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륜기로 가버렷-336화 (336/401)

도전자 (1)

"그렇다고 형이 동생을 때리라고 하냐. 그것도 직장 동료한테?"

"내가? 아니, 난 그런 말 안 했는데."

"민구 형이 그랬어. 형이 주먹을 쥐어 보였다고."

"그래? 흠, 기억이 안 나네."

오늘은 기다리고 기다리던 형의 결혼식 날이다.

마침내 수정이 누나가 우리와 가족이 되는 오늘을 위해, 나는 아침부터 신랑 신부 모시고 웨딩카를 몰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형수님을 보자마자 나는 민구 형과 있었던 일을 고자질하기 바쁘다.

"진짜 나빴다니까요. 민구 형도 나중에 되게 미안해 가지고."

"마윤 씨가 사과해. 마하 입장에서도 서운했겠어."

"뭘. 내가 손댔으면 더 했지."

"후우... 형수님, 진짜 이 결혼 다시 생각해보시면 안 돼요...?"

"후후후. 그건 안 되겠는데, 도련님."

"아, 진짜. 되게 폭력적인 인간인데..."

도련님이란다. 우와. 도련님.

말은 이렇게 하지만, 두 사람이 함께하게 된 것에 누구보다 행복함을 느낀다.

구마윤이 마침내 장가를 가다니.

형은 행복해야 되는 사람이야. 그리고 수정이 누나도 그 행복을 당연히 같이 누려야 한다.

진짜 이렇게 가족이 되어서 너무 좋다.

"어우..."

"왜요? 형수님?"

"아니. 이런 데 비쌀 건데..."

"수정아, 여기 비싸?"

"아니... 난 마하가 신부 화장 해 준다고 하길래 그냥 서울로 가긴 하겠구나 싶었는데..."

"에이! 에이!! 이상한 소리들 하지 마시고. 언능 준비해야죠! 식에 늦겠네!!"

그런 두 사람을 위해 결혼식 전반을 내가 준비해 줬다.

유이 누나한테 부탁해 특급 디자이너를 소개받아 웨딩드레스와 턱시도를 맞추고, 패션위크에 들어오는 정상급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섭외해 신랑 신부 화장을 준비했다.

마지막 예식장도 호텔로 알아보고 있었는데, 장소는 형이 손님들 멀리 오면 그날 장사하기 어렵다며 예식장을 성남에 위치한 작은 곳을 결정하는 바람에 뭔가 마지막 퍼즐이 어긋나긴 했지만.

아무튼 뭐. 사람이 정성이 중요한 거니까.

"오오~ 형수님~~!"

"얘, 조용히 해..."

"하하하! 아름다우십니다."

"고마워. 근데, 마하야. 누나 말고 가서 마윤 씨 어떤가 좀 보고 올래?"

"형이요? 왜요?"

신부 화장을 받는데 직원들이 그렇게 숙덕거리고 호들갑이란다.

대충 어떤 상황일지 예상이 되어 형을 찾아가보니 역시나...

진짜 저 짠돌이 기질은...

"마하야..."

"네. 형수님."

"...너, 이 드레스... 이건 너무 과한 거 아니니?"

"에이. 뭐가 과해요. 다들 이런 가슴 살짝 파인 옷 입는다는데."

"그게 아니라. 이거 되게 비싸 보여."

"싼 거라니까요! 아, 뭘 그런 걸 신경 써요. 어서 준비하세요."

어찌 보면 형이 수정이 누나와 결혼을 결정한 건 경제적인 면에서 서로 이해가 닿았기 때문이 아닐까?

아무튼 나의 선물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하하하... 마하야... 이 차는 또 뭐야..."

"너 이 자식..."

"뭐가? 뭐? 왜? 형수님 뭐요? 형 뭐?"

"아니야... 버는 게 있으니까 별로 놀랍지는 않은데... 그래도..."

