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륜기로 가버렷-397화 (397/401)

애벌레. 번데기. 그리고. (3)

베이징에 위치한 비즈니스 호텔.

양민구를 중심으로 한구 스포츠 식구들이 서류를 놓고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보자. 우리가 선수단보다 빠른 비행기 타고 들어가는 거지?”

“어. 가자마자 회사 사람들이랑 합류하고.”

“스케줄 빡빡하겠는데요. 실장님.”

“어쩔 수 없죠. 이놈이 또 메달을 땄는데. 하여간 일 만드는데 재주 있다니까.”

“실장님도 보람 있으시겠어요. 마하 씨를 복싱으로 이끈 건 실장님이잖아요.”

“에이. 지가 잘해서 그런 거죠.”

“칭찬을 들으면 그냥 좋다고 해. 빼지 말고.”

“흐하하! 야. 길수야. 대표님은 뭐 따로 얘기한 거 없으시냐?”

“있어. 너 잘 얘기했다. 우리는 우리대로 선수단 환영 행사 끝나고. 후원 기업들이랑 따로 크게 축하 파티가 있다고 그러셨거든.”

“공항에 사람들 많이 모일 거 같던데. 보안요원들 있으려나….”

“있겠지. 당연히.”

“안 되면 우리라도 나서서 마하 씨 지켜 줘야죠.”

“어우. 감당 안 될 거 같은데….”

구마하의 승승장구에 한구 스포츠도 여러 일이 기획되고 있다.

올림픽을 마친 다음을 구상하는 양민구에게 동료 이길수가 묻는다.

“근데. 민구야. 이렇게 여기저기 다니다 프로 데뷔는 언제 해?”

“그러게. 그것도 따져야지. 운동을 쉴 순 없으니까.”

“일정 더 촉박하면 그렇지 않을까요? 마하 씨 휴가도 가야 할 거 같은데.”

“끝나고 한번 얘기해 봐야겠네요. 대표님 생각도 있으실 테니까.”

“어? 근데 야. 이거 니 벨소리 아니냐?”

“어디. 하하! 귀신 같은 놈. 욕은 못 하겠네.”

“마하야?”

“마하 씨예요?”

“네. 잠깐만요.”

반가운 마음으로 전화를 받은 양민구. 그런데. 통화를 나눌수록 그의 얼굴이 무겁게 변한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뭐야? 왜 그래?”

“마하 씨 아닌가요?”

“맞는 거 같은데. 무슨 일 있나?”

걱정되는 마음에 이길수가 곁으로 다가가는데. 그때 양민구가 버럭 소리를 높였다.

“그러니까 지금 뭔 소리를 하고 있는 거냐고? 아니. 야! 너 낼모레 올림픽 결승인 거 몰라? 그건 부탁이 아니라!!”

“왜? 뭔데? 나도 바꿔 줘 봐.”

“잠깐만. 너 그럼 지금도 누구랑 같이 있는 거야?”

“민구야 나 좀 바꿔 달라니까.”

“새끼야 진짜 미쳤어? 전 국민이 보고 있는데!! 그런 상황에 스캔들을 왜 내자고 그러는데!!!”

지난 빅토리아 스캔들로 호되게 당한 한구 스포츠 직원들인만큼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진다.

역시 여자랑 있구나.

있을 수는 있어. 근데 양 실장 말대로 왜 하필 지금? 온 국민이 그를 응원하고 있는 순간에??

“민구야 줘 봐. 나도 좀 바꿔 달라고!!”

“아… 야. 있어 봐. 길수가 바꿔 달래.”

이길수가 빠르게 전화를 받는데, 구마하는 더 다급하게 자기 이야기를 마친다.

-알죠. 저도. 스캔들인 거. 그래서 형한테 부탁드리는 거잖아요.

“마하야. 나 길순데….”

-길수 형. 사랑해요. 부탁드려요.

“뭔 소리야? 야. 야!! 구마하…!!”

이길수까지 멍한 얼굴로 양민구에게 핸드폰을 건넨다.

“무슨 소리야?”

