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륜기로 가버렷-343화 (343/401)

형제는 용감했다 (1)

"레프트, 다음 라이트, 숙이고 다시 레프트. 그래. 이번엔 스텝밟으면서 천천히 들어와 봐."

레프트 훅과 라이트 훅은 원투 펀치와는 다른 리드미컬한 미트소리가 울려 퍼졌다.

콤비네이션 펀치를 익히고 있었다.

중간 중간 셔플 스텝을 더해 주는 식으로 베리에이션을 추가한다.

거기다 실전 감각을 덧붙인 위빙. 혼자서도 섀도 연습을 할 정도의 기술을 가지게 된 것이다.

"레프트, 여기서 한번 치고. 그렇지. 오케이! 이대로 가 보자!!"

관장님의 화끈한 목소리는 복근에 뱃심이 차오르게 만든다.

미트 소리도 퍽퍽! 힘찬 기합을 지르고 있었다.

신나는 연습이 끝나고 관장님께 어퍼컷은 왜 안 가르쳐 주시냐고 물으니, 초보가 겉멋만 들었다고 된통 혼이 났다.

"어설프게 큰 자세 취하다간 바로 카운터 맞는 거야."

"그래도 어퍼컷이 멋있잖아요."

"멋있지. 그러니까 훅이나 제대로 치고 그런 말을 해."

"훅의 회전축을 바꾸는 게 어퍼컷인가요?"

"컷이 아니라 어퍼라고 한다. 어퍼는 건 뭘 따로 배우기보단 기회가 왔을 때, 즉 상대방의 가드 사이로 틈이 보일 때 훅을 응용해 때리면 되는 거야."

"아아~ 훅이 여러모로 활용도가 높네요."

"그럼! 회전인데. 이것도 다 과학이라니까!!"

대체 언제쯤 나는 과학과 복싱의 상관관계를 이해할 수 있을까? 이래서 내가 이과를 싫어한다니까.

아무튼, 많은 펀치를 익히고 기술이 하루하루 정교해지지만, 그런데도 중요한 건 결국 잽이었다.

"마하야. 알리는 특별한 기술을 안 썼어. 그저 양손으로 빠른 잽을 잘 썼을 뿐이야."

"하하하! 네. 알겠습니다."

"진짜야, 이놈아. 웃지 마!"

잽은 스트레이트가 될 수도 있고 훅이 될 수도 있고 내가 좋아하는 어퍼가 될 수도 있다.

복싱에서 다른 기술은 부차적이다.

모든 시작과 끝은 다 잽으로부터.

"왼쪽을 제압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 맞죠?"

"레너드냐? 알리가 레너드에 관해선 이런 말을 했지."

결국 어디서든 기본이 최고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

기본. 쉽게 말하면서도 참으로 무겁고 어려운 단어가 아닐 수 없다 또 한 번 느낀다.

"좋아! 이번엔 바꿔서, 라이트부터!"

"훅! 훅!"

"자세 바꾸니까 바로 흔들리는 거 봐라. 이놈아, 집중해!!"

"네! 훕!!"

"고개가 들렸잖아! 턱은 당기라니까!"

"죄송합니다!!"

"언제나 실전같이! 들어와!"

관장님은 누가 봐도 호탕하고 화끈한 성격이지만 지도에 있어 서만큼은 섬세하고 엄격한 방식을 고수하신다.

거기다 경량급 선수 출신이다 보니 속도도 중요하게 여기신다.

무엇보다 나는 스위치 히터로 교육받기에 운동량도 다른 선수들의 두 배. 잔소리와 꾸지람도 두 배였다.

"지르지 말고 끊으라고!"

"후우! 훅!"

"그래! 그렇게 하는 거야! 가자!! 들어와! 그렇지! 잘 했어!!"

물론 칭찬도 두 배가 되니 이러니저러니 또이또이치는 기분이다.

"아우, 손 아파라. 민구야? 어디 갔냐?"

