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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륜기로 가버렷-373화 (373/401)

Monster(11)

"너도 그 오빠들 봤잖아. 태권도 오빠들."

지금의 나와 지수 은재같이. 8년 전 시드니 때 눈앞의 이주영 ‘씨’도 당시 오빠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단다.

그때도 머스마들의 많은 추파에 시달려야 했었단다.

그 결과 이번 선수촌에 입촌할 때 내 건 전략이 남자 친구가 있다는 것.

"말이 모순되는데. 임자 있는 사람 좋아해도 된다면서?"

"나는 그렇지만. 보통은 그렇게 말하면 좋아해도 포기하니까."

"흠."

"너도 그렇잖아. 나 누구 만난다고 하니까 별로 사심이 안 생긴다면서."

하긴. 따지고 보면 애들이 먼저 ‘언니는 사귀는 사람 있어요.’라고 했었지.

이주영 ‘양’이 먼저 제 입으로 그런 말을 한 적은 없어.

"아니. 왜 그런 구라를 쳐?"

"나를 지키고 싶으니까. 여자들은 보통 다 그런 자기 보호 성격을 가지고 있어."

"흐음."

"너 첫사랑도 그렇잖아. 부담돼서 너라는 사람이 다가가도 버티지 못하고."

"지켜 줄 수 있는데. 아니. 오히려 남자들은 그런 걸 더 좋아하는데."

"그러다 그 사람이 떠나면?"

"음."

"그땐 어떻게 살라고. 그건 뭐라고 못 하는 거야."

이야기가 조금 번지는 거 같은데.

아무튼 주제로 돌아와서.

"나쁘지 않은 전략이네. 시시껄렁한 놈들은 일차적으로 거를 수 있고."

"맞아. 너도 앞으로 어디 가서 그렇게 얘기해. 사귀는 사람 있다고 하면 여자들이 먼저 포기할걸."

"지금도 안 다가오는데, 더 안 다가오면 어쩌라고…."

"넌 주로 여자들이 먼저 다가오는 편이야?"

"애매하지. 그럴 때도 있고. 내가 다가간다라. 흠. 주로 오는 편인 거 같아."

역시. 이런 얘기는 여자랑 해야 재밌어.

남자들이랑 얘기해 봐.

예쁘냐? 예뻐? 그래서 예쁘냐? 이것만 중요하지.

조금 더 나가서 질문 해 봐야 스타일은? 말랐냐? 가슴 커? 정도지만.

"대단하다. 너한테 다가가는 애들은 어떤 애들일까?"

"솔직히. 음하하하하~"

"뭐야? 왜?"

"내 입으로 말하기 좀 뭐하지만. 확실히 인물들은 있어. 다 예뻤어."

"하긴. 최다빈 선수를 봐도."

"다빈이는 귀엽지. 매력 있긴 해."

"그 정도가 귀엽다고?"

"귀여운 게 어때서?"

"보통 예쁘지도 않고 못생기지도 않은 걸 귀엽다고 하지 않나?"

"안 그래. 귀여운 매력이 있고. 예쁜 매력이 있는 거지. 귀여운 여자 더 좋아하는 애들도 많아."

"궁금하다. 너가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어떤 인물인지."

"보여 줄까?"

"…사진이 있어?"

"찾아보면. 스마트 폰 있잖아."

"야 뭐야. 그런 걸 왜 가지고 있어. 지워."

"아하하하! 무슨 오해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변태스러운 건 아니고."

스마트 폰으로 인터넷에 접속.

작은 검색창에 미스춘향대회를 검색해 본다.

"미스 춘향…?"

"끝낼 때 나랑 약속 하나 했었거든. 꼭 이런 대회 나가 보기로."

"그래도 미스 춘향에 나갈 정도야?"

"정도일까. 봐 봐."

2008 미스춘향 그것도 진도 선도 아닌 미(美) 아름다울 미 이 혜정.

정말 어디 내놔도 그 외모 하나만큼은 자랑스러운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우와…."

"예쁘지."

"와… 농담이 아니네…."

"알겠지? 이제 내 앞에서 그때 스캔들 이야기는 하지 않는 걸로."

"야… 너 왜 이런 사람을 옆에 놓고? 그런 짓을 했어."

"나도 세상이 파괴되는 거 같았다니까. 정신이 없었어."

그때 누군가 툭 어깨를 두드린다.

고개를 돌려보니 우리 복싱팀 황 선생님이셨다.

"아이고, 이놈아. 여기 있었네…. 어휴."

"아, 선생님. 저 찾아다니셨어요?"

"찾아야지. 전화하러 간다는 녀석이 왜 이렇게 안 와."

선생님이 안도하는 모습으로 옆에 자리를 잡으신다.

"이분은 누구시냐?"

"안녕하세요."

"한국분이시네. 여자 친구?"

