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륜기로 가버렷-346화 (346/401)

형제는 용감했다 (4)

"사장님, 이거 다 창고로 넣을까요?"

"정석아, 혼자 고생하지 말고 애들 불러서 같이 해."

"여자애들 힘든 거 잘 안 하려고 하잖아요."

"너, 그러다 또 선아랑 싸운다."

"아니라니까요! 먼저 그건 걔가 혼자 오해한 거라니까요."

"하하하! 그래. 알았다. 이리 줘. 그건 내가 들게."

가게 일로 잠시 외출을 다녀 온 구마윤.

장 봐 온 물품들을 정리하는데, 알바생들이 쪼르륵 달려와 호들갑을 떤다.

"사장님! 사장님!!"

"너희, 왜 나왔어?"

"야, 니네 잘 왔다. 이거 들고 따라와."

"무거워요. 아무튼! 그분 오셨어요!!"

"누구?"

"사장님 동생이요! 구마하 선수!!"

"아..."

"진짜? 하하! 이 새끼 잘 왔다. 야, 가서 좀 나오라고 해!"

"네? 제가 어떻게요...?"

"아 내가 불렀다고 하면 돼."

"싫어요. 매니저님이 하세요..."

"야?!"

이정석의 반가운 마음과 달리, 구마윤은 동생이 왔다는 소식에 낯빛이 무겁게 변한다.

"아, 이런 걸 우리가 어떻게 들어요."

"맞아요. 오빠들 부르세요."

"정석아, 애들이랑 천천히 정리하고 들어와라."

"네! 들었지? 들어, 이것들아."

"아. 팔 두꺼워지는 거 싫은데..."

마하가 왔다. 올 수야 있지. 둘이 따로 이야기를 한 것도 아니니까.

그럼 나는 이놈을 어떤 얼굴로 봐야 하는가...

구마윤이 답답한 가슴을 움켜쥐며 가게로 들어섰다.

"어이, 구 사장. 동생 왔어."

"아, 예."

"우승했다네. 그것도 처음 나간 권투대회에서. 하하!!"

"하여간 형이나 동생이나 대단한 형제들이야."

"고맙습니다..."

주변의 축하를 겸손하게 받아넘기며 저 앞에 자리한 최두필과 양민구를 지켜본다.

마하의 새로운 사부님도 강한 분이구나. 사형도 먼저보단 기운이 차분해진 게 느껴진다. 번민을 이겨 냈단 뜻이겠지.

"..."

거기까지면 딱 좋았는데...

후우... 이놈을 진짜 어째야 하는지...

구마윤이 두 사람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장사 잘되네. 이것도 마하 덕인가?"

"아니요. 원래부터 손님 많았다고. 형님이 수완이 좋은 거 같아요."

"형은 운동보다 돈 버는 재주가 있는갑지?"

"그냥 열심히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됐습니다."

"음? 뭐야?"

"어!? 아! 네! 안녕하세요!!"

"오셨습니까."

"누구시냐?"

"아! 네! 과... 관장님, 여기 마하 형님."

"어이고, 어이고... 예상이랑 달라도 적당히 달라야지..."

긴장하는 최두필과 양민구 앞에서 구마윤은 늘 그렇듯 엄격하게 예의를 갖춘다.

"식사하러 오셨나 봐요. 조금만 기다리시면 바로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아... 저. 그것도 있는데, 오! 오늘 마하가 아마추어 대회에서 우승했어요!"

"그렇습니까."

"네! 국가 대표 선발전이었어요. 이제 복싱에서도 태극 마크를 달 겁니다."

"아. 예... 전 가게 일 때문에."

"하하! 네! 그! 그러세요."

구마윤이 멀어지자 양민구가 기진맥진한 상태로 의자에 앉는다.

"후우."

"야 인마, 넌 뭘 그렇게 긴장해?"

"아니요... 그냥 저분은 뭔가 존재가 사람을 떨리게 만들어서..."

"근데, 진짜 형이야?"

"그럼요. 잘 생기셨죠."

"얼굴을 떠나서 아우라가 있다."

최두필도 구마윤이 멀어진 곳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한다.

"아우라는 있는데... 뭐랄까, 사람이 조금 차가워 보이네. 정이 없어 보여."

