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는 것보다 위대한 게 있다. (4)
인간만사 새옹지마(人間萬事 塞翁之馬)라고. 나는 오늘 그말이 구라가 아님을 몸소 경험하는 하루를 보냈다.
아직 모든 경기가 끝난 건 아니지만 세상이 보기엔 내가 뭔가 스포츠 역사에 한 획을 그었는가 보다.
기분 좋은 일이지. 어쨌든 노력한 보상을 얻었단 소리니까.
잘은 몰라도 지금 한국은 난리가 났다는 것 같다.
아마 형 얼굴도 여기저기 많이 비춰질 거고, 세상 어딘가에 부모님이 계신다면 형을 보고 우리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초기의 목표는 달성했다는 소리다.
거기까지는 좋다 이거야. 근데 왜 메달 확보 때문에 한참 흥분중인 상황에 공안을 마주쳐야 하냐고….
아니 동물도 짝짓기할 땐 건드리지 않기로 국제법에 명시된 거 아니었어? 내가 무슨 멸종 위기종도 아니고, 특별 보호 대상이니 뭐니 지들 맘대로 지정해서 난리를 부리는지….
혹시나 팀에 누가 될까 조용히 따라나섰지, 솔직한 말로 스위트룸이니 공짜니 다 짜증 나는 일이었다.
적어도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는.
“마하 씨, 방이 몇 층이에요?”
“28층요.”
“28층.”
솔직히 지금은 조금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주영이와 멀어진 건 안타깝지만 대신 할 누군가가 새롭게 나타났잖아.
주최 측이 날 끌고 오지 않았다면 어떻게 이런 사람을 만날 수 있었겠냐고.
엘리베이터 안. 나나 써니 씨 둘 다 말도 없이 조용히 3층 5층올라가는 숫자만 보고 있는데, 정적이 다른 의미로 은은하고 야릇 한 분위기가 되어 느껴지는 것 같다.
나는 자꾸만 그녀를 훔쳐보고 있었다.
외교관이랬지. 확실히 머리나 옷차림이 수수한 느낌을 주는 것 같다.
귀걸이나 목걸이도 화려하지 않아. 화장도 진하지 않고.
그럼에도 뭔가 감출 수 없는 분위기가 있다.
무엇보다 저 넓은 마음이. 진짜 가슴이 어우야….
닫히지 않는 블라우스 사이로 살짝살짝 비춰지는 하얀 피부와 브라의 레이스 장식 때문에 아랫동네 녀석이 벌써부터 꿈틀거리고 있었다.
“음? 왜요?”
“아. 은근히 오래 걸리네요.”
“엘리베이터 빠르면 귀 먹먹하지 않으세요?”
“맞아요. 그런 거 있죠.”
정말 보면서도 믿기지가 않는다.
내가 오늘 이 사람이랑 하는 건가? 진짜로?
지금까지도 빠른 만남 빠른 섹스는 몇 번 있었지만, 어느 정도 예체능과 예체능이란 같은 카테고리에서 일어난 일이지, 문과와 예체능은 달라도 너무 다른 세상이잖아.
이게 진짜 현실인가 싶어진다.
내가 그녀를 만진다고? 저 살색 스타킹 다리를 이렇게, 이렇게? 저 단정해 보이는 치마를 올리고 속옷을 내릴 수 있다고? 저 가슴과 허리에 키스를 한다고???
아무리 나라고 해도 그렇지. 상황이 너무 순탄하게 흘러가는 거 아닌가?
“저. 써니 씨.”
“네.”
“써. 써니 씨는 오늘 무슨 일로 호텔에…?”
“아. 해외 대사관이랑 미팅이 있었어요. 전달해 줄 서류가 있었거든요.”
“오~ 우와~! 어… 어디요?”
“브라질이요.”
“와… 브라질….”
“왜요?”
“그. 그…! 뭔가 국가 대 국가의 엄청 중요한 일 아닌가요?”
“으으음. 그렇지 않아요. 간단한 업무였어요.”
“허어~ 멋있다….”
“마하 씨는 그런 걸 좋아하나봐요.”