“몰라… 미친놈이 아직 호텔이고. 여자랑 있으니까. 내일 갈 때 기자들 데리고 오래.”

“어??”

양문구는 다시 전화를 걸어 보지만, 당연히 통화는 연결되지 않았다.

“미친놈. 왜 또 안 받아….”

“진짜로 본인이 그랬어?”

“어!!”

“왜요? 하필 지금? 얼마나 다들 애가 빠지게 응원하고 있는데??”

“그러니까요… 아 나 진짜 돌겠네….”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 할 판에 먼저 스캔들을 내자니. 결과 여부와 관계없이 국민적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근데 왜 아직 호텔에 있지…? 결승 땐 선수촌으로 간다고 하지 않았나?”

“민구야. 너 그때 황 선생님 연락처 받은 거 있었지?”

“어.”

“줘 봐. 물어보자.”

“연락하긴 너무 늦은 거 아닐까…?”

“이 마당에 그런 게 무슨 상관이야.”

두 사람은 짧은 인연에 기대 대표팀 코치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선생님. 아. 이 시간에 전화 드린 건 다름이 아니라요….”

-마하 때문이지?

“네… 저 혹시 대표팀과 무슨 문제가 있었나요?”

-도와주라, 얘들아.

“네?”

-너희한텐 이놈이 뭐라고 하디?

“그게… 여자랑 있으니까 기자들 좀 불러 달라고….”

-해 줘. 부탁한다. 너희라도 좀 도와줘.

“그게 무슨….”

-우린 아무 힘이 없어….

“역시 대표팀이랑 뭐가 있었군요.”

-아니야! 우리랑은 아무 문제 없어.

“근데 왜…?”

-이놈이 그렇게 해달라도 했으면 해 줘. 언론이란 언론은 다 끌고 가! 국내든 해외든 가리지 말고.

“저. 코치님. 무… 무슨 일인데요?”

-하아… 미안하다… 그건 나중에. 끝나고. 지금은 답답해도 얘기를 해줄 수가 없다….

* * *

밤이 지나고. 다시 새벽이 찾아왔다.

마지막 하루. 오늘이 지나면 내일은 자유를 찾음과 동시에 그녀와 이별이다.

“일어났어요?”

“네. 잘 잤죠?”

“음.”

“왜요? 어디 안 좋아요?”

“아니요. 그게 아니라….”

어젯 밤 우리는 처음으로 단 둘이 아무런 행위없이 조용히 밤을 보냈다.

그러자 그녀가 오히려 이런 내 모습이 어색한듯 반응한다.

“역시. 아직도 절 안고 싶은 마음이 없으신가요?”

“어우… 그런 얘기를 듣고 어떻게 그래요….”

“그래도요….”

“괜찮아요. 괜찮으니까.”

하고는 싶다. 뒷사정이야 어쨌든. 이 사람의 글래머러스한 몸은 확실히 인간의 본능을 자극하는 힘이 있으니까.

“억지로 참지 않아도 되는데….”

“써니 씨. 전 컨셉이 아니라. 진짜로 여자한테 신사적인 놈이 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아니. 그게 아니라….”

그녀가 두 손을 가랑이 사이에 모아 꿈지럭 꿈지럭 거린다.

“내가 하고 싶은 마음이 있단 말이에요….”

어우 씨. 이럼 또 이야기가 달라지는데…

“마하 씨는 어떻게 그렇게 여자를 잘 알아요?”

“제가요?”

“…….”

“하하! 아니 뭐. 그거야….”

“여자 많이 만났죠?”

“으하하하! 보자. 아침은 뭘 먹나….”

체력적으로 문제는 없냐고 묻는다.

난 준결승 전에도 우리가 뜨거운 시간을 보냈기에 압도적인 실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고 말해 다.

물론, 이 사람은 내 말을 믿지 않았다.

인간의 체력은 감정과는 별도로 작용한다는 상식이 존재하기에 내가 하는 행동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 같다.

“그건 보통 사람들 이야기죠.”

“당신은 보통 사람이 아닌가요…?”

“스포츠에 있어서 구마하란 존재는 달라요.”

