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 랭커 한민국
“다들 팀을 나간 루니아를 대신해서 내가 오더를 내리기로 한 것은 알고 있지?”
“그렇긴 한데…. 너 오더 할 줄 알아?”
린샤가 머뭇거리며 물었다. 오더를 내리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괴물들과 전투를 하면서 아군의 상태와 움직임을 모두 파악해 머릿속에 집어넣고 있어야 했고, 또한 괴물들의 공격 패턴과 특수 공격을 예측하고 그에 맞춰서 대응해야 했다. 그게 안되면 헛되이 목숨만 잃을 뿐이었다.
괜히 영웅 학교를 졸업한 인재 중에서도 뛰어난 성적을 올린 영웅만이 공대장으로 활동하는 게 아니었다.
“어느 정도는.”
그런 린샤의 말에 민국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세계의 레이드는 처음이었지만, 경험이라는 게 있다. 20 등급으로 판정받은 초 괴물 우라디우스도 아니고 3 등급 몬스터의 리딩 정도는 라면을 먹으면서도 할 수 있었다.
더욱이 공격대도 아닌 5 인 팀이었다. 인원이 적을수록 신경을 써야하는 게 줄어드는 만큼 더욱 쉽게 오더를 내릴 수 있었다. 적어도 이 자리에 있는 이들보다는 훨씬 나을 거라는 게 민국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불안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린샤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애슐린이 민국이 들고 있는 지팡이를 보다가 말했다.
“클래스 체인지도 했다며? 힐러를 보면서 리딩이 가능하겠어?”
“적어도 원거리 딜러를 했을 때 보다는 나을 거야. 그리고 부활석도 충분히 챙겼어.”
“하아…. 그렇게까지 자신한다면 한 번 믿어봐야 겠네.”
애슐린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만약 급조된 레이드 팀이었다면 여기서 팀을 깨고 해산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은 앞으로 일주일 뒤에 있을 레이드 자격시험을 통과하려는 이들. 만약 이번에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다면 일 년이라는 시간을 허송세월로 보내야 했다. 그렇다고 당장 다른 팀을 구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처한 상황이 애매했기에 린샤와 애슐린은 민국이 공대장이 되는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불안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믿고 나가기로 결정을 한 것이다.
더불어 민국이 구했다는 부활석의 존재가 그녀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큰 몫을 차지했다. 부활석만 있다면 괴물들의 손에 비명횡사 하더라도 마나의 힘을 빌어 다시 살아날 수 있었다.
“그러면 시간도 없는데 바로 던전으로 갈까?”
슬슬 의견이 정리되는 모습에 현아가 몸을 일으켰다. 그 모습을 보며 민국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상황이 급한 것은 알겠지만, 아직 모든 것이 결정된 게 아니었다.
“잠시만. 어디를 갈지 정하지 않았잖아?”
“어디를 가기는? 당연히 3 등급 몬스터가 나오는 던전이지.”
“그런 곳이 한, 두 군데야? 잠깐만 기다려봐. 계획 좀 세워보자. 당장 던전에 들어간다 해서 확실하게 공략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민국의 말에 현아는 다시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토라진 것처럼 보이지만 민국은 기억을 통해 그것이 현아가 장난을 치는 행위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쨌든 무턱대고 아무 던전이나 공략하는 것은 비효율적인 일이었다. 던전을 공략하면서 팀원들의 스펙 상승 또한 함께 꾀해야만 했다. 적어도 지금 보유한 장비보다 더 좋은 장비를 얻거나 괜찮은 스킬 스톤 정도는 획득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이 팀에서 가장 스펙이 떨어지는 인물은 바로 민국 본인이었다.
‘장비도 별로인데다가 스킬 스톤도 전부 C 등급 이니…’
그렇다면 힐러용 스킬 스톤이나 장비를 주는 몬스터를 공략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영웅 학교를 졸업하면 얻을 수 있는 단말기인 영웅 패드(Hero Pad)로 정보를 검색을 해보니 마침 3 등급 몬스터가 나타나는 던전 중에 괜찮은 곳이 있었다. 레어(R)급 장비와 B 등급 힐러 스킬 스톤을 보상으로 주는 곳이었다.
분당에 있는 어둠의 포탈, ‘레드 고블린’의 성채라고 이름 붙여진 던전이었다.
“레드 고블린의 성채? 가본 적 없는 곳이지? 차라리 공략을 해 본 던전을 다시 공략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
민국의 말을 들은 애슐린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 한 번 클리어 한 던전을 다시 클리어 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건 좋지 않은 행동이었다. 자격시험을 통과하기 위해서라면 더더욱 그랬다.
