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 (8)
다음 날, 마침내 대한민국 스포츠에 새로운 영웅이 탄생했다.
남자 수영 자유형에서 김태주가 아시아인 최초로 금메달을 석권한 것이다.
경기를 마친 그에게 미녀 리포터가 마이크를 내밀었다.
"김태주 선수! 우승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고맙습니다. 근데 저도 지금 뭐가 뭔지... 하하..."
"정말 값진 눈물이 아닐 수 없는데요. 너무 값진 메달이잖아요.
대한민국 최초, 동양인 최초의 올림픽 수영 금메달리스트가 되셨습니다. 감사를 전하고픈 분들이 너무 많으실 거 같아요."
"윽. 흐으윽. 정말로... 고마운 사람들이 너무 많네요. 가족들, 감독님, 코치 선생님들, 그리고 같이 고생해 준 우리 대표 팀 선수들도 있고요."
하나하나 언급되는 이름들 가운데 생소한 두 사람이 나온다.
"마지막으로 응원해 주신 국민 여러분들이랑. 아! 그리고. 지성이랑 마하 형도 너무 고마웠고요."
"혹시 육상 대표 팀 말씀하시는 건가요?"
"한 사람은 복싱 대표 팀이죠. 하하! 워낙 이것저것 하는 게 많은 형이라."
"구마하 선수랑 무슨 이야기가 있으셨었나 봐요."
"어제 결승 앞두고, 밥이 안 넘어가게 긴장감이 올라서 힘들었거든요. 근데 지성이랑 형이랑 와 줘서 응원도 해 주고 위로도 해준 게 오늘 큰 힘이 된 거 같아요."
"그러셨군요. 또 한 번 우승 축하드립니다. 세리머니 때 다시 뵐게요."
"네!! 고맙습니다!!"
김태주의 영광스런 시작으로 대한민국 올림픽 대표 팀도 메달레이스에 참가한다.
"민우야 들어!"
"넘겨버려!!!"
전 경기 한판승의 유도 최민우.
한국인의 자존심 양궁과 태권도.
그리고도 사격과 배드민턴, 세계를 들어올린 역도 등등.
연일 쏟아지는 승전보에 올림픽 열기는 뜨겁게 달아오른다.
이 와중에 한 사람이 생각지도 못한 몸살에 시달리고 있었으니, 바로 복싱 대표 팀 감독 문경욱이었다.
"아니. 그러니까. 이놈도 곧 시합이라고... 허 참. 당연한 소리를 하고 있어. 그쪽만 일정 있냐고. 우리는 뭐 관광 왔나. 아, 내가 돈 꾼 소리가 지금 왜 나와. 그거 갚은 지가 언젠데. 알았어, 알았다고. 그쪽도 잘하고. 알았다니까. 끊어, 좀. 바로 옆에 있으면서 국제 전화를 걸고 있어, 돈 아깝게."
"감독님, 이번엔 누굽니까?"
"핸드볼... 거 인간들. 그렇게 기적을 바라면 차라리 종교를 믿을 것이지..."
"스포츠의 신이 우리한테 있는데. 감독님이 이해하시죠."
"아이고... 어디 무서워서 깜냥 안 되는 놈은 스타 데리고 있겠나..."
"그래서 두필 선배가 그랬잖아요. 마하랑 있는 게 마냥 좋은 일이 아니라고."
"얘는 지금 어딨어?"
"애들이랑 방에 있습니다."
"어이, 마하야!! 너 잠깐 나와 봐라."
감독의 부름에 구마하가 방에서 벌컥 나타났다.
"네, 감독님."
"너 인마. 누가 와서 잠깐 이야기 좀 해 달라고 해도 방에 꼭 붙어서 움직일 생각 말어. 알았지."
"네... 알겠습니다."
* * *
"넌 대체 태주한테 뭐라고 한 거냐?"
"별거 없었어요. 그리고 태주가 메달 받은 게 왜 저 때문이에요. 걔가 운동을 열심히 해서 그렇죠..."
"그건 그렇지만."
"걔는 그런 소리를 왜 해 가지고... 지 노력 지가 챙겨 먹을 것이지."
"태릉에서 그만한 노력 안 한 사람 어딨냐. 다 운이 필요하니까 그러는 거지."
"맞어. 야. 너 그냥 오늘은 민구 형 말고 우리 방에 와서 자라.
형도 내일 시합 있는데."
"싫어요. 제가 왜 제 침대 놔두고..."
"이 새끼, 너 형 안 도와줄 거야?"
"창수야. 그냥 우리가 얘네 방으로 가서 자는 게 낫지 않겠냐?"
"그럴까? 형님, 괜찮으시죠? 합숙하는 기분으로."
"야, 이놈들아. 아무리 그래도 위아래가 있지. 우리 방도 아니고 마하네 방이 뭐냐. 내가 형인데..."
