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륜기로 가버렷-384화 (384/401)

이기는 것보다 위대한 게 있다 (8)

“으하하하! 잠시만요. 저 전화 좀 받고 올게요.”

바이브레이터를 꽂은 듯 바지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리고 있었다.

써니 씨다. 오 마이 선샤인~♪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방으로 들어가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그런데.

“어….”

전화의 주인공은 써니 씨가 아닌 주영이.

순간 이걸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그런 걸 고민하는 나라는 놈에 대해서 새삼 놀라고 만다.

“어. 주영아.”

“어디야? 지금 통화 할 수 있어?”

“응. 호텔이야.”

“아~ 아. 안 그래도 오늘 선수촌에서 너 본 사람이 없다고 들어서.”

일단 전화는 받았다.

받아야지. 이주영인데.

몇 달을 함께 운동하고 서로 응원하며 일방적이라 할 수 있는 욕망도 받아준 사람인데.

어떻게 이 사람을 잊고 있을 수 있었을까…

단답의 짧은 문자를 받긴 했지만, 그건 얘도 놀라서 그랬던 거지 내가 싫다거나 끝내자는 뜻은 아니었잖아.

솔직히 써니 씨를 만난 뒤로 이주영 생각을 하나도 안 했다.

그렇게 좋았던 감정이. 그렇게 애틋하던 마음이. 대체 언제 어떻게 사라졌길래…

“그래? 스위트룸이라고? 방 되게 좋겠다.”

“어. 엄청 커.”

“밥은?”

“여기서 다 제공해 주고 있어.”

“그럼… 이제 보기 어렵겠네?”

“선수촌 가서 먹어도 되는데 오늘 우리 감독님이랑 형들이 다 술병났다고 들어서.”

“알어. 어제 복싱팀 방 쪽 되게 시끄러웠어.”

“음.”

“난 너도 있는 줄 알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 만나서 이야기를 해야 하나. 그럼 나는 뭐라고 해야 하는 거지?

준결승까지 남은 시간은 이틀. 오늘은 휴가고 내일은 컨디션을 조절해야만 한다.

주영이 시합 날짜도 내일.

애매하다. 얘 경기 마치고 난 다음엔 내가 시간이 없고, 내 시간에 맞추자면 주영이를 힘들게 하고.

“내일 어떻게 할 거야? 올 거야?”

“근데 나도 낼 모레 준결승이라….”

“아. 맞다. 그랬지. 미안.”

“아냐 아냐 괜찮아.”

“그거 이기면 은메달 확보지?”

“어. 우리는 토너먼트니까.”

“좋겠다.”

“뭐가 좋아. 그것도 시합을 이겼을 때 이야기지.”

“아… 내가 부담 준 건가?”

“아니야. 부담 같은 거 없어.”

어떻게 행동해야 할 지 결정을 못 내리고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내 행동이 그녀를 밀어 내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그걸 막을 수가 없다.

주영이가 싫은 건 아닌데, 단지 그녀도 모르는 사이 내가 다른 사람을 만났을 뿐인데…

“어제는… 미안. 나도 놀라서 따로 연락을 못 했어.”

“아니야. 그럴 수 있지.”

“갑자기 상황이 변해서 제일 힘들었을 사람은 넌데.”

그리고 이주영은 그런 마음을 빠르게 캐치하는 거 같다.

연애 감정을 떠나 이것 하나만은 제대로 잡아 줘야겠다.

“주영아. 지금은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그런… 거?”

“그러니까. 시합에 집중해야지. 올림픽이잖아.”

“맞다. 그렇지.”

“꿈의 무대를 왔는데, 훈련 집중하고. 오늘이 마지막 리허설인가? 부상 조심해야 해. 알겠지?”

“응. 고마워.”

흔들리지 말라고, 내일 시합에 더 집중하라고 건네주는 말이지만.

내가 하면서도 어딘가 선을 그어 버리는 기분이 들었다.

“다 마치고 보자.”

