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야겜에 빙의했다-469화 (469/648)

〈 469화 〉 469화. 억울한 아이린 (2)

* * *

"귀찮아… 집 밖은 힘들어…."

"릴리아나. 그러면 안 돼. 집 안에만 있으면 살찔걸?"

"나는 서큐버스라 그렇지 않거든. 스카웃한테 물어봐."

"으음…."

남다은은 태평하게 잡담을 나누는 레베카와 릴리아나를 보며 고민을 이어갔다.

눈앞에는 몸을 구속당한 아이린의 모습이 보였다.

… 이게 정말 괜찮은 걸까.

물론 이호연의 걱정을 해결하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지만, 납치는 나쁜 짓이다.

특히 동생을 납치당한 적 있던 남다은에게는 이런 일이 더욱 크게 다가왔다.

'역시 지금이라도 그만두자고 말하는 게… 아니, 그래도 호연이의 일이 걸렸다면 어쩔 수 없나? 하, 하지만 이런 건…."

남다은이 진지한 고민에 빠져있는 동안, 스칼렛은 아이린의 사지를 단단히 묶었다.

"계속 길거리에 있을 순 없으니, 일단 집으로 데려갈까요."

"읍읍. 으으으읍!!!"

"가만히 있으세요. 아이린 님."

스칼렛은 반항하는 아이린을 옆구리에 낀 채 집으로 향했다.

아이린은 어떻게든 몸을 버둥거리려 했지만, 단단하게 묶인 마력 밧줄은 그녀의 마력을 억압했다.

'고문이라도 하려는 건가?'

아이린은 자신을 들고 어딘가로 이동하는 스칼렛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설마 이호연의 연인들에게 이런 일을 당할 줄은 상상도 못했지만, 이렇게 된 이상 각오를 해야 한다.

자신은 아이리스 길드의 1 팀장이다.

고문이나 세뇌에 대한 대비는 이미 끝났다.

만약 자신의 신변에 이상이 생기더라도 세바스 찬이나 한국 지부장. 그리고 엘리스가 눈치채 주겠지.

의문인 것은 그걸 모를리가 없는 스칼렛이 납치의 주범이라는 것과이런 강압적인 수단을 사용하면서도 적의가 없다는 점이다.

아무튼, 자신을 납치한다는 건 그만큼 목적을 이루려는 의지가 강하다는 뜻.

아이린은 앞으로 있을 일에 각오를 다졌다.

… 그리고 바로 옆 집으로 들어가는 스칼렛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 왜 여기로 들어가는 거지?'

이곳은 이호연의 집이다.

애인들이라 이호연의 집에 자유자재로 들락날락거리는 건가?

하지만 자신도 그렇고 엘리스가 이호연의 집에 가는 건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게다가 아이린의 눈썰미로 보기에 집에 들어가는 여자들의 걸음걸이가 너무나 익숙했다.

마치 이 집에서 오래 산 사람 같았다.

'설마 빈 집에서 느꼈던 인기척이 이 여자들인가?'

이호연이 미국에 가있는 동안, 분명히 빈 집이어야 할 이호연의 집에 인기척이 있었다.

그 인기척들이 이 여자들이라면…

'그 미친 놈. 여자를 4명이나 끼고 사는 거야?'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

아무리 바람둥이라지만 집에 여자가 4명이라니. 게다가 모두가 허락하고 있는 관계라니.

… 역시 엘리스를 위해서라면 이호연과 멀어지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호연이 엘리스와 멀어지면 나도 멀어지는 거 아닌가? 그건 조금….'

"으읍."

털썩­

아이린은 상황을 잊고 잠시 고민에 빠졌지만, 이내 자신의 몸이 붕 뜨는 걸 느꼈다.

집에 들어온 스칼렛이 아이린을 거실에 던졌기 때문이다.

"걱정하지 마세요. 아이린 님. 솔직히 말하면 나쁜 짓은 안 하겠습니다."

"읍읍. 읍…."

무언가 이질감을 느낀 아이린은 스칼렛의 얼굴을 뻔히 바라봤다.