"아. 죄송합니다..."
"그리고 나도 내일 시합이야. 마하는 나랑 있어야 돼."
"형님!"
"하하하... 제발 저 좀 혼자 있게 해 주세요..."
주변이 들썩거리는 가운데. 마침내 우리 복싱 팀도 첫 경기가 다가왔다.
우선 32강부터.
페더급의 수길이 형, 라이트급의 창수 형, 미들급의 주장 문식이 형의 출격이 준비된다.
"휴우우..."
"형님, 여기 물이요."
"아이고 고맙다. 국보에게 이런 부탁을 다 시키고."
"물심부름 가지고 뭘 그러세요. 형님도 저 많이 도와주셨잖아요."
"마하야, 근데 확실히 올림픽이 다르긴 다르다..."
"많이 긴장되세요?"
"떨리네. 엄청.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잘하실 겁니다. 형님도 민우 형 못지않게 강한 분이니까요."
"후후후. 그래. 고맙다."
"참. 저 진짜 궁금했었는데요. 형님 복싱이랑 유도랑 싸우면 누가 이겨요?"
"야. 비교할 걸 비교해. 넌 인마. 복싱 선수란 놈이."
"아. 죄송합니다. 제가 멍청한 소리를..."
"당연히 칼 가진 놈이 이기지. 총 가진 놈이나."
"하하하..."
"젠장. 내가 말하고도 진짜 재미없네. 야, 난 왜 이렇게 유머 감각이 없을까?"
"아하하하! 이건 좀 재밌는데요?"
"후후후. 애들은 지금 뭐 해. 수길인 곧 시작할 거 같은데."
"순서 기다리고 계시고요. 창수 형도 아까 코치님이랑 나가셨어요."
"자식들, 잘 해야 되는데..."
"전 수길이 형보다 창수 형이 조금 걱정돼요."
"창수 왜?"
"아까 자꾸 저한테 세컨드 서라고 했다가 코치님한테 혼나면서 나가서."
"하하! 새끼."
"전 해도 되는데. 코치님들이 선수끼리 뭐 하는 짓이냐고. 한 소리 듣더니 꿍얼꿍얼하면서 가더라고요."
"니가 이해해라. 알지?"
"그럼요. 걱정 마세요. 저 형님들 좋아합니다."
"와, 근데 진짜 미치겠다. 심장이 왜 이렇게 떨리냐..."
"형님, 천천히 호흡을 해 보세요. 별거 아닌 거 같아도 긴장 완화에 진짜 도움 많이 돼요."
"너도 시합 때 그랬었어?"
"저 명상 자주 하잖아요. 그게 저도 몸이 너무 경직될 거 같아서 이완하려고 그러는 거거든요."
"심호흡이라. 후우~~ 후우우우~~ 이렇게?"
"더 천천히요. 또 내쉬고. 생각을 비우세요."
"흐음. 태준가 걔한테도 이런 거 해 줬던 거야?"
"뭐, 좋은 이야기도 있었고..."
"좋은 이야기 뭐?"
"형님, 곧 시합이신데. 태주는 신경 쓰지 마시고요."
"맞다. 내 일에 집중해야지. 호흡이라. 후우우~~"
휴우~ 습습후후. 휴우~~.
"근데 형님도 가실 시간 된 거 같은데. 뭐죠? 대기 시간이 은근길게 느껴지네요."
"누가 다쳤나...? 그러게. 은근 뭔가 길어지네."
문식이 형이 다정한 눈빛으로 말씀하신다.
"마하도 부상 조심해라."
"고맙습니다, 형님."
"넌 지금까지 부상 당해 본 적 있어?"
"아직이요. 운이 좋았죠."
"니가 관리를 잘 한 거지. 스키도 그렇게 위험한 운동이라면서."
"네. 맞아요. 스키 타다 다치면 선수 생명이 아니라 인간 생명이 위험해져요."
"좋네. 마하가 이렇게 옆에 있어 주니까, 확실히 뭔가 든든한건 있어."
"하하하! 형님. 제가 세컨드 서 드릴까요?"
"자식, 니가 형이 있었나?"
"네. 형수님이랑 같이. 형이 저 운동시키느라 고생 많이 했죠."
"결혼하셨구나. 나도 우리 형이 나 운동시켜 줬는데."
"정말요? 형님은 뭐 하세요?"
"우리 형도 가게 해. 예전엔 분식집 했는데 지금은 도시락집으로 바꿨어."
"아. 진짜요? 어디세요? 먹어 보고 싶다."
"지방이라 그건 어렵겠고."
"형님이랑 많이 친하신가 봐요."
"두 살 차이라 어릴 땐 많이 싸웠는데. 그런 인간이 배달 다니면서 돈 벌어서 나 체육관 보내 주고 그러는데..."
저마다 힘이 되는 무언가가 있다.