“멋있네요.”

그녀가 밝게 웃으며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며 나를 관찰했다.

“참. 당당한 거 같아요.”

“하하하! 아니라니까요. 내가 얼마나 찌질한 놈인데.”

“마하 씨 이야기를 들려줘요.”

“나요? 난 뭐. 별 거 없는데.”

“그래도 듣고 싶어.”

“왜요?”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서 알고 싶은 건 당연한 거라면서요?”

“와 내가 한 말을 그렇게 써먹나.”

“진심이니까.”

나를 보는 그녀의 눈빛이 전과는 다르단 생각이 들었다.

진심이 느껴진다.

애정이 담긴 시선.

어떻게 보면 나는 섹스보다 여자들이 나를 이렇게 보는 걸 더 좋아하는 거 아닐까?

“마하 씨 물 다 됐어요.”

아침을 먹은 뒤엔 둘이 커다란 욕조에 물을 받아두고 함께 누워 있었다.

“아~ 좋다. 올림픽이고 뭐고. 그냥 평생 이렇게 살고 싶다.”

“이렇게 사는 게 좋아요?”

“좋죠. 나쁠 게 없잖아. 침대 좋아. 음식 공짜야. 집 넓어. 따로 힘들게 운동 안 해도 되고, 사람들한테 치일 것도 없고.”

“운동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좋아는 하는데. 힘든 건 있죠. 가끔은 욕도 나오고 그래요.”

“왜요?”

“왜랄 게 있나. 그냥 진짜 힘드니까 그러죠.”

그녀가 찰박찰박거리며 내 몸 위에 손가락을 들어 스르륵 쓸어 내린다.

“그런 고통을 이겨 내니까 이런 몸이 되는 거군요.”

“…….”

“당신 이야기를 들려줘요.”

“하하… 근데 진짜 할 얘기가 별로 없는데….”

“뭐든 듣고 싶어요. 당신은 내가 만난 사람 중 가장 특별하고 강한 사람이니까.”

여자한테 이런 말 듣는 게 생각보다 뿌듯하구나. ‘자기야 너무 좋았어.’가 최고인 줄 알았는데.

“근데 써니 씨가 좋게 봐서 그렇지. 세상에 나보다 운동 잘하는 사람들 되게 많아요. 조던도 있고. 펠레, 마라도나. 타이슨 형님.”

“그 사람들은 다 은퇴한 선수들 아닌가요?”

“현역으로 따지면. 수영의 펠프스. 이쪽은 지난번 아테네랑 이번이랑 메달이 몇 갠지 모르겠고. 어. 볼트도 있구나. 이 자식도 이번에 육상 세계 신기록 세웠고.”

“제가 강하다고 한 건. 신체 능력이 아니라 마음이에요.”

“네?”

찰박찰박 물소리를 내며 그녀가 몸을 돌려 누워 가슴에 진한 키스를 해준다.

“어떻게 살아왔길래. 당신은 이렇게 강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건가. 듣고 싶어요.”

“…….”

“말해 줘요. 네?”

“잠깐만요. 내가요? 내가 마음이 강하다고?”

“응.”

“처음 듣는 말인데????”

살면서 단 한 번도 듣지 못한 칭찬에 어안이 벙벙하다.

“진짜요? 어디가요? 내가? 어디서 그런 걸 느꼈어요?”

“음. 여러모로 대범한 성격이라든지? 사람을 끝까지 위로해 주는 점이라든지?”

“하하하! 내가 대범하다고요? 진짜??”

“혹시 이런 말 처음 들어 보세요?”

“완전 처음 듣죠. 내가 늘 짜증 나고 실망하는 게, 난 왜 이렇게 유리 멘탈일까. 그런 건데.”

그녀가 손으로 욕조 물을 떠서 얼굴을 세수시켜 준다.

“거짓말. 이렇게 흔들림 없는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고요?”

“하하하. 으하하하! 진짜요? 내가???”

그때부터 줄줄 이야기를 꺼낸 것 같다.

“그래서. 남수라는 친구 이야기 듣고 갑자기 꿈이 생겨서.”

