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륜기로 가버렷-306화 (306/401)

감정 중독 (4)

5월 초. 연예인 강동호의 결혼식 날.

이혜정은 약속된 시간에 맞춰 학교 앞 지하철 입구에서 친구를 만났다.

"아... 피곤해... 넌 좀 잤어?"

"쫌. 언니는 많이 못 잤어?"

"우우, 졸려... 어제 친구 만나느라. 후우... 아 진짜 알바는 왜 한다고 그래 가지고."

"편의점 가서 커피라도 하나 사서 마실까?"

"됐어. 돈 벌러 왔는데. 왜 돈을 써. 아우!! 돈 지겹다."

"아직 시간 있으니까 조금 움직이다 들어가자. 잠도 깰 겸."

"그럼 호텔로 가자. 거기 가면 정자 있거든. 거기서 쉬자."

"그래. 언니 여기 와 봤나 봐?"

"너 여기 한 번도 안 와 봤어?"

"내가 여기 올 일이 뭐 있어."

"난 애들이랑 화장실 가려고 몇 번 들렀는데."

"하하하! 그게 뭐야... 학교가 바로 앞인데."

"우리 학교랑 여기가 같냐. 여기는 화장실에 핸드크림도 있어."

"아! 됐다고."

두 사람은 팔짱을 끼고 장충동 S호텔을 찾아간다.

짤막한 경사로를 오르자, 거대한 기와 장식 로비와 황갈색 호텔전경이 위엄 있는 모습을 드러냈다.

한쪽에 마련된 팔각정으로 올라 두 사람은 이야기를 나눴다.

"가까이서 보니까 꽤 크다."

"크지. 5성 호텔인데."

"저기 한옥이 거긴가? 맨날 연예인 결혼한다고 나오는데."

"아마 그럴 걸?"

"이렇게 내가 여기를 와 보는구나. 맨날 학교에서 쳐다만 봤는데."

"혜정아. 우리도 나중에 이런 데서 결혼할 수 있을까?"

"결혼이라. 글쎄 모르지. 언니는 호텔에서 하고 싶어?"

"할 수만 있다면. 근데 어려울 거야. 듣자 하니 뭐 억 이런다는데. 그 돈이면 차라리 차를 사든가 집값에 보태지."

"내 말이. 허세야 허세."

"그래도 넌 할 수 있을 거 같애. 예쁘게 생겼으니까."

"아. 됐어. 그런 얘기 좀 하지 말라고..."

"헤헤헤, 왜 삐져. 우리도 유니폼 주겠지? 호텔 유니폼 입고 싶다. 그치 않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친구가 연애사정에 대해 물었다.

"그래서? 남자 친구랑은 그때 이후로 화해했어?"

"안 했어... 몰라, 요즘 바쁘다고 얼굴도 못 봐..."

"맨날 봤었어?"

"뭐. 대충은."

"너 설마 동거해?"

"무슨 소리야...?"

"아니 그냥. 자취하면 보통 친구들 부르고 하는데, 넌 그런 것도 없고. 지금도 맨날 본다고 그러고. 혹시 같이 사나 했지."

"나 얘 올 겨울에 만났거든. 작년 얘기를 꺼내고 있어."

"흠. 발끈하는 게 진짠 거 같은데?"

"아니라고. 황당해서 쳐다봤다고."

"진짜 아니야?"

"언니 요즘 뭐 이상한 거 봐?"

"왜? 동거가 어때서?"

"할 거면 언니나 해."

"야. 솔로라고 놀리냐! 애인이 있어야 하지!!"

수다도 재미없고 친구는 자꾸 연인에 관해 캐물으려 한다. 일할 시간도 다가와 이혜정은 친구와 함께 다시 호텔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런데 그 짧은 2~30분 시간 동안 처음에 보이지 않던 기자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천하장사 출신의 탑 개그맨이 백년가약을 맺는 날이었다.

대외적으로 비공개 결혼식이라고 알려진 줄 아는데, 대체 다들어떻게 알고 찾아온 걸까?

이혜정과 친구는 쭈뼛거리며 사람들을 지나쳐 호텔 로비로 들어섰다.

"우와... 너 봤어? 카메라 장난 아니다..."

"그러게. 언제 저렇게들 왔었대? 우리 아까 올 때만 해도 거의 없었는데."

"유명한 사람들 많이 오나 보다. 비공개인데도 이정도면. 일 엄청 빡신 거 아닐까?"

