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영웅 소녀 전쟁-19화 (19/486)

EP.19 레이드 자격시험

“역시 쉽네.”

탁!

민국이 영웅 패드를 덮었다. ‘오크 동굴’ 공략에 관한 정리는 금방 끝이 났다. 기껏해야 B – 9 난이도의 던전. GGW 의 세계적인 공대장이었던 그에게는 누워서 떡먹기 수준의 던전에 불과했다.

순간, 다른 공대장들은 어떻게 오더를 내리며 던전을 공략하는지 궁금증이 들었다. 현아의 말에 따르면 이렇게 쉬운 던전도 제대로 오더를 내릴 사람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는 영웅들이 사방에 널려 있다고 했다.

‘이름이 뭐였더라? 루니아라고 했던가?’

이 세계에 막 자신이 도착했을 때만 하더라도 2 등급 영웅이었던 공대장이 팀을 나가는 바람에 현아가 당황해하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했다.

그리고 직접 경험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기억 속에 있는 루니아의 오더 능력은 민국의 기준으로 엉망이었다. GGW를 플레이하면서 갓 오더를 시작한 뉴비들과 비교해 크게 다를 바가 없는 수준에 불과했었다.

“그래도 유명한 공대장들은 좀 낫겠지?”

민국의 고개가 뒤로 돌아갔다. 아직 현아는 준비가 끝나지 않은 모양. 약속시간까지도 한 시간 조금 넘게 시간이 남아 있었다.

“……인터넷에는 많은 정보들이 있지.”

컴퓨터를 이용해 정보의 바다로 뛰어든 민국은 곧바로 영웅튜브(Hero Tube)에 접속했다. 영웅과 브라운관의 합성어인 영웅튜브는 어둠의 괴물들과 싸우는 영웅들의 활약상과 그녀들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컨텐츠들을 보여주는 동영상 공유 서비스였다.

당연히 유명한 공대장들의 리딩도 영상으로 공유되고 있었다.

“별게 다 있네.”

인류의 생존을 걸고 어둠의 괴물들을 상대하느라 정신이 없던 옛날에는 정보통제가 굉장히 심했다고 했다. 하기야 마나를 각성한 아리따운 소녀들 혹은 군인들이 괴물들의 손에 죽어가는 모습은 결코 방송할 수 없는 내용이었으리라.

그러나 그것도 백여 년에 가깝게 어둠의 괴물들과 싸움을 하다보면 어느 정도 익숙해지는 모양이었다. 지금은 이렇게 괴물들을 상대로 영웅들이 싸우는 영상을 보는 게 일반인들에게 인기인 모양이었다.

당연히 영웅들의 랭킹 순위와 레이드의 성공에 대해서도 일거수일투족 신경을 썼다. 마치 아이돌을 응원하는 팬들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영웅들도 영웅 튜브를 비롯한 다양한 방식으로 적극적으로 홍보를 하는 모양이었다. 그들에게 투자되는 돈과 자원이 워낙에 많기 때문이었다. 부활석 하나만 해도 1 억이었다. 심지어 최근에는 그 시세가 조금씩 올라가는 상황이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예비 영웅은 물론이고, 일선에서 어둠의 괴물들을 상대하는 레이드 클랜 혹은 길드들도 자주 영웅 튜브에 영상을 올린다고 했다.

“오?! 델타 포스 공대가 있다고?”

그렇게 레이드 오더 관련 동영상을 검색을 하던 민국이 미국의 공대 ‘델타 포스’의 레이드 영상을 클릭했다.

어제 있었던 회식에서 미국이 레이드 강국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거기에 델타 포스는 민국의 세계에서도 ‘데브그루’ 와 함께 1 티어로 분류되는 일급 특수 부대이자 전 세계 최고의 특수부대.

과연 이 세계의 델타 포스 공대는 어떤 모습을 보일지 너무나도 궁금했다.

“역시…. 허접한 녀석이 상대는 아닌 모양이군.”

‘델타 포스’의 상대는 A – 1 난이도의 8 등급 보스 몬스터였다. 명명된 몬스터의 이름은 ‘어둠 장군 – 바트란’. 인간형태의 괴물이면서 크기가 4, 5 m 는 되어 보이는 녀석이었다.

델타 포스에서 오더를 내리는 공대장은 숏컷의 미인이었다. 각진 녹색의 군모에 눈 밑에 검은색 위장크림을 바르고 있었는데, 베테랑 영웅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영상으로만 봐도 포스가 넘치고 있었다. 총을 이용한 원거리 공격을 하는 딜러로 보였다.

그리고 그녀들의 오더는 굉장히 깔끔했다.

“Five Whip.”

바트란이 휘두르는 채찍이 빠른 속도로 탱커를 강타했다. 그리고 공대장의 오더에 따라 메인 탱커에게 힐이 시전 되었다.

“Next, Red Team go left.”