"마하야. 저 분께 말씀드리고 그냥 우리 타고 왔던 차로 돌아가."

"아, 싫어. 나도 새벽부터 일어나서 피곤해."

"니가 운전한다고 해서."

"했잖아. 신촌에서 성남까지. 그리고 다시 청담까지."

예식준비를 마친 형과 형수님 앞에 영화에서나 보던 리무진이 준비되어있다.

그냥 내 차는 드레스 입고 타면 반짝이 묻어서 싫다는 핑계로 두 사람을 차로 밀어 넣었다.

"기사님, 예식장까지 잘 부탁드립니다."

"아우, 그럼요! 누구 부탁인데요."

"형, 이따가 봐. 형수님, 나중에 봬요."

예식장에 도착.

형수님이 가족분들과 신부대기실로 가고, 형과 신랑석에 서서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

"아, 형. 아까 그거 얼마 안 해. 인상 좀 펴."

"너한테 결혼 준비를 맡기는 게 아니었는데."

"그래서 내가 식장은 형이 하라는 곳으로 했잖아."

"이거 말고 또 더 허튼 돈 쓰는 거 없지?"

"없어. 내가 돈 더 쓸 게 뭐가 있어."

하객 식사를 웨딩홀에서 제시한 업체가 아닌 호텔 출장식으로 바꾼 거 말고는 진짜 없다.

근데 음식은 감독님한테 물어도 다들 잘 먹이는 게 좋다고 하시니까.

"그리고 형수님네 가족을 생각해 봐. 우리 딸이 이렇게 대우받고 가는 걸 좋아하시지. 지지리 궁상맞게 결혼하는 걸 좋아하시겠어?"

"후우..."

"한숨을, 좋은 날에."

"그래, 뭐. 고맙다."

"얼래? 어쩐 일이셔? 형이 그런 말을 다 하고."

"그냥. 어쨌든 난 여기저기 가끔 결혼식 초대받아 간 적이 있으니까. 얼핏 들은 게 있다고."

형 결혼식인데 아마 형보다 내 손님들이 더 많을 거 같다.

작은 예식장에 넘쳐나는 화환들이 홀을 가득 채우고 복도 계단을 넘어 건물 앞까지 쌓였다.

"너가 엄청 성공하긴 했구나."

"그러니까. 나 돈 잘 번다니까."

"부모님이 보셨으면 정말 기뻐하셨을 거야."

이래서 사람이 너무 올곧으면 안 돼. 적당히 때도 묻고 그래야지.

"형, 괜찮아. 아까 봤잖아. 어른들 좋아하시는 거."

"..."

"그리고 뭐, 둘이 신혼 여행도 곤륜으로 가기로 했다면서."

"고맙지. 이해해 줘서."

말이 곤륜이지. 그냥 티베트 에베레스트 산. 형이 기억하는 우리가 차원을 넘어 온 그 자리를 한번 찾아가는 것이 형네 신혼 여행이었다.

날이 날이니만큼 형도 부모님 생각이 간절해지는 것 같다.

기쁨 가운데 어쩔 수 없는 그리움이 묻어나온다.

"형, 혹시..."

"음."

"아니, 그냥 내가 봤을 땐 수정이 누나네 어른들도 형 좋아하고 만족하는 거 같은데. 혹시 지금까지 결혼 미룬 건 우리 부모님 때문에 그랬던 거야?"

"..."

"대답하기 싫으면 하지 말고."

"나도 결혼을 본 건 딱 한 번이지만."

"음? 아까는 몇 번 봤다면서"

"고향에서 말이야."

곤륜에선 결혼 때,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잔치를 한단다.

그냥 결혼이라는 자체가 내가 생각하는 그 이상으로 엄청난 축제라고 해줬다.

양가 어른들, 친척들. 마을을 떠났던 제자들 모두가 모여 축하를 해 준단다.

"어~ 어..."

"초라한 결혼을 하는 게 수정이한테 미안했어."

