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랑해줘요(7)
“만나면 설명해 준다고 했었죠. 하나씩 이야기해 봐요. 뭐가 어떻게 된 건가.”
대부분 우리의 생각이 맞았었다.
이런 장소와 서비스 그리고 이 사람의 존재까지. 모든 게 함정이었고 목적은 내 컨디션을 망쳐 경기력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아니. 누가 그런 미친 짓을 계획한 건데요…?”
“그건 말씀드릴 수 없어요.”
“왜요? 여기까지 다 얘기해 놓고.”
“그냥 마하 씨의 승리를 막고 싶은 누군가라고만….”
“누군가가 어딨어! 결국 당신네 나라잖아!!”
“국가의 모든 것이 이런 일에 동원되진 않아요….”
“알았어요. 그럼 그냥 ‘중국’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게요.”
“중국이 그렇게….”
“병신이 아닌 이상에야 그런 짓을 할 리 없다고?”
“…….”
“그러니까 에두르지 말고 똑바로 다 말해요. 안 그러면 나 이거 바로 언론에 제보합니다.”
“하지 마세요.”
“왜? 이제 와서 밝혀진다니 무섭나 보지?”
“제가 무서울 게 뭐가 있겠어요. 그저 마하 씨만 더 위험해지니까 그러죠.”
“어째서? 내가 당한 게 있는데? 내가 뭐가 위험해지는데요.”
“그건….”
“당신들 이거 테러야. 범죄라고. 멀쩡한 사람을 데려다.”
“마하 씨 한 사람의 생각이죠.”
“…뭐라고요?”
“사람들이 마하 씨 상황을 이해해 줄 거라고 생각해요?”
“허… 허허… 뭐라고요?”
“올림픽 기간. 정해진 공간을 나와 묘령의 여인과 동침을 했다.
언론은 사건의 진실보단 당신의 도덕성을 더 문제로 삼을 겁니다.”
“그건 대사관 직원이나 체육회에서도 허락했으니까 나온 거고.”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몇몇만 처벌받을 뿐. 구마하에 대한 비난의 화살이 멈추진 않을 거예요. 이런 일은 거기까지 계획을 하고 진행되는 거예요.”
“후. 참 나. 어떻게 그렇게 확신을 합니까?”
“매체도 우리의 손이 닿는 곳에 있으니까요.”
“이봐요. 당신이 한국말을 하니까 뭔가 착각하나 본데. 난 중국사람이 아니라 한국 사람이라고요. 그쪽 매체가 얼마나 썩었든.”
“중국이 한국 언론에 얼마나 많은 로비를 하는지 모르시죠.”
“하… 하하….”
“하지 마세요. 정말로. 당신의 명예만 실추될 거예요.”
쉽게 생각하란다. 나는 미인계에 당한 것이다. 21세기에 미인 계라니 뭔 황당한 소린가 싶지만. 하긴, 1000년 전 무림에서 건너온 사람도 있는데….
“아니. 왜 이렇게 상황을 잘 알아요?”
“제가 하는 일이 그런 거거든요.”
“허… 허어….”
“그러니까 진정하시고.”
“저기 이거 무슨 몰카 같은 건가요? 아니면 내가 중국에 뭔가를 그렇게 크게 잘못했나?”
“마하 씨.”
“대체 왜 그렇게 사람을 못 잡아 먹어서….”
“당신은 강한 사람이니까요.”
한참을 말이 안 나와 그녀를 보게 된다.
“그게 이유라고요?”
“네.”
“고작? 내가 강해서 이런 함정을 팠다고?”
“믿기지 않으시겠지만. 네. 그렇습니다.”
“허허. 허허허. 미친 이걸 뭐라고….”
정정당당히 맞서기엔 너무 강해 이런 방식을 쓰지 않으면 막을 수가 없어서.
경기장에서도 그랬었단다.
그날 그 장소에 다른 많은 이번 일에 관여된 사람들이 있었는데. 수많은 관중들이 야유를 퍼부어도 나는 주눅 들지 않았고. 심지어 광적인 함성 소리도 탄식으로 바꿔 버리는 모습에 그들이 겁을 먹었단다.