“그게. 전 보시다시피 운동만 할 줄 아는 놈이라….”
“무슨 말씀이세요. 당신이야말로 특별한 사람이죠.”
잠깐이나마 이상한 의심을 한 게 미안해지는 기분이다.
그냥 하늘이 운동만 할 줄 아는 새끼. 지성 한번 맛 좀 봐 보라하는 식으로 천사를 보내 준 게 아닐까?
그래 맞다. 그런 거야. 그렇게 생각하자. 사고가 논리적이잖아.
이 사람의 또 다른 모습은 어떨까 자꾸 상상이 들었다.
인간적으로 이러면 안 되지만. 어차피 우리는 할 거(?)라지만.
그래도 자꾸 성급하게 머릿속으로 그녀의 행동과 옷차림. 말투와는 반대되는 은밀한 상황들이 그려지고 있었다.
저 조곤조곤한 목소리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어떨까?
크고 아름다운 가슴에 우리 리틀 구마하를 이렇게 저렇게 끼우고 움직인다면?
스타킹을 이렇게 저렇게 구멍을 찢는다든지, 치마를 올려서 속옷을…
“마하 씨.”
“네!!?”
“깜짝이야. 왜 그렇게 놀라세요?”
“네? 아. 네?? 왜요??”
“어….”
“죄! 죄송합니다. 뭐죠??? 제가 뭐 놓친 게 있나요?”
“아니요. 그게 아니라. 도착했는데… 안 내리시길래….”
“아… 아~아! 하하! 아하! 엘리베이터가.”
어우. 뻘쭘해라….
왜 이러냐. 여자가 처음도 아닌데…
이상하게 써니 씨는 하나하나 쉽게 넘기기가 어려운 사람같다.
“죄송해요. 제가 잠깐 정신이 나갔었나 봐요…”
“혹시 피곤하세요?”
“네? 어우! 아니요!! 피곤이라뇨!! 절대 그렇지 않죠!! 체력 하면 구마하. 피로 회복도 구마하죠.”
먼저 성큼거리며 복도를 걷는데 그녀가 토도독 따라와 내 손을 잡았다.
“…….”
“마하 씨는 호텔 복도 무섭지 않으세요?”
“왜… 왜요?”
“뭔가 조용하고 또 어둡기도 하고. 그리고 사람도 없고요.”
“네. 그… 그렇죠. 무… 무게감이 있죠. 조. 조용하고… 어둡고…”
“응. 응.”
배운 사람도 무서운 게 있구나.
걱정마세요. 제가 꼭 지켜 드릴게요.
근데 써니 씨. 손이. 정말 부드러우십니다.
“음?”
“…….”
“하하. 왜 갑자기 손을 꽉 잡으세요.”
“네? 어. 그게… 뭔가 부드러워서…”
“후훗. 좋다.”
“왜요?”
“그냥요. 난 남자들이 이렇게 손 꽉 잡아 주면 뭔가 기분이 좋더라고요.”
정말요? 저도 여자들이 꽉 잡아 주면 기분 좋던데. 우린 서로 닮은 구석이 많네요.
“여기예요?”
“네. 들어오세요.”
“후훗. 실례하겠습니다.”
미친 생각을 주절거리는 가운데 어느새 호텔 방에 도착했다.
스위트 룸. 크으~ 씨발! 간지 미쳤다 진짜.
생각도 못 했는데 여기 여자를 데리고 오게 될 줄 이야. 중국.
오늘 하루는 조금 고맙다.
“어? 근데 누가 계시는 거 같은데요.”
“아. 맞다. 잠깐만요.”
그래. 써니 씨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한텐 황 선생님이 계셨지.
조심조심 선생님 방문을 열어보는데, 크어크어~!! 도깨비 한 마리가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울린다.
피곤하시지. 그동안 신경 쓴 게 얼만데.
선생님도 오랜만에 모두를 떠나 혼자 계신 환경. 푹신한 침대와 포근한 이불을 만끽하며 주무시는데. 원래 잠들 생각은 없으셨는가 눕지도 못하고 걸터앉은 자세로 코를 골고 계신다.
