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야겜에 빙의했다-479화 (479/648)

〈 479화 〉 479화. 임솔 (5)

* * *

임솔은 손을 뻗었다.

웅장하게 떠오르는 오망성의 마력. 그 사이로 존재감을 과시하는 빛기둥.

오망성진을 그리느라 사용한 마력때문에 이제는 2개의 빛기둥 밖에 남지 않았지만, 그것들은 여전히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자신이 고안한 오리지널 중에서도 최상위권인 마법.

불타오르는 거대한 오망성은 제멋대로 날뛰며 자신의 마력에 호응했다.

하지만, 임솔의 표정은 서서히 굳기 시작했다.

"… 어째서?"

그건 마법사로 살아온 임솔의 직관이었다.

임솔은 이호연이 소환한 태양과 오망성이 충돌함과 동시에 자신의 패배를 직감했다.

본래 마법사의 전투는 공격과 방어의 반복.

공격은 누구나 가능하지만, 방어는 마법사의 수준에 따라 쉴드와 역산으로 나뉜다.

수준급 마법사일수록 상대의 마법을 역산한다. 쉴드보다는 역산이 훨씬 마력을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임솔은 그럴 수 없었다.

마천궁 내부에서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임솔은 초단위로 마력을 변환했다.

마법진의 구성부터 마력의 강도, 술사의 호흡까지.

그 모든 요소를 조절하면서 상대방의 마력에 대응하는 건 인간의 인지능력을 뛰어넘는 일.

임솔은 이호연의 마법을 막기 위해 쉴드를 펼치거나 역산을 하지 않았다.

대신 정면으로 분쇄하고, 깨뜨렸다.

다행히 임솔은 앞선 몇 번의 대련으로 이호연의 마력을 전부 파악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마천궁 내부에서도 이호연의 마법을 효율적으로 상대할 수 있었다.

압도적인 마력으로 이호연의 마력을 먹어치우고, 부쉈다.

그 작전은 성공이었다. 실제로 이호연은 육탄으로 돌격하기도 했고, 어깨에 상처도 생겼다.

하지만 이호연이 끝까지 아껴놓은 지옥의 마력은 달랐다.

임솔의 오망성진은 이호연의 마력에 대응할 수 있었지만, 지옥의 마력을 머금은 이클립스는 막을 수 없었다.

"아…."

임솔의 입에서 탄식이 새어나온다.

검붉은 태양이 압도적인 힘으로 전진하며 오망성을 먹어치웠다.

임솔이 평생 쌓아온 마법 체계로도 대응할 수 없는 마법.

점점 다가오는 불길한 마력은 임솔이 가진 자존심을 다시 자극했다.

"아직… 아직 안 끝났어."

눈을 부릅뜬 임솔은 입술을 깨물며 이호연의 마법을 눈으로 훑었다.

'내부에서 응축한 불꽃. 그리고 폭발. 파괴력은 강하지만 단순해.'

공간 자체를 무너뜨릴 정도로 강한 파괴력. 역산할 수 있다면 저 마력을 자신이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단순했다.

다만 태양을 구성하는 불길한 마력을, 지금의 임솔은 해석할 수 없었다.

저 불길한 마력은 적어도 몇 주는 연구에 매달려야 할 정도로 이질적이었다.

'이게 마지막이야.'

이호연의 집중력에 한계가 온 것은 임솔도 알고 있었다.

저 마법만 막아낸다면, 승리는 확정이나 마찬가지.

"압도적인 파괴력…. 응. 나도 진심으로 갈 거니까."

검은 태양을 향해 손을 뻗은 임솔이 중얼거렸다.

제자의 사랑이 담긴 마법이니, 자신의 진심으로 맞이해야 한다.

달라진 건 없다.

스승으로서 제자의 마지막 마법에 경의를 표하며 최선을 다해 부딪혀줄 생각이었다.

물론 그 마법이 생각보다 강하지만… 그래 봤자 마법일 뿐.