“써니 씨가 말한 ‘저들’이라는 게 그 사람들입니까?”
“네….”
“그날요. 어떤 인간들은 내 앞에 침을 뱉었어요.”
“…….”
“그런 꼴을 보는데 사람이 각오를 해야지. 그럼 쫄고 들어갑니까?”
“미안해요. 그 일은 제가 대신해서 사과드릴게요….”
“아니. 뭔 젠장. 그렇게 이기고 싶으면 자기 나라 선수를 응원하든가 왜 남의 발목을 잡아…?”
그녀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절박한 사람들이 벌인 모자란 행동이라고 생각해줘요.”
“양웨이를 응원해요. 잘하는 선수 놔두고 왜 이런 정신 빠진 짓거리를 벌여요.”
“이미 도박 사이트와 스포츠 전문가들은 양웨이보다 마하 씨의 승률이 높다고 나왔어요.”
“누가 스포츠를 도박으로 판단합니까!!”
“…….”
“양웨이는 강해요! 아시안게임 챔피언이고!!”
“마하 씨….”
“심지어 복싱 경력도 얼마나 긴데. 시합 앞두고 무서워해야 하는 건 나지. 왜 그쪽이 먼저 설레발을 쳐서. 왜! 왜!!”
“저기 진정하시고….”
흥분하지 말자 성급하게 굴지 말자. 다짐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원 없이 소리를 질러야만 내가 살 것 같았다.
“진정하게 생겼냐고요! 안 그래요? 실력으로 보나 경력으로 보나 쫄아서 덜덜거리고 있을 건 나지. 심지어 홈그라운든데. 상대는 러시아고 어디고 다 꺾고 올라선 챔피언이고. 그런데. 이런 수작질을 한다고?! 대체 중국이란 사회는 얼마나 비겁한 겁니까!!
네!? 대답해 봐요!!”
“마하 씨의 운동 능력은 제가 봐도 압도적으로 보이긴 했어요….”
“내가 그런 실력을 그냥 가졌냐고!!!”
“…….”
“뒤지라고 훈련했어! 죽기 직전까지 내몰아서 얻은 힘이야!! 얼마나 절박하면. 수천만 원 일억 가까운 돈을 자비로 써가면서. 바쁜 사람들 남미까지 끌고 가고. 태릉에 와서도!! 후우! 후우!”
“죄송해요….”
“그래. 백 보 양보해 당신들이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고 쳐. 근데 왜 이런 이상한 방법을 쓰는데요. 간단하게 심판을 매수하든가!!”
“세계인이 지켜보는 한 사람. 구마하란 이름의 무게감을 따질 때. 심판 매수는 큰 효과가 없겠죠….”
“준결승에 약물도 그래서 그런 겁니까?”
“그걸 어떻게….”
“와. 미쳤네… 진짜였어? 선수가 한 게 아니라….”
어떻게 올림픽에다…
이제 보니 더럽혀지고 있는 건 나 한 사람이 아니구나.
올림픽. 스포츠 정신. 그 모든 것이 이놈들의 욕망에 똥칠을 당하고 있었다.
“정리해보면 자기들 비난받을 방법은 피하고. 최대한 효과적인 방법을 노린 게 결국 미인계였다?”
“뭐라 할 말이 없네요….”
“그쪽은 그럼 뭐에요?”
“저는….”
“중국이 고용한 고급 창녀 뭐 이런 건가요?”
“비슷하지만, 외교 관련 일을 하는 것도 맞아요.”
“여긴 공무원한테 이런 일도 시켜요?”
“마하 씨. 저는 일반 공무원이 아니에요….”
의뢰받은 주체는 밝힐 수 없지만, 그녀 자신의 정체는 알려 준다.
“전 안전부 소속 요원입니다.”
“안전부가 뭐 하는 덴데요.”
“러시아의 KGB나 미국의 CIA같은 부서라고 보시면 돼요. 흔히들 정보부라고 하죠.”
“허… 허허허… 정보부….”
“써니란 이름은 해외 나갈 때 쓰는 영어 이름이고요.”
“오케이. 그럼 써니 씨는….”
최대한 흥분을 가라앉히며 그녀를 다시 마주본다.