"아마 그러겠지. 긴장해야겠다."

이혜정은 연인 구마하를 떠올렸다.

기자들, 카메라들. 얘는 어떻게 이런 관심들을 이겨 냈던 걸까?

역시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는 되는 사람들이나 하는 직업인 거 같다.

호텔 로비, 삼삼오오 아르바이트를 찾아온 대학생 같아 보이는 인원들이 모여 있었다.

이혜정과 친구도 낯선 공간 속, 가벼운 긴장감을 가지고 주변을 둘러보는데, 정장을 갖춰 입은 호텔 직원이 나와 모두에게 알렸다.

"오늘 지원 나오신 분들은 이쪽으로 모여 주세요."

직원을 따라가자 환경이 변한다.

화려한 분위기에서 회색의 복도로. 장식이 많은 공간에서 실리 성이 높은 곳으로.

자리를 옮긴 직원이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여기서 결혼식 피로연 해 보신 분들 계십니까?"

몇 사람이 손을 들자 파트가 갈린다.

서빙과 주방 지원, 주차 안내 등으로 업무가 나눠지는 가운데, 이혜정과 친구도 큰 레스토랑에서 일해 봤다는 경험을 살려 서빙을 맡게 되었다.

"잘 됐다. 우리도 유니폼 입는다!"

"언니, 우리 일하러 온 거야. 왜 이렇게 들떠 있어."

"그래도. 주방보다는 서빙이 유명한 사람들 가까이서 볼 수 있잖아."

그때 호텔 직원이 말했다.

"그리고 여러분들도 오시면서 들으셨겠지만. 각별한 주의 사항이 있습니다. 반드시 들어 주세요."

모두가 집중하는 가운데 직원이 단호하게 목소리를 높였다.

"오늘 행사는 연예인 결혼인 만큼 유명 인사들이 많이 찾아올 겁니다. 절대 손님과의 사적 대화나 접촉은 금지합니다. 만일 주의를 어길 시, 오늘 일당은 지급되지 않을 겁니다."

이혜정은 친구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귓속말을 건넸다.

"언니 말 들었나 보다."

"아니야... 그냥 그러는 거야..."

"후후후. 왜 기죽고 그래."

"뭐래. 내가 연예인 못 봐 죽은 귀신 붙었냐..."

몇 가지 주의 사항을 알리자, 본격적인 아르바이트가 시작되었다.

두 사람은 호텔에서 제공하는 유니폼으로 갈아입기 위해 탈의 실로 옮겨 간다.

주로 여자들이 서빙. 남자들이 주방 지원 팀이 되었다.

그래서도 탈의실 곳곳에서 볼멘소리들이 흘러나왔다.

"뭐야? 옷 왜 이래? 아동복이야?"

"사이즈 안 맞는데. 이거 어디서 바꿔요?"

이혜정과 친구도 호텔에서 나누어 준 유니폼을 보면서 나지막이 한숨을 꺼낸다.

"아무리 호텔이라지만... 진짜 너무하는데...?"

"그러게. 이래서 밥은 어떻게 먹으라고. 배 쫄려 가지고."

"글쎄, 난 과연 쟤들이 우리한테 밥을 줄까 싶다."

천명 가까운 하객들을 맞이하기 위해 호텔은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아침도 제대로 먹지 못한 대학생들도 각자의 분야로 나뉘어져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움직여야만 했다.

이혜정도 호텔에서 제공된 불편한 유니폼을 입고서, 주방에서 나오는 식사를 깔끔하게 접시에 나눠 담으며 업무에 매달렸다.

"와, 죽겠어 혜정아."

"언니, 그래도 집중해. 아까 어떤 애 옷에 뭐 묻었다고 되게 뭐라고 하더라."

"그럴 거면 복장을 이렇게 입히지를 말든가."

투덜투덜 구시렁거리며 맡은 바 일을 해내고 있는데, 근처에서 큰 소리가 흘러나온다.

누군가가 혼나는 소리였다.

"아이! 이봐요! 이렇게 담으면 안 된다고 말했잖아요!!"

"아... 아까 어떤 분이 이건 여기다 이렇게 하라고 하셨는데..."

"누가! 진짜 바빠 죽겠는데. 왜 일을 만들고 있어!!"

역시 남의 돈 벌기 쉽지 않구나.

친구와 눈빛을 주고받으며 분위기를 살피고, 혼난 사람에게도 작은 도움과 위로의 손길을 건네기를 한참.