“그 말도 일리는 있어. 하지만 우리가 테스트를 통과한 후 공격대에 지원서를 낼 때 동일한 던전만 클리어 한 기록을 본 영웅들이 과연 우리를 어떻게 생각 할까? 적어도 좋게 보지는 않을 거야.”
“그거야 그렇지만…. 당장은 자격증을 얻는 게 더 급한 거 아니야?”
“하지만 자격을 얻는 목적 또한 공격대에 들어가기 위해서지.”
“뭐,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네.”
애슐린은 쉽게 수긍했다. 민국의 말대로 레이드 자격시험을 통과하려는 이유는 괴물들과 전문적으로 싸우는 공격대에 들어가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자격증을 얻었다 해서 바로 영웅으로 실전에 투입되는 건 아니었다. 자격증은 영웅으로 활동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건에 불과했다. 한 마디로 운전을 하기 위해 운전면허 시험을 치르는 것과 비슷했다.
영웅으로 제대로 활동을 하려면 자격시험을 통과한 후 괴물 사냥 허가증을 가진 공격대에 입단을 해야 했다. 당연하지만 아무나 아무 공격대에 입단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기업에 입사하는 것처럼 지원서를 내고, 면접을 본 후에 결과를 기다려야 했다.
공격대가 없는 영웅이 괴물들과 싸울 때는? 정말로 큰 사단이 벌어졌을 때뿐이었다. 아니면 엄청나게 강력한 영웅이 홀로 약한 괴물을 때려잡을 때뿐이던가.
“레드 고블린의 성채는 B 등급 중에서도 난이도 9 에 속하는 던전이야. B 등급 던전 중에서는 난이도가 가장 낮지. 충분히 도전해 볼 만해.”
게다가 공략 스펙이 높지 않아 지금의 장비로도 충분히 클리어를 할 수 있었다.
“리딩은 할 줄 알고?”
“물론이지, 린 샤.”
민국이 자신감 있게 말했다. 잠깐 기억을 더듬어 봐야겠지만, 레드 고블린의 성채는 예전에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이 공략했던 던전이었다.
오래 전, 레드 고블린 성채가 GGW 의 최고 난이도 던전이었을 때 민국도 플레이를 했었기 때문이었다. 영웅패드로 정보를 확인하니 기억 속에 있던 레드 고블린 성채와 완전히 똑같은 던전이었다.
“좋아. 그러면 나는 고블린 성채로 가는 것에 찬성.”
“아, 인간형 괴물들은 조금 들이대는 게 있어서 껄끄러운데. 어쩔 수 없지. 나도 찬성.”
“저도 괜찮아요.”
애슐린을 시작으로 다른 이들도 레드 고블린의 성채로 가는 것에 동의했다. 그렇게 본격적인 레이드 준비가 시작되었다.
민국은 가장 먼저 ‘레드 고블린의 성채’에 등장하는 괴물들에 대해 브리핑했다. 다들 초행인 까닭에 괴물들이 어떤 식으로 공격을 하고, 어떤 특수 패턴을 보이는지 설명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브리핑을 끝낸 이후에는 각자가 자신들이 보유한 스킬들을 가지고 원활한 공략 및 시너지를 위해 스킬 세팅을 논의했고, 그 다음으로 레이드 준비에 필요한 소모품을 구입하기 위해 움직였다.
그렇게 바삐 돌아다니고 보니 어느새 두 시간이 넘게 흘러 있었다.
“이 짓을 매일 마다 해야 하다니….”
본격적인 일정을 시작한 지 고작 두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준비 과정이 만만치 않았던 터라 다들 피로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쉴 수는 없었다. 던전의 공략은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그래도 민국이 브리핑은 꽤 제법이던데? 누가 보면 베테랑 공대장인 줄 알겠더라.”
“맞아. 루니아가 할 때 보다 훨씬 느낌이 좋았어. 그런데 루니아의 쓰레기 같은 리딩을 보면서 왜 이제까지 가만히 있던 거야?”
펍 노비스를 떠나 분당으로 향하는 게이트로 이동하던 도중 애슐린과 린샤가 물었다. 익숙하게 팀원들을 리딩하는 민국의 모습에 제법 놀란 모양이었다. 현아도 민국의 색다른 모습이 신기해 하고 있었다.
“원래 주인공은 힘을 숨기는 법이지.”
“쓸데없는 헛소리는 하는 것을 보면 내가 알고 있던 민국이가 맞기는 한데….”
