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 랭커 한민국
스무 명의 인원으로 진행되는 레이드가 시작되었다.
실력은 의심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뛰어나지만 콩이라는 별명으로 더욱 유명한 랭커 민국이 우라디우스 공략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많은 게이머들이 실시간으로 중계되고 있는 민국의 플레이를 보기 위해 핸드폰을 이용해 가상현실에 접속했다.
▶ 과연 한민국! 오늘 콩라인 탈출 하나요?!
▶ 솔직히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랭커인 만큼 민국이가 우라질 잡았으면 좋겠는데…. 그래도 콩라인 탈출 못하면 더 좋겠다.
▶ 너어는 진짜 나쁜 녀석이다.
▶ 콩이 몇 퍼까지 봤죠?
▶ 4 %인가? 3 % 요. 잘하면 오늘 잡을 듯.
▶ 응. 아니야. 못 잡아. 부활석도 서른 개밖에 없다며?
방송을 보는 이들의 수많은 글들이 채팅창을 가득 메웠다. 그러는 동안에도 민국의 소녀들은 민국의 지시 아래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우라디우스를 공격했다.
하지만 우라디우스는 만만한 녀석이 아니었다. 홀로 전 세계 게이머들의 도전을 반 년 넘게 버티고 있다는 것만 봐도 우라디우스의 끔찍한 난이도를 설명할 수 있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우라디우스의 악랄한 패턴과 공격에 민국의 공격대가 계속해서 전멸했다. 그리고 민국은 이러한 결과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빠르게 피드백을 하며 소녀들을 다독였다.
“아홉 시. 쫄 등장! 4팀이 처리해!”
“광역 공격 30 초 전! 2 번 생존기 팀 준비! 헤나! 쿨 타임 계산 잘해야 돼!”
“어?! 광역 데미지 밀린다! 정신 차려! 힐러들 좀 더 힐 빡세게! 근거리 딜러는 쫄 부터 정리하고 원거리는 보스 공격!”
레이드가 진행될수록 민국의 오더도 점점 더 빨라지기 시작했다. 보스의 복잡한 패턴을 예상하고 계산을 하느라 입이 쉴 틈이 없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민국은 팀의 힐러라는 자신의 임무를 망각하지 않으며, 정확하게 소녀들에게 힐을 넣어주고 있었다.
계속된 레이드로 피로가 쌓인 소녀들이 한두 번씩 실수를 하는 모습에 반해 민국은 오더를 하면서도 실수를 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그러한 민국의 활약에 방송을 보는 유저들이 감탄을 토했다.
▶ 와! 슈퍼컴이 따로 없네. 거기에 힐량도 두 번째로 높아. 저게 사람인가? 기계보다 더 잘해.
▶ 진짜 한민국 머릿속 한 번 보고 싶다. 어떻게 저 패턴을 다 기억하고 있는 거지?
▶ 저건 기억이 아니라 경험에서 나오는 짬임.
▶ 나라면 힐은커녕 오더 내리다가 입 꼬였다.
생명력이 줄어들수록 우라디우스의 공격 패턴은 시시각각으로 바뀌었다. 그럴 때 마다 전투를 진행하는 소녀들이 하나, 둘씩 쓰러졌다.
‘그래도 나쁘지 않아.’
우라디우스의 남은 생명력은 30 % 가량. 자신을 포함한 스무 명의 인원 중 벌써 다섯이 쓰러진 상황이었지만, 민국은 분위기가 괜찮다고 판단했다. 어차피 죽은 이들은 오늘따라 집중을 잘 못하던 소녀들이었다. 계속해서 아군에게 부담을 줄 바에는 차라리 지금처럼 죽어 있는 게 나았다.
“25 % 광역 공격 패턴! 1 번 생존기 팀. 아! 한 명 죽었지. 회복 기사의 보호의 오라! 이번 타임에 올려!”
민국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죽은 소녀들의 스킬들이 아쉽게 느껴졌지만, 어떻게든 돌려막기로 꾸역꾸역 막아내면 십 여분은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힐러들의 마나도 충분했다.
“집중! 좀 더 집중해! 지구를 지켜야 한다는 우리들의 사명을 잊지 마!”