“아이고. 욕조에 몸 좀 담그고 쉬시라니까…”
선생님을 번쩍 들어 가지런히 눕혀 드리고, 신발과 양말을 벗겨드렸다.
아늑하게 이불까지 덮어 드리며 돌아서는데, 써니 씨가 문 앞에서 나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왜… 왜 거기 계세요?”
“그냥. 보고 싶어서.”
부드러운 목소리와 은은하게 그림자로 비춰지는 그녀의 실루엣이 뭔가 역설적이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건 옆에 코치님이 계셔서 그런 걸까? 아니면 내가 그녀에게 뭔가를 느끼는 걸까?
“나가요 우리.”
“저분이 코치님이세요?”
“네. 지금 제 보호자.”
“보통은 반대 아닌가요? 선수가 코치를 이렇게 케어해 줘요?”
“에이. 그런 거 따지나요. 선생님과 제잔데. 팀 동료고. 서로 도와야죠.”
“흐음. 다정하셔라.”
“고… 고맙습니다.”
“근데, 어떻게 그렇게 사람을 가볍게 들어요? 그것도 성인 남자를?”
“하하하! 제가 가진 건 힘밖에 없는 놈이라.”
거실로 나온 우리는 함께 창가에 서서 북경의 야경을 감상했다.
“마하 씨가 보는 중국은 어때요?”
“큰 나라죠. 건물도 크고 땅도 크고.”
“으음.”
“써니 씨 집은 여기서 보이나요?”
“아니요. 전 주로 상해에 있어요.”
“그럼 북경은 일로 오신 건가요?”
“네.”
“어. 그럼 원래 주무시려던 곳은?”
“호텔을 이용하죠.”
“아아. 어어.”
“왜요?”
“아니요. 원래 외박을 할 생각이셨구나 싶어서.”
“그러니까 마하 씨를 유혹했죠.”
“…….”
유혹이라…
지금까지 만난 여자들 가운데 한 번도 먼저 이런 말을 꺼냈던 사람은 없었는데.
혼자 또 멍하니 그녀를 지켜보고 있으니, 써니 씨가 칵테일 바로 다가가 술을 한 잔 따라 마셨다.
“마셔도 괜찮죠?”
“그럼요. 공짜에요.”
“아하하~~ 그럼 더 눈치보지 않고 마셔도 되겠네요.”
그녀가 가볍게 목을 축이더니 내 앞으로 다가와 눈을 감고 멈춰선다.
“…….”
“음.”
이건 키스해 달라는 뜻이겠지?
근데 입에 술 들어가 있는데.
흘리면 어떡하라는…
“…….”
“음-”
고민한다.
에잇 몰라.
그냥 감사한 마음으로 다가가자.
바로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고 부드럽게 입을 맞췄다.
써니 씨도 입을 벌려 준다.
꼴깍꼴깍 술이 슬며시 밀려 들어오는데, 그녀가 내게 씩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Cheers.”
“치… 치얼스…”
입에서 술이 살짝 흘러 그녀의 목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모든 것이 엄청 고혹적으로 느껴지는 순간. 나는 더는 참을 수 없어 그녀를 번쩍 안아 들고 방으로 향했다.
“어머! 아하하!”
써니 씨도 목을 끌어안고 바짝 안겨 온다.
상황이 어떻든, 이런 공간에 이런 사람과 이런 분위기라니.
모든 게 완벽한 순간이란 바로 지금을 말하는 거 아닐까?
방으로 들어와 문을 닫고 그녀를 침대에 풀썩 내려 주었다.
정갈하던 머리켤이 흐트러진다.
단정한 블라우스와 정장 치마에도 구김이 잡혔다.
무엇보다 넓고 큰 가슴이 더는 작디 작은 단추에 눌리지 않겠단 뜻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마하 씨! 정말 힘이 엄청나시네요!”
무슨 말씀을 써니 씨 가슴도 엄청납니다.
그녀도 나의 시선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은은하게 미소 지으며 두 손을 무방비하게 머리 위로 올리며 말한다.
“먼저 씻고 싶었는데.”
어떡하지? 씻고 싶다는데?
매너를 보여 줘?