“…….”

“안 믿기죠? 고작 그런 이유로 운동을 시작했다는 게.”

“어떻게 보면 의도가 다소 불순하긴 하지만… 이해는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형이 도와주고. 친구들이 응원해 주고. 학교 선생님.

우리 감독님을 만나고.”

“한상률 전 국가대표 감독 말씀이시죠?”

“와 역시 스파이. 그 이름은 또 어떻게 알아서….”

“하하하! 마하 씨….”

여러 가지를 향해 달려오던 시간 속에서 내가 느낀 것들. 힘들었던 일들. 사람들.

그런 일상 속에서 벌어진 크고 작은 일들.

“마하 씨도 굴곡이 많았었구나.”

“많죠. 쉽다고는 할 수 없지.”

“역시. 스타란 어둠이 따르는 일인가 봐요.”

“그렇게까지 거창한 건 아니지만. 편하진 않은 건 사실이긴 해요. 근데 나는 또 어느 정도는 그런 걸 즐기는 편이라.”

“즐긴다고요?”

“적어도 누가 나를 지켜보고 있단 뜻이잖아요.”

“…큰 외로움을 느꼈나 봐요.”

“느끼죠. 부모님도 없고. 형은 늘 바쁘고. 지금 생각해보면 어릴 때 그 시간을 어떻게 버텼나 싶기도 하고….”

“그때의 인내가 훗날의 구마하를 만든 거 아닐까요?”

“좋게 말해 그럴 수도 있는데. 그래도 역시 나를 만든 건 인내보단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더 컸던 거 같아요.”

그녀가 가만히 눈을 바라본다.

“왜요?”

“정말 신기한 게 뭔지 아세요? 그렇게 애정이 고팠다는 사람이. 여자 이야기는 하나도 안 하네?”

“흐하하하! 아. 뭘 듣고 싶어서.”

“맞잖아요. 이렇게 여자 몸을 잘 알면서. 그렇게 외로웠다면서.

만나는 여자는 한둘일까?”

“에이. 같이 있는 사람한테 예의가 아니지….”

“아. 처음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이런 바람둥이라니….”

“…….”

“들려줘요. 당신은 어떤 사랑을 했는가.”

하긴. 원래 사람 구워삶는 게 직업인 사람한테 내가 무슨 수로 당해내겠냐.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어떤 사람을 만났어요.”

“응. 응.”

“직업이 스파인데. 섹스를 진짜 잘하고.”

“마하 씨!!”

어색하지만 조금씩 이야기를 시작하니 슬슬 입이 풀렸다.

“그런 친구도 만났었고.”

“…잘 안 됐나요?”

“잘 안 됐죠….”

“슬펐어요?”

“무너졌었죠. 그래서도 더 막 운동에 전념했었고.”

“고통을 더 큰 고통으로 막았던 거군요….”

“몸이 피곤하면 일단 머리가 좀 맑아지니까.”

만남과 이별에 관한 이야기. 그때그때 같이 있던 친구들에게 느꼈던 서운함이나 뒤늦게 깨달은 내 실수 같은 것들까지.

하나하나 이야기를 하다 보니 욕조 물은 다 식고, 대화는 거실로 나와 소파에 앉아서도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렇게 마지막엔 복싱을 하게 됐죠.”

“마하 씨가 이것저것 한 배경엔 다 여자가 있었네요.”

“듣고 보니. 그것도 그렇네요.”

아이고. 이제 그만 얘기해야지 슬슬 또 배가 고프구나 싶어 고개를 돌렸다.

“어이고. 벌써 시간이 이렇게. 써니 씨. 우리. 저녁은 또 그냥 룸서비스로 먹어야 할 거 같은데.”

“어떻게 그렇게까지 할 수 있어요?”

“뭐가요?”

“당신은 그렇게 여자한테 상처 받으면서 어떻게 또 이성을 사랑하려고 할 수 있는지.”

“해야죠. 안 하면 어떻게 해요.”

“그래도. 보통은 상처 받으면 못 일어나잖아요.”

“그러니까 그것도. 어떻게 보면 운동인데.”