"에이. 근데, 그건 곤륜이고 여기는 한국이고."

"그건 그렇지. 그냥.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었다는 거지."

아직 하객들이 오기 전이라 그런가, 형과 둘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아까 그 차는 신기하더라."

"리무진이잖아. 나도 아직 타 본 적은 없어."

"고맙다. 근데 들어보니까 기사님이 안 가시고 기다리고 계시던데."

"어? 어. 아. 그건..."

"공항은 너가 데려다주는 거 아니었어?"

"어. 형. 손님 오신다."

우리 형은 잘 살 거야. 차원을 넘어온 사람이 이렇게 돈을 겁내는데 어떻게 사람이 실패할 수 있겠어. 진짜 이 생활력은...

* * *

"형님 결혼식은 잘 했어?"

"네. 형도 오시지. 회사 사람들 거진 다 왔는데."

"아, 뭔가... 좀 무섭더라고."

"왜요? 어차피 형은 지시받은 대로 날 때린 거밖에 없는데?"

"하하하! 아. 좀 미안하다니까."

며칠 뒤. 형이 해외로 신혼 여행을 떠나고 다시 민구 형과 만나 세계체육관으로 향하고 있었다.

"근데, 진짜 하려고?"

"운동은 한다니까요."

"...아니, 그래도 마치 꼭 이렇게 하자고 한 거 같으니까."

나는 복싱을 하기로 결정했다.

아직 선수가 된다 뭐다 같은 차원은 아니지만, 그냥 이 운동이 하고 싶어졌다.

"우리 형이 그랬다면서요. 우리 집안이 원래 무도가 집안이라고."

"응. 그때 그러셨었어."

"복싱하는데 뭔가 좋았어요. 무엇보다 관장님이나 주변 분들도 마음에 들고."

세계체육관에 도착.

내가 온다는 소문이 돌았는가 최두필 관장님을 비롯, 정 사장님 외 그 날 같이 술자리를 나눴던 멤버들 말고도 꽤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오오!! 왔다!!"

하하하. 아이고, 진짜 조용히 운동에 전념하고 싶었는데.

관장님도 밝은 얼굴로 반겨 주시며 말씀하셨다.

"진짜 하려고?"

"네."

"쓰읍~ 힘들 건데. 정말 할 수 있겠어?"

"하하하! 아니 그냥 운동만 하는 건데 왜 그러세요. 사람 불안하게."

"크하하! 이거 참. 줄넘기는 사 왔어?"

"아니요. 그날 저 쓰라고 주신 거 있었잖아요?"

"으음. 그거 원래 파는 건데."

"예? 에이, 한 번 준 건 그냥 주셔야죠. 뭘 또 돈 받고 파세요."

줄넘기는 서비스로 받고 붕대도 서비스로 받았다.

그것 말고는 다른 회원들과 다를 바 없는 특별하지 않은 조건으로 체육관에 등록하는데.

"흠. 저, 관장님."

"왜?"

"뭐 국가 대표는 DC 없나요?"

"자네 돈 잘 벌지 않나? 아까도 보니까 버스에 자네 얼굴 박힌 뭐 지나가던데."

"이번에 형 결혼식으로 현금을 많이 써서..."

"하하하! 있는 놈들이 더 하다고. 이 친구 농담도 참."

진짠데? 이왕 하는 거 깎아 주시면 좋은 거 아닌가...?

등록을 마치고 체육관으로 나오니 사람들이 뺑 둘러서 쳐다보고 있다.

민구 형과 같이 있던 정 사장님이 대표로 물으셨다.

"정말로 한 식구 된 거야?"

"네! 잘 부탁드립니다."

"이야~ 다들 박수 한번 쳐 줍시다!!"

뜨거운 박수를 받으며 넙죽넙죽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네며 말했다.

"아니, 겨우 일반 회원 하나 가지고 뭘 이렇게까지 해 주세요."