두어 시간이 흐른 뒤 알바생들 가운데 하객들이 오고 있다는 소식이 전달되었다.

"진짜 너무하네..."

"후우. 언니 뭐가? 물 좀 마셨어?"

"응. 아니. 화장실 가기 싫어서..."

"왜 그래? 누가 언니한테도 뭐라고 했어?"

"아니, 그냥... 누군가는 저렇게 대우받고 환영받는데, 우리는 여기서 노예들같이 밥도 못 먹고 일하고 있으니까 우울해서..."

"하하하. 왜 그런 말을 해. 비참하게."

"아 배고파. 야, 우리도 몰래 떡 하나 먹을까?"

"그러다 들키면 어떡하려고."

"왜? 아까 저기 있던 애들은 잘만 빼서 먹더라."

어느 정도 준비가 갖춰지고, 짧은 대기 상태에 돌입했다.

이혜정과 친구도 한쪽 구석에 앉아 몰래몰래 숨겨 온 떡과 방울토마토 같은 걸 입에 넣고 있었다.

그때 몇 사람이 로비를 다녀오며 손님 누구누구 왔었다는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우와. 혜정아. 방금 들었어? 유지석도 왔대."

"같이 방송하니까. 사회 보려나?"

"누구누구 올까? 거의 개그맨이겠지?"

"글쎄. 큰 관심 없어."

들리는 이름들만 나열해도 배우 가수 개그맨을 가리지 않는, 대한민국 연예계가 총출동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쯤 되니 이혜정도 TV에서 보던 사람들 실제로 보면 어떨까 작은 관심이 일어나고 있는데. 그때 한 무리의 여자들이 난리를 부렸다.

"꺄악! 왔어!! 왔어!!"

"왜? 왜? 이번엔 누군데?"

하도 호들갑들을 떨길래, 대체 또 누가 왔길래 저러나 관심 있게 돌아보니 그녀들이 말한다.

"구마하!!? 진짜?"

"정말? 진짜로?"

"어! 포스 장난 아니야!! 완전 멋있어!!"

그 순간 혜정의 머릿속에 두 사람이 싸웠던 그날 이야기가 떠오른다.

(파트너 데리고 와도 된다고 했거든.)

(나 그날 약속 있는데?)

아이고야... 걔가 말했던 자리가 여기였구나...

"우와. 혜정아, 구마하도 왔데."

"어? 어..."

"연예인 아닌 사람도 오는구나. 하긴 원래가 씨름 선수니까. 구마하도 얼마 전 옷긴도사에 나왔고."

"..."

"너 왜 그래?"

"음? 뭐?"

"어디 불편해?"

"아니야. 그냥... 옷이 너무 껴서"

"아~ 넌 아는 사람인가?"

"뭐? 누구?"

"구마하."

"무!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내가 그 사람을 어떻게 알어...!"

"왜? 니 남자 친구도 연대 사체과라면서."

"언니는 뭐 우리 과 사람들 다 알어?"

"그건 아니지."

"아. 엉덩이 아퍼. 너무 앉아 있었나. 신발도 불편하고... 땀도 나서 브라도 꿉꿉하고."

"혜정아. 우리도 잠깐 나가서 바람도 쐴 겸 사람들 구경하고 올까?"

"됐어. 쟤네는 홀 준비하는 거잖아."

"우리도 가서 일하면서 보면 되지."

"여기 있어 그냥. 뭐 하러 나가서 고생해."

"흐음. 나도 구경하고 싶은데..."

마주치기 싫은데 마스크 같은 거라도 주지 않으려나?

얼굴 보면 마하 성격상 반드시 아는 척 할 건데...

아, 어떻게 하지... 왜 이렇게 껄끄럽지...?

따져 보면 아무 문제없는 건데... 왜 이렇게 불편한 걸까...

답답한 그녀의 심정을 알 길 없는 주변에선, 유명 인사들의 품평회가 이어진다.

누구는 생각보다 키가 너무 작은데? 걔는 화면에서 보이는 거랑 다르게 얼굴이 너무 크더라. 옷 센스가 안 좋아. 결혼식에 왜 그렇게 입고 왔지?

그리고, 한 사람이 언급된다.

"구마하는 실물로 보니까 완전 다르더라."

"그러게, 섹시했어."

"하하하! 미친년아, 뭐라는 거야. 쪽팔리게."

