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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야겜에 빙의했다-410화 (410/648)

〈 410화 〉 410화. 비밀 마법 결사 (3)

* * *

다음날 오후.

식사를 마친 나는 임솔과 산책을 하고 있었다.

학회도 끝나서 할 일이 없었으니 보통 식사나 산책, 혹은 임솔의 당분 보충으로 시간을 보냈다.

아직 아서에게 연락이 오지 않았다.

듣기로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한다.

아마 고문을 하든 뭘 하든 해서 정보를 뽑아내고 있겠지.

미국에 계속 있을 순 없었으니 나와 임솔이 정한 한계치는 내일.

내일까지 아무 일도 없으면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나는 기다리는 사람이 많고, 임솔도 처리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분위기를 봐서는 내일까지 아무 정보도 못 캐낼 것 같은데.'

그 말은 즉 임솔과 단 둘이 있을 시간이 오늘 뿐이라는 거다.

이럴 때 사리사욕을 채워줘야겠지.

나는 나란히 걷던 임솔에게 말을 걸었다.

"오늘은 바다나 보러 갈래요?"

"바다? 갑자기?"

"단 둘이 데이트할 시간도 얼마 안 남았잖아요."

"으음. 그렇게 가고 싶어?"

"네. 꼭이요. 꼭."

임솔과 둘이 밥을 먹거나 거리를 걷는 것도 괜찮았지만, 좀 분위기 좋은 곳도 가보고 싶단 말이지.

이 세계에 빙의한 이후로 바다를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특히 여자랑 밤바다를 걷는 걸 못해봤거든.

'솔이라면 잘 구슬려서 조용한 밤바다의 펠라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의외로 임솔은 그런 걸 허락해줄지도 모른다.

나는 바다를 기대하며 말을 이었다.

"바다를 보면서 물멍 때리면 머리도 상쾌해질걸요."

"물멍?"

"솔이 씨는 물멍이 뭔 지 몰라요?"

"… 솔이 씨? 물멍은 또 뭐야?"

임솔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물보고 멍 때리는 걸 물멍이라고 해요."

"거짓말하지 마."

"진짠데. 물보고 멍 때리면 물멍. 불보고 멍 때리면 불멍."

"우리 제자가 더위를 먹은 건 아닐까 걱정이네."

임솔은 내 이마에 손을 올리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긴, 나도 처음 들었을 때 저 반응이었지.

물멍이 뭐야. 물멍이.

"솔이 님. 아무튼 이따 물멍하러가요."

"그래. 그런데 이상한 호칭은 그만두지않을래?"

"쩝. 알겠어요. 솔이 누나."

솔이 누나는 뭔가 입에 안붙어서 여러 가지를 시도했는데 역시 당기는 게 없네.

일단 누나로 만족하자.

차라리 하루빨리 임솔을 제압하는 게 나을 것 같다.

그럼 편하게 솔이라고 부를 수 있겠지.

내 옆에서 걷던 임솔은 저 앞에 있는 카페를 보며 말했다.

"카페라도 갔다 올까 하는데 음료수 하나 먹을래?"

"좋죠. 저는 끌레르 로즈 라떼로 부탁드려요."

"그걸 먹는 사람이 어디있나 했는데 여기 있구나."

"먹다 보면 중독되는 맛이에요."

끌레르 로즈 라떼는 문수린 덕분에 알게 된 음료수다.

처음엔 적응하기 위해서 먹었는데 어느새 이것만 찾게 되더라.

달콤한 장미향과 상쾌한 민트향, 그리고 매콤함까지 들어있다보니 평범한 음료수로는 만족할 수가 없었다.

"알겠어. 그럼 나도 한 번 먹어볼까."

임솔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 블록 앞에 있는 카페로 향했고, 나는 기지개를 키며 그 뒷모습을 바라봤다.

'수린 누나는 잘하고 있으려나.'

끌레르 로즈 라떼하니까 또 생각나네.

한국으로 돌아가면 빨리 찾아가 봐야지.

두근­

"음?"

갑자기 느껴지는 묘한 분위기의 변화.

나는 잡생각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뒤를 확인했다.

'뭐지?'

주변에는 당연히 아무도 없었다.하지만 방금 전투 감각이 발동했다.

내가 눈치채지 못한 위협이 있다는 뜻.

"… 저긴가?"

나는 어두운 뒷골목을 바라봤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위험도 없어 보였지만, 수상한 곳이 저기밖에 없었다.

"솔이가 오면 한 번 확인해야 하나…."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마력 탐지를 좀 돌려볼까.

나는 조심스럽게 마력을 끌어올리며 골목 입구로 다가갔다.

*

마법 학회의 뜨거운 열기가 식지 않은 뉴욕의 거리.

허름한 건물 안에 숨어있는 마인들은 cctv로 임솔과 이호연을 감시하며 대화를 나눴다.

강한 마법사인 두 사람을 감시하려면 먼 곳에서 거리를 벌린 상태여야 했다.

