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것은 입으로 내는 소리가 아니야 (14) >
생각해보면 딱히 멋진 모습을 못 보여준 것 같다.
일기장에도 쓰여있었지만, 혜정이가 말하는 내 멋진 모습이란 커다란 광고판에 실린 순간이라든지, 운동에 전념할 때. 승부에서 이겼을 때 같은 거니까.
현실 남자친구로서 나는 찌질하고 멋대가리 없는 모습만 보여왔다.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시간. 조금은 폼나고 싶은 마음에 정장을 꺼내입고 거실에 앉아 그녀를 기다렸다.
어제 얘도 이랬겠구나. 이런 마음으로 날 기다리고 있었겠다.
오만가지 생각에 잠겨있는 가운데, 저녁 되기 전 현관문 도어락 소리가 울렸다.
"왔구나."
"응..."
터덜터덜 시선을 피한 모습으로 걸어오던 혜정이가 소리에 이끌려 고개를 들었다.
"어디 갔다왔어?"
"아니. 그냥 입고 싶어서."
"..."
"오늘 약속 없지?"
"누구? 나?"
"응."
"없어. 왜?"
"그럼 잠깐 이쪽으로 와서 앉아 볼래."
"..."
슬픈 눈동자로 가만히 지켜보던 애가 잠깐만 있어보라며 방에 들어가 가방을 놓고 나왔다.
"할 말이 있어."
"얘기 해."
"나 빅토리아랑 잤어."
말라붙은 표정에 격정적인 기류가 흐른다.
힘없는 눈동자에 사나운 기운이 담기며 호흡이 가빠지는지 몸이 가볍게 들썩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냥 얘기해줘야 할 거 같아서."
"알고 싶지 않아."
"그리고 이번에 프랑스 갔을 때. 이유이 선생님이랑도 잤어."
혜정이도 허탈한 한숨을 피식 흘렸다.
제대로 화가 나는 듯, 눈동자가 떨리며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그런 얘기를 나한테 왜 하는 거야?! 어!!"
"이혜정. 넌 지금 감정에 중독되어 있어."
"그게 무슨 소리야."
"이성적 판단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콧김으로 씩씩 숨을 내뱉던 애가 쏘아붙였다.
"니가 딴 여자들이랑 잔 걸로 왜 내가 감정에 중독된다는 건데."
"너 지금 참고 있잖아."
"뭐?"
"아니야? 어이없고 화가 나지만 솔직히 지금 내 얘기 듣고 뭔가 덮어두는 감정 없어?"
"..."
"있을 거야. 분명히."
우리는 헤어졌다.
우리의 연애는 그녀가 화를 내고 집을 나간 시점에 분명히 끝이 났다.
하지만 그건 내가 받아들인 상황이었고, 이 사람한테는 아니다.
혜정이는 그래도 우리가 이어질 여지가 있다고 보고 있었다.
그렇기에 먼저도 여기 있었고, 오늘도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단순히 여기 짐이 있어서 온 게 아니야.
얘는 분명히 우리가 전과 같이 돌아갈 가능성을 믿고있고, 그 마음을 행동으로 옮겼어.
"내가 여자 마음을 100% 이해할 순 없지만, 만약 내가 지금 너라면. 이런 소리를 들었을 때"
"..."
"나 같음 일단 싸대기부터 날리고 봤을 거야."
"난 폭력적인 사람이 아니야."
"이건 폭력이 아니라, 감정을 표현한다고 하는 거야."
그래서 보내줘야 한다.
자유롭게 해줘야 해.
나랑 있으면 얘는 계속해서 아픈 걸 참고 있어야 하니까.
"그건 니가 그런 사람이니까 그렇겠지."
"솔직히 니가 지금 참는 게 없다고?"
"...그만하자."
"혜정아. 감정을 누르면 안 돼. 화가 나면 화를 내고 마음에 안 들면 안 든다고 소리치고 그래야 돼."