나에게 여자나 섹스가 그렇다면 문식이 형은 가족이었다.
고생했던 식구들을 생각하니 형의 흔들리던 내공이 날카롭게 다듬어진다.
"젠장. 갑자기 울컥하네..."
부담이 있어 두려움을 느낀다면 부담이 있어 없는 힘도 생긴다.
정말 사람 저마다 다르구나.
"미들급 시작하나 보다."
"네. 형님 파이팅입니다."
"후우. 마하야.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
"그럼요. 뭔데요?"
"아, 이런 얘기 막상 하자니 조금 민망한데..."
"괜찮아요. 말씀하세요. 룸메이트끼리."
"그게... 나도 애들 있어서 너한테 말을 못 했는데. 형 손 한 번만 잡아 주면 안 되냐?"
"아이고, 뭐 그런 걸 가지고. 얼마든지요!!"
"고맙다."
그날 밤, 형님들과 방에 모여 앉았다.
"다들 1차전 통과 축하한다."
"형님들 축하드립니다."
"와, 진짜 떨려 미치겠는데. 문식이 형님은 괜찮으셨어요?"
"말도 마라. 나도 아까 마하 붙잡고 징징거리고 있었어."
"진짜 올림픽이 다르긴 다르네요."
"그러니까. 후달리는데. 근데 또 그게 뭔가 기분 좋지 않냐?"
"어. 이상하네."
세 분이 거의 똑같은 느낌을 받으셨다.
영광스런 무대에서 거둔 승리는 그동안 어디서도 느껴 보지 못한 커다란 고양감을 안겨 주었단다.
"진짜 이런 데서 어떻게 그렇게... 마하 너, 진짜 대단한 놈이었구나?"
"그러니까. 같이 있으니까 아무렇지 않지. 이 새끼, 괴물이었어."
"정말 나도. 야 난 얘랑 한 방 있는 게 갑자기 조심스러워진다..."
"형님, 그럼 저랑 방 바꾸실래요?"
"아니. 나랑 바꾸실 거야."
"하하하... 아 좀 형님들..."
이제 다음 16강을 준비해야 한다.
다음부턴 헤비급도 시합이 예정되어 있다.
"마하도 슬슬 준비해야지."
"저야 늘 스탠바이죠."
"사고 한번 거하게 쳐 보자! 마하야!"
"네! 형님."
"세 종목 메달은 그동안 없던 일 아닌가?"
"없지. 해내면... 우와, 우리는 진짜 대체 누구랑 같이 시간을 보낸 건지..."
문식이 형이 나를 향해 맥주 캔을 올린다.
"마하야."
"네. 형님."
"같이 포디움 한번 올라가 보자."
"네!! 좋습니다."
"형님, 이런 건배에 왜 우리를 빼요?"
"그러니까. 뭐냐고. 다 같이 가야죠!!"
넷이서 승리를 약속하는데 가슴이 막 뜨거워지는 기분이다.
짧게 알고 지낸 형들인데. 왜 이렇게 서로가 막 잘 됐으면 좋겠고 이기면 좋겠고 그러는 걸까. 신기하네.
"자. 그럼 적당히 정리하고. 우리도 아직 다 끝난 건 아니니까."
"아 참. 근데요, 형님. 아까 그건 역시 문제 되는 거 맞죠?"
"왜요? 무슨 일 있었어요?"
"마하는 못 봤구나. 밴텀급에서 판정이 있었는데."
"우리 아까 대기 시간 길어졌던 거. 그때 뭔가 판정 시비가 있었더라고."
남자 복싱 웰터급 32강 경기에서 중국 선수와 크로아티아 선수의 경기였었다.
지켜보는 모두가 크로아티아 선수의 승리를 예상했는데, 결과는 반대로 3:2 중국 선수의 승리가 선언됐다.
"주심은 넘어진 게 다운이 아니라 슬림이라고 판단했다는데."
"양궁도 그러더니, 중국 새끼들 올림픽에 돈 먹인 거 맞죠."
"창수야, 사람들은 그렇게 말해도 선수인 우리는 그럼 안돼."
"왜요? 막상 피해 입는 건 선수들이잖아요."
"선수니까. 이유를 붙이면 한도 끝도 없는 거야."
"음..."
"믿자. 승리의 여신이 우리와 함께 하고 있겠지."
"여신이 아니라 남신이면 어떡합니까? 어? 마하야."
"글쎄요. 남신이라면 남자들을 위해 주진 않겠죠."
"제기랄. 그럼 앞으로 너 여자 해."
"아, 형님!"
박아도 제가 박죠. 왜 제가??
이틀이 조용히 지나간다.
내일 모든 체급 16강 경기가 열린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구나.
허이고... 섹스 한 판 못하고 여기까지 오다니...
그냥 빨리 지고 자유를 찾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