"정말 괜찮겠습니까? 놈이 발표한 마법이 대(?)마법사전의 비기라고 하던데요. 하필 학회와 타이밍이 겹쳐 팀을 구성한 인원이 마법사 밖에 없습니다."

"걱정하지 마라. 목표물 베타가 마법을 시연하는 걸 내 눈으로 확인했다. 당연히 약점도 알고 있지."

"오오오…! 역시 제로스 님입니다!"

작전을 지휘하던 판데믹의 간부 제로스는 우쭐한 미소를 지었다.

이 우매한 놈들에게 자신이 가진 정보를 알려줘야겠지.

"영역이 전개될 때 마치 비눗방울이 커지는 것 같은 시각적 효과가 생긴다. 그런 엄청난 마법에 전조가 없다는 건 말이 안 되니까."

"그렇군요…! 그 말은 즉 그 영역만 조심하면…."

"그래. 우리의 장점은 습격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영역을 전개하기 전에 습격해야한다. 습격팀에게 확실히 전달하도록."

"예! 알겠습니다!"

"둘이 계속 붙어있지는 않을 거야. 떨어지는 순간 작전을 결행한다."

제로스를 필두로 한 마인들은 둘의 움직임을 확인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 목표물 둘이 떨어졌습니다! 알파는 카페에 들어갔고, 베타는 혼자 대기 중입니다.

"확인. 알파팀은 목표물 알파에게 향한다. 그리고 나머지 마인들은 내 지휘에 따라 베타를 덮친다."

제로스는 빠르게 명령을 하달한 뒤 건물에서 뛰어내려 목표 위치로 달려갔다.

'알아서 들어와 주는군.'

둘이 거리를 벌린 순간이 중요했다.

혹여나 그곳에 일반인이 많더라도 덮칠 계획이었지만, 저렇게 혼자 서있다면 일이 더 편해진다.

제로스는 자신의 목표물인 이호연이 서있는 곳과 가까운 건물 옥상으로 향했다.

목표물이 멍하니 서있는 걸보며 공격명령을 내리려던 제로스는, 기묘한 감각을 느꼈다.

베타팀은 이미 이호연의 주변에 진을 치고 있는 상태.

자신이 공격명령만 내리면 이호연에게 마법 폭격을 가할 거다.

'방금 그 싸늘함은 뭐지…?'

하지만 마인으로서 꽤 오랜 전투를 해온 그의 감이 소리치고 있었다.

이 작전은 위험했다.

불안 요소를 없애야한다.

상대가 겨우 생도라고하지만, 그는 자신의 감각을 믿었다.

­ 제로스님. 베타가 골목 가까이 왔습니다. 공격합니까?

"… 잠시 대기. 나도 합류하겠다."

제로스는 계획을 철회하고 베타팀에 합류하기로 했다.

천재 마법사인 임솔에게는 S급 마인이 셋이나 붙었지만, 베타팀에는 자신을 제외하면 S급 마인이 없었다.

'확실하게 처리해야 해.'

제로스는 옥상에서 뛰어내린 후 몸을 숨기며 베타팀에 합류했다.

이호연은 무슨 자신감인지 골목길 안으로 직접 걸어오고 있었다.

완벽히 자신의 사거리 안으로 들어온 순간.

제로스는 마법진을 그리며 말했다.

"지금, 공격해라!"

우우웅­!

파아아앙­!

마인 집단이 동시다발적으로 사용하는 마법.

그 위력은 상상 이상이었고, 이호연의 몸은 그대로 연기에 휩싸였다.

'역시 불안감은 착각이었나.'

그 화력에제로스도 안심할 때 즈음.

카드드드드드득ㅡ!

이호연이 있던 위치에서 마력이 폭발했고,베타팀에서 사용한 마법들이 공기를 찢으며 역으로 돌아왔다.

반응할 수 없는 힘과 속도.

압도적인 마력의 해일이 베타팀을 집어삼키고 제로스의 전신을 불태웠다.

"으, 으아아아악!"

마법을 맞음과 동시에 절반이 넘는 마인들이 증발했다.

그 엄청난 위력은 간부인 제로스도 버티기 힘들 정도.

"크읍…!"

하지만 그는 수많은 경험을 가진 S급 마인.

고통에 눈을 찌푸리면서도 쓰러지지 않고 몸을 간수했다.

"이게 무슨…."

우득­ 우드득­

마인 특유의 생명력으로 몸을 복구하던 그는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주변을 확인했다.

주변의 건물은 반파되었고 베타팀이 숨어있던 골목길은 지우개로 지운 것처럼 깔끔하게 지워져 있었다.

심지어 이렇게 된 이유도 알 수 없었으니, 제로스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 마력 농도가 너무 짙어."

비정상적으로 높은 마력의 농도.

이건 에이든과 이호연이 발표한 영역 전개의 특징이었다.

"설마…."

제로스는 보이지 않는 이호연의 모습에 침을 꿀꺽 삼켰다.

