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륜기로 가버렷-341화 (341/401)

도전자 (6)

2007년 12월 중순. 제61회 전국 아마추어 복싱 선수권 대회겸 국가 대표 선발전이 예정되어 있었다.

남은 기간은 한 달.

최두필 관장은 양민구를 불러 구마하의 이야기를 되묻는다.

"마하가요??"

"음. 어제 찾아와서 그러던데, 넌 알았냐?"

"자!! 자 잠시만요! 마하가 선수 선발전을 나가고 싶다고 했다고요? 복싱으로?!!"

"그렇다니까."

"어... 아니... 갑자기 무슨."

"내가 할 말이야, 이놈아. 갑자기 왜? 뭔 일 있어? 너네 회사도 수도관 터졌냐?"

매니저라고 전부를 아는 게 아니었다.

일단 양민구는 최대한 아는 선에서 이야기를 해 준다.

"어이구야. 그래서? 어린 팬과의 약속이다 이건가?"

"모르죠. 근데, 마하가 그날 좀 심각한 얼굴을 하긴 했었어요."

"허허허~ 덩치는 커다란 놈이 센치한 구석이 있었네."

구마하의 다급하며 결의에 찬 모습을 떠올린 최두필 관장이 피식 미소를 지어 보였다.

"혹시나 했는데 말이야. 거 참."

"어. 일단 제가 마하한테 연락해서 물어볼게요."

"오늘 니네 회사 가서 이야기한다고 했으니까, 곧 답장이 오겠지."

"그래도요. 가능성 있는 이야기를 해야죠."

"가능성은 있어."

"네? 관장님?"

"있다고, 진짜로."

단호한 최 관장의 응답에 양민구의 속에서 뭔가 이상한 거부 반응이 일어난다.

"관장님, 아무리 그래도 복싱 두 달도 안 된 애가 무슨 국가 대표를..."

"두 달도 안 됐지만, 재능은 있지."

"그래도요! 다른 선수가 애들도 아니고."

"애들이야."

"...네? 관장님?"

"체급을 지킨다면 말이지."

최두필 관장이 벽에 붙은 낡은 복싱 대회 포스터를 가리킨다.

"여기 봐라. 현재 한국에 헤비급 선수 누가 있냐?"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잖아요...."

"없어. 있다 하더라도 다 물렁살 돼지 새끼들 뿐이지. 말 그대로 아마추어 레벨에서의 이야기에 불과해."

"그래도 다들 운동을 몇 년을 했는데요."

"난 경력보다 재능을 본다. 그리고 마하, 이자식은 그럴 재능이 충분해."

86 아시안 게임 대표로 태릉 밥을 먹었던 최두필이었다.

100, 200m 단거리 달리기와 800m 중거리 달리기. 세 종목에서 금메달을 석권한 구마하의 실력을 언급하며 말한다.

"마하 이놈은 파워가 있고 또한 지구력이 있다. 아마추어 4라운드 정도는 큰 어려움은 없어. 기술만 제대로 익힌다면 말이야."

최두필 관장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을 하면서도 고민에 빠지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단, 녀석이 원하는 게 한국 챔피언이 아닌 올림픽이란 건데..."

"그것도 가능하긴 할 거에요."

"뭐가? 너 방금 못 한다고 했잖아?"

"올림픽은 내년 여름이잖아요."

"흠."

"관장님이 먼저 한국 챔피언이 된다고 하셨으니까. 거기서 앞으로 8개월 이상 운동에 전념한다면... 마하는 뭔가 해낼 수 있을 거에요..."

"하하! 대단한 믿음이구만."

양민구는 주먹을 움켜쥔다.

한 사람의 성공과 재능에 인간으로서 참을 수 없는 질투심을 느끼지만, 그래도 복싱 선수 구마하는 매니저가 꿈꾸던 바로 그 장면을 보여 준다.

"만약 마하, 이놈이 정말 해낸다면..."

"와, 그때는 진짜... 관장님..."

"역사가 쓰여지겠구나, 민구야. 진짜 역사가..."

구마하의 세 번째 도전.

그 장엄한 이야기 앞에 두 사람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아. 근데, 관장님. 대회 신청은 보통 몇 달 전에 끝나지 않나요?"

"이 마당에 무슨 상관이야. 구마하가 대회를 나오겠다는데, 연맹에서 없는 체급이라도 만들어 줄 거다."