검은 태양이 눈앞까지 다가온 절망적인 상황에도, 임솔은 자신이 마법으로 밀릴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천재 마법사 임솔으로서의 오만.

…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아마겟돈."

임솔의 눈앞에 거대한 기운이 모아진다.

검은 태양에 맞서는 거대한 원소 덩어리.

임솔이 구사할 수 있는 마법 중 가장 파괴에 집중한 마력이, 대련장에 등장했다.

빠직­ 빠지직­

이클립스와 아마겟돈.

거대한 두 마법의 마력이 공명하며 주변의 공기가 떨리기 시작했다.

삐. 삐. 삐. 삐. 삐.

삐비비비비빅.

그와 동시에 대련장의 마법진이 진동한다.

대련은 멈춰야 한다는 긴급 정지 신호.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대련장 내부에는 마력을 정지하는 마법진도 설치되어 있었다.

하지만, 지금 대련장에 있는 둘은 임솔과 이호연.

겨우 마법진 하나로는 천재 마법사 두 명의 마력을 막을 수 없었다.

'… 괜찮은 건가.'

이호연은 침을 꿀꺽 삼켰다.

눈앞에 나타난 거대한 마력 덩어리는 누가 봐도 위험해 보였다.

과연 자신의 이클립스와 충돌한다면, 이 대련장이 버틸 수 있을까.

'절대 못 버티지.'

대련장을 설계한 사람이 마왕이 아니라면 버틸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 승부를 낼 수 있을까.

더 이상 비밀 병기를 만들기에는 이호연도 지쳤다.

이호연은 룬의 결계와 마천궁을 최소화하며 그 마력으로 감정 증폭을 강하게 끌어올렸다.

"솔이 교수님. … 갑니다!"

"막을 수 있으면 막아봐…!"

마지막 투지를 불태운다.

서서히 접촉하는 이클립스와 아마겟돈.

거기서 나오는 충격파는 이호연의 상상 이상이었다.

'… 미안해요. 레베카 씨. 아영 씨.'

그 둘이 어떻게든 해주지 않을까.

이호연은 검은 태양이 색색의 덩어리를 빨아들이는 걸 보며, 충격파에 휩쓸렸다.

*

"…."

시야가 기울었다.

제대로 서 있을 수가 없었고, 마력을 움직이는 게 불가능했다.

마치 전신 마취를 당한 것 같았다. 자신의 몸을 조종할 수가 없었다.

털썩.

결국 바닥에 쓰러진 임솔은, 눈을 감았다.

모든 마력을 쏟아부은 아마겟돈은 검은 태양에 삼켜졌다.

임솔이 마천궁 내부에 있는 이상 그녀의 마력이 삼켜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대처법을 잘못 생각한걸까.

아니, 대처는 완벽했다.

'… 내가 방심했나?'

제자의 성장이 너무 기뻤다. 그래서 마지막 마법을 확실하게 박살내고 싶었다.

마지막까지 집중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임솔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이호연은 결정적인 순간까지 지옥의 마력을 아꼈다.

모든 건 계획되어 있었다. 어쩌면 어깨에 상처를 입는 것 까지도.

실전에서는 결과를 제외하면 아무것도 중요하지않다.

마지막 순간에 이호연이 마력을 거두지않았다면, 자신은 그대로 죽었겠지.

너무나 완벽한 패배였다.

저벅. 저벅.

누군가가 가까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

임솔은 천천히 눈을 떴다.

"1승 19패였죠? 다행히 20패가 되기 전에 이겼네요."

"… 처음부터 노렸던 거야? 내가 방심하는 것까지?"

"네. 교수 님 성격은 제가 잘 아니까요. 아, 하지만 어깨에 상처까지 의도한 건 아니에요. 이건 진짜 위험했거든요."

이호연은 주변을 둘러봤다.

단단하게 펼쳐진 룬의 결계.

역시 레베카 씨.

자신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는다.

"… 완벽하게 졌네."

"이제 솔이라고 부를게요. 솔아."

"큭. 마음대로 해."