"네? 어디가요?"

"그냥 다. 눈빛하며 말투하며."

"예의겠죠. 저한테만 그러는 게 아니라 대표님한테도 그러신다던데."

"흐음. 예의라..."

아무리 예의를 차려도 그렇지. 지 동생 이겼다는 말에 떨떠름한 표정은 뭐람?

최두필이 피식 웃으며 감정을 흘린다.

어쩌구 저쩌구 할 것도 많다. 오래 볼 사이도 아닌데.

"아무튼, 이놈은 주방에서 뭘 하는 거야? 지가 요리하나?"

"그러게요. 왜 이렇게 안 나오지?"

* * *

"거기서 상대방이 주먹을 날리는데. 제가 훅! 숙이면서 본능적으로 뻗었죠. 그게 빡! 정통으로 들어가면서! 카운트가!"

"아이고, 아이고... 난 듣기만 해도 살이 다 떨리네."

"얘, 넌 왜 그런 걸 시작했어... 사장님 걱정 들게."

"형이 하라고 한 건데요?"

그럭저럭 형과 함께 5~6년 일하신 이모님들 앞에서 어떻게 시합을 했는지 양념을 팍 팍 쳐가며 자랑을 하고 있었다.

"멋지긴 했겠네. 난 마하가 뭘 하든 잘하면 그렇게 기분 좋더라."

"하하! 진짜요?"

"그럼. 너 예전에는 막 조용하고 그랬었잖아."

"아, 이모님. 언제 적 이야기를 하시는 거예요."

"우리 처녀 적엔 남자들도 복싱 많이 하고 그랬지."

"진짜 사람들 박수도 많이 치고 환호성 지르고 그랬겠네."

"마하야, 그럼 중계도 하는 거야?"

"오늘 건 안 했다고 들었고요. 아마 다음부터는 하지 않을까요?"

"얘. 마하야."

"네?"

여기저기 들어오는 질문들 답변해 드리고 있는데, 이모님 중 대빵 이모가 갑자기 나를 엄청 그윽하게 쳐다보며 말씀하신다.

"너 좀 변한 거 같다."

"제가요? 어디가요? 저 똑같은데?"

"아니야. 너 전에는 이렇게 우리 만나도 말 많이 안 했어."

"방금 얘가 그러잖아. 언제 적 이야기를 하냐고."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뭔가 애가 밝아진 느낌이야."

이래서 어른들 시선을 무시할 수 없다고 하는 거구나.

실제로 예전엔 일부러 사람들과 거리를 두는 것도 있었다.

올림픽에서 큰 성과를 거둔 다음에도 크게 가까워지려 하지 않았다.

여자 아니고서야 내가 굳이 다가갈 필요가 없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친구나 팬들. 그냥 나를 좋게 봐주는 사람들이 고맙게 느껴진다.

아까 그런 응원을 받아서도 그렇겠지? 아니면 봉사 활동 같은 거 하면서 사람들이 조금 더 편해졌다든가.

아니면 복싱을 해서 그런가? 맞고 때리는 운동을 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성격이 좀 다부져 졌나?

뭐가 됐든, 칭찬 듣는 기분이었다.

"하하~ 제가 너무 말이 많았나요?"

"으음! 아니야. 보기 좋아."

"그래. 솔직히 우리도 너 좀 아는 척 하기 어려웠어."

"그래요? 흠."

그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생각보다 더 주방에 오래 붙어 있게 됐다.

마침 형도 나갔던 일이 마무리 됐는지 모습을 나타냈다.

"이모님들, 급한 거 없나요? 뭐 더 할 건 없고요?"

"응. 우리끼리 잘 끝났어."

"사장님 왔어."

"형!"

"어, 잠깐만."

"응!!"

형이 주변을 정리하니 쉬엄쉬엄 앉아 있던 이모님들이 각자의 자리로 흩어지신다.

나는 슬금슬금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너스레를 떤다.

"아. 은근 무겁단 말이야. 케이스가 유리라 그런 가?"

"홀에 보니까 아저씨들 안주 더 시킬 거 같던데."

"흠. 크흠!!"