"왜!? 왜 그래야 하는데?"
"그래야 니가 안 아퍼 지니까."
그녀가 눈을 질끈 감는데 없던 눈물이 갑자기 뚝 하고 흘러내린다.
"상관 마. 내가 알아서 하니까."
"알아서 한다는 게 아무런 대책 없이 다시 내 앞에 나타난 거였어?"
"...너 진짜."
"그럼 될 줄 알았던 거야? 예쁘게 차려입고 살랑살랑 너 답지 않은 행동들 하면서."
"그만 하라고."
"그래서 니가 얻은 게 뭐야. 아프고. 상처만 입고."
"니가 아프게 한 거잖아!!"
"너는 나 안 아프게 했어?"
"...그만해. 넌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지만, 난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헤어져. 끝내."
혜정이가 고개를 들며 긴 심호흡을 뱉는다.
"걱정마. 나도 그러려고 했으니까."
"이별의 사유는 내가 바람을 펴서야."
"야...?"
"니가 잘 못 한 게 아니라고. 내가 다른 여자를 만난 거고. 문란하게 행동을 했기 때문에."
손을 내밀어 그녀의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
"넌 그런 날 도저히 용납할 수 없어서 단번에 차버린 거야. 알았어?"
"..."
"그렇게 넌 자존심을 지킨 거야."
표정이 풀린다.
아직도 약간의 허탈함 비스무리한 걸 느끼는 것 같지만, 적어도 내몰리는 듯한 초조함은 사라지고 있었다.
목소리도 바뀌었다.
앙칼지고 날 선 소리에서 힘이 빠진 그런 소리로.
"지금 뭐하는 거야...?"
"그냥 앞으로 주변에는 이렇게 말을 하라고."
"내가 왜...?"
"그럼. 사실대로 말해? 우리는 서로를 이해 못 해 심각하게 싸웠고. 그래서 헤어졌는데. 나는 그 상실감을 못 이겨 다른 사람을 만났지만 너는 나랑 끝내기 싫어 다시 내 품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
"아니잖아. 그래서 내가 너한테 감정에 중독되어 있다는 얘기를 해주는 거야."
"아까부터 자꾸 날 이상한 중독자 취급을 하는데... 내가 무슨 감정에 중독되어 있다고 그러는 거지."
"먼저는 부담감. 그리고 지금은 체념."
부담과 체념이란 단어에 그녀의 눈동자가 커다랗게 변한다.
"뭘 그렇게 놀라고 그래."
"너... 너 설마..."
"미안."
"..."
"그냥 아침에 집에 있나 방으로 가봤는데, 일기장이 있었어. 그래서 좀 봤어."
속마음을 다 들켰다는 점에서 혜정이는 입술을 파르르 떨지만, 별다른 반응을 보여주진 않았다.
그저 실망감 그득한 목소리로 그럼 그렇지 라는 듯 입을 열었다.
"어쩐지. 난 또 니가 심리학에 뭔가 있다고..."
있긴 있다.
완전 심리학이라고 할 순 없지만, 나는 어느정도 상대방의 감정을 알아보는 내공을 읽는 능력이 있다.
대화를 시작했을 때와, 다른 여자들과 잤다고 고백을 들었을 때. 그리고 지금.
혜정이는 세가지 상황에서 모두 다른 아우라를 뿜어냈다.
일기장을 본 건 실망스럽고 화나는 일이지만 그녀에겐 한결 편안함을 준 것 같다.
구구절절 복잡한 속마음을 말하지 않아도 내가 이미 그 내면을 알고 있으니까.
"체념. 하-! 그래. 부담감은 있었어. 근데 체념이라..."
말은 저렇게 짜증나고 어이없는듯 하지만, 그녀도 자신이 모르던 감정의 형태를 어느정도 인정하는 것 같다.
혜정이의 몸에서 뿜어나는 아우라는 꼭 신호등 같다. 많은 것을 명백하게 알려준다.