“알았어. 너도 힘내.”

이주영과의 관계에 있어 써니를 만난 건 내가 바람을 핀 게 되겠지.

신념을 배신한 꼴이구나.

하지만 그것보다 더 치졸한 게 있었으니. 주영이는 내가 자기와 헤어지고 24시간도 지나기 전에 다른 여자를 만났다는 걸 모른다는 거다.

“하아… 나도 많이 변했구나….”

나는 사랑을 갈구하는 존재.

세상이 나를 슈퍼스타니 국민 영웅이니 불러도, 내가 알고 있는 나는 누구 한 사람 편하게 마음 기댈 수 없는 외롭고 불쌍한 놈이다.

주영이는 첫사랑과 헤어지고 상처입은 나에게 다시 두근대는 마음을 알려 준 사람이었다.

그러나 써니란 사람이 보여 준 쾌락의 끝은 그 모든 것을 지워버린다.

이제는 나도 나를 모르겠다.

내가 찾는 사랑의 본질이란 대체 뭐길래…

“오 그래? 북경에 그런 데가 있었어?”

“선생님도 같이 가 보실래요? 가족들 선물 사기엔 그만한 곳이 없어요.”

“음. 마하 통화 다 했니?”

“네. 무슨 얘기들 하고 계셨어요?”

형들이 날 보고 난 뒤에 쇼핑을 가기로 했단다.

마침 황 선생님도 크게 관심을 보이시고 같이 나가 보자고 하시는데.

“제가 갈 수 있을까요?”

“왜 못 가. 보디가드들 있잖아.”

“그래. 같이 가자. 저 사람들 데리고 다니면 누가 알아봐도 못다가올 건데.”

“음. 전 그냥 쉴 게요. 아직 시합도 남았고. 피로도 있고.”

“하긴. 그렇구나.”

“그럼. 나도 그냥 있지 뭐.”

“선생님은 다녀오세요.”

“그럼 너 혼자 있는데?”

“전 그냥 낮잠이나 자고 있죠, 뭐. 욕조에 몸 좀 담그고. 다녀오세요. 모처럼 해외 오셨는데.”

그렇게 민구 형과 길수 형이 황 선생님을 모시고 밖으로 나갔다.

언제 올지. 개인 시간을 언제까지 확보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내 나름 이 순간에 승부를 건다.

“좋아. 마지막이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그 정도로 섹스에 미쳐 버린 새끼는 아니야.

물론 맞는데. 미치다 못해 섹스 그 자체로 다시 태어나고 싶은 놈도 맞긴 한데.

주영이를 생각해. 그런 사람은 쉽게 만날 수 있는 게 아냐.

“받지 마라. 받지 마라.”

이번에도 전화를 받지 않으면 써니 씨는 지워 버린다.

지금까지도 수없이 많았던 그런 스쳐 가는 인연이었던 거야.

주영이도 확실하게 연인이란 오피셜을 내려 준 건 아니니까 죄책감 가질 거 없어.

그렇게 여기서 선택한다.

짧은 한순간의 불장난에 좋은 사람을 태울 순 없다.

―Hello?

“…….”

―Who is this?

“써니 씨.”

―아. 혹시 마하 씨?

물론, 주영이도 주영이지만.

써니 같은 사람도 쉽게 만날 수 있는 게 아니긴 해…

* * *

“어떻게 바로 올 수 있어요?”

“제 일이 원래 외근이 많은 직업이잖아요.”

“아….”

“무엇보다 지금은 출장 중이고.”

2시 반. 선생님과 형들이 나간 지 30여 분 만에 써니 씨가 다시 호텔로 찾아왔다.

그녀를 보기만 하는데도 몸 어딘가 뜨거워지는 거 같고 단전으로 기가 몰리는 기분이 들고 심장이 두근두근 거린다.

“코치 선생님은 안 계세요?”

“아까 매니저 형들이 왔거든요. 다 같이 쇼핑 나갔어요.”