"이모님들 곧 퇴근 시간이니까, 미리 준비 좀 부탁드릴게요."

"그래. 그건 우리가 마무리 할게."

참, 사람 무안하게. 언제까지 기다리게 할 거야.

"흠흠! 으흠흠!! 큼크흠!!"

"아이고, 사장님아. 마하 좀 봐 줘라."

"일이 우선이죠."

괜찮아. 원래 이런 성격이니까.

언제는 안 그랬냐고. 형한텐 늘 가게가 우선이지.

"아, 진짜... 이쯤되면 다 끝난 거 아냐? 다들 술만 먹던데."

일이 중요하다는 걸 알기에 뭐라고는 못 하지만. 그래도 조금 목소리가 퉁명스레 나가고 말았다.

그러자 형이 천천히 나를 돌아본다.

"왜?"

"왜는 뭐가 왜야."

"넌 여기 왜 들어왔어."

"이모님들 이거 보여 드리려고."

근데, 뭔가 형이 나를 보는 시선이.

음? 흐음. 어라? 같은 인상을 받는다.

아무튼, 다시 트로피를 번쩍 들며 말했다.

"암튼, 형 이거 봐 봐. 하하! 웃기지 않어?"

"뭐가?"

"아니. 무슨 국내 대회 트로피가 올림픽 메달보다 더 화려하냐?

어? 이것 봐 봐. 5단에 뭐에. 위에 보면 조각도 있고."

"알았으니까 나가."

"어?"

"나가라고. 여기 그런 복잡한 걸 들고 오면 어떡해. 가뜩이나 정신없는 공간에."

뭐지? 내가 느낀 게 맞나? 지금 나한테 화내는 건가?

벙찌는 기분이라, 우두커니 눈만 껌벅거리고 있었다.

그러자 옆에 대빵 이모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씀하신다.

"사장님아, 마하가 오늘 대회에서 또 우승했데."

"네. 보니까 그런 거 같네요."

"..."

머릿속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기분이 아니야. 지금 화내는 거 맞어. 근데 왜? 갑자기?

내가 일하는 분들 방해해서? 아니면 주방에 이런 걸 들고 와서?

"형, 왜 그래?"

"뭐?"

"왜 화 내?"

모르겠다.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 일로 이런 반응을 보인다고?

우리 형이? 나한테? 우승을 했는데?

"내가 무슨 화를 낸다 그래."

"지금 화 내고 있잖아."

"됐으니까 빨리 나가라고. 여기 일터야. 너가 장난스레 들어와도 되는 곳 아니야."

"사장님아, 왜 그래...?"

"..."

"마하도 좋은 소식이니까 그러는 거지. 응?"

"그래. 그리고 우리 농땡이 안 피우고 있었어. 주문 나갈 건 다 나갔고. 마하 들어왔을 때 딱 시간이 비어서."

"알죠. 그럼요. 다들 열심히 해 주시잖아요."

어떻게 행동할지 몰라 멍하니 트로피나 들고 있는데 이모님들이 형을 말리기 시작했다.

나만 그러는 게 아니라, 다들 지금 뭔가 형이 이상하다는 걸 느끼는 거 같다.

조금 용기를 갖고 다시 물었다.

"뭐 안 좋은 일 있었어?"

"..."

"정석이 새끼가 뭐 사고쳤어?"

"그런 거 없어. 정석이 누구보다 열심히 하는 애야."

근데 왜 이래 진짜. 불안하게...

노려보지 말고 말을 하라고, 제발...

형을 말리던 이모님들이 이제는 나한테도 다가와 말씀하신다.

"마하도. 일단 형 말 듣고. 응?"

"그래. 너 밥 먹으러 왔다면서. 어서 나가 있어. 우리가 맛있게 차려 줄게."

화낼 수 있어. 누구보다 삶에 엄격한 형이니까 이해할 수 있어.

다만 내가 받아들이지 못 하는 건 저 차가운 시선이야.

난 형이 화내는 모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실제로 혼도 많이 났고, 맞기도 많이 맞았으니까.

형은 절대 이렇게 화를 안 낸다.

저 잘 생긴 인상이 변하고 목소리도 최두필 관장님 저리가라 할 정도로 데시벨이 높아져도, 나를 저렇게 차갑게 보지는 않는다고.