"네! 여깄습니다."

"와서 대신 미트 좀 잡아라. 손목이 울린다."

"네!"

"끝내면 바로 푸시업 100번 들어가고."

"헉헉! 예? 100번요?"

"왜? 200번으로 올릴까?"

"훕! 시작합니다!!"

"가자, 마하야!!"

다른 선수들도 과연 이렇게까지 하나 싶을 정도의 미친 운동량이 계속되었다.

20평 공간이지만, 내가 뛰는 건 3평 남짓한 공간인데. 거기서 400m 운동장을 질주하는 것과 비슷한 땀이 흐른다.

하루 15000칼로리의 식사가 의미 없을 정도로 살이 쭉쭉 빠지고 지방은 타들어 갔다.

물론 그 모든 한계를 넘을 때마다 체력이 붙고 기술은 노련해지고 있으니 실질적으론 꽤 기쁜 마음으로 훈련을 받아들이고 있다.

"95! 96! 97!"

"훅, 훅!!"

"조금만 더 마하야!!"

땡!

"100! 오케이. 쉬어!"

"훅, 후욱. 헉, 허억, 헉..."

"하하하! 이 괴물 같은 자식 잘했어. 대단하다! 그걸 해내다니!"

"헉, 허억. 관장님이 하라면서요. 훅, 후욱, 훅."

"으하하! 곰 같은 놈이 엄살은."

왜 이렇게 한계를 넘어야 하는가. 숨이 끊어질 것 같은 상황에서도 근육에 긴장감을 줘야 하는가.

그래야 경기 후반 난타전이 벌어졌을 때 버틸 수 있다.

주먹 한 방이라도 더 나가 상대방을 압도할 수 있다.

이론적으론 알지만... 와, 진짜 미친 거지 이게...

"헉헉, 헉."

"마하야, 천천히 호흡해."

"헉헉. 형, 나 지금 심장이 터질 거 같아요."

"800m 금메달리스트가..."

800m는 2분 30초 정도 죽어라 뛰면 끝이지만, 복싱은 그게 계속 이어지잖아.

아마도 이 모든 운동이 가능한 건 복싱 3분 1라운드 시스템이 있기 때문이겠지.

3분이란 짧은 시간에 에너지를 쏟지 않으면 나도 몸을 썼다는 생각이 안 들어. 그만큼 승부욕이 생기니까.

"좀 괜찮냐?"

"후우. 네. 지금은 좀 나아졌어요."

"여기 수건."

"대충 좀 닦아 주시면 안 돼요? 호흡은 진정됐는데 팔을 못 들겠어."

"아이고. 물도 못 마시겠네."

"못 먹어요. 지금 마셨다간 백 퍼 토해."

"그러니까 왜 스위치 히터 같은 걸 하자고 해 가지고..."

"하하하! 제가 하자고 했나요. 알리가 그렇게 했다잖아요."

누가 봐도 혀를 내두르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시간은 짧았고 대회 일정은 가까워지고 있었다.

어차피 처음부터 배우는 것, 이게 힘들고 저게 쉽고 같은 걸 몰라 다행이라 생각한다.

그냥 시키는 대로 하다 보니 원래 복싱은 이런 거구나, 왼손 오른손 다 똑같이 쓸 수 있구나. 존나 힘들다 씨발. 하는 식으로 받아들인다.

단순 무식하게 하루하루 보내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강해지고 있다. 그것만이 위안이 될 뿐이다.

"하하하!"

"뭐야? 갑자기 왜 웃어?"

"황당해서요. 푸시업 100개가 되다니."

"원래 할 수 있지 않았어?"

"그래도 3분 안에 하는 건 처음이죠."

숙소를 체육관 근처로 옮기길 정말 다행이라 생각한다.

아마 신촌이었다면 집 가는 게 귀찮아 여기서 먹고 자고 다 했을 거야.