전투는 점점 더 스펙타클하게 진행되었다.
무시무시한 위력의 스킬들이 화면을 가득 메웠다. 스치기만 해도 생명력이 반이 넘게 사라지는 위력이었다.
위기상황이 계속해서 몰려왔지만 민국의 소녀들은 우라디우스의 강력한 공격을 기계처럼 움직이며 피하거나 막아냈다. 특히나 연속으로 이어지는 광역 공격을 민국을 포함한 힐러들이 자신들의 마나를 모조리 태워가며 버틴 장면은 이번 전투 중에서 가장 압권이라 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어느덧 우라디우스의 생명력이 한 자리 수로 떨어졌다.
“9 %!!! 이제부터가 시작이야! 흥분하지 말고 오더대로 움직여!”
민국은 마음을 다잡았다. 지금부터가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다. 흥분에 몸을 맡겼다가는 이제까지의 고생이 물거품이 될 수 있었다. 다행히 민국과 함께하는 소녀들은 이와 비슷한 경험이 수도 없이 많은 베테랑들이었다.
▶ 어? 어? 잡나요? 잡나요?
▶ 아직 모름. 우라질 새끼는 10 % 이하에서 더 미치는 괴물임.
슬슬 공략의 각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방송을 지켜보던 이들도 흥분으로 가만히 있지 못했다.
하지만 민국을 포함해 전투를 벌이고 있는 열네 명의 소녀들은 침착했다. 소녀들은 우라디우스의 패턴이 바뀔 때 마다 민국의 지시에 따라 정확하고 빠르게 움직였다. 보스의 생명력이 얼마 없다고 해서 무턱대고 공세를 취하지도 않았다.
▶ 으아니! 똑같은 헤나인데 왜 민국이네 헤나랑 내 헤나는 움직임이 다른 거죠?
▶ 애정이 부족해서 그런 겁니다. 레이드의 경험치도 다르죠. 노력하세요.
그런 소녀들의 일사불란한 움직임에 여러 게이머들이 부러움과 감탄을 토해냈다.
“2…! 1!!!”
그리고 우라디우스의 생명력이 눈금만큼 남은 모습을 본 민국이 주먹을 쥔 손을 번쩍 위로 들어 올렸다. 이어서 튀어나오는 민국의 오더는 이제까지의 침착함과는 거리가 멀어 있었다.
“극디이이이이일!!! 마무리이이이이!!! 씨발! 콩라인 탈출이다!!!”
* * *
World First Kill!
》 대한민국의 유저 한민국이 카오스 게이트의 ‘우라디우스’ 공략에 성공했습니다.
불이 꺼진 조용한 방에서 민국은 가만히 눈앞의 메시지를 바라보았다. 몇 시간 전, 우라디우스 공략에 성공하고 찍은 스크린 샷이었다.
“드디어 달성했네.”
월드 퍼스트 킬. 전 세계에서 가장 처음으로 레이드에 성공한 GGW의 대장에게 주어지는 명예로운 호칭.
이것을 달성하기 위해 민국은 이십대의 반 이상을 GGW에 투자했다. 그리고 결국 오늘 월퍼킬을 달성했다. 그렇게 한참동안 스크린 샷을 보던 민국은 갑자기 느껴지는 탈력감에 드러눕듯 의자에 몸을 기댔다.
“그러면 이제 슬슬 정리해야겠네.”
GGW내에서는 그 누구보다도 유명한 랭커였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저 그런 백수에 불과했다. 그것도 처음에는 가볍게 시작했다가 월퍼킬을 달성하겠다는 목표 때문에 회사까지 그만둔 백수. 덕분에 부모님에게 얼마나 많은 욕을 들었던가?
하지만 그렇게 간절히 원하던 목표도 달성한 지금, 이제부터는 게임이 아닌 현실을 살아야 할 때였다. 겸사겸사 효도도 하고 말이다.
“그래도 게임 아이템을 정리하면 돈은 좀 나오겠네.”
소녀들의 장비는 남겨둘 생각이었다. 이제까지 사랑과 애정으로 키운 그녀들의 장비를 현금으로 환산할 수는 없었다. 어차피 소녀들이 착용한 아이템은 그녀들에게 귀속이 된 터라 뺄 수도 없었다.