'역시 뭔가 이상해.'

고문까지 생각한 아이린이지만 집까지 들어왔는데도 이들에게 적의가 느껴지진 않았다.

스칼렛은 표정을 숨기고 있었고, 스칼렛 뒤에 서있는 3명의 시선에서는 호기심과 걱정이 느껴졌다.

방법이 과격했을 뿐 단순히 정보가 필요했던 걸까?

"스카웃,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내가 매혹이라도 해줘?"

"나도 고문에는 꽤 재주가 있어. 애기 아빠를 만나기 전 과거가 꽤 화려하거든."

"레베카씨, 너무 심한 짓은 안돼요…."

"으음, 그런가? 고문은 태교에 좋지않을지도 몰라."

섬뜩한 대화를 들은 아이린은 자신의 생각을 철회하려다가, 이어지는 말에 의구심을 느꼈다.

"걱정 마세요. 다은 양. 협력만 얻고 이상한 행동은 안 할 거니까요."

"역시 그렇죠…?"

남다은은 조금 안심했다. 역시 스칼렛이 나쁜 짓을 할 것 같진 않았다.

상황을 지켜보던 릴리아나는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라 곧바로 입 밖으로 꺼냈다.

"아니면 스카웃한테 한 것처럼 꼬리를 쓸 수도 있어. 이거 효과가 대단해."

"스칼렛 양한테 꼬리를 쓰다니 그게 무슨 뜻이야?"

"아하. 레베카는 잘 모르는구나? 그게 스카웃을 처음 만났던 날…"

"릴리아나 님. … 그건 말하시면 안 됩니다."

"스카웃, 혹시 질투야? 마음은 이해하지만 정보는 얻어야지. 기껏 데려왔잖아."

"그런 게 아니라, 아이린 님을 건드렸다가는 이호연 님이 슬퍼하실 수도 있으니까요."

"앗. 이 여자도 이호연 여자 친구였어? 생각해보니까 저번에 봤던 여자같넹."

"으응. 나랑 같이 켄타우로스 작전도 했었지."

조용히 대화를 들은 아이린은 흘러가는 상황을 파악했다.

이 여자들은 이호연의 애인이고, 자신이 이호연과 깊은 사이인 것도 알고 있는 모양이다.

'대체 무슨 속셈이지?'

정보를 필요로 하면서도 이호연을 생각하는 걸 보면 이호연에 대한 애정이 엄청난 듯했다.

그럼 자신을 여기까지 끌고온 이유는 뭘까.

톡. 톡.

그때, 아이린의 앞에 쪼그려 앉은 스칼렛이 아이린의 얼굴을 쿡쿡 찔렀다.

그녀는 아이린을 내려다보며 슬픈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아이리스 길드에 있을 때 1 팀장님은 참 무서웠죠. 신입이던 저를 얼마나 혼냈는지…."

"읍으읍! 으으으으읍!"

'무슨 개소리를…!'

어릴 적부터 아이리스 길드 소속이었던 스칼렛이 신입일 때라면 언제인지 기억도 안나는 과거다.

게다가 그때는 자신도 똑같은 길드원이었는데 스칼렛을 혼낼 수 있을 리가.

아이린은 억울함에 몸부림을 쳤지만, 곧 저항을 멈췄다.

자신이 불리한 상황이다. 억지로 입을 열게 하려는 것도 아니고, 일단은 말을 들어봐야겠지.

정보를 주는 건 그다음에 생각해야 한다.

좋지 않은 의도라면 무슨 짓을 해서라도 숨길 생각이었다.

"읍읍. 으읍읍."

아이린을 내려다보던 스칼렛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반항적인 태도가 사라졌다.

자신의 처지를 파악한 것이겠지. 역시 아이리스 길드의 1 팀장. 눈치가 빠르다.

전문가들끼리는 하나하나 설득할 시간에 이렇게 하는 게 일이 잘 진행된다.

"상황 파악이 빨라서 좋네요. 아이린 님."

"으읍. 으브븝."

"뭐, 사실 그렇게 나쁜 짓을 할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스카웃, 그럼 납치도 하면 되는 거 아니야?"