그날도 운동을 마치고 차로 이동하는데 그 짧은 사이 잠이 들어버렸다.

"마하야, 도착했다."

"커억, 커어억~"

"야, 올라가서 자."

"와... 진짜 미친 듯이 졸리네..."

"너 씻고 자라. 또 그냥 쓰러지지 말고. 시트 빨기 힘들어, 인마."

"알았어요. 들어가세요."

"그래. 오늘도 고생했다!"

민구 형은 처음으로 자신이 매니저가 된 것이 즐겁다고 말했다.

운동을 도와주고 선수를 챙기고 언론의 질문 공세를 처리해 주며 회사와 일정을 수행한다. 진짜 매니저의 본분으로 형도 하루가 바쁘게 굴러가고 있었다.

"아... 졸려."

그리고 나는 찬물로 몸을 씻는데도 쏟아지는 졸음을 이겨 내기가 버거웠다.

왜 찬물로 씻냐고? 그래야 근육이 덜 풀어지고 통증을 이겨 낼수 있으니까. 젖산 분해가 빨리 되거든.

아마 처음으로 사랑이나 연애에 목매달지 않는 시간이 아니었을까?

딸 칠 생각도 못 하고 침대에 곯아떨어지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쿠울~ 커어억~~"

그런 상황에서 매일 꿈을 꿨던 것 같다.

나는 링에 올라 시합을 치르고 팀원들은 경기에 필요한 동작을 지도해 준다.

관중석에는 형과 형수님이 흐릿한 인상의 두 어른과 함께 앉아 있는데, 그분들의 웃는 얼굴이 나의 성장을 기뻐하고 있는 것 같다.

"으음, 가자. 가는 거야. 할 수 있다~ 쿠울, 쿨."

* * *

"마하야! 이쪽으로!"

"샌드백 치나 보다."

"아, 저거 어려운데..."

"해 봐. 하다 보면 감이 와."

모든 스포츠가 다 그렇지만. 복싱도 기술을 배웠다고 끝이 아니라 그것을 내 몸에 숙달시키기 위한 연습이 따라온다.

이제 샌드백을 죽어라고 때려야 하는데 이것만은 경험 부족이 여실히 드러나 하면서도 참 지루하고 재미없는 과정이 아닐 수 없었다.

"또! 힘으로 밀지 말고 끊어 치라니까."

"흡!!"

"더 짧게! 다시!!"

"훅! 후욱!!"

"나와 봐. 이렇게! 이렇게 치라고!"

육상 레슬링과 더불어 고대 그리스부터 이어진 스포츠가 바로 복싱이다.

내가 아무리 내공을 쓰고 신이 내린 천부저긴 육체를 가졌다고 해도, 수천 년의 역사를 하루아침에 익힌다는 건 말이 안 되지.

기술과 스텝의 상호작용. 주먹과 발을 움직이기 위한 허리와 어깨 컨트롤. 회피와 방어. 페이크와 견제까지.

연습이다. 오직 연습만이 살 길이다.

"그래! 그렇게 하는 거야!!"

"흡! 훅! 훕!!"

"때리고자 하는 마음이 들면 어깨가 먼저 굳어. 그럼 어떻게 되겠어?"

"스피드가 떨어집니다!!"

"야, 인마! 잘 아는 놈이 왜 그래!"

"관장님이 물어보셨잖아요!!"

"이 자식이 말대답은!!"

"하하하! 왜 둘이서 싸우세요?"

"가자, 마하야!!"

"네!! 잘하겠습니다!!"

해야 하는 일이 있다.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웃게 해 주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처음으로 사랑이 아닌 누군가를 위한 운동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힘들어도 이 과정을 이겨 낼 수 있었다.

"훅!!"

"그렇지!!"

"마하야, 라스트 1분!!"

그렇게 61회 전국 아마추어 복싱 대회를 맞이하게 되었다.

* * *

경북 영주 실내 체육관.