"하하! 아니요. 리듬 체조 국가 대표 이주영 선수라고요. 둘이 잠깐 매점 갔다가 배고파서 여기 왔어요."

"어이고. 그래도 이놈아, 갈 때 가더라도 말을 하고 가든가. 아이고 심장이 다 놀랬네."

"죄송합니다. 간만에 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까."

어딜 가나 책임자보단 그 아래 있는 사람이 조금 더 편하다.

정준이 형보단 상택이 형이.

문식이 형보단 창수 형이나 수길이 형이.

우리 복싱팀도 감독님 보단 황 선생님이.

선생님께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형님들도 좋고 잘 대해 주시고 팀으로 움직이는 것도 좋지만.

많은 시간을 혼자 있다 보니 요즘같이 여럿 있는 환경 속에서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 걸 왜 미리 말을 안 했어."

"감독님 방침에 제가 어떻게 뭐라고 해요."

"그래도. 선수 컨디션에 저하를 준다면 얘기를 해야지."

그제서야 알게 되는 불편한 진실이 있으니.

"네? 아니. 저는… 우리 감독님이… 한상률 감독님이요. 저 회사 대표. 그분이 먼저 부탁하셨다고."

"감독님도 그 말씀 하시긴 했는데, 그래도 사람 마음이라는 게 비슷비슷하지 않냐."

내가 싫은 건 절대 아니라고 하셨다.

그러나 나라는 존재감이 감독님이나 코칭스태프. 그리고 선수형님들한테 조금 부담스러운 건 있는 상황이었단다.

"말을 했으면 조금씩 조정을 했을 건데 이놈아."

"……."

나의 올림픽이… 지나간 시간이….

"아무튼 알았으니까. 적당히 있다가 들어와라."

"저. 선생님?"

"음?"

그럼 잠도 밖에서 자도 되나요? 라고 묻고 싶지만.

그건 개념적으로다 무리겠지?

"아닙니다. 빨리 갈게요."

"그래. 그쪽도 파이팅 해요."

"네. 고맙습니다."

보자. 그래. 봐 봐. 나쁘지 않아. 좋은 거야. 지난 것은 지났다.

다음을 보면 돼. 아쉬워할 이유가 없잖아?

무엇보다 이제 황 선생님이 감독님께 말씀을 전해 주시면 새로운 오더가 내려올 것이고. 형들도 조금은 풀어 줄 테고.

성화의 불길은 아직 꺼지지 않았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그랬구나."

"어? 뭐가?"

"사람들. 은근 또 그런 걸 싫어하는구나, 니가."

"싫진 않은데. 말 그대로. 혼자 있다 보니 혼자 있는 시간이 익숙하고."

"먼저 태릉에서 난 너 외로움 많이 타는 성격이라고 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맞는데. 아무튼 남자들은… 있어. 불편해. 선배들이고 어렵고."

"그럼 여자는?"

"저기. 음. ‘누나’?"

"하하? 왜? ‘동생’?"

"내가 전부터 조금씩 느끼는 게 있는데."

딱히 이 사람이 내 앞에 있다고 미끼를 던지는 게 아니다.

이주영은 충분히 매력적이고 섹스어필이 되는 사람이다.

지금도. 저 흰색 반팔 티가 가리지 못한 양팔이 어딘가 나를 부르는 거 같아.

아니. 모든 옷은 다 팔이 나오는 건 맞는데.

그런 느낌이 있다니까?

뭔가 슬슬 흘려 주는 게 있어.

이건 완전히 정리를 하고 가는 게 맞다고.

확실히 할 건 하고 지나가야지.

"나 좋아해?"

"……."

"말해 봐."

두근두근. 5, 4, 3, 2. 안녕 사랑스러운 여동생들. 큰 언니를 망신시켰으니 이제 너희들도 내 곁을 떠나가.

"응."

지 않겠구나. 휴우우~

질문에 답한 이주영이 천천히 자세를 바꾸면서 도발적인 미소를 지으며 쳐다본다.

"훗. 근데 그건 왜?"

"조금 가끔 그런 게 있는 거 같아서."

"그럼 나도 질문."

"내가 먼저."

"나야. 넌 한 번 했잖아."

"오늘 나 인터뷰보다 더 질문에 답 많이 해 줬거든."

물어 볼 수 있는 권리를 뺏어와 다시 묻는다.

"남자 친구 있다는 거 진짜야 거짓말이야."

"음."

"대답 해 봐."

"그건 왜?"

"그냥. 궁금하니까."

있으면 지나가고.

없으면 다가간다.

이주영도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곧 입을 열었다.

"이번에 막 입촌 했을 땐 있었어."

"그럼 훈련하다 깨진 거야?"

"그렇지. 자주 보기도 어렵고. 그쪽이 온다고 날 편하게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됐다. 이주영은 솔로다.