“아니, 설마 내가 거짓말을 하겠어?”
“네이네이. 알겠습니다.”
건성건성 고개를 흔드는 팀원들의 모습에 민국은 머리를 긁적였다. 정말로 사실인데, 믿지를 않으니 뭐라 설명을 할 방도가 없었다.
* * *
난이도 B – 9 등급 던전인 레드 고블린 성채는 총 두 마리의 레이드 몬스터가 등장하는 던전이었다. 당연히 둘 다 C 등급의 괴물이었다.
던전에서 획득할 수 있는 아이템은 레어(R) 등급의 힐러 무기와 근접 무기 그리고 갑옷 류의 방어구였다. 더불어 B, C 등급의 스킬 스톤도 얻을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생명의 힘을 지닌 돌인 부활석은 나오지 않는 던전이었다.
“@#%@#^@#$!”
“#[email protected]#$^@##@”
레드 고블린 성채로 진입한 민국은 가장 먼저 던전의 입구에 부활석을 사용했다. 그래야만 혹시나 하는 사고가 벌어져도 던전의 입구에서 다시 되살아날 수 있었다.
그렇게 부활석을 세팅한 민국은 팀원들과 함께 고블린들을 무찌르며 성채의 안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레이드 몬스터의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고블린 주제에 자신보다도 두 배나 큰 덩치를 하고 있는 녀석이었다.
“어라? 고블린 주제에 나쁘지 않네?”
괴물의 중심부에 달린 길쭉한 살모사를 보며 린 샤가 휘파람을 불었다. 그런 린 샤의 말에 민국이 당황한 듯 몸을 움찔했지만, 다들 아무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고블린보다는 오크가 좀 더 대단하지 않아? 나는 그렇게 들었는데.”
“맞아. 19 금 영웅 게시판에 가보면 오크한테 따여 본 영웅들의 경험담이 있어. 다들 고블린과는 크기가 비교도 안 된다는데? 절륜 그 자체래.”
“흐흥. 저 정도면 그다지 큰 건 아닌 거 같은데. 내가 살던 아메리카 남자들 특히 흑인들 중에는 아나콘다를 몸에 달고 다니는 사람도 많았어. 저 정도면 아기 뱀이지.”
“…….”
이 대화는 무엇이고, 여긴 어디인가? 그리고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자신을 사이에 두고 자연스럽게 음담패설을 이어나가는 여자들의 대화에 민국은 머리에 망치라도 얻어맞은 것 마냥 얼떨떨했다. 충격과 공포가 따로 없었다. 심지어 팀원들 중 가장 나이가 어린 유나도 귀를 쫑긋거리며 언제든지 대화에 끼어들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게 무슨….’
하지만 기억에 따르면 여기는 이런 세계였다. 괴물과의 계속된 전쟁으로 인해 남성의 숫자는 크게 줄어들었고, 여자만이 마나를 각성하면서 자연스럽게 남녀 역전과 비슷한 상황이 펼쳐지게 된 것이다.
그렇게 폭풍과도 같은 충격의 시간이 지나간 이후 민국이 브리핑을 시작했다.
“저 녀석의 이름은 혈갑 고블린 – 피투야. 뭐, 어려운 녀석은 아니니까 긴장할 필요는 없어.”
“말은 그렇게 해도, 저 녀석이 내려찍으면 바로 쥐포가 될 거 같은데…. 정말로 민국이 너 믿어도 되는 거지? 재수 없게 붙잡혀서 괴물에게 따인 다음에 구조되는 일은 정말로 사양하고 싶다고.”
파투가 들고 있는 거대한 망치를 보는 현아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거렸다.
하기야 부활석이 있다 해도 몬스터에게 얻어맞고 죽는 것이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재수 없게 산 채로 붙잡히기라도 한다면 부활은커녕 구조대가 올 때까지 끔찍한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고블린은 인간 여성을 범한 전적이 있는 인간형 괴물이었다.
“걱정 마. 내 리딩에만 잘 따르면 원트(One Try의 줄임말)에 끝낼 수 있을 거다.”
“하아…. 이 자식, 죽을 것처럼 아프고 나더니 천국이라도 경험하고 왔나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네.”
“뭐, 어쨌든 브리핑 다 기억하고 있지?”
브리핑을 기억하냐는 물음에 모두의 표정이 굳는 것을 보니, 어째 다시 한 번 공략에 대한 설명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아무래도 초행인 만큼 다들 긴장을 한 모양이었다.
음담패설을 할 때는 신나게 떠들더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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