육상 때도 느꼈지만, 국내 대회는 왜 이렇게 아담하고 뭔가 동네 잔치같고 그런 걸까?

"어우. 이런 분위기를 또 느끼게 되다니."

"하하! 난 뭔가 그리운데? 그래도 막상 오니까 떨리긴 한다."

"쫄긴, 덩치는 커다란 놈들이. 들어가자!"

관장님의 솔선 하에 대회장으로 입성했다.

기자들이 꽤 많았는데 다른 날 같으면 질문에 성실히 응해 주겠지만 오늘은 시합이 있어 끝나고 이야기 나누겠다고 말했다.

"구마하 선수! 올림픽을 목표로 한다고 들었는데요!"

"구마하 선수! 이쪽 한 번만 봐 주세요!"

"짧게 파이팅 포즈 한 번만 취해 주시면 안 되나요?!"

"주먹 좀 쥐어 주세요!!"

호들갑스레 매달리는 언론을 보며 다른 선수나 코치 분들께 민폐 아닌가 했지만, 예상외로 복싱 연맹 관계자들의 열렬한 환호가 이어져 그런 부담은 느끼지 않게 되었다.

"하하하, 반가워요. 헤비급이라면서?"

"네."

"이야, 몸 봐라. 한국에 이런 선수가 나타나다니."

"야, 잘 해라!! 나도 너 응원한다!!"

"고... 고맙습니다."

"두필이, 너 이 자식. 큰일 했다?"

"내가 한 거 있나. 이놈이 고생했지."

"여긴 누군가? 선수가 둘이야?"

"이 친구는 매니저."

"처... 처음 뵙겠습니다!"

최두필 관장님이 순하게 느껴지는 무시무시한 어른들과 초면부터 단체 사진을 박았다.

진짜 내가 만났던 그 어떤 연맹도 이런 환영은 없었는데. 조금은 육상 연맹에 보여 주고 싶네.

그나저나 나나 민구 형이 이렇게 벌벌 기는 이유.

이름만 들어도 영광스러운 한국 복싱의 세계 챔피언 선배님들을 만나니 기백에 압도당하는 것 같다.

정말 무시무시한 기운이 아닐 수 없구나. 형이 늘상 말하는 무림 원로들을 만나면 이런 기분이겠지.

"형, 봤죠? 그분 맞죠? 엄마 나 챔피언!"

"와... 눈빛들이 살아 계셨어."

"하하하... 복싱이라..."

육상, 스키 이런 데랑은 왜 분위기가 다른지 알겠다.

여기는 이미 세계 챔피언이 몇 분이나 탄생한 종목인 거야.

묵직해. 겸손해야 한다.

"얘들아. 일단 계체부터 하고 오자."

"네!"

스파링이라곤 연습 중간 중간 체육관 아저씨 형님들 상대해 본게 전부인 내가 과연 통할까? 갑자기 불안해지네.

"그렇게 먹었는데 살이 빠졌어?!"

"그러게요. 어우 씨. 지방까지 마셨는데."

"됐다. 일단 계체는 통과했으니까."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는 대회 당일 계체를 하는데, 체중 88kg.

운동 전 98kg의 몸무게가 10kg 이상 빠지다니. 진짜 그렇게 먹었는데... 이래서 다이어트엔 복싱이라고 하는구나.

"프로면 라이트 헤비죠?"

"그렇지. 대신 여기는 아마추어니까. 81~91kg 안에 들어가면된 거야."

"아슬아슬했구나."

"하하! 가자!"

어쨌든 데뷔 무대를 가질 수 있는 자격은 통과한 것이다.

세계체육관이란 이름을 정식으로 등에 짊어지고서.

"사람 많은데?"

"그러게요. 와우. 복싱 인기 좋은데?"

"하하하! 이놈아. 어이구, 두 자식 다 능청맞기는"

관장님 말씀이 국내 아마추어 대회에 이만큼 사람들이 모인 건 한국 복싱 역사에 정말 오랜만이라고 말씀해주신다.