“왜 나한테 이런 걸 전부 고백하는 건데요.”
“…….”
“영화에서 봤어요. 정보부 같은 데는 보안이 중요하다면서.”
“그건….”
“이제 와서 양심이 찔려서 이러는 건 아닐 거 같고….”
“그냥. 최소한 당신이 억울하지는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진실을 알려 주고 싶어서….”
“아~ 어어~ 신경 써줬다? 고맙네. 어. 너무 고마워.”
“알고 있는 것과 모르고 있는 건 정말 다르니까….”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온다.
강하게 손을 뻗으며 말했다.
“가까이 오지 마요. 왜 오는데 갑자기?”
“마하 씨. 진실을 알아도 화가 안 풀린다면… 또 얼마든지 절 마음대로 하셔도 괜찮습니다.”
“아. 건드리지 말라고. 당신이 CIA든 뭐든 나도 복싱선수야.”
“그래도 전 뭐든 받아들일 수 있으니까요….”
“아프다면서.”
“네?”
“방금 그렇게 아팠다고 했으면서 뭘 어떻게 받아들이겠다고….”
왜 그렇게 섹스를 잘했는지 알 것 같다.
이런 일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요원인데 섹스의 마스터가 될 수밖에 없었겠지.
“그래서 그렇게 남자의 몸을 잘 알았던 거구나.”
“…….”
“대체 어떻게 처음 만난 사람이 나보다 더 손을 잘 쓰나 했는 데… 하하!”
“훈련을 받았죠….”
“와… 씨발 진짜….”
떠올리기만 해도 하반신을 뜨겁게 달구던 우리의 이야기가 더없이 마음을 괴롭게 만든다.
그 모든 것이 훈련을 통한 결과라니…
머리도 좋은 사람이 왜 이런 일을 하고 있는지…
“그럼 난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예요…?”
“저랑 있으면 결승전까지는 아무 일도 없을 거예요.”
“만약 내가 써니 씨를 또 거부하면요?”
“그때는….”
여러 가지를 알려 주는데. 아까 말했던 언론 공작이 펼쳐지든가, 또 한 번 대사관을 압박해 예상도 못 한 압박이 벌어질 수도 있고, 내가 호텔을 나가지 못해 시합 자체가 기권 될 수도 있단다.
“돌겠네, 진짜… 아니 그깟 메달이 뭐라고….”
“그러니까 저랑 있으세요. 그게 당신을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니까.”
“써니 씨랑 있는 건 뭔데요?”
“구마하가 여자에 빠져 다음 시합을 집중하지 못하는 것.”
“그걸로 그 ‘저들’이란 놈들은 오케이래요?”
“작전이니까요. 다른 공작을 펼칠 시간도 부족하고.”
반쯤은 맞네. 시합 생각이 하나도 안 나기도 해.
한편으론 소름이 돋는다.
정말 어떻게든 날 꺾으려고 안달이 나 있구나.
“그럼… 당신은 왜 이렇게 날 챙겨 주려는 건데요?”
“마하 씨가 정말 좋은 사람이라는 걸 알아서죠.”
아이고, 아이고. 이 지조도 없는 심장 새끼야… 이런 말 한마디에 두근거리고 자빠졌냐… 그것도 널 씹창 내려고 왔다고 지 입으로 고백하는 여자한테…
“처음으로 이 일을 하면서 마음이 불편했어요….”
“불편한 게 정상이죠.”
“아니요. 다른 사람들과 있을 땐 그런 걸 느낀 적이 없어요.”
“왜요?”
“그 사람들은 어디까지나 욕망으로 나를 대하니까.”
“그건 나도 마찬가지잖아요.”
“달라요. 마하 씨는.”
“…어떻게요? 내가 뭐가 다른데?”
“적어도 당신은 자기만족에 취해 내 몸을 희롱하진 않았거든요.”
일의 발단이 어찌 됐든, 원래는 상호작용이라 생각하게 된단다.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뺏고, 대신 그녀가 얼마든지 상대방의 욕망을 들어주는 식.
그러한 과정에서 보통의 남자들은 존중 어린 태도를 보여 주질 않는다.