“그러시구나.”

“언제 오실지는 몰라요.”

“그래요. 으~ 음.”

“…….”

물론 부른 목적이야 뻔하다지만, 그래도 사람이 매너가 있지.

어떻게 운을 띄울까. 뭐라고 해야 방으로 안내하는 게 자연스러울까 고민하는데 그녀가 먼저 방긋 웃으며 말했다.

“그럼 서둘러야겠네요?”

어찌 보면 내가 바라는 사랑은 대단한 게 아니야.

난 그냥 섹스가 좋고 이성과 함께 교감하는 그 모든 순간이 좋아.

나한테 섹스가 사랑이지 뭐.

원 없이 사랑하고 원 없이 서로를 느끼고. 원 없이 서로를 원할 수만 있다면.

“하악, 하악~!”

“써니 씨.”

“하아, 하아. 키스해 줘요.”

“우움, 웁.”

“더! 더더~!!”

그럼 된 거 아닐까?

그러니까…

주영이한테 미안해 하지 말자…

그런 거니까…

그냥 내가 그런 놈이니까.

지금도 써니 씨랑 해서 너무 좋잖아.

그녀는 역시 실망시키지 않아.

어제 그렇게 날 몸서리치게 만든 것만큼이나 다채로운 반응을 보여 주고 있어.

느끼기도 엄청 잘 느끼고. 표정도 다양하고.

몸도 야하고.

무엇보다 섹스를 잘 하고.

“어때요. 확실히 어젯밤이랑은 다르죠?”

“웁, 우움. 응! 응!”

“와 근데 써니 씨는 어떻게 매번 이렇게 입으로 다 해 줄 수 있어요?”

“후훗, 훗.”

3회전을 쉬지 않고 달렸다.

처음은 옷도 벗지 않고 바로 침대에서. 두 번째는 옷을 벗기고 뒤로. 세 번째도 발기가 죽지 않아 그 상태로 빼지도 않고 하고 있으니 그녀가 몸을 돌려 세워 입으로 해 줬다.

“하아 하아. 마하 씨 미안한데… 저 조금 힘들어요.”

“그래요? 그럼 이렇게 가슴만 좀 모아 줄래요?”

“…아직도 안 끝났나요?”

“저는 끝났는데. 이놈이 죽을 생각을 안 해서.”

“하하하….”

가슴에 하고. 또 얼굴에 하고. 그 사이 회복이 됐는지 또 그녀의 몸을 원 없이 느끼고.

쾌락의 끝을 달리는 기분이었다.

써니를 선택한 내 결정이 틀리지 않다는 확신이 들었다.

좋잖아. 그럼 된 거야.

사랑이 별 거 있냐고.

* * *

“7신데. 안 오시네. 저녁 먹고 오는 건가.”

형들과의 나들이가 즐거우신가 황 선생님이 돌아오질 않았다.

덕분에 5시간을 내리 쉬지 않고 섹스를 나눴다.

보통 밤새도록 했네 뭐네 하지만, 그건 했다가 쉬었다 잠깐 서로 끌어안고 잠도 자고, 다시 일어나서 만지고 이런 식이지만.

오늘은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5시간을 논스톱으로 달린 것이다.

한 순간도 리틀 구마하가 수그러들지 않았다.

나도 나지만, 이놈을 그렇게까지 자극시킨 써니 씨도 대단하고 그녀의 체력도 정말 믿기질 않는다.

“써니 씨?”

“하아, 하아. 네?”

“괜찮아요?”

“어. 오늘은 조금. 아니 많이 힘드네요.”

“힘들죠. 그게 정상이에요.”

“아니, 근데 마하 씨는 대체 왜??”

“아, 저야 운동선수니까.”

외교관은 체력도 좋구나.

하긴 세계 곳곳을 돌아다닐건데 운동도 꾸준히 하겠지.

“이제는 만족이 드세요?”

“만족이라뇨. 아우 할 수만 있으면 더 하고 싶죠.”