그래서 따지듯 재차 묻는 질문에도 나는 감정을 담지않고 편안하게 말을 건네줄 수 있었다.
"진짜 어이가 없어서... 내가 뭘 그렇게 체념하고 있다는 건데?"
"상처받는 상황이지."
"너. 체념이 뭔지는 알어?"
"그럼. 그냥 포기하고 받아들이는 거잖아."
"그래서. 내가 상처 받는 걸 그냥 받아들이고 있다고?"
"그렇게 판단이 된 것 같애."
"뭘 보고? 아니. 왜 그런 걸 너가 판단해?"
"그러니까 여기 있겠지. 넌 분명 나와 헤어지는 것과 참는 것. 둘 중 하나 택하라면 뒤에 걸 선택할 거야."
"아닌데. 내가 왜 그럴 거라 생각하지?"
"그게 너가 나한테 한 미안한 행동에 대한 속죄가 될 거니까."
"..."
"혜정아. 나 너 10년 넘게 지켜봐 왔어."
단지 얼굴만 예쁜 사람이라면 이렇게까지 좋아하지 않았을 것이다.
난 혜정이가 얼마나 착하고 사람들을 진실하게 대하는지 알고 있다.
친구들과 있을 때나 연인과 있을 때.
연인은 지민이 형과 있을 때 모습들이 많지.
성남 머저리들 말대로 나 혼자 멀리 지켜본 것에 불과하지만, 그 시간이 10년 가까이 된다면, 상대방을 몰라도 어느정도 파악은 할 수 있다.
"너는 나랑 있는 걸 참을 거야. 그리고 계속 아파할 거고. 그래서 단호하게 이야기를 해주는 거야."
"그래. 좋아. 그럴 수 있다고 쳐. 하지만, 난 니가 그렇게 남의 마음을 단정할 순 없다고 봐. 니가 신도 아니고."
"...운동을 하면서 우리는 피지컬 훈련도 하지만, 못지않게 중요한 게 마로 마음수련이야."
이렇게 단호하게 이별을 말하는 이유. 그것은 얘를 빨리 감정중독에서 벗어나게 만들어야 한다.
선수도 어떤 감정에 중독된다면 몸이 거기에 맞춰져 버린다.
패배했을 때 얻는 좌절은 독이고, 승리를 통해 얻어지는 성취감도 독이다.
사람은 언제나 마음이 평안해야 한다.
명경지수의 정신은 비단 스포츠에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야 일상을 통해 얻는 과제를 매끄럽게 수행할 수 있고, 삶의 발전을 가져오니까.
"이대로 있음 겨우내 꽃피는 너의 가능성이나 미래 같은 게 다 무너져 내릴 거야."
"그러니까... 그런 걸 니가 어떻게 아냐고."
"혜정아. 나 세계챔피언이야."
"..."
"이건 거만이 아니라. 꼭 나 아니어도, 어떤 분야에 정상을 찍은 사람은 어느정도 그런 걸 판단할 수 있는 경험은 있다고 생각해."
얘는 나 같이 사랑에 목을 매는 사람이 아니다.
사랑보다 발전. 스스로 어떤 반열에 오르고 싶어하는 욕망이 있다.
일기장에는 그런 내용들도 적혀있었다.
혜정이는 성공을 원한다.
그러기 위해선, 내가 그녀의 길을 막아선 안 된다.
"그래... 넌 그럴 자격이 있지."
아무리 경험이 있고, 거기다 상대방의 마음이 읽힌다고는 하지만. 너무 대화를 단호하게 이어가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굳이 마음의 빛을 읽지 않아도 그녀의 표정이 지금 이 상황이 고통스럽다는 걸 알려주고 있으니까.
그렇기에 나는 또 한번 이 사람을 보내줘야 한다는 결심을 굳힌다.
"그렇게 하자. 그럼 너도 복잡해지지 않잖아."