“그래서 아까도 내가 거칠게 다루는 걸 말렸던 건가요.”
“당신이 괴로워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그런 걸 어떻게 아냐고….”
“우리는 감정이 담긴 남녀의 섹스를 한 사이잖아요.”
“다른 사람이랑 했을 때랑 뭐가 다른데요…?”
그녀가 내 손가락 끝에 작은 입맞춤을 해줬다.
“당신은 본인만이 아닌 날 기분 좋게 해 주려고 애썼어요.”
“그걸 알아요…?”
“알죠. 당연히. 몸이 느끼는데.”
손끝 하나하나. 내 혀가 스쳐 가는 피부 하나하나.
몸을 통해 내 감정이 전달되었단다.
이 사람은 자기 욕정이 아닌 상대방을 기쁘게 해주기 위한 섹스를 하는구나 라는 걸 그때 알았다고 하는데.
“그래서 좋은 사람이라고. 이런 사람을 속여야 한다는 것에 불편했던 거예요.”
이러니까 모르겠다는 거야.
왜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이런 일을 하고 있는지…
혹시, 이것도 날 더 심한 함정으로 빠뜨리려고 하는 거 아닐까?
방심시키려고. 그래서 진짜 경기력을 와그리 무너뜨리려고.
“솔직하게 답해 봐요.”
“뭘요?”
“이것도 뭔가 있죠? 날 더 흔들어서. 당신 말을 믿게 해 가지고. 뭐 어떻게 하려는.”
“…적어도 전 당신한텐 거짓말을 하고 있진 않아요.”
“그럼. 왜 이런 일을 하는데요?”
“그거는….”
“무슨 약점 같은 거 잡혔어요?”
“제가요? 누구한테 약점을?”
“그 안전부라는 놈들한테. 협박받아서.”
“그럴 리가요. 제 일은 조직과의 신뢰가 없음 진행할 수 없는 내용이 많아요.”
“그럼 정말 제정신으로 이런 일을 하고 있다고요?”
“마하 씨. 이 일은 제가 선택한 일이에요.”
“네?”
“누구의 강요도 없는. 저 스스로가 선택한 거라고요.”
이런 일이 직업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도 어질어질한데. 자기가 선택을 했다고?
가만히 보았다.
영화에서나 보던 정보 요원.
007아저씨도 여자들 겁나 따먹고 다니더니 알고 보면 그것도 작전인 것일까?
하지만 007은 여자들을 지켜 주잖아.
왜 이런 사람이 대채 왜…?
“왜요?”
“…….”
“왜 이런 일을 선택했어요.”
“어쩌다 보니까….”
“그러지 말고 말을 해줘요. 나는 납득이 안 가서. 오히려 더 머리가… 어지러운….”
“마하 씨.”
또 다가온다.
하지만 이번엔 그녀의 손을 뿌리치지 못했다.
써니 씨가 내 얼굴을 천천히 만지고 있다.
정말 만들어진 섹스 기계인가?
이런 상황에서도 이 사람은 자기 몸을 바치고 싶나…?
아니구나.
내가 울고 있었구나.
그래서 눈물을 닦아 주려고.
“혹시… 저 때문에 그러시나요?”
“어이 씨. 왜 지랄을… 훌쩍. 아 왜 눈물이 자꾸.”
“정말 좋은 분이시군요.”
“어딜 봐서요….”
“당신의 눈빛이 아까와 다르게 슬픈 눈을 하고 있어요.”
그래 맞다. 슬퍼. 화가 나 미치겠다고. 존나 다 때려 부수고 싶은 지경이야.
내가 잘 못 본 게 아니었다. 그녀의 정체가 뭐든, 나는 평범한 사람들이 볼 수 없는 인간의 내공. 즉, 본성을 볼 수 있다.
이 사람은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다.
내가 더 위험해지지 않게, 지켜 주려고 하는 마음도 거짓이 아니라고.
“미안해요. 그러니까 울지 마세요.”
“왜… 왜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건데요….”
“동정하지 말고 그냥 절 경멸하세요. 그게 마하 씨 마음이 편할 거예요.”
“어떻게 당신을 경멸해 내가….”
“…….”