오피셜로 떨어졌으니 이제 안심해도 되겠다.

"그럼 이제 내가 물을 차례지?"

"응. 물어 봐."

"뭐든 답해 주는 거야?"

"그럼. 첫사랑 얘기도 다 했는데 뭘."

"그걸 왜 물어 봤어?"

"뭘?"

"남자 친구 있는지 없는지."

가벼운 잽잽에 이어 여기서 승부!

"조금이라도 같이 있고 싶어서."

웃는다. 미소가 절로 나온다.

그것도 입을 가리고 웃고 있어.

스트레이트 펀치가 제대로 들어갔네.

* * *

"아까 그건 뭐야. 딱 잘라서 여자 친구 아닌데요. 이러고."

"아니잖아. 그럼 맞어?"

"흠."

"나랑 사귈 거야?"

"모르겠어. 그리고 이렇게 대놓고 따지듯 묻는 사람이랑은 별로."

사귀지는 않지만 둘이 어딘가로는 가고 있다.

"그래서 지금 어디 가는 거야?"

"잠깐. 어차피 숙소로 돌아가기도 해야 하고."

"흐음."

먼저 말했다 식욕은 참아도 성욕은 참지 않는다고.

그 말이 잽이었는지 훅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내 안에 제대로 대미지를 남긴 건 사실이었다.

"뭐야? 어디 간다면서?"

"가고 있는데."

"…여긴 숙소잖아."

"와 봐."

등잔 밑이 어둡다고들 하지 않던가.

나는 위가 밝다고 말을 바꾸겠다.

대한민국 숙소 건물에 도착.

리듬 체조 선수들이 있는 아파트 입구에 들어서 엘리베이터에 탔다.

"……."

그녀의 실망하는 표정이 더더욱 내 안에 확신을 가지게 만들어 준다.

최상층 버튼을 부담 없이 눌렀다.

"우리 8층인데?"

"옥상 안 가 봤지."

"어? 어…."

"경치 좋아."

지금까지 나는, 내가 가 본 그 어떤 올림픽에서도 선수촌 옥상이 닫힌 걸 본 적이 없었다.

안전상의 문제도 있지만, 누가 닫아도 짐승같은 것들이 자물쇠를 부수고 나가 파티를 하기 때문에 언제나 열어 놓는다.

이곳이 미국이나 캐나다 호주 애들 숙소면, 건물 옥상은 프라이 빗한 장소가 되지 않겠지.

하나 이곳은 대한민국 선수단 숙소가 아니던가.

절제가 곧 미덕으로 여겨지는 곳.

흥미진진한 올림픽까지 와서도 단체 관광으로 자금성 관광을 떠나 그것을 좋다고 말하는 사람들.

대한민국 선수촌 옥상이야말로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을, 현재 나에게 있어 가장 안성맞춤인 약속의 땅.

"우와~"

"어때? 나쁘지 않지?"

"그러네. 은근 도시가 저 멀리까지 보이고."

그리고 내가 말했듯, 주최 측도 선수들의 성향을 알기 때문에 신축 아파트 옥상에 또 여기저기 작은 벤치라든지 휴식 공간을 꾸며 놨어요.

"좋다. 애들이랑 한번 와 봐야겠다."

"지수는 높은 곳 싫어하는 거 같던데."

"그래도 경치 보자고 하면 오지 않을까?"

바람이 불어와 그녀의 긴 머리카락을 옆으로 흩날렸다.

흰 티는 몸에 바짝 붙어 추리닝을 입어도 감추기 어려운 라인을 더더욱 도드라지게 만든다.

"시원하다."

스포츠 브라가 비춰 보인다.

유독 중심이 도드라지는 건 브라의 접힌 부분일까? 아니면 추위에 반응한 그녀의 젖꼭지일까.

"어어. 위험해. 너무 그쪽으로 가지 마."

"우와. 여기서 사람들 다 보여."

옥상에 올라온 주영이가 마치 어린아이처럼 여기저기 옥상 난간에 붙어 이쪽저쪽 보이는 곳들을 염탐하는데.

갑자기 한쪽에 멈춰 움직이질 않았다.

"누… 아니. 주영아?"

왜 저러지? 대체 뭘 보길래.

"뭐해?"

"어? 아… 아니야!"

난간에 붙으면 위험하니까. 그래서 그녀를 말리러 다가갔는데.

건너편 건물이었다.

방 한쪽으로 어떤 커플의 뜨거운 순간이 보인다.

"……."

"와우."

바람 소리를 뚫고 여인의 미세한 신음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고개를 돌리자 명랑 쾌활 기자들도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재잘재잘 질문을 던지던 그녀가 볼이 빨개져 눈을 떼질 못하고 있다.

얼굴이 상기 된 건 바람 때문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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