"허허... 복싱이라... 마하가 복싱... 회사랑 잘 이야기해 봐야겠네요."

마침 그 순간 양민구의 주머니에 담겨있던 전화벨이 울렸다.

"어. 네, 대표님. 전화 받았습니다."

"저기 양 실장... 지금 어디야?"

"저. 체육관이요."

"으음. 거기 복싱하는 데?"

"네. 대표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안 그래도 방금 마하가 왔다 갔는데... 일단 내가 먼저 말할게."

한상률 대표를 찾아 온 구마하가 기자를 불러 달라 했단다.

후원 기업도 NICE에서 디아다스든 어디든 다 불러 최대한 시끄럽게 만들어 달라고 했단다.

"가능한가요? 마하는 NICE 전속같이 묶여있는데."

"일부러 그러는 거 같던데. 최대한 시끄럽게 해 달라는 걸로 봐선. 그리고 확인해 보니까 문제 될 건 없어. NICE와 맺은 계약은 육상 선수 스키 선수 구마하지, 복싱을 한다는 건 저쪽도 생각지 못한 이야기니까."

"와, 그럼. 진짜 엄청 시끄러워지긴 하겠네요."

"그러니까 말이야.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일단 최대한 빨리 마하를 만나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지금 회사에 있나요?"

"아니. 또 어디 볼 일 있다고 나갔어. 난 양 실장한테 간 줄 알았는데."

"어. 저한텐 연락 없었는데요."

그래도 전담 매니저라고 생각했는데, 녀석한테 있어서 나는 중요한 사람이 아니었나 보구나 싶은 그때.

구마하에게 문자가 들어온다.

[형. 저 성남 좀 다녀올게요. 저녁에 다시 올라갈 거니까 그때 연락 드릴게요.]

"잊은 건 아니구나. 애도 아니고 이런 걸로 서운해한담..."

마음을 풀고 상황을 지켜보는 양민구.

지금 뭔가 마하에게 큰 결심을 해야만 하는 일이 벌어진 것 같다.

* * *

"또 왜 왔어."

"어떻게 안 와. 형수님이 가 보라잖아."

"괜찮아."

"형, 이러지 말고 그냥 거기 가 있으라니까?"

"어떻게 그래. 나도 이제 가족이 있는데."

"아, 진짜... 형수님도 괜찮다고 했다며?"

"...신경 쓰지 마."

"후우. 아, 형?! 진짜 답답하게!!"

왜 꼭 좋은 소식은 슬픈 소식이랑 같이 날아드는 것일까.

희망이 없으면 절망도 없는 법.

아니. 나도 부모님 오신 건 좋은데. 근데 그게 참... 진짜 뭐랄까...

"걱정하지 말고. 가서 너 할 일 해."

"내가 걱정이냐고. 형이 걱정이지. 신혼여행도 뭐 하는 둥 마는 둥 계속 그랬다면서."

"그러니까 또 어떻게 수정이를 놔두고 나 혼자 나가."

"형수님도 같이 가면 되지."

"돈은?"

"후우... 뭐가 필요한데? 집 필요해? 차 필요해? 아니면. 그냥 곤륜에 내가 집을 지어 줄까?"

"괜찮아... 그냥 같은 세상에 살고 계시다는 것만도 기뻐."

"그래. 형, 진짜 그러자. 거기다 집을 짓는 거야. 그리고 형이랑 형수랑 기다리다 보면 두 분도 찾아오겠지."

"하지 마. 그렇게 서두른다고 되는 일이 아니야."

"그럼 진짜 이렇게 기다리기만 할 거야?"

"마하야, 세상은 애쓴다고 되는 일이 있고 아닌 게 있어. 그리고 지금 이런 일은 우리가 아무리 애를 쓴다고 한들 될 일이 아니고."

"..."

"삶을 흔들지 마. 공항에서 너 보면서 나도 흔들린 거 지금 반성하고 있으니까."

우리 형의 이런 성격을 알기에 미리 회사나 최 관장님을 통해 상황을 만들어 둔 것이다.

형은 걱정하지 말라고, 자신도 그곳에 부모님만 알아볼 수 있는 안내문을 놔두었다고 말했다.

"꼭 오실 거야. 난 그렇게 믿어."