공대장의 명령에 따라 다섯 명의 인원이 왼쪽으로 빠졌다. 이어서 그들의 앞에 나타난 오브젝트를 파괴하기 시작했다.

델타 포스 열 명으로 이루어진 ‘바트란’ 레이드는 아무 위기도 없이 스무스 하게 진행이 되었다. 영상으로만 보면 8 등급 보스 몬스터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데 어째 좀….”

민국은 델타 포스의 오더 영상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공대원들이 레이드 패턴에 너무나도 익숙한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별다른 위기도 없이 레이드가 클리어 되고 있다는 말은 공대원들의 실력과 지닌 장비가 보스 몬스터의 스펙을 훌쩍 뛰어넘는다는 이야기였다. 저런 레이드는 공대장이 중요한 순간만 짚어주면 어렵지 않게 클리어 할 수 있었다.

검색을 해보니 A – 1 난이도의 던전을 공략할 수 있는 팀은 전 세계에서도 몇 없다고 했다. 그리고 델타 포스는 미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레이드 팀. 어둠의 괴물들과의 전투에서도 혁혁한 공을 세운 명문 팀이라고 했다.

“잘하는 것 같기는 한데, 뭔가 애매하네. 조금 더 난이도가 높은 9 등급? 10 등급의 보스 몬스터였다면 제법 볼만 했을 것 같은데….”

안타깝게도 그런 영상은 없었다. 델타 포스도 공략 멤버만 달라졌을 뿐, A – 1 난이도의 던전 공략 영상만 올린 모습이었다.

“뭐 봐?”

어느새 준비를 마친 현아가 민국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민국이 보던 것을 힐끔 바라봤다.

“델타 포스 영상이네? 여기에 입단하려고?”

“응?”

“아니, 레이드 자격시험에 통과하고 영웅 자격증을 받으면 아무 곳에나 지원서를 낼 수 있잖아? 그리고 미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국가이자 실력이 뛰어난 클랜이 많은 곳이니까.”

그런 이유 때문에 망명을 하는 영웅도 굉장히 많은 모양이었다. 한국에서도 자격증을 획득한 영웅 중 15 % 가량이 미국으로 향한다고 했다. 적은 숫자는 결코 아니었다.

“미국이라….”

솔직히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왠지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들었다. 언어 문제가 있기는 했지만,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별 문제는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고민하는 민국의 모습에 현아가 목청을 험험 가다듬으며 말했다.

“그래도 나는 한국이 좋더라. 신토불이? 우리나라 사람은 우리나라에서 활동해야지. 우리나라도 괜찮은 클랜이 많거든. 특히 서울의 R’s ? 여기 꽤 유명해. 민국이 너도 전에 R’s 에 대해서 궁금해 했었잖아.”

“아하….”

민국이 고개를 주억였다.

이 몸의 전 주인 녀석은 R’s 에 들어가기 위해 미남계로 현아를 이용했었다. 그 증거가 바로 지금 둘이 하고 있는 동거였다.

“그랬었지. 뭐, 당장 중요한 건 아니니까. 일단 레이드 자격시험에 통과하는 게 먼저겠지?”

별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전 주인의 기억으로 화제가 돌아갈까 봐 민국은 재빠르게 말을 돌렸다.

“빨리 준비해서 나가자. 애들 기다리고 있겠다.”

“아? 응, 그래.”

마침 팀원들끼리 모일 약속 시간도 다 되어가고 있었다.

* * *

총 다섯 마리의 보스급 몬스터가 등장하는 오크 동굴은 어둠 숲과는 달리 던전 타이머가 여유가 많이 남아 있었다. 침의 숫자가 1 과 2 사이를 가리키고 있었으니, 며칠 전에도 공략이 되었던 모양이었다.

“우리보다 먼저 던전을 찾은 팀이 있었나 보네.”

“워킹 걸(Working Girl)들이 아닐까? 오크 동굴은 걔네들한테 인기가 많은 던전이잖아?”

“워킹 걸?”

애슐린의 말에 민국이 고개를 갸웃했다. 워킹 맘도 아니고 워킹 걸이라니…, 표현이 조금 이상한 것 같았다. 그런 민국의 질문에 애슐린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이씨.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되지…?”

민국의 앞에서도 거침없이 음담패설을 늘어놓던 그녀였지만, 몬스터에게 타락한 워킹 걸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니 왠지 난감한 기분이었다. 마치 같은 여성 영웅인 자신의 얼굴에 침을 뱉는 것은 생각이 들었던 탓이다.

그리고 그런 애슐린을 구원해준 것은 린샤였다.

“남자와 만족스러운 섹스를 못해서 몬스터들에게 달라붙는 애들이 있어.”

“아….”

민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19 금 게임에서 종종 등장하는 설정이기 때문일까? 막 그렇게까지 놀랍다는 생각은 들지는 않았다.

그래도 어둠의 괴물들과 싸우는 이 세계의 영웅들 중에 그런 이들이 있다는 사실은 조금 의외이긴 했다. 린샤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어찌 보면 불쌍한 애들이기도 한데, 일단 워킹 걸들은 인간형 몬스터한테 패배하고 그들에게 강제로 당해서 마력이 오염된 영웅들을 말해.”

