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2 초보 영웅들
‘최고였다…. 진짜 하얗게 불태웠어.’
다음 날, 침대에서 눈을 뜬 민국은 새벽까지 이어졌던 정사를 생각하고는 만족감에 몸을 떨었다. 그만큼 현아와의 잠자리는 환상적이었다. 예쁜 그녀의 외모만큼이나 말이다.
민국의 눈동자가 옆으로 향했다. 그의 상대였던 현아가 이불을 덮고 누워있는데, 그녀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그만큼 어제의 관계가 좋았던 모양이었다.
하기야 밤새도록 자신을 갈구하던 현아의 짐승 같은 움직임에는 아주 조금의 가식도 없었다. 정말로 민국을 원해서 하는 행위 그 자체였다.
“이 새끼. 행복한 놈이었네.”
이런 미녀의 사랑과 애정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니.
그렇게 현아의 얼굴을 쳐다보던 민국은 그녀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시계를 확인해 보니 팀원들과의 약속 시간까지는 아직 여유 있게 남아 있었다.
민국의 발걸음이 컴퓨터로 향했다. 문득 현아와의 정사에서 느꼈던 이질감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진짜 말도 안 되는 세계야.”
현아의 입에서 나왔던 내용들은 민국에서 컬쳐 쇼크 그 이상의 충격을 주었다.
서로의 성욕이 바뀐 것, 펠라를 포함한 그 이상의 행위를 싫어하는 남성들. 임신하면 코가 꿰이는 건 남성등. 자신이 살던 세계와는 다른 세계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차이가 도무지 적응이 되지를 않았다. 일단 뭐가 진실이고 거짓인지부터 확인을 좀 하고 싶었다.
인터넷에 접속한 민국은 바로 한 인터넷 커뮤니티로 향했다. 이 몸의 원주인이 활동하던 커뮤니티로 남성만이 가입을 하고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이었다.
“뭐라고 글을 올려야 되려나….”
잠시 고민을 하던 민국의 눈에 연애 게시판 항목이 들어왔다. 곧바로 민국이 게시판의 내용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 술을 먹다가 합석했던 모르는 여자랑 자버렸어요. 사정도 안에 한 것 같은데…. 여자는 저를 책임지겠다고 하는데, 도저히 그 여자와 함께 할 자신이 없어요. 어떻게 해야 하죠?
└ 일단 경찰에 신고하고 강간했다고 우기셈. 요즘 법이 좋아서 일관된 진술만으로도 상대를 처벌할 수 있어요. 합의금도 두둑하게 받아 놓으세요.
- 20대 후반, 연봉 8000. 서울에 자기 집 있고, 외제차 있음. 결혼상대로 생각하는 데 어떤가요? 예쁘고 매너도 좋아요. 처갓집 식구들도 나쁘지 않고요.
└ 쓰니가 사랑한다면 당연히 함께 해야죠. 행복하세요.
└ 요즘 이런 글 올려도 별 관심 못 받아요. 여친 자랑하려면 적어도 4, 5 성 영웅은 되어야죠.
└ 그래도 사망률 높은 영웅보다는 일반인이 낫지 않나? 사랑하는 여자가 죽으면 어떻게 할 거야?
└ 영웅 사망률 높았던 건 수십 년 전 일이고. 지금은 일반인이나 크게 다름없는 거 모름? 오히려 던전 타이머 돌아가는 순간 죽어나가는 것은 일반인들임.
“으음…….”
여러 글들을 읽어 봤지만, 역시나 도움이 되는 것은 별로 없었다.
그나마 어둠의 괴물들에게 위협당하는 이 세계가 영웅들에게 크게 의존하고 있고, 남성의 숫자가 급격하게 줄어들었던 환경의 변화가 서로의 성역할과 상식을 바꾸었다는 것 정도는 확인할 수 있었다. 결국 현아가 했던 말들은 거짓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진짜 어메이징하네.”
민국은 원래의 세계에서 자신이 활동했던 사이트를 떠올렸다. 가상현실게임 GGW 의 사이트였다.
그 곳에는 자발적으로 순결을 유지하는 남정네들이 산더미 같이 있었다. 오죽하면 대한민국의 마법사는 다 이곳에 모였다는 소문까지 돌았을 정도였다.
“그 놈들에게 이 세계는 진짜 천국이나 다름없었을 텐데…. 카오스를 몰랐던 너희들의 운명이다. 대신 이 형님이 즐기고 가주마.”
그렇게 중얼거리며 민국은 글쓰기 버튼을 눌렀다. 이 세계 남자들의 글을 보다보니 자신도 글을 올리고 싶어졌다. 물론, 징징거리거나 하는 내용의 글은 아니었다. 마초적인 요소가 가득 실린 글이었다.