"20년 만이라고요?"

"그렇지. 정말 오랜만이지."

"연맹 아저씨들이 좋아하는 이유가 있구나."

설마 했지만, 구마하의 복싱 데뷔전이란 말이 어떤 센세이션을 만든 것 같다.

진짜 겸손하자. 겸손해. 어쨌든 난 신인이니까. 붕붕 뜨지 말라고.

"어? 민구 형, 관장님은요?"

"방금 아는 분들이 찾아와 커피 한잔하자고 끌려가셨어."

"흠. 그럼 우리끼리 자리 잡고 있어야겠네요."

"찾아보자. 대기하는 건 육상이랑 비슷하니까."

민구 형이랑 구석구석 쭈뼛거리며 빈자리를 찾고 있었다.

그런데 한쪽에 갑자기 왁! 하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들었는데.

"어? 마하야. 저기."

"우와?? 저건 또 뭐야?

체육관 관중석 저 한쪽에 우리 팬클럽이 자리하고 있었다.

나를 보자 사람들이 카드를 흔들고 풍선 같은 것도 팡팡 거린다.

"뭐야? 형이 불렀어요? 아니면 회사?"

"아니야. 그런 얘기 없었는데."

팬클럽 응원은 나도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젊은 여학생들이 많은데, 여자애들뿐만 아니라 남자애들도 있고. 중간 중간 어르신들. 아주머니나 할아버지 할머니 같은 분들도 있었다.

"야, 너 인기 장난 아니네."

"에이. 형."

"왜? 쑥스럽냐?"

"아니요. 더 칭찬해 달라고."

"하하하! 이 자식."

선수들, 연맹들. 보기보단 텃세가 없어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무엇보다 팬들이 웃어 주는 그 모습이 마음의 부담을 완전히 날려 주었다.

다들 복싱은 뭔 복싱이냐, 가서 운동장이나 뛰든가 스키나 타든가 하라고 할 줄 알았는데.

어라? 근데 저 사람들은?

"하하. 진짜 상택이 형..."

"갑자기 상택이는 왜?"

"저기 봐요. 끝에."

"어? 하하하! 저 새끼, 저기 왜 있어?"

그 와중에 팬클럽 구석에 상택이 형과 정준이 형이 자리하고 있었다.

인사 차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니 형들도 손을 들어 보이는데, 정준이 형만 웃고 상택이 형은 귀찮다는 듯 손을 휘휘 저어 보인다.

바로 핸드폰을 들어 형들한테 전화를 걸었다.

"아, 올 거면 연락이라도 하죠."

"상택이가 근천데 가 보자고 해서."

"하하하! 상택이 형 좀 바꿔 줘요."

멀리서도 궁시렁거리는 모습에 민구 형과 한참을 웃어 보였다.

"형, 왜 왔어?"

"뭐 이 새끼야?"

"아, 전화를 하지."

"뭔 전화를 해 미친놈아. 훈련한다고 미쳐 날뛰고 있다더만."

"아, 민구 형이랑 통화 했어요?"

"그래. 그냥 평창에 있다가 심심해서 와 본 거야. 신경쓰지 마."

"하하하! 끝나고 같이 밥 먹어요."

통화를 마치자 형들끼리 뭐라뭐라 쑥덕거리는데 괜히 기분이 뭉글뭉글해지네.

"와 진짜... 마하 펀치를 보여 줘라. 저런 건 누가 생각했지?"

"마하야. 그냥 여기다 자리 잡을까?"

"네. 이왕이면 홈 그라운드가 좋으니까요."

팬클럽이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가볍게 준비 운동을 하는데.

"야. 집중해. 뭘 그렇게 계속 봐."

"아, 좀 모르는 척해 줘요. 나도 저런 응원은 진짜 처음 본다니까."

팬들이 모여 있는 관중석을 보고 또 쳐다보았다.