“불쌍한 사람을 어떻게 그렇게 그러냐고….”
정상적인 사람이 이런 일을 스스로 선택했다고 말할 리 없다.
분명 뭔가 일이 있었겠지. 어떤 빌어먹을 사건들이 그녀의 인생을 이렇게 만든 것이다.
그걸 알기에…
나를 안 좋은 상황으로 끌어들였다는 걸 알면서도 화가 나지 않았다.
“아니 진짜 그까짓 메달이 뭐라고… 이런 짓을….”
그녀의 따뜻한 가슴에 기대 주절주절 울며 말했다.
“그리고. 설령 그렇게 이겨도. 양웨이는 뭐가 되냐고. 그 사람의 노력. 열정. 오늘까지 참고 견딘 인내를 어떻게 같은 나라 사람들이 이렇게 무시할 수 있는지….”
“공산주의 사회잖아요….”
“공산주의는 젠장. 사람의 노력도 인정 안 한답니까?”
“가치가 어디에 있느냐. 관점이 다르죠. 한 사람의 스타를 반기 기보단, 인민의 행복을 먼저 따지는….”
거리의 풍경을 말해 준다.
자기는 요즘같이 사람들이 행복해하고 기뻐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단다.
자국에서 열린 거대한 행사. 연일 이어지는 중국의 승전보. 사람들의 가슴에 자부심이 차오르고 있단다.
“그거야 지들 메달 따는 것만 보여 주니까 그러지….”
“그렇죠. 그래도 평범한 사람은 그런 걸 보고 싶어 하잖아요.”
그 영광의 길목 앞에 맞닥뜨린 나라는 걸림돌.
미스터 올림픽. 스포츠의 신. 골드 메달 몬스터.
다 된 밥에 재를 뿌릴 수는 없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승리를 빼앗아라.
정말로 내가 특별보호대상이 된 것도 틀린 말은 아니었었다.
지금 중국의 10대 20대 청년들은 나라는 인간을 증오하고 있단다.
NICE에서 나온 MAHA 상품을 불태우는 거로 분노를 증명하고,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지난날 내가 벌였던 잘못들을 열심히 퍼트리며 흉을 본다.
“한국에서, 마하 씨를 미워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도 하나하나 모두 번역되어 퍼져가고 있어요.”
“악플러 개새끼들… 끝까지 도움이 안 되는구만.”
“빛이 강한 만큼 어둠이 깊으니까요.”
“그럼 진짜 나갔다간 돌 맞아 죽을 수도 있겠네요.”
“아니라곤 할 수 없죠.”
“농담이니까 진지하게 그러지 마요. 진짜 무서우니까.”
“마하 씨도 무서운 게 있나요?”
“난 뭐 사람 아닙니까… 알고 보면 내가 얼마나 찌질한 놈인데….”
그녀가 내 눈에 입을 맞춰 주며 말했다.
“맞아요. 당신은 누구보다 감정에 솔직하신 분. 순수해서. 이런 얄팍한 함정을 피할 수 없는 분.”
“…….”
“걱정 마세요. 제가 있는 한. 누구도 마하 씨를 건드리지 못할 테니까.”
토닥토닥 달래 주던 그녀가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 나라는 상처가 많아요.”
“무슨 상처요.”
“수천 년. 누구도 넘볼 수 없던 강대국이 지금은 낙후되고 뒤떨어지는 취급을 받고 있죠.”
“중국 정도면 잘 사는 거지. 땅도 넓고.”
“그래도 지도부는 잃어버린 위치를 되찾고 싶어 하죠. 구마하란 강자를 무너뜨리면 인민들은 더더욱 높은 프라이드를 가지게 될 것이고요.”
“…….”
“그 힘은 중국의 발전을 더욱더 빠르게 앞당길 겁니다.”
“저기. 내가 말 끊어서 미안한데.”
“괜찮아요. 전 할 말 다 했으니까.”
“그 지도부라는 사람들 만나면 내 말 좀 전해줘요. 개소리하지 말라고.”
“훗. 그럴 기회가 온다면.”
“착각하지 마요. 승리. 메달. 그게 사회적으로 꽤 좋은 영향을 준다는 건 나도 아는데.”