언젠간 그럴 수도 있겠지.

나도 두 분이 반드시 우리를 찾을 거라고 믿는다.

다만, 내 말은 이왕 찾을 거. 한시라도 빨리 서두르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아무튼, 명심해. 절대 부모님 일 외부에 알리거나 하지 마."

"왜?"

"마하야, 모든 게 조용히 잘 지나가 다행이지. 엄밀히 우리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야."

"하하하! 형. 난 대한민국 사람이야!"

"니가 가진 명성에 영향력을 따져 보면 우리 정체가 탄로 나는 것도 시간문제라고."

"아니, 우리 정체가 뭔데? 뭐? 곤륜에서 왔다는 거? 탈북자로 퉁친 거 아니었어?"

"..."

"알았어. 아, 알았다고. 되게 째려보네..."

"사람이 뭐든 조심해서 나쁠 건 없어."

형은 부모님 일을 얘기하지 말라는 것 말고도 한 가지를 더 당부했다.

"감정에 흔들리지 마."

"내가 흔들리나. 형이 흔들리지."

"너 혜정이랑 헤어진 다음에 형이 일부러 놔둬 봤어."

"아, 진짜. 그 얘기를 지금 왜 하는데?"

나는 강한 내공을 가지고 있는 만큼, 감정이 흔들릴 때 남들보다 더 안 좋은 방향으로 기운이 흐를 수 있단다.

"그래서 언제나 명경지수, 맑은 마음을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하는 거고."

"아, 진짜. 나 오늘 형만 아니었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어!!"

"...왜 화를 내고 그래, 이 자식이."

"지금 흔들리고 있는 사람이 누군데..."

나도 부모님이 보고 싶다. 아버지와 어머니란 존재를 간절한 마음으로 부르고 싶다.

하지만 내가 부모님을 원하는 건 내 안의 그리움을 떠나 우리 형을 위한 마음이 더 크다.

"진짜, 누구 때문에 지금 이 결정을 내렸는데..."

두 분이라면 형의 끊어진 단전을 치료할 수 있을 것이다.

늦어선 안 돼. 수정이 누나도 나이가 있어.

학교 수업 시간에 들었다고. 여자는 노산이 오면 출산이 어려워진다고.

가뜩이나 참고 희생해 온 우리 형인데. 형수님까지 그렇게 둘순 없어.

"네. 민구 형. 아니요. 그냥 형 좀 보고 왔어요. 네. 우리 형이요. 신혼여행에서 돌아왔거든요."

방법이 있으면 가는 거다.

단순 무식하게. 남자의 길이 별 게 아니다.

"네. 진심이죠. 당연히."

"갑자기 왜?"

"아 그냥. 어제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애들 생각이 나서요."

"병원 애들?"

"네."

미안하다, 도영이를 비롯한 병원 친구들아.

그치만 형이 진짜 간절한 상황이 됐어.

너희의 응원을 헛되게 하지 않을게.

"형은 지금 어디세요?"

"난 체육관 갔다가 회사로 가고 있어."

"아, 관장님은 만나보셨어요?"

"어. 지금 같이 계신다. 대표님도 만나 보고 싶다고 하셔서."

"알겠습니다. 그럼 저도 회사로 갈게요."

* * *

"와우. 좋다."

"관장님, 이쪽이요."

"어, 어. 그래. 이야, 너네들 성공한 놈들이구나. 건물 깔끔한 거 봐라."

양민구, 최두필이 한구 스포츠를 찾았다.

한상률이 먼저 회의실에서 기다리다 선배를 모시는 마음으로 최두필에게 상석을 권했다.

"어이구, TV에서 뵀던 분이 계시네."

"어서 오십시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하이고. 이거, 제가 뭐라고."

"그럼 저는 마실 것 좀 준비해 오겠습니다."

"아니야, 아니야. 양 실장도 여기 앉아있어."

이야기의 한 귀퉁이가 되는 만큼 양민구도 중요한 위치를 허락받는다.

세 사람은 우선 구마하 없이 회의를 진행한다.

"마하가 복싱 대표 팀 선발이 가능하다고요?"

"예. 제가 볼 땐 그렇습니다."

"어... 그래도 마하는 복싱에 있어선 문외한이나 마찬가진데..."

