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영웅 소녀 전쟁-14화 (14/486)

EP.14 초보 영웅들

갈굼이 효과가 있던 건지, 아니면 술과 회식의 영향 때문인지 다음 전투부터 팀원들의 모습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물론 긍정적으로 말이었다. 빠른 속도로 잡몹이 처리되었고, 두 번째 2 등급 몬스터가 일행들의 앞에 나타났다. 곧바로 전투가 시작되었다.

“아, 아아악! 나 죽을 꺼 같아!”

“엄살 부리지 말고! 좋아! 잘하고 있어! 그래! 그렇게 막아야지!”

2 등급 몬스터가 가하는 공격의 궤적으로 오현아의 방패가 끼어들었다. 그로 인해 몬스터는 자신의 공격을 제대로 내뻗지도 못한 채 무기를 거둬들여야만 했다.

그런 현아의 모습에 민국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정확한 타이밍에 이은 막아내기였다. 저렇게 방어를 하면 몬스터에게 입는 피해도 평상시보다 크게 줄어들었다.

탱커가 사용해야 하는 아주 기본적인 기술 중 하나였지만, GGW 의 탱커 영웅들 중 막아내기를 제대로 활용하는 영웅은 태생 성급이 높은 애들만이 가능했다. 나머지는 고된 훈련과 경험으로 터득시켜야 할 정도로 처음부터 막아내기를 사용할 줄 아는 영웅은 많지 않았다.

‘재능충이네.’

그런 면에서 보면 확실히 오현아의 능력은 마나를 각성한 지 얼마 되지 않은 1 등급 영웅이라는 이름이 어울리지 않을 정도 뛰어난 편이었다. 다만, 탱커 주제에 아픈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데다가 그에 따라 정신이 사나울 정도로 쓸데없이 말을 많이 하기는 하지만 선을 넘지는 않는 모습이었다.

공격이 막힌 몬스터가 재차 탱커인 현아를 노리고 달려들었다. 그리고 현아는 정석적으로 적의 공격에 대응했다. 공격을 흘려낸 뒤, 적의 약점을 노리고 무기를 휘둘렀기 때문이었다.

카앙! 캉!

몇 번이 공격이 교환되었고, 현아의 생명력이 줄어든 것을 확인한 민국은 회복 마법으로 현아의 체력을 회복시켰다. 그리고는 지팡이를 휘둘러 몬스터의 움직임을 방해했다. 3 등급도 아닌 2 등급의 녀석이라 이런 여유를 부려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이야아압!!!”

“우리의 회식을 위하여!”

애슐린, 린샤, 최유나로 이루어진 딜러진도 요란한 기합을 내지르며 달려들었다. 그녀들의 무기가 휘둘러짐에 따라 2 등급 몬스터의 생명력이 빠른 속도로 줄어들었다. 확실히 레이드 자격을 노리는 예비 영웅들인지라 2 등급의 몬스터는 너무나도 쉬웠다.

다만, 쉬운 상대인 만큼 보상도 형편없었다. 기껏해야 40 달러 수준의 잡템이 나왔을 뿐이었다.

“회식으로 뭐 먹을 거야? Beef? Fork?”

“F 가 아니라 P. Fork 가 뭐야 대체? 그걸로 돼지고기를 찔러 먹게?”

“그, 그래. 그런 뜻으로 말한 거 맞아. 정확히 맞췄네.”

애슐린의 지적에 말을 꺼냈던 붉어진 얼굴로 린샤가 더듬거리듯 말했다. 그러면서 힐끔 민국을 쳐다보았다. 그 뒤로는 유나가 웃음을 참지 못하고 키득거리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린샤의 질문에 진지한 표정을 짓던 현아가 말했다.

“딱히 고기의 종류가 중요한 건 아닌 거 같아. 나는 고기라는 건 존재 자체만으로 옳다고 생각하거든? 그래도 이왕이면 돼지. 싸니까 그만큼 술을 더 많이 마실 수 있잖아.”

“그거 좋네. 나도 술 많이 좋아하거든. 특히 좋은 사람하고 마시는 술.”

애슐린의 말이었다. 이어서 그녀와 현아의 눈이 마주치며 묘한 분위기를 만들어냈지만, 공대장인 민국은 ‘어둠의 칼루’ 공략 오더를 생각하느라 둘의 행동을 볼 수가 없었다. 린샤와 유나만이 현아와 애슐린의 기 싸움을 보며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 * *

‘어둠의 칼루’ 공략은 공략법에도 나와 있듯이 공대장과 힐러의 지분이 90 % 이상을 차지하는 몬스터였다.