"마하야?"

"얘?"

"왜 그러고 있어. 어서 나가자니까. 응?"

"이모님들, 잠시만요. 저 형이랑 잠깐 이야기 좀 하고요."

"...나랑 무슨 얘기를 하자고?"

걱정이 된다.

아니, 솔직히 조금 무섭다.

"왜 그러는데? 말을 해 봐."

"너랑 할 얘기 없어."

"마하야!"

"얘. 너 나와. 우리도 일 해야 돼."

"아니, 잠깐만요. 이런 기분으로 나가서 뭐 어떻게 하라고요.

밖에 제 동료들도 있고 사람들도 있는데."

"얘! 괜히 고집부린다."

고집이 아닌 본능적인 두려움이 나를 굳게 만든다.

여기서 물러서면 다시는 형을 못 볼 것 같다.

진짜 그런 느낌에 등줄기가 오싹해져 좀 강압적으로 나갔다.

"뭐냐고 대체. 남자답게 속 시원하게 말을 해 봐."

"후우..."

그러자 형도 한숨을 훅 쉬면서 내 품에 들린 트로피를 슥 쳐다보았다.

"거긴 왜 나간 거야?"

"뭐? 어디? 대회?"

"그래."

"...무슨 소리야?"

"니가 먼저 대답해 봐. 거긴 왜 나갔냐고."

복싱 대회를 말하는 건가? 아니면 국가 대표 선발전?

모르겠다. 질문이 너무 포괄적이라 형이 뭘 묻는지 모르겠어...

"너 은퇴했잖아. 다시 대표 팀을 왜 하려고 하는 거야?"

그거야 부모님을 찾기 위해서지...

그 방법 말고는 이 넓은 세상에 두 분 존재를 찾을 길이 도무지 생각이 안 나니까...

그런 정답이 있었지만, 주변 보는 눈들이 있어 퉁명스레 대답을 하고 말았다.

"뭐라는 거야. 형이 복싱하라면서?"

"내가 언제."

"뭐...?"

"내가 언제 너한테 그런 운동을 하라고 했는데."

"형?"

"..."

"장난이지 지금?"

* * *

"저기 저 시끄러운 녀석이 마하 친군가?"

"네. 근데 저도 잘 모르는 사람이에요."

"싹싹한 거 봐라. 역시 장사가 되려면 저런 놈들이 있어야 된다니까. 그래서 내가 정 사장도 돈 아끼지 말고 사람 쓰라니까."

"에이, 사장님이 알아서 하시겠죠. 뭘 자꾸 그러세요."

"아니 근데 아무리 잘 되는 식당이래도 그렇지 어떻게 반찬도안 깔아 주나?"

"그러게요. 안에서 뭐 하길래."

그때였다.

주정뱅이 아저씨들의 흥청망청 시끄러운 소음을 뚫고 구마하의 처량한 목소리가 울렸다.

"민구 형...!!"

"뭐야 이건?"

"뭐... 뭐야? 마하 아니에요?"

"그런 거 같은데...?"

"형!! 잠깐만 여기로 와 보세요."

이정석이나 가게 식구들 손님. 모두가 한 사람이 벌떡 일어나 주방으로 가는 모습을 보았다.

양민구는 숨통이 턱 막히는 기분이다.

앞으로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이 자식 혹시 어디 다친 거 아니야?

그렇게 찾아간 주방에서.

"뭐야? 너 왜 그래?"

"형..."

구마하는 혼자 씩씩거리며 두 눈이 벌게져 있고, 형인 구마윤은 그런 동생을 더 없이 싸늘하게 보고 있었다.

일하는 분들까지 안절부절못하는 걸 보아, 대표님이 말했던 빨리 거기서 나오라는 상황이 벌어졌음을 짐작해 본다.

"야. 뭐야? 뭔데?"

"민구 형. 진짜 말 좀 해 봐요."

"뭘?"

"우리 형이 나한테 복싱 하라고 했죠?"

"...그게 무슨 소리야?"

"아니. 우리 형이 형한테 나 복싱시키라고 했죠."

"어... 어?"