“하하… 대단하세요.”

“졸리면 좀 자요. 제가 이따가 깨워 드릴게요.”

“아니요. 코치님 오시기 전에 가야죠.”

“에이. 안 그래도 돼요. 방도 넓은데. 푹 쉬시고. 어차피 선생님 제 방에 안 오시니까.”

겸사겸사 여기저기 고생해 준 그녀의 몸을 마사지해 줬다.

“아아!”

“어우. 어깨 굳은 거 봐. 피곤이 쌓여 있네.”

“마하 씨가 이렇게 만들었잖아요.”

“네? 제가요? 하하하!”

업무가 과해서 그런가 했는데 써니 씨는 펠라를 하면 그만큼 목을 많이 쓰기 때문에 어깨가 뭉친단다.

“그래요? 전혀 몰랐네.”

“괜찮아요. 미워서 하는 말은 아니에요.”

“써니 씨. 잠깐만 앉아 보세요.”

“네?”

“제가 진짜. 마사지가 뭔지 보여 드릴게요.”

내공도 만땅 차오른김에. 조금만 힘을 써 봐야겠다.

“진짜 시원할 거에요.”

“네.”

“너무 시원해서 써니 씨 기절할 수도 있어요.”

“하하하~ 네.”

“기절하다 못 해 잠들면 그냥 그대로 아침까지 푹 자기로 약속하는 거예요.”

“음. 하지 마세요.”

“네? 왜요?”

“자꾸 그러시니까 무서워서 싫어져요.”

“헤헤. 농담이죠.”

열정으로 불타오른 만큼, 나는 그녀에게 진심을 담아 몸을 풀어주 었다.

“으으음~”

“어때요? 시원하죠?”

“음. 아직은 잘 모르겠는데.”

내공을 읽으며 혈을 보아 가며. 그렇게 아픈 곳을 만져 주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앉은 상태로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다.

“으음~ 음….”

“이것 봐. 내가 기절한다고 했잖아.”

스스로에게 뿌듯해 하며. 쉬지 않고 여기저기 피로가 뭉친 곳들을 풀어 준다.

그러자 써니 씨는 졸다 못해 아주 코를 골기 시작했다.

“쿠울 쿠우….”

“안 되겠다. 그냥 눕혀야겠다.”

눕힌 상태에서도 종아리나 허벅지. 가슴 위, 손, 발. 우리가 흔하게 하는 어깨 마사지 아닌, 정말이지 어디서도 받아볼 수 없는 전신풀코스진시황제측천무후마사지로 몸을 풀어 주니 그녀도 20여 분 뒤 조용히 눈을 뜬다.

“설마… 저. 잤어요?”

“네. 엄청 잤어요.”

“거짓말. 나 잠깐 졸은 거 같은데?”

“무슨. 아니거든요. 어제 나 못지않게 기절했거든요.”

써니 씨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자기 몸 이곳 저곳을 꾹꾹 눌러 본다.

“어. 몸이….”

“시원하죠? 하루 푹 잔 거 같죠?”

“…어떻게 한 거예요?”

“하하! 제가 괜히 금메달리스트가 아니라고요.”

겸사겸사 자랑 겸 운동하면서 인간의 신체에 대해 많은 것을 공부했다고 들려주었다.

“우와….”

“제가 머리가 나빠서 시험 이런 건 잘 못 보는데. 사람 몸에 대해서라면 뭐. 어느 정도 지식이 있죠.”

“멋있어요.”

“하하하! 고맙습니다.”

써니 씨가 내게 스르륵 안겨 온다.

잠깐 시계를 보았다.

7시 반. 슬슬 이제 돌아오실 거 같은데.

여기서 한번 더 할 수 있을까?

나는 할 수 있지만, 시간이…

“마하 씨는 정말 다정한 사람 같아요.”

“어이고. 뭘 또 그렇게까지….”

“전 알아요. 애무해 줄 때도 그렇고 제 몸을 만질 때도 그렇고.