사람들과 인사도 나누고 몸짓으로 식사들은 했냐고 물으니 다들 큰 소리로 먹었다는 말도 해준다.

"난 넌 저런 거 아무렇지 않은 줄 알았는데."

"그럴 리가요. 뭔가 뭉클해요, 지금."

"새끼, 부럽다. 진짜."

"형."

"왜? 야, 놀리는 거 아니야. 진짜 부러워서 그래."

"아니요, 그거 말고. 먼저 병원으로 봉사활동 갔을 때, 형이 그랬잖아요. 사람들이 날 보고 싶어 한다고."

"맞어. 그랬었지."

"저분들은 그럼 진짜로 그냥 내가 보고 싶어서 여기까지 찾아온 건가? 영주까지?"

"그렇겠지."

"다들 그렇게 시간이 많나?"

"야, 인마. 그런 말이 어딨어. 좋으니까 그러지."

좋으니까라.

내가 좋다라...

연인이 아닌 타인이 호감을 느끼면 난 뭘 해 줘야 하는 거지?

"차비라도 챙겨 줘야 하나..."

"됐어. 뭘 그렇게까지 해."

"아니, 그래도. 12월인데. 직장인들은 휴가라도 낼 수 있지만, 대학생이나 학생은 다들 얼마나 할 일이 많겠어. 자영업자는 말할 것도 없고."

"근처에 사는 분들이 왔을 수도 있지."

"이놈들, 시합 준비는 안 하고 뭘 그렇게 떠드냐?"

"어. 관장님."

"오셨어요."

"왜? 뭔데? 누가 뭐라고 해?"

"아니요, 저쪽에 마하 팬 분들 오셔서."

"뭐?"

민구 형이 이러저러하게 사정을 설명해 주셨다.

관장님도 흡족한 얼굴로 팬 관중석을 한번 돌아보시니 몇 몇 사람들이 관장님을 향해 박수를 쳐주셨다.

"하하! 뭐야? 왜 나한테까지 박수를 쳐?"

"스승님이라 그렇겠죠. 한상률 감독님도 그러세요. 정준이 형이나."

"이거 참. 뻘쭘하구만."

"관장님, 마하가요, 팬 분들 고맙다고. 차비라도 챙겨 주고 싶다고 하는데."

"뭐라고? 야 인마, 너 돈 많어? 자식이 돈 지랄은..."

"아,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마음이 그렇다는 거죠."

"그런 마음이라면 더 잘 하면 된다."

잘 들으라고 하신다. 선수가 할 일은 하나밖에 없다.

그만큼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시합을 보여 주는 것.

"원래도 잘 하려고 했는데, 진짜 잘 해야겠네요."

"그럼. 오늘 지면 넌 역적이 되는 거야, 이놈아."

"하하하! 알겠습니다."

유명세라는 거. 인기라는 거.

좋지만, 약간은 불편하고 버거운 거라고만 여겼는데.

이런 때 보니까 마냥 무겁지만은 않은 것 같다.

진짜 막 뭔가 심장이 울컥한 기분이 느껴져.

정말로 없는 힘도 쥐어짜서 뭔가 해 주고픈 마음이 생긴다.

"후우. 그래서? 저는 언제 시작해요?"

관장님이 선수 대진표를 보여주셨다.

첫 시합은 대학 팀 선수였다.

"어. 이분 아까 봤던 거 같은데."

"저깄다, 마하야."

"아. 저 분이구나."

나, 관장님, 민구 형. 세 사람이 저 멀리 자리한 선수를 보았다.

"흠."

"크네. 키는 너보다 좀 작은 거 같지만."

"그래봐야 물렁살이다. 별 거 아니야. 니놈이 이긴다."

"네."

"단숨에 가자. 이놈아, 너가 뛸 무대는 한국이 아니야."

민구 형도 결의에 찬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나도 당당한 목소리로 답했다.

"맞습니다. 세계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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