“……그러면 대체 어떻게 살아난 거야? 구출 팀이 바로 돌입한 건가?”

순간 그런 의문이 들었다. 무려, 몬스터의 손에 붙잡힌 이들이었다. 하지만 이어진 대답은 민국의 예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니, 몬스터들이 그냥 놔준다고 해.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마력이 오염된 게 그 이유가 아닐까 하는 추측이 많아.”

“아하.”

놀라운 대답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워킹 걸이 되어버린 여성 영웅들은 오염된 마력이 발작할 때 마다 자신도 모르게 인간형 몬스터들을 찾게 된다고 했다. 그리고 그들의 정을 받아들이고 나서야 발작이 가라앉는 모양이었다.

정말 인내심이 강한 여성이라도 버티는 게 불가능할 정도의 발작이라고 했다. 마약 중독은 아무것도 아닐 정도로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워킹 걸이 되어버리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들도 제법 많다고 했다.

“그러면 인간형 몬스터가 아니라 남자들이 발작을 진정시킬 수도 있지 않아?”

“말로는 가능한데…. 일반 남성들이 여성 영웅을 상대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남성 영웅이라면 모를까.”

린샤가 괜히 히죽거리면서 말했다. 그녀의 뒤에 있던 최유나도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아무래도 어젯밤의 일들을 떠올리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워킹 걸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민국과 일행들은 오크 동굴 내부로 진입했다. 정말로 일반 공략 팀이 아닌 워킹 걸들이 던전을 찾은 모양이었다. 얼마나 그 짓을 해댔는지 비릿한 밤꽃냄새가 진동을 했다.

그리고 민국이 자신의 코를 막으며 물었다.

“잠깐만. 그러면 남자는 어떻게 되는 거지? 남자 영웅도 인간형 몬스터들에게 사로잡힐 수 있잖아?”

“어…음. 글쎄? 남성 영웅이 워낙 적어서 잘 모르겠는데…, 아마 똑같은 꼴을 당하지 않을까? 과연 몬스터들이 성별을 가릴까?”

"오마이갓."

그리고 이어지는 현아의 대답에 민국은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인간형 몬스터를 상대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져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아니면 부활석을 여유 있게 가지고 다니거나.

그런 각오 때문인지 오크 동굴의 몬스터를 상대하는 민국의 오더와 회복 능력은 요전에 경험했던 두 번의 던전 보다도 더욱 날카로웠고, 정확했다. 마치 날이 잔뜩 서 있는 모습이었다.

“왼쪽으로 들어갈게!”

“이야아압! 번개 속사!”

그런 민국의 모습에 영향을 받았는지, 팀원들 또한 정신을 바짝 차리고 레이드에 임했다.

덕분에 민국의 팀은 빠른 속도로 오크 동굴을 클리어 해 나갔다. 2 등급 몬스터는 가뿐했고, 3 등급의 녀석들도 실수 없이 원트로 클리어하고 있었다. 최근의 경험들로 인해 2 등급과는 다른 3 등급 몬스터들의 공격 패턴에도 익숙해진 결과였다.

“5 초 뒤, 애슐린, 유나 뒤로 빠져.”

“오현아! 어그로! 네가 어그로를 제대로 잡아야지 딜러들이 딜링을 할 거 아니야!”

“린샤! 좀 더 분발해! 근접 딜러 DPS 가 36 이면 어떻게 해! 적어도 50 은 넘어야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팀원들의 활약이 만족스럽지 않은 모양인지 조금의 실수가 있을 때마다 민국의 질책이 거세게 이어졌다. 심지어 실수를 범한 팀원이 자신의 행동을 알아차리지 못한 상황에서도 민국은 그런 팀원의 실수를 바로바로 캐치하고 지적하는 모습도 보였다.

‘……와. 대체 쟤는 시야가 얼마나 넓은 거야?’

그런 민국의 모습에 현아는 감탄밖에 나오지 않았다.

몬스터와 격렬하게 전투를 벌이는 상황에서 전장을 파악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탱커인 그녀는 몬스터의 움직임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힘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민국은 아니었다. 공대장이 천직인 것처럼 팀원들을 완벽히 이끌고 있었다. 며칠 전부터 크게 아프더니만 사람이 바뀐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모습이 달라진 것이다.

일 년 넘게 같은 영웅 학교를 다녔고, 함께 예비 레이드를 경험한지도 몇 달이나 되었지만, 그 동안 이런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어쨌든 팀원들은 그런 민국의 지시를 아무 말 없이 따랐다. 엄한 것 같지만, 다른 공대장들이 하는 지적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폭언이나 인신공격도 없었다.

게다가 그만큼 성과를 내고 있었고, 본인의 실력 또한 대단했기에 민국이 내리는 오더에 거부감이 들래야 들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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