아니면 이대로 본능에 모든 것을 맡기고 직진?
“훗.”
그냥 가자!
저 힘 풀린 눈빛과 기대하는 미소 앞에 무슨 매너야 매너는! 그게 더 레이디한텐 실례지.
훌쩍 그녀 위로 올라가 천천히 단추를 하나하나 풀었다.
써니 씨도 웃고만 있을 뿐 거부하거나 내 손을 뿌리치지 않는다.
그렇게 옷을 벗기자 하얀 색에 화려한 자수가 놓인 브라가 드러났다.
“으음 너무 그렇게 보지마세요.”
내가 연하잖아. 그런데도 존칭을 써 주고 있어.
이 사람 진짜 뭐지? 뭔데 이렇게 행동 하나하나가 사람을 설레게 만들지?
후크를 풀지 않고 바로 밴드를 위로 젖혀 가슴을 꺼냈다.
혹시나 수술이 아닐까 싶었지만, 뭐 그래도 상관은 없지만. 탄탄한 가슴이 중력의 힘을 거스르지 못하고 자연스레 양쪽으로 처지고 있었다.
“써… 써니 씨.”
“네.”
“저. 저 그… 그러니까.”
“괜찮아요. 말씀하세요.”
“저. 진짜 원래 여자랑 있을 때 이렇게 긴장 잘 안 해요.”
“근데 저랑 있을 땐 긴장돼요?”
“네. 뭔가 써니 씨는 다른 사람들이랑 조금 다른 거 같아요.”
정말 이상하게 숨이 막히는 기분이다.
눈앞에 그녀가 있는데 손을 대기가 조심스럽다.
마치 여자의 나체를 보는 게 처음인 듯 용기를 품고 부드럽게 키스와 함께 봉긋하게 솟아있는 유두 끝에 혀를 가져갔다.
“으-음.”
입이 움직이자 그녀에게서 자그마한 콧소리가 흘러나온다.
마치 악기 같다.
오직 나만이 지금 이 방 안에서 소리를 지배하고 있구나.
“흐음. 하아~”
양손에 커다란 가슴을 쥐고 유두를 애무해 주자 그녀가 두 다리를 비비적거리며 문지르기 시작했다.
스타킹과 이불이 맞닿는 소리가 나를 더 미치게 만든다.
“아아~ 으음~”
이 사람은 오늘 하루가 이렇게 될 걸 알았을까?
누군가 낯선 사람이 자기 몸을 건드릴 거라고 예상했을까?
옛날 어떤 노래 가사에서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라고 했으니.’ 나와 그녀의 지금 이 순간도 어떤 필연에 의해 짜인 것일까?
모든 것을 순종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써니 씨지만. 그럼에도 뭔가 모를 불안함이 느껴져 나는 왼손을 들어 그녀의 머리 위에 있는 양손을 꾹 눌러 잡았다.
“학! 하악! 하아~”
자유를 구속받자 그녀는 더 거친 호흡을 뱉기 시작했다.
달아오른다. 부드럽던 유두 끝도 점점 단단해지고 있었다.
이제는 나도 슬슬 옷을 벗어야겠다 싶어 몸을 일으키는데.
손을 풀어 주자 그녀가 나보다 더 빨리 내 바지 속을 파고들어와 뜨겁고 단단한 녀석을 슥 움켜쥐며 말했다.
“마하 씨, 누워 볼래요?”
“…….”
“빨리요.”
뭐지? 뭔가 선수를 뺏긴 거 같은 기분인데?
나는 써니 씨가 분위기는 주도하되 막상 본게임에 있어선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타입일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가?
시키는 대로 반대로 자세를 잡고 눕자 그녀가 내 바지를 벗기고 속옷을 내린다.
그리곤 여자들의 소환마법 머리 끈을 꺼내 머리를 하나로 묶더니 바로 자세를 갖추고 고개를 숙여 뜨거운 녀석에게 입을 맞췄다.
“…….”
진짜 뭐지? 이 사람?
입으로 해 주는데, 뭔가 방금까지랑 완전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아.
뭔가 전문적인 스킬이 느껴진다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