"아닌데, 우리 매번 이렇게 해 주는데. 그치?"

"암요, 형님. 이게 우리 문화야, 마하 씨."

"하하하! 정말이죠? 저 말고 다른 사람들 와도 똑같이 해 주셔야 돼요!"

먼저 술자리가 있어서 그런가, 그날 함께했던 몇몇 분들은 마하야 라고 편하게 말씀도 건네주시고 다가와 친하게 남는 붕대 있다며 선물도 찔러 주신다.

"어이, 운동하러 왔다면서?"

"아. 네. 아드님 싸인은 이따가 해 드릴게요."

"어어. 그래. 어서 가 보고."

3분이면 울리는 종소리. 줄줄이 박혀있는 검은 샌드백과 사각링.

새로운 환경. 새로운 운동.

둔해진 몸을 깨우치기에도 좋고, 실내 스포츠라 계절의 영향을 받지도 않는다.

그렇게 복싱을 시작했다.

"어이고. 의무대야? 붕대를 뭐 그렇게 많이 들고 있어."

"아저씨들이 주셨어요."

"뭐. 그날도 짧게 설명했지만."

"네!"

"일단 붕대부터 감고."

손에 칭칭 스트리트 파이터 같은 붕대를 감고 줄넘기를 시작했다.

복싱에서 줄넘기는 알파이자 오메가였다.

예열. 그리고 근력과 순발력. 전신운동인 줄넘기는 반복하면 반복할수록 발목과 종아리. 하체는 물론 가슴과 팔 상체에도 꽤나 좋은 자극을 준다.

"줄넘기는 적당히 해도 돼."

"원한다면 얼마든지 해도 되는 거죠?"

"뭐. 그렇기도 하지."

"그럼 조금만 더요!"

스탭 밟고 제자리 달리기를 하면서 줄넘기하는 걸 봤었다.

빨간 땀복이 내는 마찰 소리와 줄넘기가 바닥을 때리는 소리.

거기다 훈련하는 이의 스탭 소리가 어우러져 어떤 아우라를 자아내는데 그것을 하고 싶었다.

"아. 어 씨. 은근 발이 꼬이네?"

"하하하!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해 봐."

"네!"

"두 번 뛰기는 할 수 있어?"

"흠. 안 해 봤는데. 해 볼게요."

휘리릭 휘리릭 가볍게 두 번 뛰기에 성공.

관장님도 이 정도는 예상하셨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시는데.

"세 번 뛰기도 해 볼까요?"

"어려울 걸?"

"하는 거 보긴 했는데."

세 번 돌리는 건 역시 어려웠다.

연대 농구부와 있었던 서전트로 뛰는 건 자신 있었지만, 제자리서 온몸에 힘을 주어 뛰는 것과 다르게 줄넘기를 돌려야 하다 보니 자꾸만 세 번째에 발이 꼬였다.

"후욱! 아 씨. 한 번만 더."

"마하야, 복싱 배우러 와 놓고 넌 왜 아까부터 줄넘기만 하고 있어?"

"형. 다 됐어요."

"그래. 다 됐어. 열 번만 더 뛰어 봐."

"네!"

태극마크를 달아 보신 최 관장님도 내 마음을 이해하시는 것 같다.

목표한 것이 있는데, 그걸 해내지 못하는 답답함.

준비운동에 불과한 줄넘기에도 어쩔 수 없는 이 미친 승부욕.

역시 나는 운동이 몸에 맞는 거 같다.

"하하하! 어때요? 저 잘 하죠!"

그렇게 난 체육관에 온 첫날. 한 시간 반에 걸친 준비운동 끝에 제자리에서 달리면서 줄넘기를 뛸 수 있게 되었다.

"진짜 괴물이네, 괴물이야..."

"국가 대표잖아. 우리랑 다른 사람이라고..."

사람들이 나를 놓고 뭐라고 하든 다시금 땀내 나는 공간에 들어왔다는 것에 신이 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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