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입으로 내는 소리가 아니야 (6)
성공의 기준이 명성이라면 나는 어디 가서 실패했다는 말은 꺼내지 못할 것이다.
이유이 선생님의 갑작스런 제안에 멍하니 굳어 있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불어로 뭐라뭐라 쏼라쏼라 "KOO!", "Olympique","
Coreen!!" 이런 단어들을 말했다.
"얘. 넌 여기도 사람들이 알아본다."
"그러게요. 저, 일단. 다시 펍으로 돌아가시든가, 아니면..."
"후훗~ 내 방으로 갈래?"
호텔이 그리 멀지 않았다.
어쩌다 보니 일단 방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그래도 개념을 놓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먼저 씻을래?"
"선생님. 제가 이래 보여도요, 나름 원칙이 있어요."
"음?"
"선생님은 가정이 있으시잖아요. 남편 몰래 이러는 건."
"풉! 푸하하하하!!! 뭐라는 거야, 얘가. 하하하!"
선생님은 배를 부여잡으며 웃었다.
아니, 이혼을 두 번인가 했다면서. 그래서 배려해 주는데 왜 웃어.
"하하~ 아, 마하는 정말 착하구나."
"진짜예요. 전 아까 선생님이 '누구든지'라고 하시길래, 허전함 느끼지 않게 같이 있어 드리려고 온 거예요."
"왜?"
"그렇잖아요. 괜히 그러다 이상한 놈들이라도 만나면 안 되니까."
유이 쌤이 눈물 그렁그렁한 얼굴로 다가와 내 볼을 쓰다듬었다.
"정말 착하네. 이렇게 멋진데."
"고맙습니다."
"근데, 괜찮아. 지금쯤 그 사람도 젊은 애인이랑 놀고 있을 테니까."
"...네?"
"후후. 두 번의 이혼 경력이 있는 사람과 재혼한 사람이야. 내 남편도 그렇게 깔끔한 편에 속하진 않어."
"..."
"놀랍니?"
"저. 그런 결혼 생활을 왜 하고 계세요...?"
"얘, 그만하자. 재미없으려고 그런다."
데이트 상대로서 마음이 불편하지 않게 간략히 설명해 주는데.
남편이나 아내나 몇 번의 이혼을 거쳐 다시금 가정을 꾸렸지만, 본능이라는 건 무시할 수 없으니, 서로 알면서도 눈을 감고 가정이란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해 줬다.
"그게 유지가 돼요...?"
"그럼. 이런 사랑도 있어."
"선생님. 폴리아모리세요?"
"그건 뭐니?"
"그냥. 뭐. 지금 이런 비슷한 거."
"후후. 마하가 보기보단 부끄러움이 많은 성격이구나? 자꾸 이런 얘기를 하는 걸 보니까."
그럴 리가. 이건 부끄러워서라기보다는 도리를 아는 거지.
나도 그녀에게 욕망을 품은 적이 몇 번 있긴 하다.
언젠가 스튜디오에서 의상 준비할 때 일이 생각난다.
쇼에서 입을 옷들 가봉하고 사이즈 맞추고 그러는 자리였는데.
그날 선생님 옷이 엄청 자극적이었다.
실루엣이 드러나는 미니스커트와 펑퍼짐한 와이셔츠를 입고 계셨었다.
의상디자인이라는 게 한 자리에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일인지라, 선생님이 왔다 갔다 바쁘게 움직이는데.
몸을 낮추면 허벅지 끝까지 치마가 올라가고, 와이셔츠도 단추를 두 갠가 풀어서 목선과 어깨 라인 그리고 가슴골이 이따금씩 드러나고 있었다.
패션이라고 생각해서 반응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그때는 혜정이가 있어서 더 그런 마음을 품지 않았지만.
이것저것 다 버리고 시커먼 욕망을 가감 없이 발휘하라면.
그녀의 살랑거리는 가슴에 단단한 육봉을 마구잡이로 문지르고 어지러운 작업대를 한쪽으로 쫙 밀고 눕혀 다리를 벌렸을 것이다.
"하하하~ 정말로? 날 보면서 그렇게까지 생각했니?"
"그럼요. 참는 거죠. 선생님 매력적이세요."
"후후. 난 안 참았는데."
"네?"
"일부러 그랬어."
"뭘요?"
"옷. 마하 오는 날은 일부러 더 그런 옷 입고 나가고 했었다고."
남자의 자존심을 살살 긁길래 속마음을 털어놓았는데, 알고 보니 이쪽은 나보다 심하구나.
"마하가 오고 난 날은 몸이 뜨거워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허허..."
"그럴 땐 일부러라도 사람을 만나고 데이트를 즐기지. 너를 생각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갑자기 유이 쌤이 방 한쪽에 있는 1인용 소파로 걸어가 앉는다.
"지금도 봐 봐. 마하가 이렇게 나랑 한 방에 있는 것만으로."
그리곤 다리는 살살 벌리며 옷 위로 자신의 음부를 슬금슬금 만지기 시작했다.
"..."