당신은 전혀 힘을 쓰지 않았다는 걸.”

“네? 힘을 왜 써요?”

“…세상엔 그런 사람들도 있거든요.”

“어? 무슨 소리지 이건?”

얼굴을 똑바로 보며 물었다.

“써니 씨 뭐 곤란한 일 있으세요?”

“아니요. 그냥. 전에 만났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도 마하씨 못지않게 체격이 좋았거든요.”

“아이고. 몸도 좋은 새끼가.”

“그 사람은 자기 힘을 엄청 과신했었어요. 거칠고 아프고.”

“허허. 허허허. 일로 와요. 안아 줄게.”

또라이 아냐? 이런 보드라운 몸에 뭔 힘자랑을 해. 개새끼, 죽여 버릴라.

“나는 여자들한테 절대 힘 자랑 안 해요. 아니 그냥 어디 가서도 그런 짓을 할 생각이 없어요.”

“정말 강한 남자란 그런 거겠죠?”

“암!! 그럼요!!”

“멋있어요. 정말로.”

“무엇보다 내가 그렇게 할 놈도 아니지만, 그런 짓 했다간 우리 형한테 맞아 죽어요. 아 이젠 둘한테 맞으려나?”

“후후. 그래요?”

“네. 써니 씨는 알까 모르겠는데, 저 복싱 시작한 계기도 방탕하게 산다고 매니저 형한테 끌려가서 혼나다가 어? 이거 뭐지? 재밌는데? 해서 된 거거든요.”

“매니저면 그래도 남인데. 어떻게 그렇게까지.”

“그걸 말하자면 시간이 너무 없는데. 아무튼 그것도 결국 우리 형이 원인이라서.”

빠르게 형에 대해서 알려 주었다.

“형은 나의 자랑이자, 땅이자 부모님이세요.”

“우와. 형님을 그렇게까지 생각할 수 있나요?”

“…….”

“마하 씨?”

“어… 어라? 잠깐만요.”

여기가 중국이라서 그런가? 아니면 그동안 여러 일이 있어서 그런가.

갑자기 형 얼굴이 막 떠오르면서 가슴이 먹먹해진다.

눈물이 하염없이 솟구치고 있었다.

정말로. 찌질하고 볼품없는 새끼. 동생이라고 끝까지 책임지고 학교 보내 줘, 밥 먹여 줘. 물론 어릴 땐 꽤 심하게 지랄도 하긴 했지만.

그래도 형은 철 없는 꿈을 무시하지 않고 큰 힘을 줬잖아.

구마윤 없었으면 내가 뭐라고 이런 능력을 가져.

내가 뭐라고 이런 스위트룸을 공짜로 써.

이런 여자를 품에 안고 있냐고.

“진짜… 우리 형. 정말이지. 너무 고생해서….”

가슴이 터질 거 같아서 그냥 다 털어놓게 된다.

“써니 씨. 제가 어느나라 사람인지 아세요?”

“…한국 분 아니신가요?”

“아니요. 어떻게 보면 저도 중국 사람이에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우리 고향이 여기에 있어요.”

“…….”

“혹시. 곤륜이라고 들어보셨나요?”

난 그냥 감정에 벅차 이야기를 꺼냈을 뿐이다.

그런데 갑자기 써니 씨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 모습에 나도 눈물이 쏙 들어간다.

“써니 씨? 왜 그러세요?”

“바… 방금 고… 곤륜 이라고 하셨나요?”

“네. 왜요? 써니 씨도 어딘지 아세요?”

“혹시… 쿤룬을 말씀하시는?”

“뭐 영어로는 그랬던 거 같기도.”

짧지 않은 정적이 지나가며 써니 씨가 나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다.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어딘가 첫 만남부터 지금까지 알던 사람과 전혀 다른 존재를 보는 것 같다.

그래서 조심히 물었다.

“왜요? 거기 뭐가 있어요?”

그러자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저 신장 사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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