GGW 거래소를 이용해 잡템과 보유한 골드만 정리하더라도 최소 천만 원 이상은 나올 테니 취직자리를 구할 때 까지는 크게 돈 문제로 허덕일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게 민국이 생각을 정리하며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던 도중이었다.
컴퓨터 메신저를 통해 메시지가 하나 날아왔다. 익숙한 닉네임이었다.
카오스 ▶ 이야!!! 월퍼킬 추카추카! 드디어 콩라인 탈출했네요? 칠전팔기의 끈질긴 정신! 기분이 어때요?
대화를 건 이는 카오스라는 아이디를 쓰는 유저였다.
지금은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 게임을 하지 않고 있다고 알고 있지만, 한 때는 GGW의 대한민국 랭커 중 한 명으로 이름을 날리던 게이머였다. 당연히 민국만큼이나 GGW를 사랑하는 팬이었다.
한민국 ▶ 칠전팔기는 무슨. 천 번 넘게 도전했어요. 날아간 부활석만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어쨌든 기분은 째집니다. 월퍼킬!!! 이번에 무조건 잡아야 했는데 후! 이제는 콩 소리 안 들어도 됩니다. 뭐, 앞으로는 들을 일도 없겠지만요.
카오스 ▶ ㅋㅋㅋㅋㅋ 어디 가세요? 어째 뉘앙스가 이상한데?
한민국 ▶ 아쉽지만 이제 현실 게이트 탑니다ㅋㅋㅋ 월퍼킬도 달성했으니 이제 효도해야죠.
잠시 대화가 끊겼다. 게임을 그만 두겠다는 말에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카오스 ▶ 헐? 레알? 이제 랭커 콩 한민국을 못 보는 거임? 우리들의 사랑스러운 소녀들이 울 텐데? 지구는 또 어쩌고?!
한민국 ▶ 힘들지만 미련을 버리고 마음을 잡고 있습니다. 후. 애정을 들여 성장시킨 소녀들을 생각하면 정말 게임 못 접을 것 같기는 한데…. 그래도 게임은 게임으로 끝내야죠. 지구는 저 말고도 다른 게이머들이 지켜줄 겁니다. 괜찮아요. 앞으로 업데이트가 없는 반 년 이상은 무사하지 않겠습니까?
카오스 ▶ …안타깝네요. 소녀들이 엄청 슬퍼할 듯. 저도 슬프네요.
카오스의 채팅을 보며 민국도 공감했다. 짧게는 몇 달, 길게는 몇 년을 함께한 소녀들이었다.
비록 인공지능을 탑재한 0 과 1 에 불과한 그래픽이었지만, 현실보다 더욱 현실같은 소녀들의 모습에 민국은 GGW의 영웅들에게 엄청난 애정을 쏟았었다.
채팅이지만 현실과 관련된 민국의 진지함을 느낀 것일까? 이야기는 계속됐지만 카오스는 민국이 게임을 접는 것을 만류하지 않았다. 간간히 아쉽다는 말을 몇 번 꺼낼 뿐이었다. 그렇게 잡스러운 대화가 오갈 때였다.
카오스 ▶ GGW와 같은 배경의 세계가 있다면 좋지 않겠어요? 그러면 민국님도 영웅이 될 수 있잖아요.
한민국 ▶ ? 막상 그런 세계가 있다면 끔찍하지 않겠습니까? 시도 때도 없이 괴물들이 쳐들어오는 세계라니…. 게다가 죽으면 어떻게 해요? 거기서 부활석 쓰는 거임? ㅋㅋㅋ
카오스 ▶ 그렇죠. 하지만 민국님이라면 부활석을 쓰지 않고도 괴물들을 때려잡을 수 있잖아요?
한민국 ▶ 설마요. 저 우라디우스 잡는 데 부활석 천 개 넘게 쓴 거 모르세요?
우라디우스의 공략에 들어간 랭커치고는 굉장히 적게 쓴 편이었다. 장 린 하우의 경우 현질까지 동원해서 사용한 부활석이 오천 개가 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퍼킬을 달성하지 못했다.