공대장은 정확한 판단을 힐러는 그에 맞춰서 정확한 대상에게 회복 마법을 사용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실수를 하게 된다면 팀원들의 사망으로 바로 이어졌다.

그리고 민국은 GGW 에서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던 공대장이었으며, 그 못지않을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자랑하던 힐러였다.

- 크아아아아아!

모두들 행동 불가 상태에 빠뜨리는 칼루의 암흑 포효. 이어서 큰 충격과 함께 공대원의 생명력이 10 % 이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행동 불가 상태에서 빠져 나온 민국은 바로 회복 마법을 캐스팅했다. 대상은 현아였다.

‘광역 피해라고 광역 회복 마법부터 캐스팅하는 것은 초보나 하는 짓이지.’

광역 회복 마법은 단일 회복 마법에 비해 회복량도 적었고, 캐스팅하는 시간도 길게 필요했다. 그만큼 탱커에게 힐이 비는 것이다.

게임에는 힐의 우선순위라는 단어가 있었다. 전투의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차피 몬스터에게 공격을 받는 대상은 탱커 한 명뿐. 딜러들이 부주의한 행동을 하는 게 아니라면 굳이 급하게 회복시킬 필요가 없었다.

그에 반해 탱커는 이어지는 몬스터의 공격을 감당해 낼 수 있을 정도의 생명력이 있어야만 했다. 탱커가 사망하면 레이드도 끝이었다.

화아아악!

따뜻한 마력의 빛과 함께 현아의 생명력이 회복된 것을 확인한 민국은 곧바로 광역 회복 마법을 캐스팅했다. 자연스럽게 수인이 맺어지며 연이어 모두의 생명력이 조금씩 차오르기 시작했다. 캐스팅에는 조금의 실수도 없었다.

“바로바로 힐이 들어오네? 우리 공대장 실력이 아주 대단하다니까?”

“정말 원거리 딜러를 할 때 보다 훨씬 든든해.”

위기 상황이라면 위기 상황이라 부를 수 있는 타이밍을 너무나도 부드럽게 넘겨버리는 민국의 실력에 다들 감탄을 토했다.

비록 레이드 자격증은 없는 예비 영웅이지만, 5 인 파티로 던전의 몬스터를 상대하는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그만큼 여러 힐러들을 만나 손발을 맞췄던 경험들이 더러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민국의 실력과는 비교가 되지 못했다.

따지고 보면 민국이 힐러로 전향한지는 고작 이틀 밖에 지나지 않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민국이 보여준 실력은 한 공격대의 힐러장을 맡아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뛰어났다. 하물며 민국은 오더까지 내리고 있었다.

“최유나, 다크 볼! 아, 라인까지 같이 오네. 다크 볼만 피하고 나한테 일정 거리 이상 떨어지지 마!”

“네…!”

현아에게 빠르게 도트 회복 마법(지속되는 시간 동안 일정 시간마다 체력을 소량 회복시켜 줌)을 걸어준 민국은 다크 볼에 피해를 입은 유나를 향해 연달아 회복 마법을 캐스팅 했다.

그로 인해 순식간에 줄어들었던 유나의 생명력이 눈에 띄게 차오르기 시작했다. 이어서 린샤의 공격이 칼루를 강타했고, 다크 라인이 끊기며 유나 또한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좋아! 이대로만 하면 돼!”

칼루를 상대하는 팀원들을 향해 민국이 외쳤다.

힐러의 지분이 90 % 가 넘을 정도로 힐러의 활약이 중요한 녀석인 만큼 자신이 실수를 하지 않는다면 몬스터 또한 쉽게 잡을 수 있었다. 그 말은 즉, 부활석을 단 하나만 소모하고 던전을 클리어 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1 억이 그냥 버려지는 것은 아깝긴 하지만….’

혹시 모를 사고 때문에라도 부활석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선택은 할 수가 없었다. 어쨌든 더 이상의 부활석을 소모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이번 공략은 성공이나 다름없었다. ‘어둠의 칼루’는 레이드 자격시험 조건에 들어가는 3 등급 몬스터였다.

“린샤! 차단!”

“오현아! 포효 준비!!! 뎀감기(적의 데미지를 감소시키는 탱커의 기술) 쓸 수 있으면 바로 사용해!”

쉴 틈 없는 오더와 함께 민국은 자신의 마나 상황을 확인하며 회복 마법을 캐스팅했다. 그러는 동안 칼루의 생명력은 조금씩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삐익!

▶ “어둠 숲”의 토벌을 완료했습니다.

▶ 영웅 패드에 업적 포인트가 0.6 주어집니다.

▶ 영웅 도감의 횟수가 갱신되었습니다.