"으으음~ 이 순간을 얼마나 원했었는지."
나와의 데이트를 떠나, 그냥 나라는 존재를 독차지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녀의 흥분이 최고조에 달하는 것 같다.
안 되겠다. 분위기가 멈출 수가 없어.
내가 임자가 있는 몸도 아니고, 저쪽도 본인이 좋다고 그러는데 뭐.
"옷은 벗는 게 좋지 않겠어요?"
"어?"
"바지요. 불편하잖아요."
"...후훗, 그렇지?"
과감히 빗장을 풀어낼 땐 그렇게 과감하더니, 막상 피하지 않고 한발 다가서자, 처음으로 그녀가 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1인용 소파의 반대편은 침대였다.
맞은편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유이 씨라고 불러도 되죠?"
"아하? 얘! 너 뭐니?"
"그래야 제가 당신을 여자로 느낄 거 같아서요."
자켓을 내려놓고 셔츠의 단추를 하나씩 풀며 소파에 몸을 기대고 앉았다.
섹스 좋아. 무엇보다 스트레스가 있어서 어떻게든 이 감정을 폭발하고 싶었어.
"갑자기 너무 건방져지는 거 아니야?"
"컨셉이라고 생각하세요."
"어머. 얘 이런 성격이었구나."
"유이 씨."
살짝 현실 감각이 밀려오는 그녀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하던 거 마저 보여 줘요."
"..."
"어서."
그러자 씩 분하다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유이 쌤이 자리에서 일어나 바지를 벗었다.
"좋아하니까 봐준다."
"고맙네요. 저도 유이 씨 좋아했어요."
"정말로?"
"마음은 있죠. 표현을 안 할 뿐이지. 이렇게 매력적인 분인데 누가 안 좋아하겠어요."
듣기 나쁘지 않다는 듯 그녀가 시선을 피하며 웃어 보인다.
유이 씨가 바지와 셔츠를 벗으며 속옷과 스타킹 차림으로 내 앞에 섰다.
30대 후반이었다.
내가 만나 본 여성들 가운데 가장 연상에 속하는 나이라 탄력이 떨어져 보이는 건 피할 수 없지만, 그래도 관리가 되는, 체력과 피부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은 만큼 농익은 여성의 향기가 풍기는 것 같다.
"뭘 그렇게 쳐다보고 있니."
"부끄러우세요?"
"얘."
"아까 하던 거 계속 보여 주세요."
"..."
"저도 하고 있을게요."
용감하게 몸을 드러낸 그녀에 맞춰 벨트를 풀고 자크를 내려 주었다.
단단하게 서 있는 녀석이 고개를 꺼내 들자, 그녀의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보고만 있으실 거예요? 안 하세요?"
"아니!"
속옷은 벗고 스타킹은 입어 달라고 했다.
명령이 아닌 부탁인데도 그녀는 순종적으로 말을 들어주었다.
"이거 찢을까?"
"그래 주시면 너무 좋죠."
디자이너는 손이 생명이라면서, 손톱 하나에도 세심한 관리를 기울이던 그녀가 과격하게 스타킹을 잡더니 가운데를 우두둑 뜯어 버렸다.
여자의 나이는 목주름과 음모의 차이로 알 수 있다더니.
다른 여자한테선 보기 어려운 수북한 털들이 그곳을 가릴 듯 말듯 드러나고 있었다.
젖어있는 물길 속, 하루의 체취가 풍겨 나온다.
그녀도 자신의 향에 놀랐는가, 다급하게 다리를 오므리며 말했다.
"이!! 일단 씻고 오는 게 좋을 거 같애. 그치?"
"괜찮아요. 뭐 어때요."
"...아니, 그래도."
"저 외국인 암내 땀내 다 맡아 본 놈이에요."
운동을 하면 땀이 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오늘 그녀는 데뷔를 위해 한 시도 쉬지 못하고 분주히 움직여야만 했었다.
쇼를 주최했고, 인종이 다른 거만한 관객들 앞에서 자신의 역사를 펼쳐 인정을 받았다.
지금 당신의 몸에서 나는 건 악취가 아니다.
성공의 향기다.
적어도 나는 그 가치를 믿고 존중해 준다고 말을 전해 주자.
"마하야..."
"축하드려요. 선생님."
그녀의 눈빛에 뭔가 이상한 기운이 맴돌았다.
그러면서 정말이지 내 말의 모든 것을 수용하기 시작했다.
"으음. 흐음!"
다리를 벌리라면 다리를 벌리고.
유두를 핥으라면 가슴을 부여잡고 입으로 가져온다.
자위를 하라면 자위를 하고. 엎드려서 만지라면 엎드려서 만진다.
그러면서도 고백 성사를 이어 갔다.
"하아, 하아~ 마하가 보고 있어."
"아니, 이렇게 흥분하면서. 대체 일은 어떻게 했어요?"
"엄청, 꾹, 눌러 참으면서."
"그럼 나 왔다 가는 날은 누구든 만나서 잠자리를 했다고요?"