"존나 몸이 가려졌는데도 성난 게 보였어. 가슴 빵빵하고."

불편한 이야기를 피해 일부러 자리를 다른 곳으로 옮기니, 그쪽에서도 마하 이야기가 나온다.

"몸은 완전 크고 목소리도 은근 중후하더라."

"들었어?"

"어. 지나가는데 물 좀 줄 수 있냐고 하는데. 사람 되게 매너 있고."

"너 그래서 지금 주전자 찾는 거야? 줘. 내가 갈게."

"야 됐어. 내가 할 거야!!"

마하가 인기가 있긴 있구나...

하긴, 모르던 것도 아니고. 새삼스럽게...

이혜정은 더 일에 집중하려고 노력한다.

바쁘게 움직이는 가운데, 매니저 같은 사람한테 열심히 한다고 칭찬도 들었다.

그래. 걔는 걔고 나는 나다.

나는 오늘 여기 일하러 왔어. 내가 할 것에 집중하자.

그런데, 너무 일에 몰두했나, 같이 온 친구가 보이질 않는다.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 있는데 이 언니 어디 갔지?

"혜정아!"

"언니?! 갑자기 어디로 사라졌었어?"

"오~ 진짜 사람이 다르긴 다르더라."

"뭐가?"

"잠깐 홀에 좀 갔다 왔는데."

"그걸 또 갔어...?"

"응! 궁금하잖아!!"

연예인 못 봐 죽은 귀신 안 붙었다며...

친구는 세 시간 전 자신이 했던 말도 잊었는지, 마치 외국이라도 다녀 온 사람답게 수다를 떨었다.

"연예인들 가득 한데서 우뚝 걔만 딱 보이는 거 있지. 몸 진짜 크더라."

"...누가?"

"구마하지."

"..."

"운동할 때랑 다르긴 하네. 하긴 난 운동할 때 모습도 좋았는데. 그래도 역시 저렇게 입고 있으니까. 연예인 같고."

"언니 우리 지금 이거 해야 돼..."

"어? 미안. 근데 너 그거 알어? 걔 모델 하는 거?"

"뭐... 언제 애들 하는 얘기 들었어..."

"왜 이래? 넌 걔 싫어해? 이상하게 구마하 이야기만 나오면 고개를 피하네 아까부터?"

"아. 아니라고. 내가 왜 싫어해. 그냥 일은 많고 피곤해서 그러지..."

"쉬엄쉬엄 해. 어차피 우리 알반데 뭘 그렇게 열심히 하려고 그래."

말을 말아야지...

싫어하냐고? 아니. 좋아한다. 좋아하는 사람이다.

어제도 냉랭하게 굴긴 했지만 그래도 잘 자고 내일 뭐 입으면 좋겠냐고 하길래 옷 하나하나 다 골라 주고 나왔다.

사람들이 멋지고 섹시하다고 하는 그 모습은 100%는 아니어도 내가 꾸며 주고 만든 모습이었다.

"후우..."

"왜 그래? 진짜."

"아니야. 정말로 그냥 배고프고 힘들고."

"조금만 기운내자. 밥 주면 우리도 끝나겠지."

"응. 고마워."

뿌듯하고 자랑스러워야 하는데... 그런데 자꾸만 모든 게 버거워진다.

이런 것들이 부담된다.

만약 마하와 사귀는 게 밝혀진다면... 주변에서도...

아니. 친구들을 떠나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얼마나 내 얘기를 할 것인가.

그런 가운데서도 사람들의 구마하 이야기는 끝날 줄을 몰랐다.

"너네 그거 알어? 나 친구네 언니의 아는 사람이 청담동에서 일하는데. 언제 구마하가 무슨 여자애를 데리고 왔었데."

"누구? 연예인?"

"그건 모르지. 근데 존나 여신이라고. 분위기 장난 아니었다고."

"설마. 그 재벌이라는 사람인가?"

"재벌은 또 뭐야?"

"너 몰라? 내 친척 언니가 연대 다니는데. 포르쉐 타고 다니는 어떤 사람이 학교 와서 구마하 태우고 다니고 데려다주고 그랬다고 하던데."

"오~ 역시. 그 말이 사실이구나."

"뭐?"

"구마하는 예쁜 애들만 만난다고."

조용히 지내고 싶다.

둘만의 아기자기한 사랑을 하고 싶다.

알려지는 건 너무 싫어.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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