“…….”

“보통 운동을 건강해지기 위해 하잖아요. 근데, 정확하게 말하면 운동은 몸을 망치는 거거든요. 단지 회복되는 과정에 더 강한 몸을 만들 수 있는 거지. 그래서 감정도 그러지 않을까.”

이번 일. 엄밀히 그들의 작전은 성공했었다.

나는 완전히 무너져 내려 있었다.

하지만 선아랑 통화하면서 나의 부족함이 뭔지 알았고.

성급하게 마음을 닫지 말고 열린 감정으로 상황을 다시 살펴 보자란 각오가 있었기에.

“지금 이렇게 내가 당신을 아무렇지 않게 안고 있는 거잖아요.”

“…….”

“감정도 몸이 있어 느낄 수 있는 거라면. 분명 상처받고 회복되는 단계에서 더 강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 같아요.”

“미안해요….”

“아니요. 사과하지 말라니까. 난 좋은데?”

“괜찮아요. 그렇게 억지로 절 위해 주지 않아도….”

“진짜로 좋다니까요. 들어봐요. 난 써니 씨를 만났기에. 이런 일을 겪었기 때문에. 다시 누구를 만나도 사랑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어요.”

“…….”

“그건 나한테 있어서 굉장히 플러스 되는 상황인 거죠.”

덮쳐진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그녀가 내 위에 와락 올라타 얼굴 여기저기 키스를 해 준다.

“저. 저기…?”

“사랑해. 사랑해요. 진심으로.”

둘 다 샤워 가운을 입고 있었다.

그녀가 가운을 마구잡이로 벗어 던지며 뭐에 홀린 사람인 듯 얼굴부터 목, 가슴 그리고 다리까지 온몸에 애무해 주며 나를 흥분시켰다.

“어우야.”

그녀의 아픔. 상황. 그런 걸 알기에 억지로 참았던 이성도 끈적한 애무 앞에선 무기력하게 함락되고. 아니, 힘차게 솟아오르고 말았다.

“으음~!”

그렇게 단단해진 녀석이 그녀의 손에 붙잡혀 몸속으로 들어간다.

써니 씨는 가운을 반쯤 벗어 상반신을 드러내곤 빠르게 허리를 움직였다.

“하아, 하아~”

“뭐야. 나한텐 욕망으로 상대를 대하지 않는다니 뭐니 하더니.”

“아아~ 그렇지만. 당신이 나를 너무 흥분시키니까?”

“하하! 일로 와요.”

어쩔 수 없다는 듯 난처한 표정을 짓는데, 그게 또 어찌나 귀여 워 보이는지.

“진짜로 나 좋아하나 보다.”

“…아하~ 사랑한다니까요.”

“하하하! 얼굴 빨개지는 거 봐.”

“아~아! 놀리지 말고.”

서로 감정이 동화될 때 나누는 섹스는 더없이 좋다.

사랑. 늘 고민하고 대체 이게 뭐라고 인간을 괴롭히는지. 한때는 진절머리가 났었지만.

그래도 사랑을 하기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흡! 흐음!”

“천천히. 왜 이렇게 서둘러요?”

“하아! 하악! 너무 좋아서!”

“밤은 기니까. 누워 봐요.”

“네.”

어제 그녀를 힘으로 억지로 누르던 곳에서. 오늘 다시 그녀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섹스를 한다.

진짜 뭐랄까. 이 감정은 뭐라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어.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행복해.

어제의 미운 사람이. 오늘의 가장 소중한 사람이 되는 이 감정.

관계의 진화 속에 느끼는 심경의 변화.

일면식도 없는 남녀가 서로를 알아가고 받아들이며. 둘만의 스토리를 만들고, 몸을 뒤섞고 각자의 가장 민감하고 감추고 싶은 부위를 어루만지며 애정을 이끌어 낸다.

남녀 관계란. 섹스란. 그래서 아름다운 거 같아.

이건 그냥 야한 게 아니야. 그냥 꼴린다란 간단한 말로 치부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우리가 살아가며 본능적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가 있는 행위가 바로 사랑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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