"하악, 허어~ 흐으응. 그... 그럴 수밖에 없었으니까."
"왜요?"
"너가 너무 나를 흥분시켰어... 하앙."
"이쪽으로 돌아 봐요."
가까이 다가와 유이 씨의 앞에 자리를 잡았다.
혼자 한껏 달아오른 그녀가 아랫배를 헐떡이며 숨을 고르고 있었다.
물이 흥건하게 적셔진 그곳을 부드럽게 만지며 말했다.
"유이 씨."
"흐으으음."
"왜 떨어요?"
"니가 만져 주니까. 하아, 으음..."
"후후. 유이 씨. 나 말 더 편하게 해도 돼요?"
"해. 얼마든지. 무슨 말이든 해 줘. 욕을 해도 돼."
"이 여자 완전 변태였잖아."
"아아~ 하아~"
나이에 따른 관계. 직업에 따른 관계. 몇 년간 알고 지냈던 지인이란 관계.
우리는 서로를 얽매이고 있던 울타리를 벗어던지고 남자와 여자가 되었다.
그런 우리에게 예의와 존중을 벗어던진 대화는 또 하나의 기폭제가 된다.
"하아~ 마하야 너..."
"왜요?"
"어떻게 이렇게 부드럽게. 여자의 몸을..."
관능적이란 표현은 글래머러스한 사람들한테만 쓰는 단어라고 알았는데, 보통의 평범한 사람한테서도 관능이 느껴지는구나.
클리토리스와 질 내부를 애무받는 그녀의 몸짓과 호흡. 바짝 조여지는 발끝 하나하나가 나를 흥분시키고 자극한다.
"느껴져요?"
"으응, 흐응~! 엄청."
그녀가 목을 빼 들고 키스를 갈구하길래 다가가 입을 맞춰 주었다.
그러면서도 손을 멈추질 않자, 목을 끌어안으며 사정하듯 말했다.
"아! 그만 만지고! 음~!!"
"싫은데. 난 더 만지고 싶은데."
"으으응~ 그러지 말고. 자기야. 응?"
"응. 뭐?"
"넣어 달라고."
유이 씨가 살살 애교 섞인 목소리로 애원하기 시작했다.
"하악, 하악. 이제 됐으니까. 응? 어서. 지금. 흐응!"
"자기만 준비됐으면 그만이야?"
"응?"
"입 벌려 봐."
그녀는 오럴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럼 그렇지라는 듯 여유로운 미소로 나를 올려다보더니 자세를 바꾼다.
하지만 내가 원한 건 그게 아니었다.
"음?"
"가만히."
그녀의 턱을 잡고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리곤 입을 벌려 조용히 침을 흘려보낸다.
"으음..."
"하하하하."
"흐으음~"
입에서 입으로 주르륵 침이 흘러내리는데, 그녀가 피하지 않고 얌전히 그것을 받아 마셨다.
* * *
모두가 흥겨운 파리의 저녁.
주인공들이 사라진, 런칭 쇼 뒤풀이 장소도 파티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었다.
리드미컬한 음악에 맞춰, 젊고 매력적인 이들이 춤을 추는 곳에서, 다수의 남녀는 눈빛을 마주치고 몸을 부비며 보다 더 로맨틱한 순간을 약속하고 있는데.
유독 한 사람만 다급한 얼굴로 언어가 통하는 이들을 찾아다니느라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저기요! 한국 분이시죠?"
"Pardon?"
"아... 쏘, 쏘리."
검은 머리에 동양인이면 한국 사람이어야지. 왜 이렇게 중국인 이랑 일본인이 섞여 있는지...
그나마 얼굴을 익힌 한국에서 같이 온 스태프들은 어딜 갔는지 보이질 않고.
양민구는 초조하다.
저 멀리 에펠탑이 우뚝 솟아있든, 길 저 건너 개선문이 조명을 받든 그에겐 모든 게 이질적이고 불편한 광경일 따름이다.
마하가 사라졌다...
잠깐 분위기에 취해 외국인 모델들과 건배 몇 번 하고 왔는데, 그 사이에 애가 감쪽같이 증발한 것이다.
호텔도 갔었는데 돌아오지 않았단다.
호텔까지 갔다 온 게 더 판단 미스였을까...
전화는 걸어도 받지도 않고. 로밍까지 해 와서 국제 전화라 비쌀 건데...
매니저란 게 이런 일이었구나...
이게 뭐야... 꼬붕도 아니고... 여기까지 와서.
"음? 양 실장님. 왜 그러고 계세요?"
"어어!? 지. 지아 씨!! 큰일 났어요!!"
그 와중에 이유이의 오른팔이라고 불리는 직원을 겨우 만나 이야기를 들었는데.
"아. 정말요...?"
"네. 아까 선생님이랑 둘이 나가는 거 같던데."
"..."
마하는 오늘 주인공이랑 같이 진작에 빠져나갔단다.
직원은 애써 웃으며 '산책하다 돌아오겠죠.' 라는데, 양민구의 자존심에 커다란 스크래치가 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