“좋았어!”

“예! 원트(One Try)! 원트다!!!”

비록 C – 2 수준의 던전이었지만, 그래도 3 등급 몬스터가 한 마리 포함된 던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 희생도 없이 완벽하게 던전을 공략했다는 사실에 모두들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자, 그러면 이제 네 마리 남은 건가?”

“유나를 생각하면 일곱 마리.”

린샤의 중얼거림에 민국이 답했다. 함께하는 팀원인 만큼 민국은 무리를 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번 레이드 시험 자격에 유나 또한 조건을 충족시킬 생각이었다.

“빡세게 달려야겠네.”

“오늘이 지나도 아직 오 일이나 남았어. 이틀 만에 3 등급 몬스터를 세 마리나 잡았으니, 쉬지 않고 던전을 공략하면 가능해.”

“괜찮겠어? 오더를 내리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

“뭐…….”

린샤의 걱정 어린 말에 민국은 어깨를 으쓱했다.

GGW 를 할 때는 하루에 수십, 수백번의 트라이를 경험했었다. 그것도 엄청난 난이도를 지닌 몬스터를 상대로 말이다. 그런 민국에게 이 정도 수준의 레이드는 어린애 장난에 불과했다. 조금 과장해서 라면을 먹으면서도 레이드를 진행할 수 있었다.

고개를 돌리던 민국의 눈에 레이드의 성공을 기뻐하는 현아의 모습이 들어왔다. 탱커로 고생을 한만큼 그녀는 기뻐할 자격이 충분히 있었다. 그런 현아를 보다가 순간적으로 눈이 맞았다.

“…….”

절로 침이 넘어갔다. 현아가 자신을 향해 키스를 하듯 입술을 살짝 내미는 제스처와 함께 혀로 윗입술을 쓰는 것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남자의 심금을 건드리는 섹시한 모습이었다. 그와 함께 어젯밤과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들이 떠올랐다.

‘오늘도….’

현아의 아름다운 몸매와 그녀의 야릇한 신음이 민국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 뿐인가? 그녀의 애무는 최고라는 단어로밖에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끝내줬었다.

그리고 그런 즐거움을 오늘도 잘하면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더욱이 오늘은 회식을 하자고 한 날이었다. 술의 힘을 빌린다면…. 민국의 얼굴에 절로 미소가 맺혔다. 조금은 변태스러운 웃음이었다.

* * *

‘어둠 숲’의 3 등급 몬스터인 ‘어둠의 칼루’가 뱉어낸 아이템은 Gear Score – 75 짜리의 탱커용 장갑이었다. 거기에 동일한 스코어의 힐러용 신발과 C 등급 스킬 스톤도 하나 나왔다.

“그러면 이것들은 경매로 바로 내놓을게.”

그리고 민국은 팀원들과의 상의를 거쳐 탱커용 장갑과 C 등급 스킬 스톤을 경매로 내놓기로 했다. 탱커인 현아는 이미 그보다 더 좋은 아이템을 지니고 있었고, 스킬 스톤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Gear Score - 75 짜리의 힐러용 신발은 민국이 구입하기로 했다. 돈은 부활석 하나만 팔아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

레이드 자격시험에 필요한 스코어 80 보다는 낮은 등급의 장비였지만, 현재 민국이 착용하고 있는 장비는 스코어 48 짜리에 불과했다. 어차피 모자라는 게 있으면 다른 장비로 때우면 되었다. 부활석의 가격을 알게 된 이상 돈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그렇다고 당장 비싼 장비가 필요한 것도 아니니까.’

경매장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필요도 없었다. 장비 아이템의 가격은 스코어가 올라갈 때 마다 기하급수적으로 비싸졌다.

“수고하셨습니다. 이렇게나 빠르게 공략에 성공하시다니, 실력이 대단하시네요.”

‘어둠 숲’으로 향하는 입구를 지키고 있던 군인 중 계급이 가장 높아 보이는 여자가 민국을 향해 말했다. 던전을 클리어 했기 때문일까? 던전 타이머의 침이 1 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린샤가 아쉽다는 듯 말했다.

“에이…. 열두시가 아니네.”

“그랬으면 좋았겠지만…. 던전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는 않죠. 그래도 덕분에 한시름 놓았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영웅님들.”

여성 군인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듣자하니 이렇게 던전을 공략하다보면 던전이 완전히 사라지는 경우도 있는 모양이었다. 어쨌든 ‘어둠 숲’ 공략은 이걸로 끝이었다. 그리고 포상금으로 1000 달러의 돈을 손에 넣은 민국이 팀원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러면 괜찮은 고깃집 아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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