신발 안 가져갈 거야?"

"야. 됐어. 배경이 뭐든, 너한테 선물한 걸 내가 왜 가져."

"똑같은 게 있다니까."

"아니 그래도. 나야 주면 좋은데..."

"왜? 정석이가 뭐라고 할까 봐?"

"그러지 않겠냐. 은근 안 그런 거 같으면서도 애들한테 꿇리기 싫어하는 앤데. 얘 괜히 자존심 신경 쓰이게 그렇게 하고 싶지 않어."

선아의 이야기에 이혜정이 자세를 바꾸며 맞장구를 쳐 준다.

"그래! 이런 거라고!"

"뭐. 뭐가?"

"나도 너네같이 그렇게. 내가 아닌 상대방의 감정을 먼저 헤아려 주는 그런 연애를 하고 싶은 거라고."

"...하면 되잖아."

"후우. 아니 그러니까..."

능력이 아무리 출중해도, 구마하는 현재 본인의 감정이 절실해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있었다.

이 부분을 주위에선 납득하지 못한다.

그의 사랑은 타인의 시선에는 완벽해 보이고, 내가 느끼는 감정과 아픔은 오직 나만 이해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친구는 그녀에게 다른 해석을 더해 주었다.

"난 마하가 아니라, 문제가 다른 데 있는 거 같은데..."

"어떤 쪽으로?"

"그러니까..."

"마하가 아니면 뭐."

이혜정이 김선아와 시선을 맞추자, 그녀가 고개를 슬쩍 피했다.

"나?"

"니가 문제라는 건 아니고..."

"뭔데. 얘기해."

"야. 무섭게 그러냐. 말도 못 하게."

"너가 나한테 문제가 있다면서."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라."

김선아는 오랜 친구 된 도리로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이건 너한테 뭐라고 하는 게 아니라, 민혜랑도 언제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어서 그래."

"너네 내 얘기 했어?"

"우리는 안 하냐! 너랑 민혜는 내 얘기 안 해? 친구들끼리 다 하지."

"알았어. 뭔데. 얘기해."

새초롬하게 서운한 감정을 내비치는 이혜정에게 선아가 말한다.

"우리는 진짜로. 너가 더 당당해지면 좋겠어."

"무슨 소리야. 당당하라니. 내가 어디 뭐 주눅 들었어?"

"몰라? 너 좀 그런 거 있어."

선아가 이혜정의 전 남자 친구들에 관해 말한다.

"이런 거. 너 지민이 오빠 만날 때도 있었고, 대학 가서 그 누구부천인가 산다는 애 만날 때도 그랬어."

"그러니까 내가 뭘...?"

"사랑 앞에 위축되잖아."

오래 사귀었던 친구의 한 마디가 이혜정의 가슴에 움찔하는 파동을 전해 준다.

"내가 무슨... 내가 뭘 위축되는데...?"

"그러니까... 아 진짜. 뭐라고 해야 되지...?"

"천천히 얘기해. 괜찮아. 화 안 낼 게. 나도 듣고 싶어."

그녀의 미모는 모든 이들의 선망이다.

비단, 가까운 친구를 떠나, 싫어하는 애들조차도 혜정이의 외모를 부러워했었다.

봤을 때 굉장히 축복받은 상황에서, 절대 우위를 잡을 수 있는 조건을 가지고, 그녀는 유독 연애에 낮은 자세를 보여 준다.

"지금 마하 이런 것도 그렇고, 우리는 옛날부터 너한테 그런 게 좀 불만이긴 했었는데. 그래, 마하 뭐, 우리 친구긴 해도 사회에서 보면 굉장한 애긴 하겠지."

"음..."

"근데 있잖아, 혜정아. 남자 친구가 이렇게 해 주는 게 뭐 어때서? 너는 그런 걸 받을 자격이 있는 애야."

"내가 그럴 자격이 뭐가 있는데...?"

"일단 예쁘고, 착하고."

"야, 그런 얘기는..."

"무엇보다 구마하 아무것도 아닐 때 넌 쟤 마음을 받아 줬잖아."

"..."

이중적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혜정은 구마하에겐 하지 말라고 하면서 자신은 친구들과 이야기를 공유해 왔었다.