- 현직 남자 영웅이다. 어젯밤 친하게 지내던 여사친 영웅 한 명을 기절시킨 의미로 질문 받는다.
└ ? 남자가 여자 영웅을 기절 시켰다고? 그거 말하는 건 아니겠지?
└ 구라도 정도껏 쳐야지, 아무리 허세라도 선을 넘으면 우리가 어떻게 반응해 주냐? 여자 영웅 만나자마자 잘못했다고 빌 놈이네.
└ 우리나라 남자 영웅이 열이 안 되는데, 네가 그 중 하나라고? 인증해 보던가.
└ 여자 영웅이 기절한 게 아니라 네가 기절 한 거 아니냐? 2 초? 3초?
└ Hello. 토끼. 반가워요. 동물 갤러리에서 당신을 초대하고 싶어요.
“…….”
내가 이들의 뭘 잘못 건드린 걸까? 순식간에 댓글이 달렸다.
글을 올리자마자 단숨에 열 개가 달렸고, 새로 고침을 하는 순간 댓글의 숫자는 어느새 삼십 개가 넘어 있었다.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던 민국은 조용히 자신의 글을 삭제했다. 도저히 댓글의 내용을 확인할 자신이 없었다.
반사적으로 컴퓨터까지 꺼버린 민국은 자연스레 현아를 깨울 준비를 시작했다.
슬슬 던전을 공략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앞으로 6일 남은 레이드 자격시험 조건을 만족하기 위해서는 3 등급의 몬스터 다섯 마리를 더 물리쳐야 했다. 그리고 오늘 어둠 숲 공략을 성공적으로 끝내면 남은 다섯 번의 횟수 중 한 번을 더 채울 수 있었다.
C - 2 난이도의 어둠 숲은 레드 고블린의 성채와 비교하면 위험도가 조금 떨어졌다. 세 마리의 괴물 중 두 마리가 2 등급에 불과한 몬스터였다. 그래도 천 달러라는 현상금은 가뜩이나 장비가 부족한 팀의 상황에서는 무시할 수 없는 돈이었다.
“그런데 이 녀석은 레이드 자격시험이 일주일 밖에 안 남았는데, 장비도 안 갖추고 뭐했대?”
레이드 자격시험을 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은 Gear Score 80.
급하게 장만해야 했던 힐러 계통의 장비가 아닌 원거리 딜러 장비 점수를 평균 내봐도 70이 넘지 못했다. 다시금 이 몸의 원 주인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오현아. 일어나.”
“……으으으. 1 분만….”
“그러던가. 그러면 나 혼자 레이드 뛰러 간다?”
민국의 말에 현아가 게슴츠레 눈을 떴다. 그녀의 눈과 마주친 민국이 피식 웃었다.
“뭐야. 이미 깨어 있었네?”
갓 잠에서 깨어난 사람치고는 눈동자가 제법 또렷했다. 완전히 정신이 차렸던 게 틀림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현아가 얼굴을 붉히고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 잘 잤어? 어디 아픈 데는 없고?”
머쓱하게 뒤통수를 긁적이며 하는 현아의 어색한 안부 인사에 민국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야? 어디 딴 데 갔다 왔어? 아프긴 어디가 아파?”
“그, 그래? 괜찮아? 어제 내가 너무 심하게….”
“으음….”
민국의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그건 인정할 수 있었다. 어젯밤 현아의 요분질은 장난이 아니었다. 마치 평생을 굶은 것 같았을 정도로 격렬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말하면 굉장히 좋았던 시간이었다. 아래가 조금 쓰리기는 했지만, 성욕에 미친 이십대 남자의 회복력이면 하루 아니 반나절이면 회복할 수 있었다.
“조금 놀라긴 했는데….”
이 세계 여성의 성욕을 얕봤던 자신의 실수였다. 그건 인정할 수 있었다. 그런 민국의 말에 현아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하지만 민국의 말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래도 좋았어.”
만족도를 점수로 매길 수 있다면 민국은 어젯밤의 정사에 95 점이라는 점수를 줄 수 있었다. 100 점이 아닌 것은 현아의 성욕에 자신이 밀렸다는 남자의 자존심이었다.
“진짜? 좋았어?”
“물론이지. 마음 같아서는….”
민국의 눈동자가 힐끔 현아의 가슴으로 향했다. 분홍빛의 어여쁜 유두가 눈에 들어왔다. 어젯밤 자신이 그렇게 물고 빨던 그것이었다. 본능적으로 하체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민국은 아직 속옷을 입지 않고 있었다.
“…….”