"다른 종목은 안 그랬습니까. 무엇보다 한 대표님도 아시겠지만, 우리나라 스포츠 시스템이 뭔가 이 화젯거리가 된다 싶으면 일단 뽑고 보는 식이라."

"네. 그런 게 분명히 있죠."

"대표님, 관장님이 그러시는데 한국 챔피언은 별문제 없을 거라고 하셨어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챔피언인데..."

"다른 체급이면 어렵겠죠. 페더나 라이트급은 수준이 높으니까. 헤비급이니까 가능하다는 겁니다."

"으음."

"그런 문제도 놓고 다른 문제도 놓고. 뭐 그래요. 다 좋다고 합시다. 헌데 내가 걱정하는 건 다른 게 아니라."

구마하가 성실한 녀석이란 건 잠깐 같이 지낸 걸로도 충분히 알수 있었다.

운동을 시작하면 아마 누구보다 열심히 할 것이다.

몸이 잘 갖춰진 만큼 실력도 빠르게 늘 것이다.

"근데, 몸이 너무 좋은 게 탈이죠."

"체급이 빠지는군요."

"네. 그러면 구마하도 별수 없다는 거죠. 라이트 헤비급으로만 가도 이미 수준이 확 오르니."

몸이 발달되어 있는 만큼 기초 대사량이 너무 높은 게 문제였다.

열심히 땀을 흘리면 흘릴수록 선발전과는 거리가 벌어진다.

최두필 관장은 그런 점에 있어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을 거라고 말했다.

"일단 본인의 의지가 필요하지만."

"엄청 먹어야겠네요."

"엄청을 떠나 진짜 징글징글하게 먹으면서 운동해야 할 겁니다."

구마하가 복싱을 한다는 건 기쁘지만, 조금은 이쪽 세계를 우습게 보지 말라는 뜻에서 던지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한상률의 반응은 평온하기만 하다.

"식단을 잘 준비해야 된다라. 양 실장."

"네."

"마하 지금 집 계약이 언제까지인지 아나?"

"잘 모르지만, 아마 2년 잡았던 걸로 압니다."

"일단 이동시간을 최소로 해야 될 거 같고. 체육관 근처로 숙소를 옮기자고."

"저기, 한 대표님?"

"괜찮을 겁니다. 마하 이 녀석 평상시에도 운동할 때 보면 걸신 들린 놈같이 먹거든요."

"그렇습니까...?"

당당한 한상률의 반응에 최두필이 뻘쭘하게 되묻는다.

"힘들 건데. 그게 운동하면서 또 많이 먹는다는 게 쉽지 않다고."

"하하!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거에요."

"뭐. 그렇다면..."

"관장님, 제가 왜 학교 선생이란 직업을 마다하고 이쪽 세계로 뛰어들었는지 아세요?"

"내가 뭐, 알 턱이 있나."

"후후. 마하는요. 이 녀석은 진짜."

기적을 보여 주는 녀석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놈이라고 한상률이 말했다.

"그래서 뭐. 지금도 조금 당황스러운 감은 있지만, 전 마하가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허허, 이거 참."

"왜요?"

"아니. 대표가 그렇게 말하고 매니저가 이렇게 신임을 보이는 데, 결과가 안 좋으면 내가 못 했다는 말로 들리니까요."

"어우. 아니죠. 절대 아니고요. 그렇지, 양 실장?"

"네! 물론이죠. 관장님이 왜 그렇게 말씀하세요."

"허허허. 거 참. 아무튼 이렇게 된 거 당사자 결정만 남았군요. 마하는 어디쯤 왔다나?"

"제가 전화해 보겠습니다."

오래 걸리지 않아 구마하도 한구스포츠 회의실에 도착했다.

강직한 눈빛의 그가 세 사람을 보며 묻는다.

"어떻게? 결정들 하셨어요?"

"우리는 끝냈지."

"너만 다시 한번 분명하게 말해주면 돼."

구마하가 최두필을 보며 말한다.

"하고 싶습니다."

"하! 나 이거 참. 후우~~"

최두필이 심장이 두근 거린다.

떨리는 마음을 간신히 누르며 그가 물었다.

"만만하지 않다."

"괜찮습니다. 해내겠습니다."

"어디까지 해낼 건데?"

최두필의 질문을 받은 구마하가 양민구와 한상률을 번갈아 보았다.

"당연히 정상까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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