"...넌 그렇게 나랑 헤어지고 싶어?"
"있잖아. 이건 나도 너한테 말하고 싶어."
"얘기해 뭔데"
"난 너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서 사귀자고 했지. 아프게 하자고 사귀는 게 아니야."
"..."
그녀가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진심을 전해주었다.
"그럼 안 아프게 하면 되잖아..."
"그러려고 했어. 진짜로 행복하게 해주려고 했어."
"흑... 흐윽."
"그건 너도 알잖아. 내가 널 일부러 아프게 하려던 건 아니라는 거."
"알어. 나도 아는데..."
"일기 본 건 정말 미안해. 하지만, 난 그걸로 정말 많은 걸 알 수 있었어."
내가 이 사람을 간절히 원했던 이유.
다른 여자들을 사랑하면서도 마음 속 한 구석 떨치지 못했던 이유.
그건 나에게 행복이란 두 글자의 기원이, 바로 그녀의 미소였기 때문이었다.
웃지 않는 상대방을 오직 내 욕심 하나 때문에 붙잡고 있을 수 없다.
사랑이 아픔이고, 아픔이 사랑이고 그런 걸 떠나서. 내가 이 사람을 좋아하는 게 그녀에겐 상처가 된다는 사실이 나한텐 헤어지는 그 이상으로 괴로우니까.
나의 사랑이 누군가의 고통이 된다니...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이런 거 저런 거 다 때놓고 말하자면, 우린 그냥 스타일이 안 맞았던 거고. 내가 널 잘 몰랐던 거고, 너도 나를 너무 조심스럽게 대하긴 했지만."
"흑. 흐으윽..."
"지금와선 일이 너무 커져버린 감도 있고. 그리고. 보니까, 너도 뭐 주변에 우리 얘기 아주 감춘 건 아니었다면서... 그러니까 이런 이유면 다들 납득할 거야. 엿같은 상황이지만, 스캔들이 아주 대대적으로 터지기도 했잖아."
혜정이가 두 눈을 막 쥐어잡으며 말했다.
"그래도 난 너랑 헤어지기 싫단 말이야..."
"..."
"끝내도. 이렇게 끝내는 건 정말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으어엉..."
유이 누나가 그랬지.
여자가 사랑에 빠지면 그 남자를 떠나지 않으려 한다고.
감동이다. 얘가 날 사랑해주고 있던 건 맞았어.
안타깝지만 현실을 받아들여야지...
"그럼 너 진짜 아플 거야."
"아니! 안 그럴 거야."
결의에 찬 듯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본다.
"난 바뀔 거고. 이제는 더 이상 세상 눈치 안 볼 거야. 움츠리지 않을 거라고."
"넌 이미 내가 빅토리아랑 잤다는 걸 알았잖아."
"..."
"거기에 유이 누나랑 그랬다는 것도 알았어."
"상관 없어."
"왜 상관이 없어."
"니 말대로 그건 우리가 헤어진 상태에서의 일이니까. 내가 상관할 문제가"
"하지만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으면."
세상이 뭐라 씨부리든, 호텔 방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나와 빅토리아만 알고 있다.
모두가 이미 그런 일이 있었을 거라고 짐작은 하더라도, 진실은 우리가 입을 열지 않으면 덮어지는 법이다.
이야기만 했었다. 친구끼리 그럴 수 있는 거 아니냐. 상황이 너무 힘들어 마음을 치유받았다. 그렇게 속인다면.
세상 모두가 뭐라하든, 얘는 그 말을 믿었을 거야.
진실을 털어놓은 건 상대방을 생각해서였다.
"너 지금 나 일부러 밀어내려고 그러는 거 내가 모를 거 같애?"
"혜정아. 나는..."
"내가 싫어? 아니. 내가 너한테 그렇게까지 큰 실수를 한 거야?"
"그러니까 내 말은..."