점점 세워지기 시작하는 민국의 남성에 현아가 야릇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혀가 입술을 훑었다. 민국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야, 시간 없어. 두 시간 안에 모든 준비를 끝내고 나가야 한다고.”
“그 정도면 충분해. 네가 좋아하는 거 해줄게.”
“좋아하는 거…?”
하나의 행위가 민국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곧 현아의 입이 벌어졌고, 잠시 후 민국의 입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기억에 따르면 현아의 남자 경험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세계 여성의 성욕을 얕본 것일까? 현아의 애무는 지금껏 민국이 경험했던 애무 중에서 최고라 할 수 있었다. 절로 몸이 녹아내렸고, 결국 민국은 현아에게 달려들 수밖에 없었다.
* * *
“이십 분이나 늦었어.”
펍 노비스. 다급하게 들어선 두 남녀를 향해 린샤가 자신의 시계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허억. 허억.”
“미, 미안해. 늦잠을 자는 바람에….”
일행들을 향해 현아가 자신의 손을 맞대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현아의 모습에 린샤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던전으로 출발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다. 굳이 이렇게 일찍 모이는 이유는 전부 브리핑 때문이었다.
민국과 현아가 두 시간이나 남았던 약속 시간에 늦게 된 이유는 역시나 섹스 때문이었다. 현아의 애무로 시작된 행위는 결국 그녀의 안에 사정을 하면서 끝이 났다. 그만큼 준비 시간이 늦어진 것이다.
‘흐응….’
하지만 알겠다며 넘어가는 린샤와는 달리 애슐린은 둘의 이상한 낌새를 금방 눈치 챌 수 있었다. 둘 사이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우직임 그리고 자신의 코를 미미하게 건드리는 야릇한 냄새가 그 증거였다.
‘했네, 했어.’
애슐린의 시선이 노골적으로 민국에게 향했다.
전 세계에서도 몇 되지 않는 남성 영웅인지라 그녀도 민국을 노리고 있었는데,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고 어젯밤 현아가 먼저 맛을 본 모양이었다. 하기야 여사친이라는 좋은 구실과 함께 동거중이기까지 하니 진도를 빼는 것도 어렵지 않았으리라.
오늘 따라 현아의 피부가 굉장히 탱탱하게 느껴지는 게 어젯밤 환상적인 시간을 보낸 게 틀림없으리라. 일반 남성이 아닌 남성 영웅. 침대 위에서의 힘과 지속력은 일반인들과는 비교도 되지 못할 게 분명했다.
애슐린은 자신이 경험했던 일반인들을 떠올렸다. 헬스로 단련된 근육질의 남성도 마나 혹은 마력을 각성한 여성 영웅을 상대로는 길어봤자 2 분도 발기를 지속하지 못했다.
아나콘다를 가지고 있는 흑인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기세 좋게 덤벼들었다가 행위 한, 두 번으로 모든 힘을 쏟고는 기절하는 녀석이 대부분이었다. 오래 버텨봤자 십 분이었다.
고블린과 같은 인간형 몬스터에게 몸을 빼앗기고서는 자신도 모르게 타락하는 여성 영웅들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일반인들과 달리 민국은 마력을 사용할 줄 아는 영웅. 침대 위에서의 민국의 모습을 떠올리자 애슐린은 절로 몸이 배배 꼬였다.
‘저 언니, 흥분했네.’
대놓고 음란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애슐린의 모습에 현아는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어젯밤 자신과 민국 사이에 있었던 일을 눈치 챈 게 틀림없었다. 그나마 린샤와 유나는 모르는 것 같았다.
‘좀 더 깨끗하게 씻고 왔어야 했는데….’
민국과의 정사가 너무 좋아서 도저히 중간에 그만둘 수가 없었다. 그 결과 샤워도 대충 끝내야 했다. 어쨌든 애슐린의 태도를 보니 근시일 내에 그녀가 민국에게 접근하려 들 건 분명해 보였다.
‘그래도 내가 더 민국이를 만족시킬 수 있어.’
현아는 그렇게 생각하며 각오를 다졌다. 어젯밤의 정사를 통해 민국이 좋아하는 애무도 알아낼 수 있었다. 흥분으로 가득찼던 민국의 신음소리가 아직도 자신의 귀에 맴돌고 있었다.
게다가 자신과 민국은 동거 중이기까지 했다. 분위기만 잘 탄다면 밤마다 함께 몸을 섞을 수 있는 것이다. 적어도 애슐린보다는 민국과 가까운 사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두 여인이 다른 생각에 빠져 있는 동안 민국은 오늘 공략할 C – 2 난이도의 던전 ‘어둠 숲’ 공략에 대한 브리핑을 준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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