"좋게 해서 안 될 거라는 것도 처음부터 알고 있었으니까요 일의 중요성을 알려주기 위해 약간의 억지는 필요했습니다."

"그, 그렇군요… 다행이네요. 저는 혹시나 범죄를 저지를까 봐 걱정돼서…."

"걱정하지 마세요. 다은 양. 저도 예전 직장 동료에 대한 대우가 있습니다."

"…."

집 앞에서 납치를 자행한 것은 어떤 대우 인걸까.

아이린은 불만이 굉장히 많았지만, 일단은 조용히 있었다.

자신에게 무슨 말을 할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때, 아이린은 입을 막던 마력이 사라지는 걸 느꼈다.

"아이린 님. 일단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 이 미친년들."

아이린은 자신의 입을 막은 마나가 사라지자마자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아이리스 길드의 1팀장인 자신에게 이런 대우는 처음 이었다.

"쟤는 입이 너무 험해. 역시 교육이 필요하다니까."

"제가 말해볼 테니 참으시죠. … 아이린 님. 이렇게 모셔놓고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참 죄송하지만, 저희는 정보가 필요합니다."

"그래. 날 납치한 걸 보면 급한 것 같네. 설마 아이리스 길드 소속이었던 네가 이런 악수를 두다니. 혹시 바람피다가 걸리기라도 한거야?"

아이린은 자신감을 잃지않았다.

그녀들의 대화에서 진심을 느꼈고,자신이 이호연과 깊은 관계인 이상 자신을 건들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혹시 건들더라도 상관없다. 자신에게는 아이리스 길드가 있다.

"그런 게 아닙니다. 저희는 호연 님을 위해서 정보를 구하고 있습니다."

"그럼 날 납치할 이유가 있어?"

"제 상황이 다급하다는 걸 아이린 님에게 알리려면, 그 방법이 제일 좋으니까요."

"…."

아이린은 눈을 찌푸리면서도 스칼렛의 부정하지 못했다.

자신의 신변에 이상이 생기면 아이리스 길드와 '밤의 황제'가 나선다는 걸, 스칼렛은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런 일을 자행했다는 게, 그녀가 다급한 상황에 처해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말하고 있었다.

스칼렛은 아이린의 몸을 묶는 마력 밧줄을 풀고, 고개를 푹 숙였다.

"아이린 님.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검은 기둥과 던전의 이상 현상을 조사하면서, 호연 님에게 이상한 것을 느끼지는 않으셨나요? 사소한 점도 괜찮습니다. 아이린 님의 도움이 필요한 급한 일입니다."

"…."

"표정을 보니 생각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 네 말이 맞긴 해. 하지만, 이렇게 억지로 할 필요는 없었잖아. 차분하게 너희가 가진 의문과 상황을 설명하고 협력을 구했으면 나도 정보를 공유했을 거야."

"죄송합니다. 아이린 님이 어떤 정보를 알고 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저희 정보를 공유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진심을 보여야 아이린 님도 진심을 말해줄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한 시가 급한데 서로 패 뒤집기를 할 시간은 없으니까요."

아이린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스칼렛은 자신의 성격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아마 천천히 상황을 설명했다면 아이린은 스칼렛이 말한 정보를 자신이 아는 정보와 대조하며 최대한 협상을 끌었겠지.

패를 숨기는 건 정보 길드의 딸에게 어쩔 수 없는 습관이다.

"하아…. 너랑 같은 길드 출신인 게 짜증나네."

만약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가 없었으면 대체 어쩔 생각이었던 거지?

혹시 잠깐의 대화로 중요한 게 있다는 걸 확신하고 납치한 건가?

그렇다면 스칼렛의 능력에 박수를 쳐 줄 생각이다.

아이린은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 그냥 기분이 안 좋아 보이던데, 그렇게 다급한 일이었어?"

"아직은 징조입니다. 하지만 언제나 최악을 대비해야 하니까요."

"내가 납치 때문에 기분이 나빠진 건 최악이 아니고?"