양민구는 상황을 몰라 어리둥절하고. 구마하는 한숨을 버럭버럭 내쉬며 답답한 속을 참지 못한다.

그런 동생을 보며 구마윤이 말했다.

"뭐하는 짓이야, 너 지금."

"이게 뭐! 아니 형이야말로 지금 뭐하자는 건데!!!"

"야... 마하야?"

"장난 아니었냐고!! 왜 진지하게 그런 소리를 하는 건데!! 이 형은 뭐가 되고!!"

이정석도 황급하게 다가와 친구를 말려 본다.

"뭐하는 거야, 미친놈아!! 너 지금!! 사람들 있는데."

"아, 좀 놔 봐."

"일단 나와, 새끼야!"

"놓으라고!!!"

구마하는 자신을 말리는 친구를 뿌리쳤다.

그 힘이 어찌나 강한지 양민구가 빠르게 붙잡아 말리는데 두 사람이 균형을 잃을 정도였다.

"이 새끼가!! 야, 너 미쳤냐?"

"저기. 일단 친구 분 진정하시고!!"

"아저씨는 누구세요?"

"그... 그... 전 마하 매니저."

폭주하는 마하를 보며 구마윤이 묻는다.

"역시 너는... 그래서, 힘 자랑 하니까 좋아?"

"어?"

"힘없는 사람들 상대로 그러면 좋냐고."

이게 대체 무슨 뜻인지. 대충 어떤 의미로 이런 말을 하는지.

구마하가 빠르게 맥락을 파악하며 되묻는다.

"형 지금 내가 여기 나가서 우승했다고 그러는 거야?"

"..."

"지금 내가 주변 생각하지 않고 나 혼자 내 힘자랑 했다고. 그렇게 보는 거냐고."

알았다. 형이 왜 이렇게 화가 났는지.

나는 강한 내공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러니 함부로 주먹을 휘두르면 안 되는 거야.

형은 복싱이 내가 남들 앞에 힘자랑 하는 거라고 보고 있어.

그런 의미로 이렇게까지 화를 내고 있는 거라고.

말이 되냐고? 그럼 되지. 형은 구마윤이니까.

남들한테는 몰라도 나한테만큼은 자신의 엄격함을 동등하게 적용시키니까.

"와, 미치겠네, 진짜. 후우우... 하하! 와 진짜 사람 돌아 버리지..."

"너, 실수하지 마. 여기 우리만 있는 거 아니니까."

"지금 실수하는 건 내가 아니라 형이야."

"뭐라고."

"우습게 보지 마."

"...뭐?"

"아무것도 모르는 건 형이라고."

구마하는 트로피를 보았다.

그의 손아귀에 강한 투기가 모여든다.

"오늘 여기 나온 사람들. 형한테 무시 받아도 될 정도로 약한 사람들 아무도 없었어."

"난 무시를 하는 게 아니라."

"우리는! 복서들은!!"

구마하는 최두필 관장과 훈련할 때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이놈아. 너 복싱 하는 놈들이 제일 화딱지 날 때가 언젠지 아냐?)

(...돈 없을 때요?)

(야, 인마!! 그건 인간이라면 누구나 마찬가지지!!)

복서는 돈이 없어도 참는다.

무시를 받아도 참는다.

시비를 걸어도 참는다.

배운 거 없어 저런 운동이나 하고 있다는 말을 들어도 참는다.

하지만, 절대 참을 수 없는 게 하나 있으니 그것이 바로.

(복싱하는 놈들은 약한 놈 취급 받는 걸 제일 싫어해.)

(아~)

(누가 나를 밥으로 본다? 그땐 진짜 맨주먹 날아가는 거야. 이빨 터지고 코뼈 주저앉고.)

(우와. 하하하...)

그러니까 열심히 해야 한다.

그게 상대방을 인정하는 거고.

그렇게 주저 없이 싸워 줘야 내가 상대방에게 존중을 받는다.

그것이 링에 오르는 남자의 마음가짐이었다.

"얕보지 마!! 아무것도 모르는 건 형이니까!!"

"너..."

구마하는 선수 코치 모두가 인정하는 실력을 가지기 위해 그만한 땀과 노력을 기울였다.

물러설 수 없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대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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