"니 말은 앞뒤가 하나도 맞지를 않어. 아프게 하기 싫다면서, 나를 더 아프게 하고 있고. 체념하는 마음을 지적하면서 상황을 포기하게 만들려 하고 있고! 지금 그러고 있다고!!"
잠깐은 속타는 감정을 털어놓도록 가만히 들어주고, 어느정도 진정된 기미를 보일 때. 그때 말했다.
"나한텐 몇 가지 상대방을 대하는 원칙이 있어. 그 원칙은 너가 나한테 만들어 준 거야."
"뭔데 그게?"
"절대. 여자를 아프게 하지마라."
"..."
"그래서 그래. 나도 너랑 헤어지고 싶지 않어. 그냥 다 모르는 척 덮고 그렇게 가고싶어."
"그럼 그렇게 가면 되잖아?"
혜정이가 눈물을 훌쩍 훌쩍 닦아내며 말했다.
"민서는. 너 그렇게 민서 싫어했으면서 걔랑 데이트도 하고."
"민서. 지금도 싫어."
"이것 봐. 자존심 부리는 건 너야. 내가 아니라!"
"진짜야. 그냥 걔가 나한테 보인 행동이나 마음이 안타까워서 덮었지."
민서와의 이야기도 하나 숨김없이 알려주었다.
스키를 타고와서 몸 좀 녹이려고 탕에 들어가려고 했었다.
난 벗고 있었고, 그때 민서가 내 앞에 나타났다.
난 민서한테 벗은 몸 보여주는데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그냥 사람이 아니라, 개 한 마리 있구나 싶었어."
"..."
"용서라... 걔한테도 그렇게 말은 했지. 어느정도 나 스스로 극복한 것도 있고. 근데, 그런다고 과거가 바뀌는 건 아니니까 그래서 덮고 가는 거야."
혜정이한테 묻는다.
지금 우리의 이야기를 그렇게 덮고 갈 수 있겠는가?
스캔들까지 난 상황에서. 내가 너 아닌 다른 사람과 잤다는 걸 안 이 시점에 그럴 수 있겠는가?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것을 다 덮고 나를 사랑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잘못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왜냐면 나도 그것이 건강한 연애방식이라고 생각하니까.
"그렇게 하자. 그게 맞는 거 같애."
"흑 윽. 흐으윽..."
"왜 이렇게 울어..."
"니가 바람을 핀 건 아니잖아..."
얘도 알고 있다.
표현을 못 하고 있을 뿐이지. 우리 연애가 무너진 원인이 단지 나의 집착과 찌질함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그녀도 자신이 미숙했다는 걸 알고 있다.
조금 더 잘 했다면. 상대방을 조금 더 배려했다면 우리는 더 나은 결과로 나아갔을 것이다.
그냥 미안한 거다.
이 마당에 그런 마음을 느낀다는 게 얘가 얼마나 선한 마음을 가졌는지를 알려준다.
그런 사람이 나의 첫사랑이고 여자친구가 되어 줬기에 다행이라 생각한다.
"내가. 미안한 게 많다."
"으윽. 흐으윽..."
"조금 더 대화를 해볼 걸."
"흐응 으으윽. 마하야..."
연애란 서로에 대한 존중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상대방이 아무리 매력적이라 하더라도 그 사람을 존중한다면 마음을 상처입히는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싸운 이유. 싸운 원인. 서로에게 느낀 감정.
그것에 대해 끝까지 파고들면 어쩌면 지금과 다른 답이 나올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그날 민서같이 상대방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잘못을 빌겠지.
사랑을 위해 누구 하나가 자존심을 죽이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어.
그런 사랑은 어느 한쪽이 늘 아파야 하니까.
"아. 진짜 왜 그래."
"미안해. 정말... 내가 너무..."
"괜찮아. 괜찮아."
오랜만에 혜정이를 부담없이 안았다.
그녀도 나에게 편안하게 기대 울었다.
우리는 사귈 때보다 더 서로를 진심으로 안아주고 다독여 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