"지금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닙니다. 그리고 아이린 님의 몸에 해를 끼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스칼렛이 자신을 납치할 정도라면 확실히 중요한 일이겠지.

만약 쓸데없는 일이라면 그때 화를 내도 늦지않는다.

"얘기할게. 대신, 내 말을 들은 후에는 너희도 아는 정보를 공유해줘."

"예. 약속하겠습니다."

아이린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

검은 기둥과 던전의 이상 현상.

이호연은 그 둘에 이상할 정도로 집착했다.

웬만한 학자보다 깊게 파고들어 조사했고, 관련 논문이 나올 때마다 아이린에게 요구했다.

아이린은 이호연의 이상한 관심에 대해 설명했고, 설명을 들은 레베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검은 기둥이란 던전의 이상 현상… 애기 아빠가 그쪽에 관심이 있는 건 알고 있었는데."

"아이린 님, 다른 수상한 점은 없었나요?"

"하나 더 있어."

아이린의 마음에 걸리는 게 하나 더 있었다.

이것도 그녀가 이호연을 의심하는 큰 이유였다.

"아카데미에 던전의 이상 현상이 생겼을 때… 곧바로 발표하라고 했었어."

"… 그게 무슨 뜻인가요? 곧바로 발표하라니."

"누구보다 빨리 조사팀을 파견하고, 누구보다 빨리 이상 현상에 대해 발표하라고 요구했다는 말이야."

"으음… 애기 아빠가 원래 이상한 소리는 자주 하니까. 그건 잘 모르겠네."

"아니, 그런 게 아니야. 분위기가 달랐어. 굳이 말하자면… 아카데미 주변에 곧 이상 현상 던전이 나타날 걸 확신하는 느낌이었어. 맞아. 검은 기둥이 나타났을 때, 가장 먼저 나한테 알려준 게 이호연이었거든. 산책하다 발견했다곤 하지만, 폐쇄된 공원에서 산책을 하는 건 누가 봐도 이상하잖아."

"검은 기둥…."

스칼렛은 아이린의 말을 듣고 고민에 빠졌다.

여러 상황이 이호연이 큰 사건을 꾸미고 있다는 걸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동기를 알 수가 없었다.

조용히 대화를 듣던 남다은은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했다.

"나올 걸 알고 있었다…? 그럼 호연이가 테러라도 하려는 걸까요?"

"혹시 세상에 자기 여자들 빼고 전부 처리하려는 건가?"

"릴리아나 씨. 호연이가 그럴 리가 없어요."

"… 네가 '테러라도 하려는 걸까요?' 라고 물어봤잖아. 내 시청자였다면 강퇴했을거야."

한편 릴리아나는 딱히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호연이 하는 행동은 원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인큐버스의 피가 흐르는 것 같은 성욕만 봐도 평범한 인간이 아닌 건 확실했으니까.

다만 아예 인간을 벗어난다면 잡아줘야겠지.

"애기 아빠가 나쁜 사람은 아니잖아. 그런 건 아닐거야. 그래도 가짜 던전 마법진에 뭐가 있는 건 확실해."

"네. 아카데미에 무언가 하려는 것 같은데… 그 이유를 모르겠네요. 자세한 건 더 조사해봐야겠지만요."

"릴리아나의 말대로, 정말 불만이라도 생긴걸까."

스칼렛과 레베카는 이호연을 걱정하며 말을 이었고, 아이린은 자신이 모르는 단어들에 반응했다.

가짜 던전이라니? 그리고 아까부터 신경쓰이는 게 있었다.

자신이 정보를 줬으니 이제는 받을 차례였다.

"잠시만. 이제 나도 설명해줬으면 좋겠는데. 가짜 던전이라는 게 뭐야? 그리고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애기 아빠라는 게 이호연이야? 그 자식 설마 유부남인 거야?"

"당연하지. 물론 굳이따지면 아직 예정이지만,편하게애기아빠라고부르고있는거야."

"예, 예정?"

"그건 제가 설명해드리겠습니다.아이린님."

스칼렛은 눈을 크게 뜬 아이린을 보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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