친구들은 너무 깊고 민감한 부분을 뺀 두 사람의 관계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3년 전 그날 크리스마스 이브에 두 사람이 깊은 관계가 된 것도. 고3 졸업을 앞두고 두 사람이 또다시 만남을 가졌던 것도.

그런 배경에서 김선아가 말했다.

"니가 쟤 밀어내지만 않았으면. 걔 뭐야? 누구야? 먼저 대표 팀했던 애. 그 동메달 딴. 정석이가 마하랑 사겼던 애라고 했는데."

"최다빈?"

"어. 걔만 갑자기 나타나지 않았으면 니네는 누가 봐도 충분히 아름다운 커플로 지금까지 올 수 있었어."

타이밍이 어긋났을 뿐. 그의 감정은 늘 너를 향해 있었다.

어제 애들도 말하지 않던가. 금메달보다 너랑 같이 있는 모습이 더 뭔가 뭉클하게 다가온다고.

이혜정은 조용히 이야기를 듣는다.

김선아는 객관적인 시각에서 두 사람의 관계를 정리해 줬다.

"너는 몰라도. 마하는 진짜 오랜 시간 꾹꾹 눌러 담았던 감정이 마침내 이어진 거야. 쟤 입장에서 너한테 뭐라도 해 주고 싶지 않겠어? 관계도 매달리지 않겠어?"

"그렇겠지..."

"너도 그래. 매번 그러잖아. 그 선수 최 씨 걔 나타났을 때도 그러고. 백설 언니 봤을 때도 그러고. 정작 마하 누구 만나면 허전해 하던 거 있지 않았어?"

"..."

"그냥 받어. 뻔뻔하게 굴어도 돼. 싫은 건 싫다고 하고. 당당하게 얘기해."

말을 안 들어주는 애가 아니니까.

사랑에 한 치의 의심도 없는 애니까.

무엇보다 너는 그럴 가치가 충분한 사람이니까.

김선아는 이혜정에게 용기를 가지라는 말을 전해 주었다.

"그냥... 다 부담이 되니까 그러지."

"부담이라는 것도 이렇게 생각해 봐. 나는 그런 거 없었겠어?"

"너도 그런 게 있어?"

"있지, 당연히. 나라고 정석이 만났을 때 조마조마한 거 없었겠냐고."

"어제는 좋았다면서."

"아니. 그거는 좋은 것만 얘기를 하니까 그렇지."

솔직한 고백과 아픔에 김선아도 속 얘기를 꺼내 들었다.

"어찌 됐든 남들 시선이라는 게 있어. 누구는 대학 어디를 갔고 뭐를 했고, 차를 끌고 다니고 우리도 그런 얘기 다 하잖아."

"비교들 많이 하지."

"근데 동네 고깃집, 그것도 성남 사람이라면 다 아는 마하네 형이 하는 식당. 거기서 일한다는 애랑 연애를 하는데 나라고 부담감 없었냐고."

"넌 어떻게 이겨 냈는데...?"

"그래서 정석이 일하는 데 가서 보는 거야."

그의 사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열심히 하는구나. 저렇게 친절하게 대하는구나.

사회성 있다. 같이 있으면 배는 굶지 않겠다.

그렇게 함께 있으며 그의 장점을 찾게 됐다.

알아가고 익숙해지자 그가 더 편해지며 좋아졌다.

이제는 남자 친구한테서 고깃집 냄새가 난다고 싫어하지 않는다.

그의 몸에서 나는 냄새는 땀과 노력의 정당한 대가이며, 그런 상황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는 절제력을 가졌다는 걸 알았으니까.

"그냥 밥 주니까 가는 게 아니었구나..."

"야! 내가 거지냐!!"

"알았어. 알았어."

당당하게 다가가라. 그런 게 연애가 아니던가.

선아의 이야기에 이혜정은 무릎을 끌어당기며 한숨을 쉬었다.

"당당이라..."

"마하 일하는 걸 가서 봐. 학교도 찾아가고."

"사람들 엄청 쳐다봐..."

"알어. 들었어. 애들이랑 시계 사러 갔을 때도 그랬다고."

"..."

"그래서 뭐? 보라고 해! 뻔뻔하게 고개 들고 다녀. 봤냐? 부럽냐 이것들아? 내 남자 친구 멋지지? 이렇게."

"하하하. 야, 됐어. 뭘 그렇게까지 해."

"아우, 이 답답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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