임솔은 미소를 짓는 이호연을 보며 마음이 편안해졌다.

솔이라는 호칭이 뭐가 중요한 건 지는 모르겠지만, 제자가 좋다면 좋다.

주르륵­

임솔의 입에서 피가 흘러내린다.

역시 너무 무리한 걸까. 마지막에 그냥 패배를 인정했어야 했는데.

제자의 진심을 받고싶었던 마음이 너무 컸다.

이호연이 직전에 마력을 회수했지만, 임솔에게 충격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털썩.

의식을 잃은 임솔이 대련장 바닥에 쓰러졌다.

"… 어? 교수님?"

미소를 지운 이호연은 곧바로 임솔에게 다가갔다.

혹시나 목숨에 지장이 생긴다면 자기 자신을 용서할 수 없을 터.

휘청.

하지만, 자신의 발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오랜만에 느끼는 마나 탈진 현상. 블러드 비트의 반동과 마천궁을 오래 유지한 두통까지.

몸의 긴장이 풀리자마자 전투로 쌓인 모든 반동이 찾아왔다.

­ 소, 솔아…! 여, 여보. 아니. 아, 안돼! 꺄악!

익숙한 목소리와 다급한 발소리가 귀에 들리고, 이호연의 시야는 그대로 암전 되었다.

*

"…."

"…."

몇 천명이 들어가 있는 대련장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어른, 아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임솔과 이호연의 대련에 집중하고 있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훈련이었다.

오전에는 교수가 생도를 가르치며 화기애애하게 진행된 대련도 많았다.

그런데, 저 둘은 아니었다.

"호, 호연아. 안돼. 왜 그러는거야."

"대박…. 대박이야. 처음부터 이 정도라면 충분히 정기적인 행사로 만들 수 있겠어!"

"이사장 님! 지금 그게 문제에요? 미친 거 아니야?! 빨리 말려야 될 거 아니에요!"

"아, 아악. 수린아. 미안하다. 잠시만, 이호연 생도의 표정을 봐! 대련에 진심인 건 저 아이야!"

"그건 저도 알고 있지만…!"

실력에 자신이 있는 사람일수록 점점 눈을 크게 뜨며 대련을 지켜봤다.

방금 대련을 마친 루시와 루미도 마찬가지. 대기실에서 나와 관객석에 앉아있던 그녀들은 차원이 다른 대련에 입을 오물거렸다.

"호연 씨…."

"루, 루미. 내가 했던 건 뭐였지?"

"루시. 괘, 괜찮아. 호연 씨에게 배우면 우리도 분명…."

다른 생도들은 눈앞에서 일어나는 대련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임솔이 강한 건 알고 있었다.

마법사가 아니더라도 천재 마법사 임솔은 유명한 존재다.

"… 이호연이 저 정도였냐?"

"강하다고는 했었지. 생도 수준을 벗어났다고도 했었고."

"그건 알겠는데 저게 말이 되냐고."

빠르게 속보를 써야 할 기자들도 마찬가지.

속보를 작성하던 기자들도 대련이 진행될수록 키보드에 손을 올려놓은 채 멍하니 대련에 집중했다.

지금 이 대련을 놓치면 다시 볼 수 없다는 것을, 그들도 알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이거 실전 대련 훈련 아니었어? 왜 저렇게 죽일 듯이…."

"… 언니. 나 머리가 아파. 아읏…."

"에, 엘리스. 괜찮아?"

엘리스는 지끈거리는 두통에 아이린에게 쓰러지듯이 안겼다.

한 달간 엄청난 고생을 하며 늘어난 실력에 만족하고 있었는데, 지금 대련장에서 일어나는 대련을 보면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

저걸 따라잡으려면 대체 몇 년이나 걸릴까.

"…… 어, 어라. 큰일 난 것 같은데."

아이린은 엘리스를 끌어안은 채 끝나가는 대련에 집중했다.

시종일관 대련에서 밀리던 이호연이 꺼낸 마법에대련장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임솔의 마법이 무너지고, 임솔도 마지막 승부수를 꺼낸다.

