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오늘.
장례식을 치르느라 피곤했던지, 출근도 않고 깊은 잠에 빠져든 남편 몰래 아버님의 일기장을
들고 집을 나온 난, 동네 공터로 가서 아버님의 일기장을 한 장, 한 장 뜯어 불사르기 시작했다.
아버님과 나의 비밀스러웠던 놀이에 대한 흔적을 이 세상에서 완전히 없애버리기 위해서.
그리고 그렇게 한 장, 한 장에 써놓으신 아버님의 일기를 읽으면서, 또 태우면서 그동안 아버님과의
추억을 하나하나 가슴에 묻고 있던 난, 아버님이 돌아가시기 이틀 전 마지막으로 써놓으신 내용을
읽으면서 가슴이 저며 오고 아려와 하염없이 눈물만 흘려대고 말았다.
‘...살아오면서 지금처럼 행복했던 적이 있었을까.......?? 어쩌면 지금보다 더 행복했었던 시간들이
있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이 순간, 지금보다 더 행복했었던 시간들이 떠오르지 않는 걸 보면.....
요사이 시간들이 내 인생에 있어 가장 행복한 시간이 아닐까 한다....... 물론 너무도 염치없는
행복인 줄 안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행복인지도 안다........ 그래서 며늘아기에게 더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그래서 또 고맙다........ 하지만 언제고 난 떠날 사람....... 그때가 언제일지
모르지만......... 그때가 되면 사랑하는 며늘아기를 두고 먼저 떠나가야 할 것이다....... 어쩌면
그게 내일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그래서 난 지금 순간에도 간절히 바란다........ 언제고
내가 먼저 떠나는 날이 오게 되면........ 사랑하는 며늘아기가 나 때문에 너무 힘들지 않기를.......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먼저 꼭 떠나기를........ 사랑하는 며늘아기를 앞세우지 않고......
그리고 그 순간까지 내 추한 모습을 사랑하는 며늘아기가 보지 않기를....... 그리고..... 그리고........
사랑하는 며늘아기가 나를 추억하는 것만으로도 언제나 미소 지을 수 있기를........ 지금 이 순간에도
난 이쁜 며느리........ 내 사랑인 니 생각으로 또 가슴이 설레이고 벅차오른다 아가야......... 주책없이.......
주책없이 말이다..........’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