카오스 ▶ 어휴. 그런 능력자가 GGW를 접다니! 우리의 소녀들이 얼마나 사랑스러운데! 방송으로 돈을 벌 수 있다면 민국님이 현실게이트를 타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한민국 ▶ 그래봤자 성 상품화. 그리고 애들 교육상 게임은 나쁜 것. 소녀들은 현실 게이트를 탈 수 없습니다.
그런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정부에서 막았다. GGW에 등장하는 영웅들이 소녀로만 구성되어 있다는 게 그 이유였다.
카오스 ▶ 그 놈의 성 상품화는 진짜…. 리버스 패치를 다운받으면 소녀들을 전부 소년들로 바꿀 수도 있잖아요? 여성 유저들은 다 그렇게 해서 게임을 즐기던데? 그리고 그 놈의 교육은 인성이나 가르칠 것이지.
민국과 카오스는 GGW의 안타까운 대우에 대해서도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정치, 경제, 스포츠를 지나 다시 GGW로 돌아왔다.
한민국 ▶ 카오스님이 말씀하신 대로 제가 GGW를 배경으로 한 세계에 살게 된다면 레이드는 실컷 할 수 있겠네요. 지금이야 현실 때문에 어쩔 수 없다지만, 솔직히 레이드 하는 거 정말 재미있고 자신 있거든요.
카오스 ▶ 맞아요. 민국님의 재능은 진짜 엄청남. 그렇게 정확하게 상황 파악하고 오더 내리는 거 아무나 하는 거 아닙니다. 진짜 보고 싶네요. 괴물들의 손에서 지구를 지키는 한민국. 월드 스타 한민국!
한민국 ▶ 에헴. ㅋㅋㅋㅋㅋ 참고로 제 드림클럽은 맨유입니다. 프로라면 맨유죠. 맨유 유니폼 입고 싸인 해드리겠습니다.
카오스 ▶ 으아니? 아직도 맹구 팬이 있다니! 맹구 강등 안됐습니까?
한민국 ▶ 맹구 아니라 맨유. 그래도 아직 1 부 리그입니다. 뭐, 강등권이긴 하지만…. 하아. 희망이 안 보여요 ㅠㅠ.
자신이 응원하는 팀의 성적을 떠올리며 민국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카오스 ▶ 그러면 가보는 겁니까? GGW처럼 레이드를 하러?
뭐랄까? 이상한 곳에서 끈질긴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한민국 ▶ 하하. 알겠습니다. 현실만 살 수 있다면 평생 GGW를 플레이하는 게 문제겠어요?
하지만 그것을 끝으로 카오스의 채팅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자신이 보낸 메시지를 봤음에도 불구하고 대화가 이어지지 않는 것을 보면 갑자기 일이 생긴 모양이었다. 말투를 보면 성인은 되어 보이니 몰래 컴퓨터를 하다가 와이프한테 걸렸을 지도.
“진짜 와이프가 있으면 엄청난 기만자인데? 누구는 여자 친구도 없는데…”
반사적으로 민국은 바탕화면의 내문서 폴더를 바라보았다. 그 안의 직박구리 폴더에는 모니터로만 볼 수 있는 자신의 여자 친구들이 여럿 있었다.
잠시 모니터의 여자 친구들을 만날까 하던 민국은 곧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는 침대에 누웠다. 우라디우스 레이드에 정신을 집중한 까닭에 긴장이 풀리자 피곤이 급격하게 몰려오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민국이 침대 누운 지 삼 분도 되지 않아 코고는 소리가 방 안에 울리기 시작했다.
카오스 ▶ 똑똑. 계십니까?
그렇게 민국이 잠든 지 한 시간이 지났을까?
카오스 ▶ 자요? 이런. 민국님이 원하시는대로 제가 GGW와 비슷한 배경을 한 세계들을 찾아 봤습니다. GGW처럼 민국님의 능력을 필요로 하는 세계가 많더라고요. 민국님이 적응하기 쉽게 도우미를 추가해봤는데, 어떨지 잘 모르겠네요. 그러니 지금처럼 다시 힘내 주세요. 수호자 한민국님.
잠들기 전 민국이 기다리던 카오스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그러나 답을 해야 할 민국은 곤히 잠에 빠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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