확신을 담은 목소리로 말해주었다.
“그런 식으로 포디움에 올라 봐야 세상 그 누구도 인정하지 않아요.”
“…….”
“왜 사람들이 나를 응원하고 좋아하는지 압니까? 그건 내가 이것저것 다 잘해서가 아니라, 지금까지 걸어 온 승리의 영광. 그 과정에 있어.”
일체의 의심이나 편법을 쓰지 않고 오로지 실력으로 승부를 보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메달의 색깔이 아니에요. 거기까지 이르는 과정에 있지. 아시겠어요?”
“정말 부끄럽네요….”
그래. 물론, 나는 내공이란 특별한 힘을 쓸 수 있어.
근데, 이 내공도 거듭된 훈련이 없었다면 그냥 가능성으로 멈추고 말았을 거야.
난 가능성을 실력으로 바꿨다.
꾸준하고 반복되는 운동과 포기하지 않는 근성으로.
“당신들이 날 세계 최강의 남자로 인정한다면. 보여 주죠. 내가 어떻게 중국을 상대하는지.”
창가로 걸어가 베이징 시내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정말 큰 실수를 한 거야.”
“마하 씨….”
“개새끼들 누구를 상대로 이딴 짓을.”
멀리 선수촌이 보인다.
거리 여기저기에도 오륜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난 올림픽을 꿈꿨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요. 올림픽은 내 꿈이었고.”
“…….”
“그런 내 앞에서 감히 꿈을 더럽히는 짓거리를 해? 그것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앞세워서. 다 뒤졌어. 씨발 것들.”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주먹을 움켜쥐는데.
터벅터벅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포근하고 따뜻한 것이 내 등에 닿았다.
그녀가 나를 뒤에서 안으며 말한다.
“저를… 좋아하셨나요…?”
“좋아하죠.”
“왜요…? 난 당신을 함정에 빠트린 당사잔데.”
“그건 오늘 안 이야기고. 어제까지는 분명하게 좋아하는 감정이 있었어요.”
“…….”
그녀가 더 꾸욱 나를 감싸 안는다.
두 가슴이 등 뒤로 더더욱 압박해오는데, 우는 건지 떨림이 느껴졌다.
나 역시 그녀의 손을 붙잡아 주었다.
“남녀 사이에 호감 없는 만남이란 없어. 노력 없는 영광도 없는 거야. 애초에 그 노력을 하니까 인정을 해 주는 건데. 메달이 그래서 가치가 있는 건데… 이 나라는 그 두 가지 모두를 더럽히고….”
심장이 터질 것 같다. 원래도 지는 걸 싫어하지만, 이번 결승전. 진다면 그땐 내 손으로 모든 내공을 끊어 버린다.
아니. 섹스도 안 해.
진짜야! 진심이라고!!
잘못된 걸 알면서도 바로 잡지 못하는 힘이 무슨 의미가 있어.
그런 새끼는 앞으로 여자 만날 자격도 없는 거야. 평생 딸딸이만 치고 산다.
“써니 씨.”
“네….”
“아까 화 풀게 당신한테 뭐든지 해도 좋다고 말했죠.”
“네.”
“좋아요. 그럼 날 사랑해 줘요.”
“네?”
“날 사랑하라고요. 그냥 호감이 아닌. 좋은 감정이 아닌. 임무니, 미인계니 다 떠나서.”
그녀를 돌아보았다.
역시나 써니 씨는 두 눈에선 하염없는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진심을 다해 나를 사랑해 줘요.”
“마하 씨….”
그녀의 몸이 오한이 오는 듯 덜덜 떨려온다.
“어떻게 당신은 이 지경에 처한 본인을 생각하지 않고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거죠?”
“사랑은 위대하니까.”
“…….”
“진짜 강한 게 뭔지 보여 주고 싶으니까.”
그녀의 두 팔을 붙잡으며 다시 한 번 강조했다.
“할 수 있겠죠? 해낼 수 있겠죠! 내 말대로 해줄 수 있죠!!”
“당신을 사랑하라고요?”
“네.”
그녀가 내게 안겼다.
힘이 다 빠진 목소리로 답한다.
“전 지금도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