지직. 지지지직­

대련장 바깥에서도 느낄 수 있는 진동.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심했다.

"… 언니. 마법진이 위험해!"

"언니도 알아. 내려가자!"

임솔이 소환한 거대한 원소 덩어리와 검은 태양이 부딪친다.

충돌에서 나오는 거대한 에너지는 대련장 마법진이 버틸 수 있는 한도를 넘어섰다.

대련장 주변에 있는 마법사들이 마력을 불어넣고 있었지만, 그 정도로는 역부족이었다.

아이린과 엘리스는 작은 도움이라도 더하기 위해 대련장 주변으로 뛰어내렸다.

하지만 마법진이 부서지기 직전.

대련장을 중심으로 두꺼운 결계가 펼쳐졌다.

아이린은 그 결계를 보자마자 눈치챘다.

'레베카.'

그녀가 룬의 결계를 펼쳤다.

아이린은 곧바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이해하고 대련장의 마법사들을 지휘했다.

"아이리스 길드의 1 팀장. 아이린입니다! 제가 결계를 펼쳤으니 모두 지원하세요."

"아, 아이린 님!"

"집중해요! 충분히 막아낼 수 있습니다."

레베카의 신원은 숨겨야 하는 상태.

가짜 신분이 있다고 하지만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다.

아이린은 대련장에 있던 마법사들을 지휘하며 거대한 마력 충돌의 여파를 막아냈다.

다행히 이호연이 마력을 회수했기에 더 큰 소동은 일어나지 않았다.

잠시 후.

아이린은 대련장에 서있는 이호연을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저건 괴물이잖아.'

임솔이 대련 내내 보여준 마법은 아이린이 보기에도 감탄만 나왔다.

의심할 여지가 없는 천재 마법사의 실력.

하지만 승자는 이호연이었다.

처음 봤을 때부터 어이가 없는 바람둥이였지만, 마법사로서의 능력은 진짜다.

'… 저 정도면 아빠가 먼저 엘리스를 시집보내려고 하겠는데.'

그 딸바보인 아버지도 인정할만한 실력.

하아.

응급 의료팀이 대련장으로 올라가는 걸 본 아이린은 한숨을 쉬며 관객석으로 돌아왔다.

이호연의 상태가 걱정되긴 했지만, 엘리스가 강당을 빠져나가려 했기 때문이다.

"언니. 가자."

"응? 호연이한테 안 가봐도 돼?"

"… 가긴 뭘 가. 내 대기실에 오지도 않았는데."

아이린은 삐진 티를 내는 동생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대기실에서 이호연이 없다고 기분이 나빠했는데, 그걸 아직도 기억하는 모양이다.

엘리스를 달래주기 위해 그 뒤를 쫓으려던 아이린은, 순간적으로 기분 나쁜 마력을 느꼈다.

"…."

관객석의 출입구.

관객의 대부분은 대련의 여운에 빠져있었지만, 한 남자가 출입구로 빠져나가는 뒷모습이 보였다.

­ 치직. 치지직.

아이린은 스마트 워치를 조작했다.

대강당 주변에는 빅토리아 아카데미와 협업중인 아이리스 길드원들이 있었다.

­ 네. 아이린 님. 한국 지부장 강효린입니다.

­ 응. 혹시 이호연의 대련이 있는 동안 대강당에 침입자는 없었지? 수상한 사람이나.

­ 허락받지 않은 생명체는 개미 하나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 … 알겠어.

아이린은 스마트 워치를 종료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역시 착각인가?"

아이린은 스칼렛을 덮친 남자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확신할 수 없었다.

어쩌면 임솔과 이호연의 마나와 접촉하며 잠시 이상현상이 일어났을지도 모르지.

"언니. 나 먼저 갈게."

"으응. 같이 가자. 엘리스. 그래도 나중에 병문안은 갈꺼지?"

"… 몰라."

아이린은 엘리스의 뒤를 따라가며 고민을 지워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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