저벅. 저벅.

그리고, 다가오는 이호연을 보며 몸을 떨었다.

몸 주변에 떠다니는 푸른색 마력구. 그리고 몸을 잠식하는 것 같은 차가운 마력.

마지막으로 지루해보이는 이호연의 얼굴까지.

제로스는 자신도 모르게 생도에게 두려움을 느꼈다.

"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 거지? 영역 전개의 특징은 확실하게…."

"그러니까 조사를 더 열심히 했어야지. 새끼들아. 솔이랑 좋은 분위기였는데, 잠깐 카페에 갔을 때 덮쳐?"

이호연은 귀찮은 표정을 지으며 제로스에게 걸어갔다.

에이든을 엿 먹이려고 마천궁에 쓸데없는 효과를 넣어놨더니, 이런 착각도 생기는구나.

"크윽… 지금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을 거다. 임솔에게는 S급 마인 셋이 붙었다!"

"… S급 마인이 셋?"

"그, 그래. 너의 스승이 위험하다. 지금 당장 지원을 가지않으면…."

제로스는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고 이호연에게 말을 걸었다.

끼긱­ 끼기긱­

지금 이 순간에도 그는 마인 특유의 회복력으로 몸을 회복하고 있었다.

조금의 시간만 벌 수 있다면 다시 전투를 이어가는 게 가능했다.

하지만 이호연은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에 묻은 먼지를 털어냈다.

"미안한데 그 사람 이기려면 S급 마인이 두 자릿수는 필요할걸. 그리고 재생 다 했으면 일어날래?"

"… 무슨 생각이냐."

제로스는 몸을 일으켰다.

상처를 입었지만 썩어도 준치.

그는 마법사 학회를 책임지는 판데믹의 간부였다.

제대로 싸운다면 자신이 질거라 생각하지않았다.

제로스는 적의를 불태우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아니, 내가 상대가 필요하거든. 근데 너… 마침 마법사구나?"

이호연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마침 상대가 필요했는데, 마법사라면 더 좋지.

*

빠직­ 빠지직­

쿵!

"끄아아아악…!"

"마, 말도 안 돼. S급이 셋이 붙었는데…. 크흡!"

임솔은 바닥에 누워있는 마인들을 보며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양손에는 끌레르 로즈 라떼 두 잔이 들려있었다.

하필 카페에서 나오는 순간 덮쳐지는 바람에 조금 귀찮았지만, 다행히 음료수는 지킬 수 있었다.

"호연이한테 가야 해."

임솔은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자신이 습격당했다면 이호연도 습격을 받았겠지.

아마 안전할거라고 생각하지만, 세상 일은 모르는 법이다.

살짝 불안감을 가지고 이호연이 있던 곳으로 돌아온 임솔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끄, 끄아아악…."

"일어나. 야. 일어나라고."

"제발 그만…. 시키는 건 뭐든 하겠다. 판데믹의 정보나 마법사 학회의 정보도…."

"아니, 일어나서 마법 좀 써보라고. 아직 못 해본 게 많다니까."

"크억…."

"……."

마인으로 보이는 사내는 엎드린 채 흐느끼고 있었고, 자신의 제자는 불량한 표정을 지으며 마인의 옆구리를 발로 차고 있었다.

일어나지 않는 마인을 보며 눈을 찌푸리던 이호연은 느껴지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아, 솔이 누나 왔어요? 역시 상처 하나 없네요. 믿고 있었습니다."

"… 지금 뭐 하고 있어?"

임솔은 반색하는 이호연을 보며 물었다.

뭐가 좋아서 저렇게 상쾌한 표정을 짓고있는걸까.

"오랜만에 실전이라 테스트를 좀 하고 있었어요."

"이, 임솔 마법사님. 제발 구해주십시오. 이 악마 같은 놈이…."

"이 새끼가…. 누가 우리 솔이한테 말 걸라고 했냐?"

"죄, 죄송. 아아악!"

"…."

이호연은 다시 마인을 때리기 시작했고, 임솔은 그걸 보며 눈을 감았다.

'우리 제자가 더위를 먹은 게 분명해.'

물멍인지 뭔지 이상한 소리를 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하는데.

쪽­ 쪼옥­

임솔은 끌레르 로즈 라떼를 한 입 먹고 얼굴을 찌푸렸다.

"… 맛 없잖아."

달콤한 장미향 후에 시원한 민트향이 입 안을 감싸고, 마무리는 따끔할 정도로 맵다.

대체 호연이는 이걸 왜 먹는걸까.

"봐봐. 일어날 수 있네. 그러니까… 음, 이름이 뭐였지? 생각해보니까 안 물어봤네."

"아, 아아으아…."

"어라? 고장난건가. 좀 아쉬운데."

이호연은 쪼그려앉아 제로스의 옆구리를 찌르며 상태를 확인했고, 임솔은 옆에 있던 벤치에 앉아 이호연의 작업이 끝나길 기다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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